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8화
하얗고 까만 고양이들은 대체 어딜 어떻게 구르며 산 건지 너무도 더럽고, 구더기도 보였다.
'고양이라……. 이걸 어쩌나……'
"뭐, 일단."
"아, 안돼요! 사장님!"
"네? 뭘요?"
"그러는 거 아니에요! 어떻게 이 쪼끄만 아이들에게!"
"저희가 얼른 치울게요!"
이젠 파랗게 질려 새끼고양이를 감싸는 세입자들의 모습에 눈을 껌뻑이던 진호는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아니, 이 사람들이 진짜! 내가 뭘 어쨌다고!'
그렇게 속으로 외쳤지만 알고 있다.
자신의 외모가 옆의 월터 못지 않게 좋지 못하다는 걸 말이다.
"무슨 소리입니까! 치우다뇨! 얼른 병원으로 옮겨야죠!"
"……네?"
"누굴 냉혈한으로 보나……. 나 그런 사람 아닌 걸 알면서!"
의도적으로 더 정색한 진호는 얼른 정장 외투를 벗어 새끼고양이들을 감쌌다.
"조 과장님, 저는 병원에 갔다가 바로 인터뷰 장소로 가겠습니다. 월터?"
"yes, sir!"
둘은 황급히 차로 향했다.
"자, 잠시만요! 저도 같이 가시죠!"
"……예, 뭐. 그러시죠. 출발하시죠."
40대의 사내도 태운 차는 근처의 동물병원으로 달렸다.
* * *
"일단 어떻게든 처치는 하겠지만, 아이들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몸을 돌린 의사는 뛰기 시작했고, 진호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병원을 빠져나갔다.
찰칵!
"후우."
'살겠지? 그래, 살 거야. 이렇게 큰 병원에 왔잖아.'
심란함이 담긴 담배 연기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래서 당신은 누구십니까?"
진호는 말없이 뒤를 따르던 40대 남성을 보았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제 건물 세입자는 아닌 것 같은데 말입니다."
움찔!
40대의 남성이 진호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동물에 대한 사랑도 넘치시군요, 대표님. 안녕하십니……"
스윽.
월터가 진호의 사선에 서며 40대 남성을 사정거리에 두었다. 그 위협적인 모습에 40대 남성은 마른침을 삼켰다.
"하하. 안녕하십니까. 저는……"
"사기꾼? 작전?"
"예? 무, 무슨! 그런 거 아닙니다!"
"맞는 거 맞는 것 같은데, 무슨은."
"……이보세요! 이 대표님!"
남성은 정색하며 불쾌함을 드러냈지만, 진호는 콧방귀를 뀌었다.
'당신처럼 새까만 사람을 나보고 믿으라고?'
정말 문자 그대로 쌔까맣다.
세입자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생각한 순간, 남성의 전신이 까맣게 물들었다. 세입자로서는 최악, 건물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는 존재라는 뜻이었다.
'갓물주의 눈 스킬의 스토리에서도 이런 놈들이 등장하지.'
그중엔 유흥업자도 있고, 하우스를 만드는 꾼들도 있다.
이런 꾼들도 결국 '건물'을 '거점' 으로 삼는다.
그런 그들이 한탕을 하고 사라지면 거점이 된 건물은 어떻게 될까?
'아주 개떡락하지. 소문이라도 났다가는 세입자도 안 구해질 테고. 게다가 거기서 자살까지 한다면?'
막대한 손해를 보면서 건물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여보세요.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해 보입니까? 나 합류시켜서 당신들에게 좋을 건 없을 건데? 내가 당신들 뒤를 파면? 감당할 수 있겠어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희 회사는……!"
"월터."
터벅.
월터가 한 발 내딛자 그는 화들짝 놀라 물러섰다.
진호는 그런 그를 향해 이를 드러냈다.
"이봐, 내가 우습게 보여? 푸닥거리 한번 하고 사이 좋게 경찰서 가볼까?"
"……마, 많이 당하신 것 같은데, 진정되셨을 때 다시 뵙겠습니다! 저희 정말 그런 곳 아닙니다!"
진호는 후다닥 도망치는 남성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왠지 진실인 것 같지만……. 뭐, 아무것도 모른 채 사기꾼들에게 합류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주인공이 최악의 사기꾼이 되는 화술 관련 스킬의 스토리에도 그런 평범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직원으로 받아들여 사기 칠 대상들을 안심시킨다.
소위 병풍이라고 하는데, 그러는 이유는 단순하다. 같은 꾼들을 모으면 모을수록 본인이 가져가는 몫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진호는 주위를 경계하고 있는 월터를 보았다.
"경호원을 고용해서 천만다행이네."
험상궂은 월터가 아니었다면 꽤나 낭패를 당했을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으면 경고가 되겠지.'
"What?"
고개를 저은 진호는 싱긋 웃었다.
"아니에요. 식사나 하러 가죠. 부대찌개 어때요?"
"부대찌개! ……큼. 가시죠."
'부대찌개 성애자가 여기도 있네.'
월터가 똑바로 발음할 수 있는 세 개의 단어 중 하나인 부대찌개.
인터넷에서 대한미국놈이라 불리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은 진호는 근처의 부대찌개집으로 향했다.
'아, 월터의 옷도 사야겠다.'
진호는 자신뿐만 아니라 월터를 보며 놀라던 세입자의 얼굴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오후에 약속이 잡힌 인터뷰는 호텔 카페에서 진행되었다.
"이로써 인터뷰는 모두 끝났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휴우, 최 기자님도 수고하셨습니다. 이거 제가 대답을 잘 했는지 모르겠군요. 혹여 못했더라도 잘한 걸로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 잘 하셨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패션 스타일도 캐쥬얼하시고, 저가 브랜드라서 독자들이 무척 좋아할 겁니다."
여성 기자의 얼굴에 호감이 가득하다.
'밥 먹고 나니 시간이 없어서 대충 산 것뿐인데……'
왜인지 그 고양이 두 마리가 복덩이처럼 느껴졌다.
"하하하."
"거기다…… 품! 저기 경호원분의 패션 센스도 제법 이슈가 될 거예요."
"아……"
진호는 블링블링한 핑크색 티와 스키니진을 입은 월터를 힐끔 보았다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아직도 원망이 담긴 그의 눈을 감당할 수 없어서다.
'내 잘못이 아니잖습니까!'
잘못이 있다면 직원의 추천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것뿐이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더 대표님께 감사하죠. 인터뷰 요청을 받아 주셔서."
여성 기자가 눈을 빛냈다.
"혹시 개인적으로 궁금한 몇 가지를 여줘봐도 될까요? 원하시면 오프 더 레코드로 진행할게요!"
"예, 뭐……. 상관없습니다. 괜찮습니다."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는 하셨는데, 친척들의……"
와락!
진호의 얼굴이 구겨졌다.
"여, 역시 실례죠? 죄송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뇨. 물어보셔도 됩니다. 온 더 레코드로."
"예?"
아무래도 양심은 있는지 아직 찾아오지 않은 친척들.
'혹시 모르니까.'
진호는 그들의 입에서 자신과 부모님이 언급되는 걸 아예 막기로 했다.
'진호 리.'
월터는 열변을 토하는 자신의 고용주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가 주위 지인들에게 들었던 다른 고용주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편한 고용주.
돌발 행동도 하지 않고, 예의도 바르며, 이쪽을 배려 하듯 영어로 말한다.
참 좋은 고용주였다.
비록 오늘 일은 제법 당혹스럽지만, 한탄하듯 사진을 찍어 딸에게 보내니 딸과 아내 모두 잘 했다고 엄지를 치켜세워서 불만이 거의 녹은 상태다.
거기다 방금 전 동물병원 앞에서 보인 냉정한 모습은 어떻던가. 모르는 사람을 아무런 의심 없이 차에 태운 건 불만족스럽지만, 그래도 이런 고용주라면 오래토록 함께하고 싶었다.
'딸이 졸업을 하고 결혼하기 전까지 계속 날 고용해 줘야 할 텐데……'
양어깨가 무거운 가장은 오늘도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 * *
"후우."
'잘한 건가?'
기자에게 너무 세세하게 말한 건 아닌지 걱정이 든다.
'아니, 잘 했어. 부모님을 귀찮게 만들 바에는 그 인간들을 쓰레기로 만드는 게 나아. 어차피 진실만 말했고.'
물론 이 기사가 나가면 그들이 부모님께 전화를 할 테지만, 혹여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부모님 곁에서 엉덩이를 비비는 것보다는 나았다.
'자기들도 양심이 있다면 내가 친척이라고 말하고 다니진 않겠지. 벌써 말했다면 어쩔 수 없고.'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해 온다면, 그냥 벌금을 낼 생각을 가진 진호는 옥탑방으로 향했다.
정리해야 할게 있기 때문이다.
"응? 왜 아직도 불이?"
저녁을 먹은 것도 모자라 심란한 마음에 술도 한잔했기에 시간이 많이 늦었다. 그런데도 옥탑방 사무실엔 아직도 불이 켜져 있었고, 경호원도 사무실 앞을 지키고 있었다.
거기다 옥상 바비큐 테이블엔 이설아도 앉아서 초조히 다리를 떨고 있다.
'설마?'
"사, 사장님!"
괜찮을 거라며 손을 저으며 옥탑방 안으로 들어간 진호는 한숨을 내뱉었다.
'역시…… 떼를 쓰러 온 건가?'
"대, 대표님!"
벌떡 일어나는 정구호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린 진호는 함께 있는 조명희 실장을 보았다.
"후. 정구호 사장님께서 이걸 가져오셨습니다."
"흠?"
진호는 피곤한 얼굴의 조명희가 넘기는 몇 장의 A4용지 속 내용을 보곤 피식 웃었다.
'이유를 적어 왔네.'
뮤직비디오가 필요한 이유와 비용, 그리고 인선.
방송국에 앨범을 돌려야 하는 이유 등 정구호 나름의 계획과 이유가 적혀 있었다.
'내가 잘못 본 건가……'
그래도 좀 늦은 감이 없잖아 있다.
'오늘 아침에 이 모습을 보여 줬으면 좋았을 텐데……'
영 맹탕이 아닌 것에 다행이라고 생각한 진호는 조명희를 보았다.
"조 과장님은 어떻게 판단했습니까?"
정구호가 마른침을 삼켰다.
"여기 정 사장님이 가져온 계획서는 기본 중 기본입니다. 제 입장에선 참신함도 없고, 특별히 강조되는 플랜도 없어서 구미가 당기지 않습니다. 결정적으로 굉장히 미흡합니다."
"아……"
낙담하는 정구호를 일견한 진호는 계속 하라는 눈짓을 주었다.
"그러니 직원 보충이 필요하고, 컨설턴트에게 의뢰를 해 보강해야 합니다."
칭찬이다. 정구호는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조명희 과장의 눈에서 경멸이 많이 가신 상태였다.
"어? 그쪽 바닥에도 컨설턴트가 있나요?"
"돈이 흐르는 곳이라면 어디든 컨설턴트가 있습니다."
"그렇구나……. 알겠습니다. 조과장님이 조금 더 노력해 주세요."
"예……"
'미안하네.'
하지만 아직 직원을 더 고용할 생각은 없었다.
진호는 정구호를 보았다.
"저를 기다리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고, 며칠후 헤드헌팅을 할 후보들이 추려지면 그때 뵙도록 하죠. 앞으로 함께할 직원들이니 정 사장님의 의견도 필요하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얼굴이 조금 밝아진 정구호는 혹여 진호의 마음이 바뀔까 재빨리 옥탑방을 빠져나갔고, 이내 곧 이설아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진호는 옅게 웃었다.
"대표님."
"이 정도면 나쁘지 않잖아요. 그래도 기본은 갖춘 거니까. 그리고 처음이니 딱 이 정도 수준이 좋죠."
"……아."
조명희의 얼굴이 밝아졌다. 맞는 말이자, 간과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맞아. 대표님이 중견 이상의 기획사를 고르는 순간 그 바닥이 뒤집어질 테니까.'
수 많은 자본들이 유입되면서 분탕을 칠 게 분명했다.
'이 기본적인 걸 잊었다니……. 난 아직 멀었구나.'
일에 있어서는 냉정한 진호를 보자니 괜히 얼굴이 달아오른다.
그러자 다른 것도 떠올랐다.
'사람이 좋고 성실하다고 면죄부가 된다는 건 아니라는 대표님의 말은 정 사장을 경멸한 게 아니라 의욕을 북돋아 준 거였어! ……참 적절했다!'
이는 공장 일을 하며 수없이 많은 인간 군상들을 만나온 진호의 경험이 한 말일 뿐이지만, 이걸 모르는 조명희는 진호를 더욱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또 무슨 오해를 하는 거지?'
"……수고했어요. 오늘은 푹 쉬시고 내일 뵙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씩씩하게 떠나자 진호는 머리를 긁적였다.
"…… 이렇게 되면 일단 두 개 회사에 투자 확정인 건가?"
'게임 회사와 설아 씨 회사라……. 음?'
순간 고개를 모로 기울인 진호는 방금 한 생각을 다시 해 봤다.
"게임 회사와 설아 씨."
머릿속이 간질간질한 게 뭔가 떠오를 것 같았다.
[스킬: 블랙 펄의 선장]의 감이 대박이라고 외치는 것 같았지만, 아쉽게도 뭐가 떠오르지 않았다.
"에이, 몰라. 언젠가는 떠오르겠지. 내가 뭐 컨설턴트도 아니고."
콧방귀를 뀐 진호는 이내 실소를 터트렸다.
"정말 걔들이 복덩이인 건가?"
포기할 뻔한 걸 포기하지 않게 돼서 기분이 좋은 진호는 흐뭇이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애완동물 한 마리키우고 싶었는데……"
돈도 없고, 집에 있는 시간도 일정치가 않아 포기했던 애완동물.
"그래. 나도 이참에 집사가 되지, 뭐. 이름은 하양이랑 까망이로 지을까?"
절로 얼굴이 느슨하게 풀렸다.
'이 기회에 그 스킬을 얻을까?'
리셋 라이프의 어느 스킬을 떠올리던 진호는 갑자기 울리기 시작한 전화를 다급히 받았다.
'설아 씨인가?'
타이밍상 그럴 것 같았지만, 핸드폰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그렇지 않았다.
"예?"
진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