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414화 (414/424)

외전 40화

이른 아침.

퍼억!

이불이 허공을 나른다.

"꺄아악!"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이설아가 침대 위를 뒹군다.

술 마신 사람들이 다음 날 참 많이 하는 후회.

"흐우. 진짜 내가 왜 그랬을까……"

'눈치챘을까? 들켰겠지?'

"……으아앙!"

술이 웬수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이설아는 다시 침대 위를 굴렀다.

진호가 지금 회사에 있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탁!

피로가 가득한 얼굴로 음향기계에서 손을 땐 진호는 피식 웃었다.

"그런 재능이 있을 줄이야……"

온몸이 굳어 버릴 만큼 완성도가 뛰어났던 노래. 황급히 방송을 종료하지 않았다면 소중한 곡을 날려 버렸을지도 모른다.

이후 진호는 머릿속을 휘젓는 악상 때문에 취해 버린 이설아를 방에 집어넣고는 다시 방송을 켜 해명한 뒤 곧바로 회사로 출근했다.

'바로 이……'

벌컥!

"엇? 대표님?"

"이제 출근하세요, 김상혁 부장님?"

"네에……. 그런데 대표님은 여기까지 어쩐 일로?"

"아, 마침 잘 왔어요. 이것 좀 들어 보시겠어요? 어떤 곡을 편곡 좀 했거든요."

"대표님께서요?"

사람극장을 때문에 진호가 양진혁에게 작곡과 편곡을 배웠다는 걸 알고 있는 A&R 부서의 김상혁 부장은 미심쩍어하며 진호가 넘긴 헤드셋을 넘겨 받았다.

그리고 잠시 뒤 눈을 빛냈다.

"어? 이거?"

중독성이 있다.

진호는 말을 하기 위해 헤드셋 한쪽을 벗는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말랑말랑. 말랑말랑 해. 넌 특별해. 완벽해. 비교분석 해 봐도…….

김상혁은 경악했다.

비트만 들었을 땐 그저 중독성이 있었던 노래에 가사가 붙자, 이건 가져와야 한다는 욕심이 강렬하게 들었다.

"설마 대표님께서 작곡하신 겁니까? 대단하신데요?"

가요계에선 아주 가끔씩 초심자의 운이라는 게 터진다.

"아뇨. 설아 씨가요."

"……예에? 서, 설아가요?"

"네."

진호가 고개를 단호하게 끄덕이자 김상혁은 넋을 놓았다.

"말도 안돼……"

진호는 의아해했다.

"모르셨나 봅니다?"

"……작곡을 가르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아아."

"허어. 이렇게 재능이 있을 줄이야.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진호는 옆에 놔두었던 A4 몇 장을 김상혁에게 내밀었다.

'이설아 기획 2안'이라 제목이 붙은 서류를 주욱 살핀 그는 진호를 보았다.

"직원들을 소집하겠습니다."

"그래요. 이곳 회의실에서 보죠."

"예!"

김상혁은 뛰다시피 녹음실을 빠져나갔고, 진호는 편곡한 파일을 정리해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이설아의 컴백 일정에 작은 변동이 생겼다.

* * *

툭!

이설아의 손에서 아침 사과가 떨어져 내렸다.

"……네?"

"춤을 배울 거라고. 댄스."

"왜요?"

혹여 진호와 마주칠까 미션 임파서블처럼 은밀하게 회사에 출근한 이설아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 댄스.

"어, 어째서요? 나, 나 춤춰 본적 없는데? 나 엄청 각목이에요!"

정말이다. 다리를 90도 이상 벌리지 못하는 저주받은 몸뚱이라서 춤은 막춤도 포기했던 게 바로 그녀였다.

이설아는 이 불합리한 명령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 그럼 이 기회에 배우면 되겠네. 설아 네가 이런 멋진 곡도 작곡했는데, 무조건 배워야지."

"……멋진 곡? 제가요?"

차지혜는 플레이 버튼을 눌렀고, 이윽고 경쾌한 선율이 5층을 수놓았다.

'응?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랑말랑. 말랑말랑 해. 넌 특별해."

"아."

그녀는 깨달았다.

이 곡을 왜 들어 본 것 같았는지.

어쿠스틱 발라드인 자신의 자작곡이 왜 이런 댄스곡이 되어 버렸는지.

왜 갑자기 댄스를 배워야하게 됐는지.

그녀의 머릿속으로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뚱땡이가 떠올랐다.

"이-진-호-오-! 야 이 나쁜 놈아-아-!"

그녀의 포효가 HU 컴퍼니 빌딩전체를 뒤흔들었다.

* * *

달리는 차 안, 이영재는 청바지와 셔츠를 입은 진호를 보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무슨 좋은 일 있나봐?"

"좋은 일이요?"

……피식!

"있죠. 좋은 일."

참 달콤하면서도 살벌한 좋은 일이 말이다.

"요새 누가 절 죽이려고 들거든요."

"뭣?"

이영재의 표정이 심각해지자 진호는 재빨리 손을 저으며 사정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푸핫! 진짜?"

"아주 매일같이 절 잡아먹으려고 쳐들어오는데……. 경호원들 아니었으면 이미 잡혀서 머리가 한 움큼 뜯겼을 걸요?"

"푸하핫! ……아, 설마 너?"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영재는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허어. 다들 헛물켜고 있었네. 회장님들께서 많이 아쉬워하겠는데?"

"회장님들? 아……"

"그렇지. 뭐니 뭐니 해도 한 가족이 되는 게 최고니까. 참고로 우리 회장님은 포기하셨다."

"그래요?"

"네 성격에 대해 내가 말했거든."

"……감사합니다."

"뭘. 내가 더 감사하지. 그 보안 프로그램 고맙다."

진호는 이쪽에서 연구하고 업데이트할 수 있도록 주석까지 세심하게 단 프로그램 전체를 주었다.

내부에서 평가한 값어치보다 훨씬 싼 가격에 말이다.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도 진호는 그렇게 했다.

'모두 날 형처럼 생각해서 그런 거겠지……'

무조건적인 호의에 가슴이 떨린다.

"뭘요. 다 업데이트하기 귀찮아서 그런 거죠."

"……그래, 그렇다 치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네?"

"우리 보안 회사 하나 만들자."

진호는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이영재가 진심이란 걸 알아차린 진호는 어이없어했다.

"아니, 뭔 회사 만드는 걸 마트에서 사이다 하나 사는 것처럼 말하고 있어요?"

"네 보안 프로그램이면 충분히 가능해! SJ그룹 내에서만 돌려도 충분히 수익은 나와! 지분은 20퍼센트 줄게!"

'진짜 진심이네?'

진호는 그제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저야 뭐 공돈이니까 딱히 싫진 않지만 아버님께 허락은 받은 거예요?"

"이미 받았지. 일단 법인을 설립해 두면 관리하기가 편하니까. 자본금도 내 돈에서 처리하는 수준이라 부담도 없고?'

"흠. 비상장 회사로 갈 거죠?"

"그래야겠지. 어차피 그룹 내에서만 거래할 거니까."

"오케이. 그러면 저도 투자할게요. 대신 지분은 20퍼센트 더 올려 주세요."

"아, 그건 좀……"

"업무 통합 프로그램이라든지 회계 프로그램, 상품성 있는 보안 프로그램 몇 개 더 넘길게요."

"딜-!"

넉넉히 한 달 정도만 시간을 투자하면 이후로 아무것도 안 해도 평생토록 돈을 벌 수 있다. 이런 기회를 놓치면 바보였다.

그러나 진호는 몰랐다. 이영재도 몰랐다.

이 보안 회사가 훗날 세계의 보안을 다스리는 대기업이 되고, SJ 전자와 더불어 SJ그룹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다는 것을 말이다.

"아, 도착했다."

"여기에요? 호텔이네요?"

"보통 경매는 이런 호텔이나 큰갤러리 등 특정 장소에서 열리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진호는 가슴을 살짝 두드렸다.

아직 경매장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심장이 콩닥콩닥 뛰고 있었다.

'돈 많은 자들만의 비밀 경매나소더비 같은 대규모 경매가 아니라 좀 아쉽지만……'

"경매할 때 주의할 점 있어요?"

"주의할 점? 있지."

이영재는 진호의 눈을 보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너만의 기준을 세울 것. 너만의 리스트를 만들 것."

"……아."

"그래. 경매라는 게 욕망이 판치는 곳이다 보니 분위기에 휩쓸려서 과도하게 지를 때가 많거든. 뭐이번 경매는 자선 경매다 보니 다들 크게 지르진 않을 테지만."

아무리 기부를 하러 온 것이라고 해도 손해는 보지 말아야 한다. 이런 이영재의 말에 진호는 가슴이 싸늘하게 식는 걸 느꼈다.

그렇게 경매 장소에 도착한 진호는 살짝 놀랐다.

"어? 형! 누나!"

"오! 진호야!"

"잉? 영재 너는 왜 왔냐? 안 바빠?"

청바지 같은 편안한 옷차림을 한 채 다가오는 재벌 후계자들.

진호는 오늘 정말 재밌겠다며 즐거워 했다.

* * *

이번 경매는 신인 작가의 미술품부터 시작해 스타들의 애장품들이 출품되는 자선 경매다.

이 경매는 한국에서 열리는 많은 자선 경매 중 매 분기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경매라서 한국의 각계각층 인사들이나 연예인, 스포츠선수들이 자주 참석한다고 한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들은 대부분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애장품을 파는데 참가 의의를 둔다고 한다.

'경매하니깐 미술 감정 관련 스킬이 생각나네.'

세계 최고의 고고학자 및 미술품 감정사가 되는 스토리가 있다.

"리스트는 좀 만들었어?"

진호는 최인호의 말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직 출품작을 다 살피지도 못했어요. 그래도 몇 개는 점찍어 둔게 있지만요."

"오? 그래? 뭔데?"

진호는 체크 한 몇 개의 악기를 보여 주었다.

모두 기타였다.

'이런 것들을 내놓다니……'

스타의 애장품이라서 관심이 가는 게 아니라 스타들이 내놓은 기타들이 모두 하나같이 명품이라 부르는 것들이다.

'설아 씨 선물해 줘야지.'

왜 모를까. 며칠 전 이설아의 자작곡에 담긴 그녀의 마음을 말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에이. 다 기타네."

"기타 말고는 딱히 살게 없어서요…… 응?"

진호는 팸플릿에 적힌 한 경매물품을 보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있다고?"

생각지도 못한 물품이 경매 리스트에 적혀 있었다.

"187번! 203번! 211번! 어휴, 참가하신 분이 많으시네요. 빠른 경매 진행을 위해 지금부터 5만 원씩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35만원!"

열정이 가득한 여성 경매사의 외침이 경매장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든다.

움찔 움찔!

"그림에 관심 있어?"

"……아뇨."

진호는 번호가 적힌 펫말을 무릎 위에 두며 심호흡을 했다.

그런 그의 낯빛은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큭큭. 그러니까 내가 아까 말했잖아. 경매를 하다 보면 분위기에 휩쓸려서 과도하게 지를 때가 있다고. 바로 이런 상황이야. 이렇게 필요 없는 물건도 사게끔 만들어버리거든."

옆 자리에 앉은 이영재가 다 안다는 듯 웃었다.

맞다. 강렬하고 빠른 경매사의 외침과 너도나도 펫말을 드는 것을 보니 지금 팻말을 들지 않으면 마치 엄청난 손해를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 이거 골 때리네.'

스스로를 주체할 수가 없다. 그런데 재밌다.

'진짜를 사기 전에 워밍업 한다고 생각할까?'

팸플릿을 본 순간 사야겠다고 마음먹은 어느 대가수의 유품.

이런 자선 경매에 나온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자선 경매에 어울리는 물품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걸 본 순간 진호는 생각했다.

'해금하자.'

작곡을 시작한 이설아를 생각하니 해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57만 원! 57만 원! 더 이상 안 계십니까?"

5만 원씩 상승하던 경매 입찰 금액이 다시만 원 단위로 돌아왔다.

50만 원이 넘어가자 대부분의 경매 입찰자들이 경매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스윽!

이영재가 진중하게 펫말을 들었다.

"응? 형?"

"199번 손님께서 참전하셨습니다! 19번 손님께선 정말 아쉬운 상황이군요! 그렇다면 58만원 가겠습니다!"

"원래 경매는 뜨내기 경쟁자들이 모두 떨어져 나간 다음에 참가하는 거야."

턱을 살짝 드는 그의 모습을 보니 딱 하나의 생각만 들었다.

'아, 때려 주고 싶다.'

처음부터 참가해서 열심히 펫말을 들었던 19번 손님은 무슨 죄인지 몰랐다.

결국 그림은 62만 원으로서 이영재에게 낙찰되었다.

다음 물품이 나왔다.

"오! 이번 물품은 국내 최고, 국내 최고의 아이돌 그룹이었지만 불미스런 말들이 많은 더 원의 리더 레오 씨께서 군 입대를 하시며 기증하신 전자피아노입니다! "

경매사는 피아노의 제품명과 스팩, 그리고 현재 형성된 중고 시세를 말하였다.

"레오 씨의 첨언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이 전자피아노로 수 많은 곡들을 작곡했다고 합니다. 새 제품값을 주고 산다고 해도 아깝지 않을 스타의 애장품입니다! 시작가 80만 원을 외쳐 보겠습니다!"

진호는 펫말을 내렸다.

"응? 포기하는 거야?"

"더 원은 좀……. 그래도 좋은 건 사 둘 겁니다. 일단은 정인비 선수의 골프 세트!"

'아버지 드려야지!'

이렇게라도 운동이라는 여유 시간을 가지게끔 하고 싶었다.

진호의 눈이 불타올랐다.

"아, 이런 거에 맛 들리면 큰일나는데."

이영재의 말에 최인호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물론 진호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그렇지!"

진호는 끝까지 접점을 벌인 50대의 남성의 원망 어린 시선을 가볍게 무시했다.

"너무 비싸게 주고 산 거 아니야? 너 지금 새것보다 비싸게 주고 샀어."

"정인비 선수의 사인이 들어갔잖아요. 어디서 들었는데, 이런 게 골프장에서 잇템이라고 불린대요. 즉, 아버지가 골프에 취미 붙이게 하는 데는 더 없이 최고라는 거죠."

골프장을 찾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 그걸 더 느끼기 위해서라도 골프장을 찾을 터였다.

"크-. 역시 효자네, 효자야."

"이번에 소개드릴 물품은 오늘 경매에서 최고로 의미 있는 물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경매사가 목이 터져라 외치자 진호는 다급히 앞을 보며 눈을 빛냈다. 한 자루의 허름한 만년필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전시되어 있다.

"80년대, 노래하는 철학자로 불리셨지만 비운에 가셨던 그분! 지금도 수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하시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대가수! 고 김광재 씨께서 남기신이 유품을 소개할 수 있게 되어 참으로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고 김광재. 그 어떤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대가수다.

현재까지도 따라 하는 사람이 나오지 못하는 그만의 감성. 그만의 목소리. 그만의 음악 세계.

"이 유품을 기증하신 익명의 독지가께서는 이렇게 첨언하셨습니다. 이 만년필로 작사, 작곡하시는 걸 직접 목격하신 것도 모자라 새 만년필을 사 드리며 교환을 하셨다고-! 이 익명의 독지가의 신원은 본 경매 주관사가 보장합니다! 이제 이 이상의 설명이 필요 있을까요! 시작가 50만 원을 외쳐보겠습니다! 50만 원!"

진호는 당연하다는 듯 펫말을 들었다.

현재 얻으려는 작곡 관련 스킬의 1차 해금 조건인 '유명 작곡가가 작곡을 할 때 쓴 펜 습득하기'.

스킬 해금 조건 때문이 아니라도 음악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든 소장하고 싶은 물품이었다.

'이건 무조건 내 거다.'

진호는 어깨 위로든 팻말을 든손을 그대로 고정시켰다. 그 어떤 액수가 나와도 절대 내리지 않을 생각으로 말이다.

그건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고김광재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치열한 접전이 시작되었다.

"583만 원! 583만 원! 더 이상 안 계십니까?"

경매장을 둘러본 경매사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곤 크게 외쳤다.

"583만 원! 고 김광재씨의 유품인 만년필은 198번 손님에게 낙찰되셨습니다!"

땅!

나무망치가 나무 판을 때리는 소리가 경매장을 울렸다.

"그렇지!"

진호는 주먹을 불끈 쥐었고, 경매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축하의 의미로 박수를 쳐줬다.

그들에게 감사하다는 의미로 고개를 숙여준 진호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손등으로 훔쳤다.

"축하한다."

"으흐흐. 감사합니다."

'휴우. 고 김광재 씨의 유품이 많이 풀려서 다행이지.'

고 김광재의 유품은 의외로 많다.

그의 친구, 지인, 팬이었다는 사람들이 고 김광재에게 받았다며 사인이나 잡동사니를 보여 주는 경우도 많고, 따로 추모관을 지어 백여 점의 유품을 전시했을 정도로 희소성은 그리 크지 않다.

양진혁도 고 김광재 씨가 썼다는 하모니카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겨우 583만 원에 습득 할 수 있었던 거다.

만약 밝혀진 그의 유품이 50점이하였다면, 583만 원이 아니라 5, 830만 원을 지불했을 수도 있었다.

진호는 마지막까지 접전을 벌인 사람에게 고개를 숙여주고는 팻말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더 이상 마음에 드는 물품이 없었다.

* * *

진호가 낙찰한 물품을 넘겨받은 건 경매가 모두 끝난 뒤였다.

택배 서비스를 이용해 낙찰받은 물품 대부분을 집으로 보낸 진호는 강화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긴 만년필을 꺼냈다.

"어? 그렇게 막 빼도 돼? 전시하려는 거 아니었어?"

찌릿!

'아, 해금했다.'

경매장 밖을 본 진호는 피식 웃고 말았다.

아직은 무더운 하늘 아래 저 멀리 빵빵 차들이 매연을 뿜으며 달리는 모습과 가을에 물들기 시작하는 은행나무를 보자마자 머릿속에서 악상이 휘몰아치고 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오선지 위에 음표를 그리고 싶었다.

'플라시보 효과 죽이네!'

플라시보 효과이되 플라시보 효과가 아니다.

원래부터 재능이 있었던 어린 주인공은 유명 작곡가의 펜을 습득함으로써 그 재능을 폭발시킨다.

마치 전교 1등이 쓰는 볼펜으로 공부를 하면 공부가 더 잘 되는 것 같이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2차 해금 조건은 작사, 작곡 10곡 하기.'

그럼으로써 스킬은 습득된다.

이 스킬은 1차만 해금해도 그 능력을 온전히 발휘되지만, 스킬을 얻기 위해선 2차 조건까지 해금을 해야 한다.

"형."

"응? 왜?"

"우리 여기서 헤어지죠."

"엥? 저녁에 술 한잔……"

"갑자기 악상이 떠오르고 있어요. 나중에 봐요!"

"어? 야!"

[스킬: 위대한 언어]

[오, 음악! 오, 노래! 그 위대한 언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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