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3화
8. 시작하다
MBS는 상장을 하지 않은 기업으로, 그 지분의 대부분은 정수장학회와 방송문화진흥회에서 소유하고 있다.
진호가 가지고 있는 지분은 MBS 와 방송문화진흥회 두 곳 모두였는데, 이는 이영재가 특정한 조건을 달면서 일본 회사들의 주식과 교환한 주식들 가운데 일부였다.
'20년 후 주식 매입 우선권을 가진다고 적혀 있었지. 최소 20년 동안은 나와의 관계를 놓고 싶지 않다는 뜻이야.'
기업이 언론에 대한 지분을 넘겨주었다. 그것도 일반인은, 아니 웬만한 기업이라도 소유할 수 없는 언론들의 지분을 말이다.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이쪽을 얼마나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쪽입니다."
"감사합니다."
드르륵!
개량 한복을 입은 종업원이 열어주는 문을 통해 들어가니, 오는 중 검색한 인물들이 서 있었다.
진호는 그들 둘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늦었습니다."
"아닙니다. 저희도 금방 왔습니다. 여기 어서 음식 내와요!"
대답한 종업원이 문을 닫자, 둘이 권한 자리에 앉은 진호는 들고 온 대봉투를 내려놓았다.
퉁!
두툼한 대봉투가 내는 묵직한 소리에 둘은 마른침을 삼켰고, 진호는 그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진호입니다."
"……허헛. MBS 사장 박승호입니다."
"진흥회의 임호철 이사입니다."
그들의 맞은편에 앉은 진호는 찻주전자를 들었다.
쪼르르!
옥빛의 구수한 향기가 방안에 퍼졌다.
"주주 몰래 재밌는 일들을 하셨더군요."
"쿱!"
찻잔을 입에 가져가던 둘은 순간 사례에 들릴 뻔했지만 겨우 참아냈다.
'빌어먹을!'
'이 미친 놈들! 들키지나 말지!'
애꿎은 놈들 때문에이 무슨 창피인가 싶었다.
"하하, 그게……"
스윽!
박승호의 입을 막듯 찻주전자를 잡은 임호철이 차를 따르며 입을 열었다.
"SJ에서 지분을 넘겨받으셨다고요."
'오호?'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참 사나웠다.
진호는 싱긋 웃었다.
"두 분께서도 아시다시피 제가 이번에 일본을 휘저으면서 몇몇 기업의 목줄을 쥐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게 불화수소와 포토레지스트였죠. 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언론에선 그것들 때문에 참 골치아프다고 했던가요?"
둘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SJ에 그 칼을 쥐여준 사람이 이자구나!'
현재 엠바고가 걸려 있는 상태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안다.
진호가 방금 언급한 소재와 관련된 기업들 전부가 SJ 그룹에 합병되는 중이란 것을 말이다. 이는 즉 해방 이래 처음으로 일본의 것을 한국이 빼앗아 온다는 소리였다.
'어째서 각의 지분이 이자에게 옮겨 갔나 했더니!'
세탁이나 개인적인 차원의 자금융통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일개 개미가 아니야!'
그냥 개미가 아니라 차기회장, 아니 현 회장도 한편으로 끌어들이기로 작정한 대단한 인재라는 뜻이다.
그들은 진호에 대한 평가를 상향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낭패다!'
진호는 식은 땀을 흘리기 시작한 그들을 보며 차갑게 입술을 비틀었다.
"최근 많이 지루하셨나 봅니다. 이런 쓸데 없는 일들을 재미 삼아 벌이시고 말입니다."
움찔!
"그, 그럴 리가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 모두 부하 직원들의 착오가 분명 합니다!"
그들은 전력을 다해 손사래를 쳤지만, 진호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아, 맞아. 다른 주주님들도 이일에 대해 알고 계시죠? '내 돈'을 받아먹은 '회사'가 자기들 멋대로, 입맛대로, 그 어떤 비교 데이터 없이 아무렇게나 상품을 취급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제기랄!'
둘은 속으로 쌍욕을 퍼부었다.
결국 언급되지 말았으면 했던 내용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당연합니다. 이 모든 것은 이 바닥의 오래된 관례……"
진호의 눈빛이 삽시간에 가라앉았다.
"이야기 잘 하셔야 할 겁니다. 주주 총회를 통해 낱낱이 밝힐 수도 있는 문제니까요."
끝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말은 더 이상 없었다.
"죄송합니다! 다신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빠드득! 이 개자식들!'
두 사람은 이번 일의 주범들을 정말 말 그대로 때려 죽여 버리고 싶었다.
진호는 속이 타는지 차를 물처럼 들이켜는 둘을 보며 이젠 풀어 줘야 할 때라는 걸 느꼈다.
'마냥 구석으로 몰기만 하면 결국 무는 법이지.'
그래 봤자 무슨 일이야 있겠냐만, 귀찮은 일은 줄이는 게 좋았다.
마침 음식도 나오자 진호는 술주전자를 들었다.
쪼르르!
"뭐, 관례라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결과만 좋게 나온다면 되는 거죠. 결과만 말입니다."
움찔!
"죄송합니다. 돌아가면 관련자들을 처벌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뇨, 아뇨. 괜히 이런 소소한 일 따위에 애꿎은 피해자가 생기면 안 되죠."
박승호와 임호철은 진호의 의도를 파악하고자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다 곧 이어지는 말에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나쁜 거 아니겠습니까? 물론 받는 것도 나쁘지만, 어디 직원분들께서 영세 기획사에 억하심정이 있어서 그런 일을 했겠습니까? 사람인 이상 인정에 호소하는데, 마냥 외면할 수는 없었을 테죠."
진호는 일을 행한 PD나 작가들뿐만 아니라 바람을 불어넣은 기획사들에게도 본때를 보일 생각이었다.
……빠드득!
'그래, 그놈들이 있었지.'
진호가 어떤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를 둘이 아니다.
하지만 기획사들도 오늘의 이 치욕에 한몫을 한 건 사실이었다.
진호는 기대한 반응을 보이는 둘을 보며 대봉투를 툭툭 두드렸다.
"참 신기하죠? 겨우, 그것도 언제든 대체 가능한 '좋은 상품' 한두개 쥐고 있다고 그걸 무기 삼아 휘두르니 말입니다."
둘은 진호의 냉혹한 말에 속으로 참 독하다며 혀를 내두르면서도 대봉투에 관심을 드러냈다.
"……그건?"
"아, 별거 아닙니다. 제 산하로 편입된 회사에 압박을 넣은 기획사들의 연예인들 데이터입니다. 어느 드라마나 영화, 예능에 출연했을 때, 동급의 다른 연예인들과의 시청률을 비교한 데이터와 그들이 끌고 온 광고 목록입니다. 숫자 놀음을 하는 사람으로서 숫자를 보여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말이죠. 한번 보시겠습니까?"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대봉투를 넘겨받은 둘은 안의 내용물을 살피고는 탄성을 토했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참 이해하기가 쉬웠다.
"허어. 이 기획사의 부실이 이렇게 심하다니."
"잘난 놈 한둘이 나머지를 먹여살리는 거야 알고 있었지만 이건……"
데이터 속에는 그 기획사의 연예인들에게 얼마나 과한 지출이 발생하고 있는지 명료히 정리되어 있었다.
진호는 술을 한 모금 마시며 씁쓸함을 삼켰다.
'횡액을 맞은 연예인들에겐 미안하지만, 결국 이것도 사업이지.'
사업엔 결코 인정이 끼어선 안된다. 그렇게 해서 망한 공장을 어디 한두 번 봤던가.
'된서리 맞을 사람 밑에 있는 것도 결국 자기 운이야.'
그들 역시 누군가를 짓밟고 그자리에 선 만큼 짓밟힐 각오도 하고 있어야 했다.
'뭐 그래 봤자 얼마나 피해를 보겠냐만은.'
쓰일 사람은 어차피 계속 쓰이는 법이었다.
'음? 아, 그 부분을 보고 있나 보군.'
진호는 연거푸 술을 마시는 둘의 반응에 옅게 웃으며 술을 따랐다.
"……이거 사실입니까?"
"저도 솔직히 놀랐습니다. 연예계, 참 시한폭탄들이 많더군요."
그들 중에는 현재 MBS 드라마나 예능에 출연하는, 혹은 출연할 배우도 몇몇 있었다.
터지는 순간 방송국이 흔들릴 폭탄들이었다.
임철호 이사가 죽일 듯 노려보자 박승호 사장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똑바로 안 합니까, 박승호 사장."
"죄, 죄송합니다!"
이를 뿌득뿌득 간 임철호는 고마움을 담아 진호를 보았다. 치욕을 당하러 왔다가 의외의 선물을 받게 되었다.
"추태를 부렸습니다. 그래도 덕분에 위험한 폭탄을 떼어 낼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데 대체 이런 정보는 어떻게……"
"저 여의도에 있습니다, 이사님."
"아."
그걸로 설명은 끝이었다. 여의도 증권가는 대한민국에 돌아다니는 모든 정보의 생산지 격인 곳이었다.
진호는 둘의 표정이 느슨하게 풀리자 이젠 완전히 풀어 줘야 할 때라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움찔!
"예, 예. 말씀하십시오."
'또 무슨 말을 하려고!'
그들은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음. 두 분의 반응을 지켜보니 이번 일에 큰 연관이 없으신 것 같군요."
둘은 순간 억울해졌다가 화를 냈다가 이내 씁쓸하게 웃었다.
"이렇게 된 마당에 뭘 숨기겠습니까. 방송사와 기획사는 서로 공생하는 관계다 보니 이런 일이 비일비재 합니다. 제작비라는 게 한계가 있다 보니……"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가 됐다.
"이해합니다. 회사를 운영하느라 고생이 참 많으시겠습니다. 그나저나 일이 이렇게 된 거라면, 제가 엄한 두 분께 화를 낸 꼴이 되었군요."
"아닙니다. 주주로서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들의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그래도 말을 할 수 없는 건 지분이 깡패기 때문이었다.
진호는 그런 그들의 마음을 알아차렸지만, 모른 척하며 말을 이어갔다.
"아닙니다. 그래도 이래야 제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부디 받아주십시오."
진호는 명함을 두 장 꺼내어 무언가를 적어 내밀었다.
그 뜻을 모를 리 없는 둘은 소스라치게 놀랐다가 이내 명함을 돌려 주었다.
듣기로 진호는 국내외 대기업, 은행, 증권사들이 주목하는 거물이다. 먹는 순간 백 퍼센트 탈이 난다고 봐야 했다.
진호는 옅게 웃으며 다시 그들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미운 자식도 자식이라죠. 은행이자보다는 나을 테니 체면치레는 하실 겁니다."
실망했던 그들은 눈을 깜빡였다.
"……투자 정보는 주시지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진호는 재벌가들에게도 자문을 하지 않는 걸로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투자는 잠시 접으셨다고……"
"제 오해 때문에 이렇게 욕을 보셨는데 어떻게 입을 닦겠습니까."
"……허어!"
뺨 때리고 어르는 게 분명 했지만, 그들은 화를 낼 수 없었다.
화를 내기에는 참 귀중한 정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얻는 것 없이 잃을 것만 넘칠 판이라 속이 쓰렸는데, 액수는 적더라도 그 어떤 탈없이 쓸 공돈이 생기게 됐기에 그들은 방금 전의 모욕을 잊을 수 있었다.
'이 회장이 이걸 빌미삼아 휘젓지 않은 게 어딘가!'
솔직히 그들이 이 모욕을 잊으려는 데는 이 이유도 무시할 수 없었다.
'SJ의 비호 아래 호가호위하는 사람인 줄 알았더니!'
'이 바닥에 새로운 폭풍이 등장하겠구만.'
그들은 술 주전자를 들었다.
"미안합니다, 이 대표. 내가 부하직원들을 잘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쯧!'
"그게 어떻게 사장님 탓이겠습니까. 모두……"
말을 하려다 만 진호가 술 주전자를 넘겨받았다.
"개의치 마십시오. 저도 이 시간부로 잊겠습니다. 그리고 실력으로 사장님의 섭외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허어. 이거 내가 낯이 뜨겁습니다. 내 확실히 조치해 둘 테니 앞으로 이 대표께서 걱정할 일은 생기지 않을 겁니다."
"부디 애꿎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어서 드시죠. 음식이 아주 맛있습니다!"
"하하. 원래 여기 음식이 맛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웃음꽃을 피우며 즐거운 식사를 이어 갔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러 밝은 낯으로 한정식 집을 나선 진호는 담배를 물며 목을 벅벅 긁었다.
'아오, 안 맞아!'
답지 않게 점잔을 떨려고 하니 몸이 간지러워 미치는 줄 알았다.
그렇게 몸부림을 치던 진호는 이내 갑자기 미간을 좁혔다.
"그나저나……"
'이거 진짜 놀랍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일까.
아님 생각이 사람을 바꾸는 것일까.
방금 전까지 무척이나 냉정히 상황을 주도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 진호는 생각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스킬의 영향인가?'
결국 주인공을 전 세계 최고의 부호가 되게 만드는 [스킬: 블랙펄의 선장]. 그 말년은 비록 비참할지라도 반푼이 같은 성격으로는 결코 그곳까진 도달할 수 없었다.
'확실히 성격에 영향을 끼치는 스킬들이 몇 개 있지.'
정확히는 스킬을 얻고 나서 주인공의 성격이 확 바뀌는 스토리가 몇 개 있다.
오싹!
'이거 조심해야겠다!'
다시 한번 다짐한 진호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일은 잘 풀리셨습니까?"
"잘 풀렸다 뿐일까요."
솔직히 이렇게 잘 풀려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역시 기업을 압박하는 데는 지분이 최고지.'
이게 사회인의 방식이었다.
진호는 눈빛을 서늘하게 가라앉혔다.
'그러게 어디서!'
"가죠, 월터."
"예."
차에 오른 진호는 미련 없이 한정식을 나섰다.
한편 그제야 막 한정식집을 나서던 임호철은 박승호를 보며 혀를 찼다.
"그러게 적당히 좀 하시지."
"어흠. 내가 밑에서 그러는 줄 알았겠습니까. 나도 피해자예요!"
"퍽이나 몰랐겠습니다. 왜 이래요. 나도 그 바닥 밥 먹은 사람입니다."
"아니, 솔직히 내 위치에서 그런 밑바닥 일을 어떻게 압니까? 안그래요?"
"……커흠. 적당히 하라고 하세요. 이 대표가 그래도 사리분별을 잘 하는 것 같아서 이렇게 넘어가는 거지, 조금만 더 막 나가는 사람이었어 봐요."
그냥 주주 총회가 열리는 거다.
그 순간 최소 박승호 사장의 목은 날아간다고 봐야 했다.
"나도 그 점은 알고 있으니까 이 애긴 그만합시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르는 박승호를 보며 고개를 저은 임호철은 다시 한번 혀를 차며 발을 뗐다.
"잘 합시다."
남겨진 박승호는 주먹을 부르르 떨다 핸드폰을 들었다.
"내 밑으로 모두 1시간 뒤까지 집합해!"
* * *
갈굼은 원래 내리 갈굼이었다.
이날 MBS의 모든 직원들은 직속상사들에게 정강이를 까여야 했다.
-너 이 새끼 앞으로 그렇게 살지마! 네가 이러고도 이 바닥에서 살 수 있을 것 같냐!
"……영철이 형?"
뚝!
전화가 끊긴 핸드폰을 본 정구호는 볼을 긁적였다.
오늘따라 이상한 전화가 많이 걸려 왔다. 낯익은 목소리도 있고, 그렇지 않은 목소리도 있었다.
'진짜 뭐가 뭔지……'
"역시 이 대표님은 대단하시군요."
"예?"
정구호는 무슨 말이냐는 듯 분장하는 진호를 응시하던 차지혜를 보았다.
"대표님이 곧 해결하겠다는 말을 하시자마자 섭외 전화가 물밀듯 쏟아지고 있습니다."
"예? 아, 그럼 아까 요란하게 울리던 전화들이?"
"MBS, NBS, SBC, EBS였습니다. NBS는 1TV와 2TV 모두 섭외 연락을 해 왔습니다."
정구호는 눈을 부릅떴다.
국내 지상파 전부였다.
그로서는 수십 번 연락해야 겨우 한 번 만나 줄까 하는 지상파 말이다.
"어떻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지만……"
'SBC야 상장 기업이라 주식을 확보했다 쳐도, 비상장기업인 MBS 와 NBS마저 이렇게 기게 만들다니!'
한국을 대표하는 3대 기획사마저도 주식을 단 한 주조차 가지지 못한 성역인 지상파. 이는 분명 방송문화진흥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게 분명했다.
'대체 언제 이런 안배를! ……혹시?'
차지혜는 다급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나야. 별일 없지? 뭐? 진짜?"
어머머 위로하다 전화를 끊은 그녀는 입술을 비틀었다.
"역시……"
"무슨 일 있습니까?"
"네, 있죠. 저희에게 수작을 부렸던 중견 기획사들 모두 보이콧 당했다고 하네요."
정구호는 눈을 부릅떴다.
"모, 모두 말입니까?"
"네, 모두. 길어야 3달뿐이지만요."
차지혜는 이제 화장이 다 끝난 진호를 존경한다는 듯 보았다.
'역시 난 엄청난 줄을 잡은 거야!'
부르르!
'응?'
갑자기 오싹해져 팔뚝을 쓸어내린 진호는 거울을 보며 혀를 내둘렸다.
'나 아닌데?'
깔끔한 포마드 컷에 반팔 와이셔츠와 청바지.
웬 연예인이 서 있나 싶었다.
"아니, 대표님. 왜 이렇게 피부가 좋아요? 화장이 찍는 대로 먹히네?"
"하하. 그런가요? 전 얼굴이 답답해서 좀……"
"오늘만 이렇게 분장하는 거니까 조금만 참아 주세요."
PD의 말에 진호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어떤 이가 그들의 대화에 난입했다.
"저희는 매일 해 주셔야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아씨, 김 피디! 진짜 이럴거야? 이렇게 상도의 어길래?"
"그럼 형님이 나중에 찍으시던가요! 나 급합니다!"
"급한 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요! 같은 처지니까 좋게 좋게 찍자고요!"
"에라이!"
진호는 말다툼을 하는 그들을 보며 난처하단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어어 하는 사이에 NBS와 SBC의 대표 프로그램인 사람극장과 에니멀팜에서 동시 촬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진호는 데뷔를 하게 되었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