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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415화 (415/424)

외전 41화

탁탁탁탁탁!

진호의 손이 마치 바람에 춤추듯 키보드 위를 누빈다.

그려지는 경쾌한 음표들이 가을 하늘처럼 포근하고 향긋한 냄새를 풍긴다. 아니, 그 안에 사계절이 모두 담긴다.

'인생을 그리자. 한 사람의 인생을!'

머릿속에 한 사람만 꽉 차서 그런지 오직 그쪽으로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갑자기 난입한 진호에 무얼 하나 지켜보았던 A&R 김상혁 부장을 비롯한 엔터-가수 파트 직원들은 컴퓨터 속에서 점점 완성되어 가는 악보에 눈을 크게 떠갔다.

'신이 내렸구나!'

작곡을 하다 보면 가끔 그런 순간이 찾아 온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영감에 하나의 곡을 단시간 만에 완성시켜 버리는 그런 순간이 말이다.

작곡가들은 이런 순간을 두고 신이 내렸다, 혹은 대박곡 썼다고도 말한다.

실제로 대증가요 역사를 뒤져 보면 1시간 안에 완성시킨 날림으로 쓴 것 같은 곡이 공전의 히트를 사례가 많다.

그런데 지금 진호는 곡 하나만 완성시킨 게 아니다.

벌써 10곡째 악보를 완성시켜 가고 있다. 그것도 가사까지 말이다.

'양진혁 선배님이라도 빙의한 거야, 뭐야?'

이렇게 미친 듯 작곡과 작사를 해 버리니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잔뜩 기대감을 품은 눈으로 진호를 응시했다.

……탁!

"오케이, 완성!"

짜릿!

'스킬도 습득!'

고 김광재의 펜을 주머니에 집어넣은 진호는 사람들을 향해 모니터를 보여 주었다.

"한번 검토해 보세요."

"예!"

뺏듯 진호의 자리를 차지한 김상혁은 첫 구절, 첫 음표를 보자마자 그대로 굳어 버렸다.

진호는 굳은 표정으로 악보를 살피는 김상혁을 보며 초조해했다가 이내 만족스럽게 웃었다.

툭툭 그의 발이 자동차 바닥을 두드리고, 그의 코가 희미하게 허밍을 한다.

진호 자신의 곡에 빠져버렸다는 뜻이다.

그렇게 곡들을 모두 검토한 김상혁은 갑자기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진호를 보았다.

"대표님, 이거……?"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김 부장 같은 사람이라면 모르는 게 더 이상 하지. 가사도 노골적으로 이어지니까.'

"예, 생각하신 그거 맞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

사람들은 그 엄청난 말에 숨을 죽였고, 진호는 입맛을 다셨다.

모니터를 보는 그의 눈에 미련이 살짝 담겼다.

"뭐 마지막을 장식할, 달콤한 미래를 나타낼 11번째 곡은 아직이지만요."

이설아 인생의 피날레이자, 진짜 시작을 알릴 마지막 곡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도 곧 떠오르겠지.'

이설아가 기획대로 움직여 기획한 대로 성공을 거두기 시작한다면 떠오를 게 분명했다.

진호는 그리 믿었다.

……피식!

김상혁은 실소를 터트렸다.

"설아를 불러야겠군요. 녹음을 해야겠습니다."

진호는 활활 타오르는 그의 눈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 * *

아르바이트가 끝나자마자 불려온 이설아는 악보를 받자마자 그대로 굳어 버렸다.

"와. 우와."

음표 하나하나가 왜 이리 입에 붙는지.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이 왜 이렇게 마음에 쏙 드는지.

"마음에 들어?"

"네, 네! 마치 제 이야기 같아서 더!"

첫 번째 트랙부터 열 번째 트랙까지 스토리가 이어진다. 마치 한 사람이 작곡과 작사를 한 것처럼 말이다.

'어떻게 이런 곡들을 고른 거지?'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거 제 5집 곡이에요?"

"아니?"

"네? 그럼?"

차지혜는 어리둥절해하는 이설아의 모습에 진호가 이 곡들을 주며 한 말을 떠올렸다.

'정말 이런 기획은 어떻게 떠올린 건지……'

고개를 저은 차지혜는 모니터 속곡들을 하나하나 클릭했다.

"정확히는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무슨 말이세요?"

기대감이 크면 실망이 크달까.

이설아는 뾰로통 대답했지만, 차지혜는 곧 귀엽게 변할 이설아의 얼굴을 떠올리며 옅게 웃었다.

"여기 1, 2, 4, 5, 7번 트랙은 4집에 수록될 곡. 그리고 나머지 트랙은 네 게임에 수록될 곡들이야."

"네?"

이설아는 이해를 하지 못해서 고개를 모로 기울였고, 차지혜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너도 느꼈다시피 이건 한 사람의 인생이야. 그런데 중간중간이 빠졌네? 그럼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

"처음엔 모르겠지. 전혀 모를 거야."

"네?"

"그런데 이쪽에서 은밀히 소문을 퍼트린다면? 게임에 수록된 이 곡들과 네 앨범에 수록된 이 곡들이 이어지는 이야기라면?"

"어? ……자, 잠깐?"

"그래. 지금 우리는 네 게임의 팬들을 현실 세계로 끌어들이고, 네 현실 세계의 팬들을 게임 속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거야. 이제 왜 곡을 나누는지 알겠니?"

"……허얼?"

이설아의 입이 헤 벌어졌다.

차지혜는 그런 설아를 보며 다시 진호를 떠올렸다.

'왜 자신이 작곡했단 걸 숨기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작곡을 모두 끝낸 진호는 자신이 이 곡들을 작곡했다는 걸 이설아에게 잠시 비밀로 해 달라고 했다.

혹여 진호를 더 어렵게 생각할 수도 있는 이설아의 마음 등 여러 가지 사정과 훗날을 위해서 말이다.

'역시 도와 드려야겠지?'

현재 차지혜에게는 이설아보다 진호가 더 중요했다.

그녀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 * *

'지금쯤 모든 녹음을 끝냈겠지.'

새로운 곡과 그 곡이 품은 스토리의 유입에 당황하고 바빠질 펄 게이트를 떠올리면 미소가 절로 그려진다.

"흠. 그나저나……"

'역시 머리가 좋아졌단 말이지.'

단순히 기억력이나 이해력뿐만 아니라 멀티태스킹 능력 역시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

여러 가지 기획을 한 데 묶어 생각하는 와중에도 이렇게 프로그램을 제작했으니 말이다.

"응? 뭐라고?"

"아뇨. 사인 다 끝냈어요?"

"아, 잠시만."

이영재는 재빨리 계약서에 사인을 해 진호에게 넘겼고, 진호는 몸을 일으켜 이영재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손을 맞잡은 순간, 둘을 지켜보던 SH시큐리티 발족식을 찾은 수십 명의 관계자들과 기자들이 모두 일어나 박수를 쳤다.

짝짝짝짝짝!

"자, 그럼 SH시큐리티를 살펴보러 가실까요. 이 대표님?"

"예, 그러시죠. 이 실장님."

서로를 보며 웃음을 터트린 둘은 SJ그룹 본사 근처에 위치한 5층건물의 내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여기가 기업 보안 1팀. 여기가 업무 통합 1팀."

"오-. 흠……"

건물 내부를 둘러볼수록 역시 SJ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 짧은 시간 내에 이렇게 많은 인원들을 모으다니!'

고작 2주도 안 되는 시간에 백여명의 직원을 모았다. 그것도 바로 현장에 투입시킬 수 있는 베테랑 인재들을 말이다.

인재에 관한 정보력, 아니 데이터에 질려 버릴 정도다.

'하긴.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이 입사하고 싶어 하는 곳이니까.'

SJ그룹은 그런 곳이었다.

'아, 이건 부럽네.'

좀 많이 부럽다.

"그리고 여기가……"

이 건물 내에서 가장 비밀스런 공간에 들어온 이영재가 진호를 보며 양팔을 활짝 벌렸다.

"서버 룸! 네가 보여 주지 않은 서버 룸!"

"……푸하핫!"

이영재는 배꼽을 잡고 웃는 진호를 향해 이를 드러냈다.

"오늘은 도망칠 생각 하지 마라."

"푸훗. 큭큭.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세계를 아우를 보안 회사가 설립되었다.

한편 게임에 쓸 노래들과 노래에 담긴 스토리를 넘겨받은 곽종훈은 진호에 대한 갈망을 더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정말 부럽다. 부러워……'

그는 뒤집어진 직원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다들 어때?"

멈칫!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동시에 몸을 멈췄던 그들은 이내 곧 잔뜩 흥분한 얼굴로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건 그냥 대박입니다!"

"마지막 피스를 찾은 것 같아요!"

"에피소드가 솟구치고 있어요! 이건 안 먹힐 수가 없어요!"

곽종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생각도 같았기 때문이다.

"좋아! 그럼 보름 안에 출시하자! 할 수 있지?"

"예!"

"으아-! 움직여 볼까?"

곽종훈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직원들을 보며 양손을 모았다.

'부디 대박작이 나오기를……'

진호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는 그렇게 간절히 빌었다.

* * *

SH시큐리티 업무 시작!

신현카드! SH시큐리티 첫 고객!

줄 잇는 은행과 카드사들! 중소기업들!

HU 컴퍼니 투자받은 펄 게이트!

신작 출시!

SH시큐리티 발족 이후 20일. 매출 약 1700억!

여의도 증권가! SH시큐리티를 상장시켜 달라!

"진짜 대단하구나. 대단해."

경영학과 17학번 강경미는 뜨거운 감자인 SH시큐리티, 아니 이진 호 관련 최근 기사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뭐 보는 거야?"

"우리 이진호 대표님 기사들."

"아."

카페 안,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그녀의 친구는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호는 현재 모든 경영학도, 아니 전국 모든 대학생들의 워너비였다.

아니, 거의 신앙이었다.

"하아."

강경미는 테이블 위로 엎드렸다.

"나도 졸업하면 이진호 대표처럼 될 수 있을까?"

내년이면 4학년이기에 더 생각이 많아진다.

처음 진호를 보며 했던 고졸 출신이 잘 되어 봐야 얼마나 잘 되겠냐는 생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나도 회사 차리면 성공할 자신있는데……"

"진짜?"

"……아니."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이라는 한 국대학생도 취업난을 겪고 있는 중인데, 자신이란게 있을 리가 없다.

마땅한 아이템이 없었다.

"넌?"

"……나도."

그녀의 친구 역시 테이블 위로 엎드리고 말았다.

"이거다 할 아이템이 없어, 아이템이……. 역시 HU 컴퍼니에 들어가야 할까 봐!"

"풋! 나도-!"

"SJ 그룹은?"

"2 지망?"

"킥! 3지망은 GL로 할까?"

"오. 홍보부 들어가면 날아다닐 수 있겠는데?"

둘은 황금빛 미래를 꿈꾸며 키득키득 웃었다.

그러다 곧 암울한 현실을 깨닫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씨, 앤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약 한 달 만에 베스트 프랜드들끼리 모이는 날인데, 한 친구가 늦고 있다.

"이년은 대학교에 들어가도 지각 버릇을 못 고치네!"

"…풋! 야. 호랑이 온다."

"응?"

카페 밖으로 고개를 돌린 강경미는 핸드폰을 보며 걸어오는 친구를 발견하곤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쟤 눈 왜 저러니?"

"그러게? 과제하느라 날 샜나?"

딸랑!

"미안, 미안! 내가 늦었지?"

"죽어라. 죽어."

"에헤헤."

강경미는 친구의 손을 떼어 내는 지각생 친구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서 오늘의 레퍼토리는 뭔데?"

"갑자기 눈앞에서 할머니가 넘어졌다고 하면…… 안 믿겠구나."

"응. 할머니는 네 앞에서만 넘어지냐?"

입맛을 다신 지각생 친구는 솔직히 말하기로 했다.

"이것 때문에 어제 날 새서 그래."

지각생 친구의 핸드폰 화면을 본 강경미와 친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지각생 친구는 그걸 눈치채지 못한 듯 만족하고 갈망하는 눈으로 천장을 보았다.

"하-. 펄 게이트. 진짜 사랑하고 애정한다. 닥치고 그냥 내 통장 털어가, 엉엉."

'……이년이 진짜 뒤질라고!'

"야!"

흠칫!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지각생 친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 이거 그 이진호 대표가 기획에 참여한 게임이야!"

"……응?"

강경미의 눈에서 분노가 살짝 수 그러들자 지각생 친구는 얼른 입을 열었다.

"기획에서부터 시나리오 아이디어, 프로그램, 작사 작곡 등 개입하지 않은 게 없는 게임이라고 우리 곽종훈 싸장님이 인터뷰했어! 진짜 펄 게이트 역대 대박작!"

캐릭터와 게임 스토리, BGM의 삼박자가 오직 힐링만을 추구하는 아기자기한 게임들만 만드는 펄 게이트.

눈앞의 지각생 친구의 권유로 시작하게 되어 종종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펄 게이트 게임을 하는 강경미는 호기심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게임 제목이 뭔데?"

"톱스타 메이커!"

"그래?"

평범한 제목이라고 중얼거린 강경미가 핸드폰을 든 순간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마지막 친구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게임 할 거면 나간다."

"아, 맞아. 미안! 일어서자!"

"어? 나 아직 음료수도 시키지……"

"지각했으면 닥치고 일어서시지?"

"네."

그렇게 그들은 카페를 나섰다.

"다녀왔습니다……"

부모님이 모두 잠든 어둔 집에 조심스럽게 들어온 강경미는 재빨리 방으로 들어갔다.

가볍게 씻고 나와 침대에 누운 그녀는 오늘 만난 친구들과 코코아톡으로 이야기를 나누다 핸드폰을 뒤집었다.

"하암-!"

갑자기 밀려오는 잠에 그녀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리저리 뒤척이던 강경미는 에이 하고 눈을 떠 핸드폰을 들었다.

"……톱스타 메이커라고 했지?"

자신의 워너비인 이진호가 제작에 참여했다고 한, 어느 무명 가수의 일대기를 담은 게임.

그녀는 조금만 하고 자자는 생각에 게임을 다운받았다.

디리링!

"오?"

잔잔한 어쿠스틱의 선율이 귀를 맑게 씻어 내리고, 덜컹덜컹 어딘가로 향하는 기차 안 작은 소녀의 모습이 눈을 사로잡는다.

'괜찮은데?'

"음? 시작이…… 월셋집이네? 특이하다. 그런데……"

곳곳에 곰팡이나 거미줄이 켜진 작은 방. 허름한 후드티를 입은 홀쭉 마른 소녀가 배를 부여잡은 채 이쪽을 그렁그렁 한 눈으로 보고 있다.

그 귀염뽀짝한 모습에 강경미는 자신도 모르게 소녀의 얼굴을 터치하고 말았다.

-만지지 마. 배고파.

"……어머머."

화들짝 놀란 그녀는 재빨리 소녀의 어깨를 터치했다.

그러자 소녀는 몸을 비틀었다.

-만지지 말라고. 배고프다고.

너무도 힘이 없어서 안쓰럽기까지 한 목소리.

강경미의 두 눈이 호기심을 머금기 시작했다.

"배고파? 밥 줄까?"

강경미는 재빨리 인터페이스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밝아지는 창밖을 본 그녀는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대박."

스토리면 스토리, 노래면 노래.

코스툼이 살짝 부족한 게 흠이지만, 대박이란 건 부정할 수가 없다.

"하아-. 우리 설아는 그렇게 이진호 대표를 만난 거였어."

너무도 소설 같은 만남에 눈이 몽롱하게 풀렸던 그녀는 재빨리 컴퓨터에 앉아 자주 들르는 커뮤니티 사이트로 향했다.

'역시 이진호 대표!'

"이런 건 알려야 해!"

게시글을 작성하는 그녀의 두 눈이 불타올랐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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