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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419화 (419/424)

외전 45화

오직 여기여야만 한다.

지금 얻으려는 연기 관련 스킬의 1차 해금 조건이 바로 '대학로의 시네마천국에서 까메오조차 배우가 단 한명도 겹치지 않는 영화200편 감상하기'이기 때문이다.

꼼수조차 쓸 수 없이 장소를 못박아 둔 해금 조건.

당시 어떤 유저가 영화를 동시에 몇 개씩 틀어도 괜찮다는 꼼수를 발견해 1차 해금에 쓰이는 시간을 극단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됐다지만, 지금으로선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되었다.

진짜 미치고 팔딱 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리셋 라이프 속 장소가 사라져버리다니……'

단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는 문제라서 머릿속이 어지럽다.

"대표님?"

바쁜 와중 진호를 따라온 핫산이 의아해했지만, 생각이 많아져 대답할 수 없었다.

'이렇게 되어 버린 이상 사기 관련 스킬을 얻어야 하는 건가.'

사기의 기본은 연기다.

문제는 스킬을 얻기 위해선 사기를 쳐야만 한다는 거다.

'사기꾼을 다루는 영화에 단역으로라도 출연해서 조금이나마 사기에 조력하기만 해도 괜찮긴 한데……'

실제로 사기를 치는 것이 아닌, 연기일지라도 해금 조건을 달성할수 있었다.

다만, 이 방법 또한 영화에 출연한다는 게 사실상 어려운 일이었다.

현재 사기꾼을 소재로 삼은 영화가 제작되고 있는지 알 수 없을뿐더러, 운이 좋아 어찌어찌 찾았다고 해도 촬영을 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수도 없었다.

"……쯧. 어쩔 수 없나."

진호는 핸드폰을 들어 임대 문의 쪽지 밑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예, 임대 문의 보고 연락드렸는데요. 아뇨, 임대가 아니라 그냥 사려고요. 시네마천국뿐만 아니라 건물 전체를요."

-……예?

현재 판단했을 때, 이게 가장 싸고 가장 빠른 길이었다.

'오히려 잘 됐어.'

꼼수를 제대로 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펄 게이트 인수 합병에 들어갈 돈은 우해진 부장 등에게 맡겨 뒀으니 시간도 많다.

'이번 기회에 능력을 한번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진호는 주먹을 쥐었다.

'건물 매입부터 스킬 1차 해금까지 늦어도 6일 만에 해치운다!'

그의 두 눈이 불타올랐다.

* * *

지이잉! 지이잉!

시네마천국에서 가장 큰 룸이 뒤바뀌고 있다.

60인치 TV들이 벽면을 따라 걸리고, 다 낡고 더러웠던 소파가 성인 남성 세 명이 누워 잠 잘 수 있는 커다란 소파로 바뀐다.

벽면엔 시트지가 발라지고, 초고급 오디오가 설치된다.

밝은 조명까지 들어오니, 어두운 면모부터 연상되는 DVD 방보단 미니 영화관을 연상시키게 한다.

'이런 곳은 설아 씨랑 와야 하는데!'

밀실 속 남녀 둘. 절로 음흉한 미소가 피어오르지만, 그놈의 컴백이 벽처럼 가로막는다.

"이거나 혼자 논다고 한 소리 듣는 거 아냐?"

그럴 확률이 무척이나 높았다.

누구는 집에 들어가면 침대에 직행하기도 바쁠 만큼 힘든데, 누구는 사람들 다 바쁜 와중에 한가롭게 영화나 보고 있다?

'비밀로 해야겠다.'

그리고 마음이 아프지만, 설아를 더 굴리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마음에 드십니까?"

"정말 마음에 듭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단 하루 만에 건물 매입부터 이방의 공사까지 끝나 간다. 핫산을 비롯한 비서들의 수고가 눈에 훤히 보이는 듯 했다.

담담한 말투였지만, 핫산의 얼굴에 만족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왜 하필 이곳일까. 왜 이런 곳을 이렇게 고쳐 쓰는 걸까.'

여전히 미스터리였지만, 그는 궁금증을 누르기로 했다.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시야를 가진 사람이고, 도움이 필요할 땐 꼭 먼저 말해 주는 사람이다.

핫산은 진호가 말해 주기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물론 나 나름대로 대표님의 생각을 짚어 보려 노력해야겠지만.'

그게 최측근 수행원인 비서로서의 덕목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와, 여기 아직까지도 있네. 자기야, 여기 기억나?"

"당연히 기억나지. 우리 데이트장소…… 어머."

열린 문을 통해 들어왔던 30대 커플은 진호와 외국인 비서들을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여, 여기 장사 안 하나요?"

진호는 싱긋 웃었다.

"네, 안 합니다……"

'어?'

진호는 왜인지 낯설지 않은 커플의 외모에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어? 이, 이진호 대표?"

'아!'

"경만이 형? 서아 누나?"

아는 사람이다. 정확히는 알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억! 저, 저희를 어떻게…… 어라?"

진호는 피식 웃었다.

'역시 사람 인연이라는 건 참……'

"행정직 공무원은 합격했어요?"

영식이라 불린 사람은 입을 떡벌렸다. 이제야 진호가 누군지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그렇구나……. 이젠 시네마천국도 사라진 거네."

허경만과 윤서아를 부부로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올린 시네마천국.

본래 개그맨 지망의 예고 출신인 경만은 시네마천국에서 알바를 하며 7급 공무원 공부를 준비했고, 윤서아는 그런 경만과 시네마천국에서 영화 데이트를 하며 연극 배우로서의, 연기자로서의 꿈을 키워갔다.

'아직은 사라진 게 아니죠.'

시네마천국은 진호에게로 넘어왔다.

"참 추억이 많았는데. 기억나냐? 너희 때문에 사장님이 그 이상한 영화들을 모아 놓은 거?"

"아하하."

'……리셋 라이프에 대해 기억을 하고 있구나. 흐음.'

스토리 진행과 스킬 해금 때문에 시네마천국을 찾은 리셋 라이프 유저들.

그러나 거의 일반 DVD방이나 다름없던 시네마천국에서 까메오조차 배우가 단 한 명도 겹치지 않는 영화 200편이 있을 리가 없었다.

"저희가 영화를 가져와 기증하기도 했고, 이곳 사장님께서 따로 개인적으로 모으기도 했죠."

"그랬지. 너희가 그렇게 외국 영화들을 기증해서 대학로 배우들도 많이 찾아왔었지."

국내에선 구하기 힘든 예술영화들이 많으니 어련했을까.

당시 윤서아가 배우에 대한 꿈을 확신해 갔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아, 사장님은 봤어?"

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드님한테 맡기고 귀농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그 아드님은……."

운영을 잘 했으면 시네마천국이 망했을 리가 없었다.

그들 사이에 우울함이 내려앉았다.

추억이 사라진다는 건 참 아쉬운 일이었다.

"그래도 DVD들은 다 남아 있는 것 같네."

"사장님이 설사 가게가 망해도 절대 DVD는 팔지 말라고 했나봐요."

"아."

그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추억이 한 자락이라도 남아 있으니 말이다.

"아, 맞아. 누나는 그렇게 원하는 배우 됐어? 연영과도 나왔잖아."

움찔!

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은 반응이었다.

"……다 너 때문이잖아!"

"헐? 아니 자기가 꿈을 못 이룬걸 가지고 왜 남 탓을 해?"

"몰라. 너 때문이야. 너희 때문이야."

진호는 어떻게 된 일이냐며 허경만을 보았다.

"네가 기억할지는 모르겠는데, 그게임 때문에 이 DVD방을 찾은 사람들 대부분이 너랑 사정이 비슷했어. 기억나?"

"그랬나? 아, 그랬구나 참."

다른 이들은 모르지만, 비슷한 시기에 스킬 해금을 위해 시네마천국을 찾은 사람들은 모두 좋게 말해도 삶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진호가 가족을 위해 학업을 포기 한 것처럼, 다들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포기했던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다.

'설마 리셋 라이프는 이런 사람들만…….'

파직!

'응?'

"그때 나랑 서아 둘 모두 생각참 많이 들더라. 부모님 고생시켜 가며 계속 허황된 꿈을 꾸는 게 맞는 건지……"

"자, 잠깐?"

"아니야. 그냥 현실을 깨닫게 된 거야. 우리 둘 모두에게 정말로 재능이 있었다면 바로 공채든 오디션이든 합격했을 테니까. 그래서 난 공무원 준비를 시작한 거고, 서아는 네일 공부를 시작했지."

"형……. 누나……"

"또 그래서 내년 6월 달에 서아 네일숍 연다. 공무원인 내가 대출해 줘서!"

"오? 축하드려요."

애써 밝아지려는 게 아니라 미련한 톨 남지 않은 둘의 모습에 진호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정말 축하드려요."

"후후. 고마워. 그런데 시네마천국은 왜 공사하는 거야?"

순간 진호의 입이 다물어졌다.

"추, 추억을 보존하려는 거죠. 이곳은 제 추억의 장소니까요."

"오, 부자의 마인드."

"쿡……"

딸랑!

"와! 시네마천국 다시 문 열었어요?"

진호와 경만, 서아는 갑자기 쳐들어온 손님을 멍하니 바라보다 웃음을 터트렸다.

"잘 살아요. 네일숍 오픈 때 꼭 연락해 주시고요."

"당연하지!"

경만과 서아가 해맑게 웃며 사라지자 진호는 공사가 끝난 방으로 들어갔다.

"필요한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치킨, 피자, 삼겹살 등 음식도 말입니다."

그런 것까지 준비할 줄 몰랐던 진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 좋은 사람이야.'

"그럼 팝콘과 콜라 좀 준비해 주시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럼 대표님께서 주신 리스트대로 영화를 재생시키도록 하겠습니다."

탁!

메인 조명이 꺼지자 방 곳곳에서 빛을 발하는 2차 조명들.

희미하고 은은하여 절대 영화 관람에 방해를 주지 않는 빛의 세기에, 진호는 쉽게 소파를 찾아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DVD방이 이렇게 포근하고 아늑한 곳이었으면 자주 왔을 텐…… 음?"

고개를 모로 기울인 진호는 미간을 좁혔다.

갑자기 뭔가가 떠오를 듯하고 있었다.

'추억. 깨끗한 DVD방, 리셋 라이프…….'

"흐으음."

머릿속의 간지러움이 더욱 커져만 갔다.

-딴, 따라, 딴.

"아, 시작한다."

진호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념을 지우며 영화에 집중했다.

첫 번째로 켜진 영화는 장영진 감독 각본의 '동막골'이었다.

진호는 연달아 켜지는 나머지 네개의 TV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시작하자.'

스킬 해금의 시작이었다.

* * *

숨기려고 했지만, 영원한 비밀 같은 건 없었다.

컴백을 앞뒀다지만, 잠을 자지 않는 건 아니었다.

"……."

꿀꺽!

'아니, 씻을 기운도 없도록 연습시켜야지!'

아니다. 피로가 가득한 이설아의 목소리에 차마 거짓말을 할 수 없었던 자신의 잘못이다.

배신감이 잔뜩 담긴 두 눈이 보내는 눈빛이 매우 아팠다.

"보, 보면 알잖아요. 새로운 사업아이템 개발 중이에요."

사업가, 그것도 문어발식으로 사세를 확장한 사업가에겐 무적의 변명인 사업 아이템 개발.

'물론 그럴 생각은 없지만, 지금은 무조건 개발 중인 거야!'

"……내가 바보로 보여요?"

"아니면 영화를 다섯 개나 동시에 틀어 놓고 하루 온 종일 수십편씩 감상할 리가 없잖아요. 그것도 망한 DVD 방에서. 아니에요?"

졸릴수록 당당하게 나가야 했다.

'여기서 빌미를 주면 끝장이야! 무조건 뻔뻔히!'

"그건 그렇기는 한데……"

음소거를 해 놓은 상태지만, 다섯 개의 커다란 TV가 토해 내는 영상들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정말이에요?"

진호는 속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나 그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무척이나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럼요. 미디어 관련 사업을 해볼까 생각 중이라서 그래요."

미디어 사업을 하는데 영화에 대해 모르면 안 되는 게 아니냐는 이어지는 말에 설아는 의심을 덜어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다섯 개 영화를 한꺼번에 봐도 괜찮은 거예요?"

"좀 어지럽긴 하지만, 괜찮아요. 아, 설아 씨도 영화 한 편 볼래요? 헤드셋 드릴게요."

진호는 그렇게 말하며 툭툭 자신의 옆자리를 두드렸다.

"……같이 누워서 뭐 할려고요?"

눈을 가늘게 뜨며 노려보는 그녀의 모습에 진호는 코웃음을 쳤다.

"당연히 손잡고, 끌어안고, 뽀뽀할 겁니다."

……화악!

설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미쳤어!"

펄쩍 뛰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키득키득 웃은 진호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겼고, 그녀는 그 힘을 못 이겨 앉을 수밖에 없었다.

털썩!

진호는 이설아의 어깨를 감싸며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안 잡아먹어요."

파르르!

"……말해 봐요. 제가 처음 아니죠?"

"응? 설아 씨가 제 첫사랑 인데요?"

"……아니잖아요."

"맞아요. 재준이한테 물어봐도 돼요."

"아닌데. 너무 능숙한데……"

그녀의 추궁이 깊어지려 하자 싱긋 웃은 진호는 몸을 일으켰다.

"잠시만요."

"어디가게요?"

그는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케이지! 여기 블루투스 헤드셋이 랑……아,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진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있는 설아를 보았고, '먹고 싶은 거 '라는 말에 한 차례 두 눈동자가 흔들린 그녀는 결국 입을 열고 말았다.

"팝콘이랑 콜라요……"

"풋! 내가 제일 처음 시킨 메뉴랑 똑같네요."

"먹어 본 지 오래됐단 말이에요!"

"큭큭. 영화는요?"

"저거 보면 돼요."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블루투스 헤드셋이랑 팝콘과 콜라도 가져다주세요, 케이지!"

"예!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는 다시 설아를 보았다.

"잠깐만 쉬고 있어요. 하루 종일여기 있느라 땀을 많이 흘려서 좀 씻어야 할 것 같거든요. 방금 냄새 많이 났죠?"

설아는 고개를 저었다.

"정말요? 아닌데? 좋은 냄새 났는데?"

그랬을 터다. 몸에서 나쁜 노폐물들이 모두 사라졌으니 땀 냄새도 깨끗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진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우리 거기까지 콩깍지 씌지 맙시다."

"……."

"그럼 씻고 올게요."

진호는 그녀가 더 이상 말하기 전에 방을 나섰다.

"……휴우."

진호는 식겁했던 가슴을 쓸어내렸다. 참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새빨갛게 달아오른 두 눈과 피로가 가득 한지 힘없는 표정이 마음에 걸린다.

당장이라도 그만두라 말리고 싶지만, 그것은 오히려 그녀를 죽이는 일이기에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가슴만 붙잡은 채 끙끙 앓을 수밖에 없다.

'경만이 형, 서아 누나.'

둘은 미련이 없다는 듯 말했지만, 미련이 없을 순 없었다.

꿈을 포기한다는 건 그런 것이었고, 진호는 설아가 그런 미련을 가지지 않기를 바랐다.

"설아 씨. 내가 설아 씨의 꿈을 포기시킬 일은 없을 거예요."

그녀 스스로 포기한다면 모르지만 말이다.

진호는 주먹을 쥐며 샤워룸으로 향했다.

한편 적막에 빠진 공간에 남겨진 이설아는 마른 침을 삼켰다.

"대, 대표님은 이런 곳에서 며칠동안 먹고 자고 했구나……"

그 순간이었다.

"안 잡아먹어요."

달큰하게 귓가에 울리던 나지막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꿀꺽!

"……하아. 덥다."

이제 가을이라 더 울리가 없는데도 더웠다.

'그, 그런데 나 속옷이……'

그녀는 조용히 티셔츠 속과 바지 속을 살폈다.

"휴우."

'다행이 짝짝이가 아니……'

똑똑!

화들짝 놀란 그녀는 재빨리 문쪽을 보았다.

"헤드셋과 콜라 팝콘을 가져왔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녀는 다급히 문을 열었다.

애정하는 카라멜 팝콘이건만 그녀는 그게 카라멜 팝콘이라는 것도 몰랐다.

"가, 감사합니다. 연결은 제가 할게요!"

"알겠습니다. 필요한게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케이지가 문을 닫고 나가자 가슴을 쓸어내린 그녀는 다시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다시금 적막이 어색함과 함께 찾아왔다.

"……여, 영화 봐야겠다."

TV에 블루투스 헤드셋을 연결하고 음소거를 푼 그녀는 자리를 잡고 tv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영화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 올 리가 없었다.

언제 올까. 다 씻은 진호가 언제올까. 정말 안 잡아먹는 걸까.

"으으. 진짜 왜 그런 말을 해서는! 나쁘다, 나빠……"

그렇게 5분, 10분.

헤드셋을 통해 희미한 소리만이 울리는 적막한 공간과 따뜻한 온도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피로를 애써 누르고 있던 짙은 긴장이란 힘을 점점 빼앗아 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방안엔 고로롱작은 코고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벌컥!

"휴우. 많이 기다렸……"

머리를 털며 들어오던 진호는 입을 다물었다.

얼마나 피곤한 건지 고개만을 떨군 채 잠들어 있는 그녀.

샤워를 하며 룰루랄라 기대했던게 무산되어 아쉽기도 하지만, 안쓰러움이 더 앞선다.

"에고."

한숨을 내연 진호는 그녀를 조심스레 눕히곤 그녀의 머리칼을 옆으로 치웠다.

약간 뭉툭하지만 그래서 더 귀여운 코와 틴트를 발라 빨갛게 번들거리는 입술이 각인이 되듯 눈 속을 파고들었다.

……피식!

"정말 못 잡아먹겠네."

그녀의 4집 타이틀처럼 말랑말랑한 입술에서 손을 땐 진호는 케이 지에게 이불과 안대를 얻어 와 그녀에게 덮어주었다.

"으응."

정말 왜 이렇게 웃음만 나오게 하는지.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알고는 있는 건지……"

아마 평생을 가도 모를 것이다.

리셋 라이프는 그 누구에도 밝힐수 없는 비밀이니 말이다.

"잘 자요."

진호는 그녀의 손을 꼭 잡은 채 다섯 개의 TV를 응시했다.

TV들에서 흘러나오는 온갖 소음이 희미하게 방안을 울렸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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