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7화
'작동을 안 해도 상관없어.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니까.'
거창하게 RPG게임 같은 걸 만들지 않아도 된다. 그저 게임이라는 카테고리 안에만 들어가면 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와, 진짜 하나도 생각 안 나네."
과거에 이 스킬의 스토리를 깨기 위해 조사한 자료만 한 트럭에 달했는데, 지금 다시 떠올리려니 생각이 나는 건 고작 먼지 한 톨 정도에 불과했다.
지뢰찾기를 만들기 위한 모든 것이 적힌 종이 뭉치를 내려놓은 진호는 담배를 물었다.
"후우. 힘들다."
지뢰찾기는 제작하기가 의외로 어려운 게임이었다.
차라리 '오리 날다' 같은 점프게임이 더 쉽다고 했다.
'차라리 계산기를 만들 걸 그랬나.'
"……에휴."
담배를 끈 진호는 다시 종이 뭉치를 들었다.
"후딱 해치우자. 만들 거 많다."
보안 프로그램, 업무 통합 프로그램 등 만들게 참 많았다.
진호는 다시 키보드에 손을 얹었고, 그로부터 이틀의 시간이 지났다.
타타탁!
'아, 끝났다.'
"드디어……"
짜리릿!
"끄윽?"
진호는 입을 떡 벌렸다.
뜨거운 꼬챙이가 뇌를 헤집는 고통.
"아악!"
"대표님! 119-!"
머리를 부여잡은 채 쓰러진 진호는 펄 게이트 직원들이 달려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의식을 잃었다.
* * *
"과로로 인한 것이니 만큼 환자 분께는 절대 안정이 필요합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병실을 나서자 진호는 한숨을 폭 내뱉었다.
그는 창가로 걸어갔다.
"그 고통은 뭐였을까……"
뇌 속에서 생겨난 뜨거운 꼬챙이가, 아니 뜨겁다 못해 타오르는 손이 뇌를 주무르고 늘리는 것 같았던 고통.
그와 동시에 실시간으로 감각과 시야가 확장되는 것 같았다.
"마치 무언가가 억지로 뇌의 한계 용량을 넓히는 것 같았어."
진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스킬: 코딩의 신]의 주인공 이력을 떠올렸다.
'확실히 그 주인공의 기억력은 대단했지.'
한 번 보고 들은 것은 결코 잊지 않는 초인적인 기억력.
[스킬: 코딩의 신] 주인공은 스킬을 얻는 것과 동시에 그런 자신의 능력을 개화한다.
"모든 코드를 통째로 외우는 기억력."
[스킬: 셜록의 후예]처럼 [스킬: 전국수석]에 버금가는 두뇌.
범용성은 [스킬: 전국수석]이 좋지만, 기억력과 이해력 등 프로그램 제작에 관련된 뇌의 영역만큼은 어떤 스킬이 더 낫다고 볼 수 없다.
"이거 이러다 스킬들의 시너지로 전국수석보다 더 머리가 좋아지는 거 아냐?"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 진호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러다 정색했다.
"거기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던 기이한 지식들.
'그건 분명……'
드르륵.
"……대표님!"
"아, 곽 대표님."
진호는 경악하는 그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절 병원에 데려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아,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그보다 괜찮으십니까?"
진호가 머리를 붙잡고 쓰러져서 온갖 나쁜 생각을 해야 했던 곽종훈이다.
"네. 뇌졸중 등 뇌 관련 질환은 없고,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라더군요. 좀만 쉬면 낫는다고 합니다."
"……하아아.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무척이나 걱정했던 듯 곽종훈은 쓰러지듯 의자에 앉았다.
"아니, 몸이 그렇게나 좋으신 분이 왜 이렇게 허약하신 겁니까!"
"하하. 그러게요. 아, 그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연락하신 건 아니죠?"
"했습니다. 제가 아는 분들께는 다 연락을 했습니다."
진호는 식겁했다.
"아니, 왜요?"
"그야 당연히 연락을 해야 하니까요……?"
타다다닥! 드륵 쾅!
"대표님-!"
진호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난입하는 이설아를 보곤 이마를 잡았다.
'난리 났네.'
"어헝! 허어엉!"
이설아는 진호의 환자복을 잡은 채 눈물콧물 다 흘리며 서럽게 울었다.
난처해진 진호는 어떻게 좀 해보라는 듯 이설아 뒤에 들어온 직원들을 향해 눈짓 손짓을 보냈지만, 왜인지 흐뭇하게 웃은 그들은 오히려 병실을 나갈 뿐이었다.
'왜 나가는 건데!'
당황에 몸부림치던 진호는 이내 어색하게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
"괜찮아요. 괜찮아."
"……흐어엉!"
'진짜 미치겠네.'
이설아가 진정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훌쩍. 어떻게 된 거예요."
눈두덩이와 코끝이 빨개진 그녀가 묻자 진호는 부르르 떨었다.
'아, 진짜. 이렇게 귀여워도 되나?'
"과로 때문이래요. 요새 프로그래멍에 대해 공부를 하느라고 좀 무리를 했거든요. 뇌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진짜요?"
진호는 믿으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게야 완전히 안심한 이설아는 가슴을 쓸어내리다가 진호의 허벅지를 때렸다.
짜악!
"으?"
"아니, 몸도 이렇게 좋은 사람이 왜 그렇게 허약해요!"
들은 말이었다.
"진짜 나빴어!"
왜일까.
이렇게 웃음이 나오는 이유 말이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몰라요. 저 갈래요."
"그래요. 알바 늦겠어요. 얼른 가봐요."
멈칫 몸을 굳혔던 그녀는 걱정어린 표정을 지었다.
"혼자 괜찮으시겠어요?"
"어차피 모레 퇴원인걸요."
우물쭈물하던 그녀는 왜인지 서운해하며 몸을 일으켰다.
"내일 다시 올게요."
'그래 주면 나야 고맙지.'
진호는 짐을 챙겨 문 앞에 서는 이설아를 보며 짓궂게 웃었다.
"설아 씨."
"네?"
뭐 도와줄게 있냐는 듯 환하게 웃으며 돌아선 그녀.
진호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그런데 왜 그렇게 운 거예요?"
……화악!
"아, 안녕히 계세요!"
드륵! 쾅!
진호는 충격으로 다시 열리는 문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역시나 혼자만의 감정이 아니라는 거지?'
"한 번 쯤은 쓰러져 줄만 하네."
말도 안 되는 말이었지만, 진호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온 이설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뜨거워진 양 볼을 만졌다.
"……당연하죠."
진호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눈앞이 깜깜해졌다. 마치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이설아는 다시 붙은 심장을 어루만졌다.
"좋아하니까."
'대표님을 좋아하니까.'
"……그러니까 대표님도 알아주면 좋을 텐데."
진호의 병동이 있는 방향을 보며 살짝 아쉬워한 그녀는 몸을 돌렸다.
* * *
"정말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절 보세요. 제가 피곤해 보이나요?"
"으음……. 후, 어쩔 수 없군요. 여기 있습니다."
진호는 곽종훈 대표가 가져온 노트북을 켜 지뢰찾기의 코딩창을 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이런 거구나.'
감각과 시야가 확장된 그 기분은 착각이 아니었다.
'보인다.'
어디가 틀렸는지 눈에 훤히 들어온다.
복잡한 외계어들이 모두 이해가 된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다.
'알겠어. 단축화된 이 코딩이 뭘 뜻하는지.'
프로그래밍의 할아버지를 데려와도 모른다는, 오직 제작자만 아는 단축 코드와 소스들. 그게 모두 이해가 된다.
'또 이 지뢰찾기를 어떻게 개량시켜야 할지!'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개량시켜야 할지가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그를 위한 코드들 역시도 떠오른다.
마치 [스킬: 블랙 펄의 선장], 아니 리셋 라이프를 얻을 당시처럼 모르는 지식들이 샘솟고 있다.
'……그런 건가?'
그동안 모았던 모든 자료들은 핸드폰이 불타면서 사라진 게 아니다. 몸속에, 머릿속에서 잠들어 있을 뿐이다.
스킬이 습득되는 그때를 기다리며 말이다.
"나노 테크……"
파직!
"응?"
"왜 그러십니까? 또 머리가?"
"……아뇨. 그런 거 아니에요."
고개를 저은 진호는 생각을 다시 이어 갔다.
'그 수 많은 지식들이 내 몸속에 잠들어 있다니. 이건 뭐……'
오싹!
온몸에 돋는 소름에 어이없다는 듯 웃은 진호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빠르게 어떤 코드들을 쓰기 시작했다.
거의 30여 분 동안 코드를 기록 하고 실행해 본 진호는 그걸 곽종훈에게 보여 줬다.
"아, 맞아. 대표님, 이거 지금 제작하는 게임에 차용할 수 있겠습니까?"
"설아 씨를 주인공으로 한 게임말입니까?"
"예."
"지뢰찾기를 수정하시던 거 아니었습니까?"
"갑자기 생각나서요. 하하. 한번 확인해 주세요."
의아해하며 노트북 모니터를 본 곽종훈은 살짝 놀랐다.
'어? 이건? 대표님이 언제 이런 걸 조사……'
"헉!"
경악하며 모니터를 쥔 곽종훈은 코드를 주욱 읽어 내렸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진호를 보았다.
"이 코드는 분명……"
터치를 할 때마다 모션과 음성이 바뀌게 하는 코드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자주 이용하는, 일명 '뱅크'에서 본 적이 없는 방식의 코드라는 점이다.
"이 정도면 거의 자율학습 인공지능……"
"그건 아니고요. 그저 수천 가지의 패턴이 있을 뿐이죠. 툴이라고 하는 게 맞겠네요."
"……허어. 이걸 대체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실행을 해 봐야 알 테지만, 이 정도면 완성도가 무척이나 높다.
아니, 대중적으로 상용화된 코드들보다 훨씬 더 발전해 있다.
'이거라면 그 게임의 완성도를 더 높일 수 있겠어!'
결코 무료게임이라고 볼 수 없는 퀄리티의 게임이 만들어질 터였다.
곽종훈은 정말 이걸 어떻게 구했는지 알고 싶었지만, 은은하게 웃고 있는 진호의 눈을 보곤 포기하기로 했다.
"……일단 가져가서 확인해 봐야 알 테지만, 충분히 쓸 수 있을 듯 합니다."
아무리 주석이 세심하게 달려 있다고 해도 코딩만 봐서는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 수 없다.
"그럼 그렇게 해 주시고, 제 지뢰찾기도 확인해 주세요."
다시 노트북을 본 곽종훈은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지뢰찾기까지 실행해 본 다음에야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디버깅 작업을 해야 할 테지만, 이 정도면 95퍼센트는 완성되었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100퍼센트인데……'
굳이 떼를 쓸 이유가 없는 진호는 대충 그렇게 넘어가기로 하고는 곽종훈이 가지고 다니는 USB에 방금 제작한 툴을 담아 넘겨주었다.
"곧 게임 전용 보안 프로그램도 구입해서 넘겨 드릴 테니, 좋은 게임 제작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그럼 푹 쉬십시오!"
허리를 꾸벅 숙인 곽종훈이 나가자 진호는 볼을 긁적였다.
"효과 좋네. 이대로 계속 현실에서 구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나 코드들을 넘기면……"
곽종훈은 그리 멀지 않은 시간에 스스로 HU 컴퍼니에 소속되고 싶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원래는 그들과 함께 게임을 만들고 숨 쉬며 유대감을 만들고 난 후에야 이 플랜을 진행시키려고 했는데……"
스킬 습득의 충격으로 쓰러지면서 완전히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
'뭐, 이래도 안 된다면……'
"포기하는 수밖에."
이 이상 공을 들일 가치는 그들이 직접 증명해야 했다.
눈을 빛낸 진호는 보안 프로그램을 제작해 가기 시작했다.
* * *
"워후."
"우와!"
진호는 대지 면적만 300평인 건물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지하 3층에 지상 10층. 총 13층짜리 건물이다.
'이게 이제부터 내 거란 말이지.'
70퍼센트 이상은 은행 빚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뿌듯한 가슴을 어루만지며 건물 안으로 들어간 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뒤따라온 HU 컴퍼니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인간의 욕심은 참……"
급매물로 나온 이 건물은 외벽과 내부 공사까지 모두 마친 상태였다. 진호가 한 게 아니라 전 주인이 외벽과 내부 공사를 하느라 돈을 좀 많이 썼는데, 다른 곳에서 일이 터지는 바람에 급작스럽게 돈이 필요하게 되어 어쩔 수 없이 급매물로 내놓은 것이었다.
그래서 진호와 HU 컴퍼니는 별다른 공사 없이 그냥 입주만 하면 되었다.
"일이 터질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래도 건물 가치와 임대료를 높이기 위해 공사를 하지만 않았어도 이 건물을 팔 일은 없었을 겁니다."
그건 맞는 말이었다.
"그냥 투자 실패라고 생각합시다. 그럼 여러분이 일할 공간을 둘러볼까요?"
"예!"
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각자 일할 공간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다시 감탄을 하고야 말았다.
"정말 저희가 이런 곳에서 일을 해도 되는 건지……"
작업복을 입은 최철규 이사는 이깔끔한 공간에 혹여 먼지라도 떨어질까 조심스러워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바닥이 강화 대리석이다.
벽은 까 봐야 알 테지만, 이 더운 날 이렇게 시원한 걸 보면 좋은 내장재를 쓴 게 확실했다.
"당연히 쓰셔야죠. 건설 파트는 예정대로 여기 3층 전체를 쓰도록 하시고, 경호 파트는 2층과 1층일부, 엔터 가수 파트는 5층 전체, 주식 파트는 저와 함께 10층을 씁니다. 나머지는 차차 채워 나가도록 하죠."
"……예!"
직원들의 우렁찬 인사에 싱긋 웃은 진호는 박수를 쳤다.
짜악!
"자, 그럼 이제 이사합시다!"
고개를 힘차게 끄덕인 그들은 다시 로비로 우르르 몰려나갔고, 진호는 주식파트 직원들과 경호원들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띠!
진호가 엘리베이터 버튼에 어떤 카드를 가져다 대자 엘리베이터가 자동으로 움직였다.
-띵! 4층입니다.
지이잉!
"오셨습니까!"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있던 경호원 두 명이 긴장한 표정으로 진호를 반겼다.
진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복도 끝에 있는 강화 플라스틱문을 향해 다가가 다시 카드를 가져다 댔다.
띠! 기이잉!
열린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 그와 직원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탄성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와."
"허."
커다랗고 네모난 금속제 박스 안에 들어가 불을 밝히는 기계들이 공간 가득 정렬되어 늘어서 있다.
진호는 그걸 보며 씩 웃었다.
'누구든 쳐들어와 봐.'
물리적이지 않는 이상 절대 뚫리지 않을 철옹성.
아니, 서버 보안실을 보는 그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