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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408화 (408/424)

외전 34화

어느덧 버스킹의 상징이 된 홍대.

한쪽에선 경쾌한 비트 음악에 맞춰 댄스팀이 댄스를 추고, 한쪽에선 고양이 탈을 쓴 알바생이 작은 포도송이를 붙든 채 애를 쓰고, 한 쪽에선 아마추어 가수가 본인의 노래 실력을 뽐내며 지나는 사람들의 발을 붙든다.

"마라샹궈 어떰?"

"진짜 마라를 무슨 맛으로 먹냐? 응?"

"마라-! 응?"

"오늘 저녁은 3차까지 가야지!"

"하, 공연 좋았다. 응?"

-라일락 꽃향기 맡으며…….

깊어져 가는 여름밤을 촉촉이 적시는 노랫 소리에 붙들려진 사람들의 발걸음이 한곳으로 옮겨진다.

달큰하게 가슴을 매만지는 몽환적인 목소리가 강제적으로 발을 옮기게 만들고 있다.

우글우글. 웅성웅성.

수 많은 인파에 둘러싸인 작은 체구의 여성이 의자에 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있다.

"누구지? 처음 보는 사람인데?"

"와, 연예인급이다."

외모도, 실력도 모두 연예인급이다.

홍대의 수 많은 인디 밴드와 인디가수, 버스커, 그리고 진짜 가수들의 버스킹을 보고 들으며 귀가 좋아진 사람들은 오랜만에 나타난 실력자에 사람들은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홍대를 처음 찾은 사람들은 이게 홍대인가 하며 흥미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듣고 갈까?"

"응. 밥은 조금 이따가 먹으면 되지."

언제 나타났다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신입 실력자.

사람들은 잠시 시간을 할애하기로 했다.

'에헤헤.'

한 명, 두 명 멈춰 서다 어느새 장막을 이룬 사람들에 이설아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통한다. 자신의 노래가 사람들에게 통한다.

'예전에는 이렇게 몰리지 않았는데.'

진호를 만나기 전, 정구호 몰래아주 가끔씩 홍대를 찾았던 그녀는 몰랐다.

각오를 세우면서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감정이 더 풍부하게 살아났다는 걸 말이다.

이전과 지금은 사람을 유혹하는 레벨이 달랐다.

그래서였는지도 몰랐다.

더 혼신을 다해 노래를 부르게 된 게 말이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더 몰려들게 되었고, 그럴수록 이설아는 더욱 힘을 내고. 너무도 좋은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었다.

디리링!

……짝짝짝짝짝!

"와아아아아!"

"언니, 멋져요!"

"감사합니다!"

몇 달 만에 받아 보는지 모를 청중의 환호다.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꾸벅 허리를 깊게 숙인 그녀는 힐끔 핸드폰을 보았다.

'헉! 600명 돌파다!'

채팅창에서도 감동과 칭찬 일색이었다.

그녀는 영리하게 머리를 굴렸다.

"안녕하세요. 중고 신인 가수 겸 신입 BJ 이설아라고 합니다."

"오, 그럴 줄 알았어."

"역시 가수였네!"

"하하, 역시 모르시는 분이 많네요. 그래도 나름 5년 차 3집 가수인데."

"아! 사람극장!"

"어? 진짜다! 식당에서 설거지는 다 하고 왔어요?"

이설아는 눈을 빛냈다.

"네! 악덕한 대표님 때문에 오늘도 열심히 구르고 있는 이설아입니다! 감사합니다! 거기 절 기억해주신 커플 오빠, 사인해 드릴까요? 사진도 찍어 드릴게요! 제발!"

"……아뇨!"

"쳇! 아깝다. 오늘도 커플 하나 깨트릴 수 있었는데."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장난이었다는 듯 혀를 빼물며 귀엽게 웃은 이설아는 채팅창을 보았다.

"아냐. 여러분은 여자친구 없잖아요. 왜 있는 척해요."

사람들은 다시 웃었다.

'으아. 복잡해.'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동시에 반응하기가 힘들다.

이럴 때 답은 하나다.

물을 한 모금 마신 그녀는 다시 기타를 잡았다.

"그럼 다음 곡 부르겠습니다! 여기 계신 커플들을 위해 이별 노래한 곡 바칠게요."

"하하하하하."

"2018년에 데뷔했지만 저보다 더 유명하신 순순히 님들이 부른 곡이죠? 모두 깊게 잠드는 시간, 널 생각한다."

디리링!

느릿한 기타 선율이 울리자 그녀는 눈을 감으며 입을 열었다.

"모두 깊게 잠드는 시간 남은 추억은 그리움마저 깨우고 말아."

입담은 좋고, 노래는 훌륭했다.

커플들은 이별 노래임에도 서로에게 기대며 미소를 지었고, 몸의 긴장을 푸는 마력 같은 목소리에 그 자리에 주저앉기도 했다.

왜 이런 가수를 여태껏 몰랐는지 작은 후회가 들기도 했다.

그들은 다시 깊어져 가는 여름밤을 즐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엇?"

"헉! 저!"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나 이설아를 향해 다가가는 덩치 크고 험악한 인상의 외국인들.

한 명 이면 적선하는 걸로 생각할수 있겠지만, 무려 3명의 외국인들이 얼굴을 구긴 채 그녀를 감싸듯 포위하며 사람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사람들은 재빨리 핸드폰을 들었고, 뭔가 이상함을 느낀 이설아도 눈을 떴다가 질겁했다.

'뭐, 뭐야?'

"누, 누구세요!"

벌떡 일어난 그녀는 기타를 거꾸로 잡으며 빨주초 셔츠를 입은 외국인들을 경계했다.

그러며 도움을 청하고자 사람들을 둘러봤다가 화들짝 놀랐다.

"대, 대표님?"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

연분홍 셔츠를 입은 월터를 대동한 진호가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푸하하하하핫!"

* * *

저벅 저벅!

"헉!"

본능적으로 물러난 사람들은 잠시 후 눈을 비볐다.

털이 승승한 우람한 덩치에 터질 듯한 빨갛고, 노랗고, 초록색인 셔츠. 연분홍 셔츠도 있다.

'시, 신호등?'

'어째서?'

'악!'

안구 테러라는 게 이런 걸까.

그들은 멀어지는 외국인들을 멍하니 바라봤고, 진호는 사람들의 시선에 웃음을 흘리며 경호원들을 보았다.

고용주의 첫 명령이라 말은 하지 못하고 있지만, 온몸으로 짜증을 토해내고 있는 경호원들.

'다들 조금만 참아 주세요. 곧 익숙해질 거예요.'

모두 역전의 용사들이니 만큼 진호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선 어쩔 수가 없었다. 특히나 지금 만날 이설아의 이미지를 위해선 말이다.

"그런데 설아 씨는 어디에 있지? 전화를 해 봐야 하나?"

-사랑 해서 잊으라는 아픈 거짓말…….

철렁!

진호는 깨달았다.

'아, 저기다.'

가장 심장을 떨리게 만드는 목소리.

인파를 헤치며 나아간 진호는 커져 가는 그녀의 노랫 소리에 놀랄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녀의 공연장소에 도착한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다리를 꼬고 앉아 슬픈 이별 노래를 부르는 그녀.

오직 그녀만 보이고, 그녀만 빛이 나고, 귀에도 콩깍지가 씐 건지 그녀의 노랫 소리만이 귀를 울린다.

"……미치겠네. 이렇게까지 발전했다고?"

두근두근두근!

심장이 미친 듯 뛰고 있다.

뮤즈가, 여신이 저기 있다고 말하고 있다.

잠시, 아주 잠시 그는 넋을 놓았다.

퍽!

심장을 때리며 자신도 모르게 켜진 [스킬: 아이돌 마스터]의 스위치를 끈 진호는 냉정한 눈으로 사람들의 반응과 시청자들의 반응, 그리고 혼신을 다하는 이설아를 살폈다.

……헤벌쭉.

"크흠."

마침 1절이 끝나고, 2절이 시작됐다.

진호는 본능적으로 타이밍을 읽었다.

'이제 등장시켜 볼까?'

그는 이설아의 노래에 흠뻑 빠진 듯한 경호원들을 보았다.

"지금만 이 광대 짓에 어울려 주세요. 앞으론 당신들을 무시할 일없을 테니까. ……아마도."

"후우. 계약서에 사인하는 게 아니었어."

고개를 저은 경호원들은 이설아를 향해 다가갔고, 이윽고 벌어진 상황에 진호는 배꼽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푸하하하하핫!"

'기타를! 기타를 거꾸로 잡았어!'

대체 저런 건 어디서 배운 건지.

왜 이렇게 귀여운 지 모르겠다.

"으하하하하학!"

"……야아아-!"

이설아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그리고 채팅창도 성대히 폭발했다.

* * *

"에이, 삐졌어요?"

"말로 할 때 저리 가요."

"미안해요. 나도 그렇게 놀랄 줄은 몰랐어요."

"아, 좀!"

"치킨 사 줄까요?"

탁!

순간 발을 멈춘 이설아는 진호를 죽일 듯 노려보다 다시 걸음을 옮겼고, 진호는 어색하게 웃고 있는 정구호가 든 카메라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우리 가수가 진짜 삐졌나 봅니다. 그 좋아하는 치킨도 마다하는 걸 보면 말이죠."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하나.'

솔직히 이렇게까지 삐질 줄은 몰랐던 진호는 굉장히 난감했다.

순간 천여 명까지 늘어난 시청자들이 사과하라며 성토하고 있었다.

히죽 웃은 진호는 카메라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럼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모두 내일 봐요!"

-악! 재밌는 부분은 이제부턴데!

-끄지 마라, 대표야!

방송을 끄라는 신호를 준 진호는 재빨리 이설아를 따라붙었다. 그리고 말없이 그녀의 뒤를 졸졸 쫒았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탁!

갑자기 걸음을 멈춘 이설아가 진호를 노려봤고, 진호는 히죽 웃었다.

"씨이. 진짜 미워."

"정말 미안해요. 정말로. 아, 나머지는 저기 가서 이야기할까요?"

진호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린 이설아는 순간 흠칫했다. 평소에는 너무 비싸서 먹기 힘든 족발집이었다.

"누가 먹는데요? 나 식단 조절중인 거 몰라요?"

"내가 먹고 싶어서 그래요, 내가."

진호는 순간 그녀의 손목을 잡고는 족발집 안으로 이끌었고, 놀란 그녀는 '어? 어?' 하는 사이에 끌려가 자리에 앉게 되었다.

띵동!

"여기 족보 세트랑 막국수, 이슬 하나 주세요."

'핫!'

그제야 정신을 차린 그녀는 아직도 잡혀 있던 손목을 뺐다.

그리곤 고개를 휙 돌렸다.

"……."

진호는 온몸으로 삐진 걸 표현하고 있는 이설아를 보며 히죽히죽 웃었다.

하지만 그녀를 자극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잠시 동안 자극하지 않는 게 상책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아, 진짜 귀엽네.'

솔직히 컴백시키고 싶지 않다.

이대로 가수를 그만두게 하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순 없지.'

남겨진 미련은 결국 파국을 불러올 테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사귀었던 여자친구처럼.

진호는 밑반찬이 나오자 소주를 따서 그녀의 잔에 따랐다.

꼴꼴꼴!

"미안해요."

"……."

"웃어서 미안해요."

"……."

'크큭.'

진호는 소주 대신 물을 마시며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이쪽을 곁눈질하는 게 빤히 보였지만, 그는 모른척했다.

이윽고 음식이 나오자 진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 맛있겠다. 안 먹을 거예요? 안 먹으면 버려야 하는데……"

"……칫."

달그락.

음식을 아깝게 버려야 한다는 말에 이설아는 마지못해 젓가락을 들었다.

"맛있어요? 맛있죠?"

"……몰라요."

"자, 술도 같이 먹어요. 오늘은 모두 허락할게요! 짠?"

……챙!

다행히 화가 반쯤은 풀린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둘은 계속 건배를 하며 조용히 식사 겸 술을 마셨다.

"……그래서 이분들은 누군데요?"

진호는 활짝 웃었다.

'풀렸다.'

"말했잖아요. 설아 씨 경호원이라고."

"……네?"

"앞으로 저 세 명이 팀이 되어 설아 씨의 경호를 맡게 될 거예요."

"쿨럭!"

정구호도 처음 듣기는 마찬가지 인지 기침을 내뱉었다.

이설아는 어설프게 젓가락질을 하며 연신 '판타스틱! 그레이트!'를 외치는 세 명의 백인을 보았다.

"여, 영어 쓰는데요?"

"잘 됐네요. 이 기회에 영어를 배우면 되겠어요."

이설아는 입을 떡 벌렸다.

"어째서!"

이 나이에 공부를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어진 진호의 말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세계 진출 안 할 거예요?"

"아……"

"저들 말고도 다국적으로 불렀으니까 회화는 금세……. 아, 말투가 너무 험하려나?"

진호는 좀 고민을 했고, 이설아의 입은 더 벌어졌다.

"마, 말도 안돼……"

"충분히 돼요. 그래도 당분간은 드라이빙 매니저 겸 통역사가 붙을 거니까 너무 걱정 말고요. 대충 먹었으면 일어나죠."

"어, 어디 가려고요?"

"얼마 전, 제가 새로 사귄 형한테요. 며칠 뒤 있을 행사의 VIP죠."

"네에?"

"괜찮아요. 좋은 형이에요."

진호는 다시 이설아의 손목을 잡으며 일어섰다.

'다음 덫을 놔 볼까?'

반쯤 기정사실로 만들기.

진호는 속으로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 * *

무하마드와 만나기로 한 장소는 호텔의 레스토랑이었다.

'흠?'

"무슨 일 있습니까?"

호텔에 들어서는 순간 월터를 비롯한 네 명의 경호원들이 날을 바짝 세웠다.

"저희와 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위험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이 말이다.

"아……. 당연히 그럴 겁니다. 지금 만나러 가는 사람은 얼마 전 공식적으로 방한한 사우디의 왕세자니까요."

상황을 알아차린 그들은 몸의 긴장을 풀었다.

"무슨 일 있어요?"

진호는 토끼 눈을 뜨며 묻는 이설아의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아, 저기 있네요."

"……오! 동생!"

진호는 양팔을 활짝 벌린 무하마드를 와락 껴안았다.

"이쪽의 아가씨는?"

"제가 사귀고 싶은 여성이자, 제 가수죠. 이설아라고 해요."

"오?"

진호는 놀라고 있는 이설아를 보았다.

"설아 씨, 이쪽은 무하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예요."

이설아는 눈으로 정말 많은 욕을 했다.

"인사해야죠?"

"……서, 설아 리. 나이스 투 미츄."

"오우."

무하마드는 이설아의 손을 잡아 그 손등에 입을 맞췄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두눈에 별을 담은 아가씨."

"예? 아, 땡큐! 땡큐!"

진호는 영어로 말한 무하마드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이제 그만 손 놓으시죠."

"으하핫!"

사막인에게 별이 어떤 의미인 줄 알까.

무하마드는 진호와 이설아에게 자리를 권하였다.

곧 음식과 와인이 나왔다.

"여기 아무즈부슈가 괜찮더군. 식전주와 함께 먹어 봐."

그렇게 식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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