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7화
-콰쾅!
움찔!
모니터 속 화염이 치솟는 영상을 본 이영재의 입이 벌어졌다.
인지를 벗어난 엄청난 일을 목격하면 아무런 생각을 못하는 것처럼 그 역시 몸이 굳어 잠시 동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띠리링! 띠리링!
"이, 이게……"
전화 소리에 겨우 깨어난 그는 수화기를 들었다.
-증권의 이준송입니다!
"……이영재입니다."
그는 억지로 눈을 부릅떴다.
-실장님! 지금 사우디에서…….
"지금 보고 있습니다. 현 시간부로 전에 하달한 공문대로 움직이 십시오. 알겠습니까?"
-……예!
전화를 끊은 그는 다시 울리는 전화를 외면하며 다급히 사무실을 나섰다.
띠리링! 띠리링!
"예! 전략기획실입니다!"
"실장님은 현재……!"
마치 전쟁터를 보는 듯한 난장판의 모습.
이서형마저도 쩔쩔매고 있다.
짝짝!
"모두 주모옥-!"
시끄럽게 울리는 전화기를 붙들고 있던 SJ그룹의 중추이자 두뇌이고 미래인 전략기획실의 모든 직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이영재를 보았다.
"현 시간부로 비상 체제에 돌입하며, 오일 쇼크 프로젝트를 발동합니다! 모두 그에 맞춰 움직이십시오!"
"……예!"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하고 있던 전화를 끊고는 다시 어디론가로 전화를 걸었고, 이영재는 몸을 돌려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리곤 담배를 물었다.
찰칵찰칵! 치익!
"후우우."
한 모금의 담배가 혼란스러웠던 정신을 가라앉힌다.
그러자.
오싹!
"이, 이거였나."
공포가 온몸을 엄습한다.
진호는 이걸 사전에 알아차린 거다.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하고 있던 사우디 정유 시설을 향한 '테러'를 말이다.
쾅!
"대체 그의 팀은 어디까지……!"
대체 어디까지 침투해 있는지, 몇명인지, 그 정보력의 끝은 어디인지 가늠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무섭다. 두려웠다.
"……정말 과거의 나를 칭찬해야겠네."
진호를 인간적으로 대한 과거의 자신을 말이다.
띠리리리리리리!
최인호였다.
"예, 이영재입니다."
-영재 형! 이 대표, 대체 뭐야! 뭐 하는 사람인 거야!
"……뭐긴 뭐야. 우리에게 행운그 자체인 존재지. 나 혼자 독식못해서 짜증 나니까 그만하자."
-……와, 돌겠네. 이걸 보름 전에 알았다고?
"진호는 그냥 빛이야, 빛. 난 그렇게 생각하련다."
빛은 그 자체만으로 고마운 존재였다.
그는 이제 그 어떤 의심도 하지 않기로 했다.
"너는?"
-나도 당연히 빛인 거지!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일걸?
이번 정보로 모든 재벌가 후계자들이 자리를 공고히 굳히게 됐다.
분명 예전의 오일 쇼크처럼 유가가 두 배 세 배 오르지는 않을 테지만, 이런 귀중한 정보를 상시로 알게 되는데 후계자 자리에서 탈락할 수가 없었다.
-응? 잠깐? 진호?
"얼마 전에 형, 동생 하기로 했다."
-치사하다! 자기 혼자만! 이러기 있어?
"있어."
-와, 씨? 나도! 아니다, 그냥 전화해서 형, 동생 하자고 해야겠다!
움찔!
"헛 소리 말고 의원들이나 단속 잘 해."
-……왜? 그 머저리들이 이 대표, 아니 진호를 노리는 거야?
"푸른 집 세입자도 노리는 것 같더라."
-……까득! 이 늙은이들이 돌았나.
"돈, 여자, 권력만 밝히는 놈들이니 진호가 얼마나 탐날까. 회장님도 강력하게 경고를 했는데, 딴 생각을 하는 것 같아."
-알았어. 우리도 허튼 생각 못하게 만들어 놓을게. 이 돈만 축내는 병신들이 감히 누굴 건드리려고!
뚝 끊긴 전화를 바라보던 이영재는 눈빛을 서늘히 빛냈다.
"그래. 용돈이나 감사히 받고 살면 되는 것들이 감히 누굴 건드리려고……. 경고하는 의미로 몇 놈갈아 버려야 하나."
정치권 전부를 갈아엎어야 할 수도 있는 일이기에 SJ그룹 혼자라면 약간 버거웠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에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게 정치인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시간부로 재벌가 전체가 움직일 거다.
군사 정권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회 각계각층에 인재를 육성한 재벌가 전체가 말이다.
진호는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담배를 짓이긴 그는 계속 화염만 솟구치는 영상을 끄며 다른 영상을 틀었다.
-띠리리리링!
작은 공간 안에서 신이 들린 듯 기타 연주를 하는 진호.
이영재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기타까지 이렇게 잘 치다니. 그의 재능은 도대체 어디까지 인지……"
진호에 대해 모르는 게 참 많다.
"지금쯤 뭘 하고 있으려나?"
이영재는 그게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그는 '우리의 신 슈퍼 개미 이진호를 찬양하라', '신께서 신탁을 내리셨다! 모두 선물시장으로 돌격!', '헐, 이걸 예견했다고? 찐이다! 진짜 신이다!' 라는 댓글창을 보며 눈을 빛냈다.
* * *
"헉! 허억!"
육중한 몸에서 흐른 구슬땀이 나무로 된 마룻바닥을 적신다.
그리고 그 몸뚱이에 명령을 내리는 머리는 새하얗게 물들어 제대로 작동을 못하고 있다.
'여긴 어디? 난 누구? ……아니, 난 왜 이러고 있는 거지?'
답은 알고 있다.
춤이 왜 저렇게 표현되는 건지, 저 춤보다 더 이 비트에 어울리는 춤은 없는지, 쟤는 정말 춤에 재능이 있는 건지 등 그런 감각을 익히기 위해서라고 했다.
"……와, 진짜 재능 없다."
TKS의 리더, 랩 비스트는 고개를 저었다.
진호가 춤을 배운 지 약 10일 정도다. 그런데 10일 전과 비교해서 눈곱만큼이라도 나아진 점이 없다.
"시끄러! 나 지금 집중하는 거 안 보이냐!"
"아니에요, 대표님. 그냥 때려치워요. 가망 없어요."
"왜! 이 정도면 엄청 잘 추는구만!"
웨이브, 팝핀, 락킹, 스텝. 전에 하지 못했던 춤들을 알게 됐다.
솔직히 이젠 줌에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그래서 문제라고요! 솔직히 말해서 일반인 축에서는 보통 정도로 추거든요? 그런데 딱 그 정도예요."
진짜 딱 그 정도다. 육중해 보이는 몸에 비해 엄청 유연하지만, 딱 그 정도다.
"대체 왜 늘지를 않는 건데!"
차라리 진호가 농땡이라도 피웠으면 이해라도 한다.
하지만 쓸데 없이 성실한 이 예비 투자자님은 지금까지 단 1분도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글쎄다?"
"틀렸어. 구제불능이야."
무릎을 꿇은 랩 비스트는 좌절했고, 나머지 멤버들은 그런 리더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 했다.
'이것들이?'
"야! 나 너희 투자자거든?"
"아직 투자 안 하셨잖아요."
"……돈 내고 배우는 학생이야!"
"그러니까 선생으로서 이런 팩트를 꽂는 거죠. 아닌가요?"
"……아니, 맞지. 요새 애들 말발죽이네. 나 때는 저러지 못했던 것 같은데……"
"풉!"
"큭큭."
제작진을 째려본 진호는 아차 한 건지 어색하게 웃는 TKS 멤버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양 대표가 자신만만할 만한 아이들이야.'
이들 모두 춤을 어떻게 춰야 하는지 알고 있다.
본능과 재능과 지식을 모두 갖추고 있다. 몇몇은 다른 멤버들에 비해 춤에 대한 재능이 좀 떨어지는 것 같지만, 양진혁이 작정하고 가르쳤다는 게 느껴진다.
감성은 또 어떤가.
아직 스킬을 얻지 못해 아이돌 감성을 이해할 순 없다지만, 이들의 노래는 [스킬: 옥탑방 스타]도 인정할 만큼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스스로 생각하며 부르기 때문이지. 양 대표가 정말 혹독하게 가르쳤어.'
노래만 놓고 봤을 땐 이설아보단못하지만, 정말 범상치 않은 재능들이다.
'확실히 이 정도라면……'
눈을 빛낸 진호는 제작진을 보았다.
"얘들 나오는 장면이 다음 주에 나간다고요?"
"네, 3화 마지막 부분에서 서로 만나는 부분이 나갈 겁니다. 무슨 문제라도……"
사람극장 진호 편은 총 5화 분량으로 잡혀 있다.
"……아니요. 알겠습니다."
'역시 시간상 힘들겠네.'
이 스킬의 마지막 해금 조건이자, 습득 조건인 '아이돌 성공시키기' 를 떠올린 진호는 이쪽으로 다가오는 양진혁을 보았다.
'그래도……'
지금 해금하려는 조건은 해금할수 있을 듯했다. 이 스킬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능력을 말이다.
진호는 큰 기대감을 가지고 물었다.
"더 해야 할까요?"
"아니요. 이 정도면 더 배우실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정말요?"
"예. 그동안 시청자료로 이론도 모두 배웠으니, 더 이상 배울 건 없을 것 같습니다."
"오-."
찌리릿!
'아, 해금했다.'
양진혁이 방금 전 인정을 하면서 몸의 어떤 감각이 변화하는 게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며칠 전 양진혁이 말한 춤에 관한 말들이 모두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런 의미였구나……'
춤뿐만 아니라 프로듀싱의 모든게 이해되고, 감각과 시야 자체가 달라졌다.
하지만 진호는 곧 TKS 멤버들을 힐끔 보곤 속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근데 이건 좀.'
마치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설레고 있다. 스킬이 2차 해금을 하며 얻는 능력 중 하나인 인재 선별 시야가 이런 식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아, 이거 위험해.'
지금 가쁘게 뛰는 이 심장이 과연 스킬을 해금해서인지, 아님 숨겨져 있던 성정체성이 나타나서인지 의심이 들게 만들고 있다.
'물론 아니지만! 에부브!'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그는 TKS에 대한 평가를 달리하게 되었다.
'범상치 않은 정도가 아니야. 이놈들, 하늘이 내렸어.'
그저 이설아와 분야가 다를 뿐, 그 재능의 크기는 누가 우위라고 구분 지을 수 없었다. 아니, 없게 되었다.
'대박이구나!'
대박 중 대박이다.
터져 버릴 듯 격하게 뛰고 있는 이 심장이 그 증거였다.
"이, 이 대표님?"
양진혁은 몽롱하게 풀린 눈으로 TKS를 보며 얼굴을 붉히는 진호의 모습에 슬그미니 몸을 움직여 시야를 차단했다.
"……아, 죄송합니다."
'미쳤어, 미쳤어! 이거 어떻게 안되…… 어? 됐다.'
마치 어떤 스위치가 내려가는 것처럼, 아니면 심장이 사라진 것처럼 몸이 싸늘하게 식었다.
진호는 살짝 당황했다.
'이상하네? 이 능력을 꼈다 켰다하는 건 스킬을 온전히 얻어야 가능……아, 설마?'
[스킬: 갓물주의 눈]의 스위치.
'지금 스킬들끼리 시너지를 일으킨 거야? 그런 거야?'
그것 말고는 딱히 설명이 안 된다.
'허, 스킬들이 시너지를 일으키네. ……위험하게시리.'
속으로 어이없다는 듯 웃은 진호는 아직도 경계하는 양진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능력을 통해 성공 가능성을 알게 됐으니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양 사장님."
"예, 대표님."
"투자하죠."
"……예?"
"TKS에 투자를 하겠……"
-우리 둘 담아 준 사진을 태워……
순간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해 멍해 있던 사람도, 중요한 말을 방해받은 사람도 모두 진호의 핸드폰을 보았다.
'씁!'
"잠시만요. 예, 이진호입니다."
-대, 대표님!
"네. 무슨 일이십니까, 장 부장님?"
-터, 터졌습니다! 사우디 원유시설이 터졌습니다! 테러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아?"
진호는 잠시 핸드폰을 귀에서 떼어 바라보았다.
'진짜로?'
혹시나, 혹은 설마 했던 일.
그는 입을 헤 벌렸다.
* * *
하얀 대리석과 금으로 꾸며진 화려한 방, 후덕한 외모를 지닌 30대의 중동 남성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번 테러를 미리 알아차린 나라가 있었다는 말입니까?"
"정확히는 개인입니다."
"그래서 어딥니까?"
"대한민국입니다, 왕세자님."
"……진호 리?"
왕세자인 그조차도 알고 있는 이름, 이진호.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불패신화의 슈퍼 개미를 그가, 전 세계 돈의 흐름을 움켜쥔 곳 중 한 곳의 2인자인 그가 일본 사태를 모를리 없었다.
그때의 선봉장이었던 진호를 떠올린 왕세자는 하얗게 질렸다.
"설마 진호 리의 정보원이 그 조직에도?"
"저희 정보국에서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내부감찰 중입니다. 저희에게도 그의 정보원이 있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허어?."
두려움이 작게 일어날 정도의 대단한 정보력.
'숫제 저 미국 CIA조차 능가하는 정보력이지 않나! 대체 그 정체불명의 팀은!'
어이없다는 듯 웃은 왕세자는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눈을 빛냈다.
"만약 그와 내가 친구의 연을 맺는다면 어떨것 같습니까?"
그 밑바닥을 알 수 없기에, 그팀과의 유대를 모르기에 제거보다는 무조건 친구가 되어야 할 인물.
'아마 모든 나라 수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겠지.'
……부르르!
정보기관의 국장은 눈빛이 심유하게 가라앉은 왕세자의 말에 피를 토하듯 격렬하게 외쳤다.
"그는 분명 왕세자님의 밤하늘을 비추는 별이 될 것입니다!"
사막에서 밤하늘의 별은 길잡이다.
이 상황에서 길잡이라 함은 한 가지를 뜻한다.
정점으로 향하는 길을 안내할 길잡이.
"한국에 다시 가야겠습니다. 준비해 주세요."
"……예!"
사우디의 왕가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한국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 * *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도 모르는 진호는 옥탑방 사무실에서 장경아 부장만을 빤히 바라보았다.
진호뿐만 아니라 다른 세 명의 과장들도 장경아 부장을 보았다.
타탁! 탁-!
"……모두 털었습니다!"
그토록 기대했던 외침에 진호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오케이! 에브리바디 풋쳐 핸섭! 컴퓨터에서 손 떼세요!"
"뗐습니다!"
"으랏차!"
그들은 서로 얼싸안고 방방 뛰었다.
진호는 장경아를 보았다.
"그래서 총수익은요?"
"저희의 총수익은……!"
비명을 지르는 듯한 장경아의 대답에 사람들은 다시 환호성을 질렸고, 진호는 실소를 터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수익이었다.
아직 올라갈 곳이 한참 남아 있는데도 말이다.
"휘유. 이거 뭐 각자 추석 떡값으로 타워펠리스 두 채씩 가져가시겠네요."
"……우아악!"
"사랑합니다, 대표님!"
잘 다니던 증권사를 나오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일말이라도 없었다면 거짓일 것이다. 일본 사태는 분명 우연이라고 모두 만류하거나 비웃었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선택이 정답이었다!'
일개 직원에게 타워펠리스 두 채를 인센티브로 주는 대표가 어딨겠는가.
그들은 부러워 하는 제작진의 눈빛 속에서 완전 뼈를 묻어야겠다고 다짐했고, 진호는 흐뭇하게 웃었다.
"네, 저도 사랑합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휴갑니다! 추석 끝날 때까지 모두 쉬세요!"
"……예!"
"진짜 진짜 사랑합니다!"
컴퓨터 파워 버튼에 흥분한 손을 가져가던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대표님! 회식하셔야죠!"
"그렇죠! 이런 날 회식 안 하면 되겠어요?"
"…… 그럴까요?"
그렇지 않아도 요새 공부다 주식이다 해서 술 한 모금 마시지 못했다. 그건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요! 가시죠!"
"예! 가죠!"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 진호와 직원들은 옥탑방 사무실의 문을 활짝 열며 나섰다.
그 순간이었다.
쿵!
"꺅!"
진호는 문에 부딪친 사람을 보곤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아 씨가 왜 이 시간에 여기에? ……아니, 그것보다 일단!'
"헉! 괜찮아요, 설아 씨?"
하얗게 질린 진호는 재빨리 이설아를 부축했다.
[스킬: 아이돌 마스터]
[성공하고 싶다고? 하, 날 만난 순간 넌 이미 성공한 거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