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43화
-나 이 드라마 찬성!
┗나도 찬성!
┗저도요!
-아, 짜증나네. 좋아한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좋아하는 게 아니라도 좋아하는 겁니다, 이건.
┗팔불출 대표님 ㅋㅋ 나 이 대표님 좋아!
┗진호야! 우리 설아 잘 부탁드립니다.
┗설아야, 꽃길만 걷자!
-이진호 진짜 예의 없네. 그 말들이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걸 모르는 걸까? 그래서 다음 편은?
┗ㅋㅋㅋㅋㅋ
"반응 좋네."
폭발적이다.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SNS 등 드라마를 좋아하는 10대부터 30대 여성들이 엄청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분명 말투와 표정에서 사감을 모두 뺀 채 말했는데도, 알아서 시나리오를 쓰고 보강하고 몰입하고 있다.
"걱정했는데……. 좋다, 좋아."
대증가요의 실질적인 구매층인 여성.
그중 부동층이라고 할 수 있는 30대 여성이 반응을 보인 게 가장 고무적이다.
"이들이 아등바등 성공 스토리의 설아 씨를 먼저 접했다면 뒷일을 걱정해야 됐을 테지만……"
같은 성공 스토리라도 이렇게 로맨스 장르로 접하게 된다면 뒷일, 열애 인정으로 인해 일어날 파장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그들의 머릿속엔 이설아+이진호=? 공식이 각인됐을 테니 말이다.
'떨어져 나갈 사람들은 여기서 떨어져 나가겠지.'
"……하. 머리 빠개지는 줄 알았네."
고개를 저은 진호는 시간을 힐끔확인하곤 달궈진 그릴 위에 오리훈제를 올렸다.
치이익!
이설아와 많은 추억을 만든 장소인 옥상.
오늘의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보다 좋은 곳은 없었다.
"이걸 기억할까?"
진호 자신은 기억한다.
옥상에 기타를 치러 올라온 그녀의 '사장님'이란 말한 마디 때문에 친구 재준에게 모든 게 들통나버렸던 그날이 말이다.
그날, 진호는 이설아에게 이 오리훈제를 주었다.
"그러고 보니 이게 첫 선물이었네……"
첫 선물로 오리훈제.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참 에러였다.
고개를 저은 진호는 옥상 문을 바라보았다.
"올 때가 됐는데……"
덜컹!
'왔다!'
진호는 빼꼼 고개를 내민 설아와 눈이 마주치자 옅게 웃었다. 갑자기 떨리기 시작하는 손을 슬그머니 감추며 말이다.
"왔어요?"
"……네."
"이리 와서 앉아요. 다 돼 가요."
주춤주춤.
낯빛이 어둡고 심란한 이설아는 느릿하게 다가와 진호를 경계하며 의자에 앉았고, 그 순간 진호는 집게를 내려놓으며 그녀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그동안 속여서 미안합니다."
……쿵!
* * *
-드라마는 무슨. 그냥 가수 홍보하는 거잖아.
-하. 진짜 노력한다. 저런 질문들을 사람 아닌데.
-투자라니까 응원하겠지만…….
-엔터 투자가 좋나요?
-보석 찾기가 어렵지, 중박만 쳐도 그냥 2배라고 봐야죠.
복잡했다.
뭐가 뭔지, 뭘 어떻게 어떤 식으로 반응해야 할지 누가 제발 알려줬으면 싶었다.
"왜? 대표님이 정말 나를? 하지만 아까 말할 땐……"
왜 하필 나였을까.
왜 그 모든 걸 기억하고 있는 걸까.
왜 만날 저렇게 예쁘다고 말하는 걸까.
'모르겠어……'
작은 사심이라도 드러내면, 그 마음을 알아채겠지만은 너무도 담담하고 건조했다.
그래서 모르겠다.
진호의 진짜 마음을 말이다.
"……."
센서등이 꺼지며 내려앉은 어둠.
잡았다 떼고, 잡았다 떼고. 차가웠던 손잡이는 더 이상 차갑지 않았다.
"……그래, 부딪쳐 보자."
그녀는 눈을 질끈 감으며 옥상문을 열었다.
덜컹!
'도착하셨……'
"아."
테이블 옆에서 그릴에 고기를 굽고 있는 익숙한 모습.
안심이 되는 한편 무섭다.
이 마음이 혼자만의 것일까 두려웠다.
"왔어요?"
'……왜 그렇게 차분하죠?'
"네."
"이리 와서 앉아요. 다 돼 가요."
'……정말 내게 아무런 감정이 없나요?'
오는 도중 확인한 인터넷 반응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이야기를 들어야 할까, 말아야할까.'
간절히 바라는 답을 듣지 못할까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듣고 싶다.
'부디……'
그녀는 주먹을 꽉 쥐며 자리에 앉았다.
그 순간 몸을 돌린 진호가 허리를 숙였다.
'흡?'
"미안합니다. 그동안 속여서 미안합니다."
……쿵!
심장이 떨어지고, 눈앞이 아득해졌다.
'아니었나?'
아니다. 아닌 게 아니어야 했다.
"…왜죠?"
'왜 저였죠?'
진호는 두 눈이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역시……'
"아까도 말했지만, 설아 씨 자존심이 상할까 말하지 못했어요. 돈을 주체 못하는 부자의 적선으로 받아들일까, 이렇게까지 해서 가수를 계속해야 되나 포기할까 걱정이 돼서요."
"그, 그러니까 왜요?"
진호는 달아오르기 시작한 볼을 애써 외면하며 미소를 지었다.
"노래를 부르는 설아 씨는 참 빛났으니까요. 그걸 지켜 주고 싶었으니까."
쿵!
이설아의 심장이 다시 내려앉았다.
'지켜 주고 싶다고? 왜? 서, 설마 정말로?'
'……흠?'
진호는 살짝 당황했다.
어떤 반응이라도 해야 되는데 침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음.'
반응이 없다면 이끌어 내야 했다.
진호는 준비한 멘트를 꺼냈다.
"이 오리고기 기억나요?"
"……아."
"이 맥주랑 소주도 오랜만이죠?"
옥상에서의 두 번째 만남.
저기 옥상 입구에서 술을 떨어트렸던 그녀.
그리고 그날 소맥을 함께 말아마시며 기타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불렀다.
"이 컵도?"
그녀는 알까?
그날 이후 이 컵은 오직 그녀만의 전용 컵이 됐단 걸 말이다.
"……아!"
그날의 일을 떠올린 그녀는 화들짝 놀랬다.
'저, 정말 다 기억하고 있어. 대체 왜? ……진짜 정말로?'
"그날처럼 마셔 볼까요? 소맥? 맥소?"
이설아는 장난스럽게 웃는 진호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이 마음, 이 관계가 깨진다고 해도 듣고 싶었다.
"대표님."
"네?"
"저 좋아하세요?"
흠칫!
갑자기 훅 들어온 공격에 몸이 굳었던 진호는 이내 정신을 차리며 그녀의 컵에 술을 따랐다.
'아직 좀 더 남았는데.'
그녀를 완전히 구속하기 위한 덫은 아직 두 개 정도 더 남아 있었다.
하지만, 듣고 싶었던 말이다.
이 말을 듣기 위해 대체 얼마나 노력했던가.
'좋아해요가 아니라 좋아해요? 라서 좀 아쉽지만. 여기서 의뭉스럽게 넘어가선 안 되고.'
밀어내면 영원히 멀어질 것 같은 작은 위기감이 들자 진호는 이제 끝을 내기로 했다.
"흠. 나름 꽤 많이 표현했다고 생각했는데……"
"네?"
화들짝 놀라는 그녀의 모습에 오히려 진호가 더 놀랐다.
"뭘 그렇게 놀래요? 눈치 못 챘어요?"
"아, 아니……."
"내가 왜 만날 예쁘다고 말하고, 설아 씨 스케줄을 쫓아다녔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냥 대표니까?"
"그, 그러면 그 모든 게……"
"에이. 괜히 4집 수록곡을 작곡한 건가……"
"……네에? 그럼 그 곡 10개가?"
"네. 설아 씨를 위해 작곡한 거죠. 마음에 들었어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진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그녀를 향해 컵을 내밀며 혀를 찼다.
"이건 여태껏 몰라준 벌칙주. 이거 마시면 우리 사귀는 겁니다?"
흠칫!
"……."
이설아는 웃고 있지만 진지한 진호와 술을 번갈아 바라보다 이내 눈을 질끈 감으며 손을 들었다.
'오?'
1초가 평생 같았던 기다림.
진호의 입가에 미소가 맺혀 갔다.
* * *
더 이상 반팔로는 버틸 수가 없는 가을이 되자, HU컴퍼니 건설파트의 직원 80퍼센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휴우. 원룸은 다 짓고 가고 싶었는데……"
인천공항의 출입게이트 앞. 최철규 이사는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진호와 인연을 맺게 해 준 원룸 내부 공사.
그저 그런 소규모 업체였던 CCU가 어느덧 사우디아라비아라는 중동의 나라에 1, 500억 수주의 공사를 하러 떠나게 만들어 준 원룸내부 공사. 아니, 대학가 원룸 프로젝트.
그 끝을 보지 못하고 떠난다는 게 참 아쉽고도 아쉬웠다.
"아님 반절이라도……"
이제 한 달만 더 있으면 50호 원룸을 마무리 지을 수 있기에 더 아쉽다.
"죄송합니다, 최 이사님."
"아, 아뇨! 먼저 가서 현지 적응하는 거야 당연한 일이죠! 무하마드 왕세자님께서 옳은 말을 한 겁니다!"
그랬다. 현재 HU컴퍼니 건설파트는 현지 적응이라는 명목하에 예정된 것보다 한 달 일찍 출국하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라니까요!"
난감해진 최철규는 화제를 돌렸다.
"머, 먼 길 떠나는 직원들을 위해 한 말씀 해 주시죠, 대표님!"
진호는 흥분해 있거나 딱딱하게 굳어 있는 80여 명의 직원들을 주욱 둘러보았다.
'그래. 무섭겠지.'
1년 반짜리 프로젝트다. 이제 떠나면 1년 반이 지난 후에야 이들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긴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아끼지 마십시오."
"……네?"
호응할 준비를 해 가던 직원들은 멍하니 진호를 보았다.
진호는 그런 그들을 보며 눈에 힘을 주었다.
"돈 못 벌어도 좋습니다. 그 돈 좀 아낀다고 회사가 흔들린다거나 굶어 죽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재, 의료, 음식, 옷, 술, 집 등사우디에서 소모해야 될 모든 것을 최상으로 하십시오. 최상으로 즐기다 오십시오. 여러분이 최고라는 걸 알려 주고 무사히 돌아오십시오."
"……아."
"대, 대표님……"
"아시겠습니까!"
"……예-!"
그들의 외침은 쩌렁쩌렁 인천공항을 울렸고, 진호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허리를 숙였다.
"부디 몸 건강히 다녀오십시오. 전 이곳에서 여러분을 최대한 서포트하겠습니다."
"……자, 출발-!"
그렇게 사우디아라비아 원정팀은 떠났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허리를 편 진호는 그들이 사라진 출입 게이트를 보며 걱정이 가득한 눈빛을 지었다.
'부디 무사히 돌아오길……'
"갑시다."
"예."
핫산과 경호원, 비서들이 진호의 뒤를 따랐다.
* * *
정적이 내려앉은 펄 게이트 사무실.
도르륵, 토옥.
볼펜 떨어지는 소리가 그들의 정신을 깨웠다.
"며, 몇 명?"
"5백만…… 돌파."
발매 한 달 만에 다운로드 500만 명 돌파.
"어, 얼마?"
"천억 돌파……"
발매 한 달 만에 총매출 1, 000억 돌파. 현재도 계속 상승 중.
"……우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악!"
펄 게이트 모든 직원들은 들고 있던 것을 하늘로 던지며 기뻐했고, 곽종훈과 펄 게이트 창립 멤버둘은 서로를 끌어안은 채 눈물을 흘렸다.
천억이다. 그들 세 명으로서는 아주 먼 훗날에서야 달성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대박 게임의 그 기준선을 방금 넘어서게 되었다.
"성공했어, 형! 우리 성공했어-!"
"이제 돈 다발로 침대 만드는 일만 남았다, 종훈아!"
"무슨 소리야! 일단 원룸 방 하나 사서 진주부터 가득 채워야지-!"
진주가 무한으로 흘러나오는 차원게이트를 만들겠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 펄 게이트.
곽종훈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생각도 못한 채 리뷰 내용을 떠올렸다.
-일해라, 개발자야.
-다음 화 내놔라, 작가야.
-이후 스토리가 마렵습니다, 펄 게이트님.
'힐링이 되었습니다', '극한의 힐링물입니다', '후회 안 합니다' 같은 반응은 지금까지도 있었지만, 추가 업데이트와 차기작을 재촉하는 유저들은 지금껏 거의 없었다.
발매된 것만 즐기고 만족하는 데그치지 않고, 이어질 개발까지 기대해 주는 모습에 감정이 복받쳐왔다.
'대체……'
"대체 어떤 차이였을까? 예전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는."
기뻐도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함께 기쁨의 담배를 피러 나온 창립 멤버 둘은 곽종훈의 자괴감 섞인 말에 굳을 수밖에 없었다.
……탁! 치익!
"후-. ……돈의 차이지."
"기획에서도 차이 났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전까지도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 왔기에 인정할 수가 없다.
'여기서 인정하면 여태껏 우리가 만들었던 건 뭔데!'
"그리고 간절했지."
"……아."
맞다.
"맞아. 간절했어."
자칫 말아먹었다가는 장기라도 팔아야 하는 게 아닌가 걱정했던 억 단위의 투자.
이후로도 투자는 계속 되었고, 액수가 커질수록 그들 셋의 마음은 무거워져 갔다. 결코 실패 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잠을 잘 때마저도 뒷목을 찔렀다.
"그리고…… 든든했어."
진호의 존재감이 그랬다.
그가 가끔 한마디씩 던지는 주옥같은 말들이 흔들리던 마음을 바로잡고, 앞으로 더 나아가게 만들었다.
창립 멤버 둘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고, 곽종훈은 생각을 정리해 갔다.
"앞으로…… 우리 어떻게 할까?"
"응?"
곽종훈은 낯빛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천억이면, 이 대표님께 드려야 할 배당금을 제외하고도 그 어떤 게임이든 만들 수 있어. 우리가 그토록 만들고 싶었던 그 게임도 이젠 만들 수 있어."
힐링용 게임을 만들고자 펄 게이트를 만든 게 아니다.
진짜 만들고 싶은 게임을 제작할돈을 모으기 위해 힐링용 게임을 만든 것이었다.
흠칫!
"……너 설마?"
"그래. 그래서 묻는 거야. 이대로 우리끼리 치고 받으며 게임을 만들건지……"
"……아님 이 대표님 밑에 들어가서 제대로 게임을 만들 건지."
"맞아. 어떻게 할래?"
"……."
창립 멤버 둘은 입을 다물며 생각에 빠졌다.
순간 드는 욕심 같아선 자신들끼리만 만들고 싶다.
하지만 다음에도 성공할까, 그토록 만들고 싶었던 게임을 만들어도 시장에서 먹힐까 두려움부터 든다.
지금 이 성공이 오직 자신들만의 노력으로 이뤄진 결과가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둘은 이를 악물었다.
"지금 말해야 돼?"
곽종훈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지금. 돌아서면 괜히 잡 생각이 들 수도 있으니까. 지금 게임에서 손을 놔도 평생 놀고먹을 수 있는 돈이 생겼으니까."
그렇기에 그 스스로마저 이렇게 몰아붙이는 거였다.
움찔!
"물론 여기서 나간다고 해서 화를 내거나 나쁜 말을 하진 않을거야. 본인의 선택이니까."
"으음."
그들은 다시 고민에 잠겼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환했던 하늘이 어두워질 때, 둘의 입이 열렸다.
"그래, 알았어. 난……."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