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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391화 (391/424)

외전 17화

6. 메이커 프로젝트

태연함을 가장 하고 있지만, 진호의 심장은 미친 듯 뛰고 있었다.

"이런 우연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정 사장님이 그렇게 꽁꽁 숨긴 가수가 설아 씨일 줄이야……. 세상 참 좁네요."

"네? 저인 줄 모르셨다고요?"

"아, 정 사장님이 어떻게 투자를 받았는지 말 안 하셨어요?"

이설아는 복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진호는 어제의 상황을 설명했다.

"……네에?"

"소속 가수는 어떻게든 지키려 하면서 본인의 미래마저 포기하려는 모습에 투자를 결심하게 됐어요. 하긴, 제 입장이라도 설아 씨같은 미녀가 소속 연예인이라면 오픈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세상이 좀 험해야 말이죠."

"그, 그런……. 사장님……"

정구호는 눈시울을 붉히며 응시하는 이설아의 모습에 볼을 긁적였다.

"그 왜 쓸데 없는 말을 하셔서……"

"음? 전 진실을 말한 것뿐인데요?"

"어흠흠!"

고개를 돌리는 정구호의 모습에 짓궂게 웃은 진호는 이내 눈빛을 서늘히 가라앉히며 이설아를 보았다.

너무도 냉담한 그 시선에 그녀는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사, 사장님이 아닌 것 같아.'

언제나 젠틀하던 진호가 아닌 것 같다. 너무도 의외의 면모였다.

이런 그녀의 모습에 진호는 안도했다.

'통했네.'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설아 씨."

"예, 예! 사장님!"

진호는 긴장하는 그녀에게 걱정 말라는 듯 웃어 주었다.

"저야 설아 씨의 음악성을 안다지만, 앞으로 이 기획사에 경영 자문을 해 줄여기 조 과장님은 아직 모르고 있어요. 그러니 당신의 노래를 들려주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목 좀 풀겠습니다!"

"얼마든지요."

이설아가 안쪽으로 들어가자 진호는 그제야 로엠 컴퍼니를 둘러보았다.

책상 두 개와 공기청정기 하나가 전부인 지하실.

'사무실을 옮겨야겠어.'

소속 가수가 한 명 뿐이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르겠지만, 빈말로도 좋다고는 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공기청정기가 있다고 한들 지하는 벗어나는 게 옳았다.

'마침 이 건물 3층에 있는 판 소리 학원이 이번 달에 계약을 끝내니까.'

재계약 의사도 비추지 않으니 내보내야 했다.

'음?'

아-!

안쪽에서 이설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목소리 괜찮죠, 조 과장님?"

"나쁘지는 않은 것 같군요. 하지만 상품은 포장만 잘 하면 됩니다."

"그런 걸 두고 작전이라고 하죠."

움찔!

진호는 몸을 굳히는 조명희를 보며 단호히 말했다.

"앞으로 저와 계속 일하려면 포장 속상품을 일일이 검토해야 할 겁니다. 직접 보고 듣고 만져 봐서 가치를 정해야 됩니다. 단순히 숫자만 보고 투자를 감행하진 않을 거예요."

'이게 대표님의 성공 전략 중 하나인 건가! 역시, 성공하는 데는 이유가 있구나! 이것부터 배워야한다!'

조명희는 스스로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음? 아, 네. 제 뜻을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호는 이 대화에 끼지 못해 어색해하는 정구호에게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손을 저었다.

그 순간 이설아가 문을 열고 나왔다.

방금 전과 달리 그녀의 손엔 기타가 들려 있었다.

"목은 다 풀었나요?"

"네!"

"그럼 시작해 보죠."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기타에 손을 얹었다.

디리링.

* * *

"진짜 왜 지금까지 뜨지 않은 거죠?"

"아, 아니에요!"

조명희는 불신과 경악, 정구호를 향한 경멸을 드러냈고, 이설아는 계속 되는 칭찬에 몸을 배배 꼬았다.

'노래면 노래, 외모면 외모. 진짜 뜨지 않은 게 이상하지.'

정구호가 급히 공수해 온 플라스턱 의자 중 하나에 앉아 흐뭇해하던 진호는 조명희를 툭 건드렸다.

"아, 흠흠."

조명희는 삽시간에 표정을 가라앉히며 정구호를 향해 이를 드러냈다.

"앞으로 어떤 전략을 통해 설아씨를 띄울 건지에 대해 들어 보죠. 준비된 자료 주십시오."

"……예? 자, 자료요?"

"……설마 그런 기본적인 것도 준비하지 않은 겁니까? ……Really?"

이 부분에선 진호도 놀라고 말았다.

'진짜야?'

진호는 표정이 안 좋아지는 이설아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건 정 사장님의 잘못이 맞아요, 설아 씨. 외부 투자를 받게 된 이상 지금까지 처럼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할 순 없는 거예요. 설아씨가 5억을 투자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 그런 거군요."

'오? 이해력도 좋네?'

진호는 정구호를 보았다.

"기본적인 플랜이라도 말해 주시겠습니까?"

"뮤, 뮤직 비디오 찍어 너튜브에 올리고…… 바, 방송국에 음반 돌리고……"

눈을 빛낸 조명희가 손을 들었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효과는 뭐죠? 뮤직비디오를 찍어 너튜브에 올리면 어떤 점이 설아 씨에게 도움이 되는 겁니까? 또 뮤직비디오는 어떤 컨셉으로 찍고, 그게 어느 세대층을 공략할 예정입니까?"

"그, 그게……"

"그만. 더 듣지 않아도 정 사장님이 어떻게 설아 씨를 케어했는지 알 것 같군요."

주먹구구, 남들이 하니 나도 한다였다.

조명희는 한숨을 푹 내쉬며 진호를 보았다.

"이쪽 전문가가 최소 두 명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얼마죠?"

"5천에 최소 3년 고용 보장이면 충분히 딜을 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응? 그렇게 비싸지 않네요?"

"원래 이쪽 바닥 연봉이 짭니다. 팀장급도 3천을 겨우 넘기니 말 다했죠. 대신 인센티브가 있긴 한데, 소수만 겨우 받는 정도입니다."

만약 이곳 로엠 컴퍼니가 중견급만 됐더라도 4천 안쪽에서 연봉협상을 할 수 있었을 거다.

이런 조명희의 말에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진행하세요. 정 사장님도 괜찮으시죠?"

"……예."

진호는 떨떠름해하는 그의 모습에 미간을 좁혔다.

"너무 간절해 보이기에 투자 계획서도 받지 않고 투자를 감행했는데, 지금 모습은 많이 실망이군요. 다음에 봤을 땐 더 나은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움찔!

"……."

"조 과장님, 일어나시죠. 아무래도 그 전문가가 합류 할 때까지 일은 중단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조명희는 경멸 가득한 눈으로 정구호를 노려보다 몸을 일으켰다.

진호는 고개를 푹 숙인 정구호를 보며 싸늘히 말했다.

"정구호 씨, 사람이 좋고 성실하다고 면죄부가 되는 건 아닙니다."

경영자나 관리자가 무능하다는 건 죄악이다.

"가시죠."

"예."

둘은 그렇게 매정히 떠났고, 중간에 껴서 안절부절못하던 이설아는 정구호와 진호를 번갈아 보다 결국 몸을 일으켰다.

"배, 배웅해 드리고 올게요!"

* * *

"정말 뻔뻔하군요. 이건 분명 계약 해지 사유에 포함됩니다, 대표님!"

"그러게요."

'이렇게 처참할 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왜 이설아가 못 떴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만약 이래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돈을 쥐여 주더라도 이설아를 포기시켜야 할 것 같았다.

"이제 출발하면 되는 겁니까?"

"아, 예. 이동하죠, 월터."

서늘한 눈으로 발을 떼던 진호는 타타닥 누군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사, 사장님! 힉?"

"응? 왜? ……아."

"이, 이분은?"

하얗게 질린 이설아를 본 진호는 입맛을 다셨다.

'밝은 계통의 옷을 입혀야 하나.'

"제 개인 경호원입니다. 그보다 무슨 일이죠?"

"그게……"

불안과 초조가 가득한 그녀의 얼굴을 본 진호는 따뜻하게 웃었다.

"설아 씨에게 피해 갈 건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그게 아니라!"

'그게 맞는 것 같은데.'

진호는 그녀의 얼굴에 서리는 작은 안도를 놓치지 않았다.

"……정말 그렇게 아니었나요?"

"방금 대화를 모두 들으신 설아씨라면 어느 정도 답을 얻었을 거라고 봅니다만…… 일단 저희의 입장에서는, 예. 형편없습니다."

어떤 행동을 하는데 이유가 없다. 모든 걸 즉흥적으로 진행한다는 소리인데, 그래선 결국 금세 암초를 만나게 될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정구호가 그걸 알고 입을 다물었다는 것이다.

'눈치는 있다는 거겠지.'

정리되지 않은 걸 억지로 말하지 않으려고 한 점은 칭찬할만 했다.

"솔직히 지금이라도 투자를 철회하고 싶을 정도로요."

"그런……"

"타인으로서 과한 참견이지만, 지금부터라도 어느 방향이 설아 씨의 인생에 도움이 될 지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싶네요."

움찔!

무언가를 느낀 이설아는 불안해하며 진호를 보았다.

"사장님?"

"그럼."

싱긋 웃으며 몸을 돌린 진호는 표정을 지웠다.

'죽어도 놓지 못하겠다면, 어쩔수 없지.'

호의는 사랑으로 발전하는데 중요한 감정 중 하나지만, 결코 사랑이 될 순 없었다. 30대면 그걸 알수밖에 없는 나이였다.

* * *

허름한 3층 건물 앞에 선 진호는 볼을 긁적였다.

'여기도 뭐…… 백호 경호랑 다를게 없는데?'

이곳은 더 처참하다.

가치 하나 없는 건물의 지하니 말이다.

'여기서 그 게임들이 발명됐다고?'

다운로드 수는 평균 30만이지만, 그중 두 개는 2천 원의 유료 게임이다. 이 두 개의 게임은 나머지 세 개의 게임처럼 너튜브 등 배너광고를 이용하지도 못했는데도 평균 10만이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제법 컸다.

"주소지는 맞습니다."

"그럼 들어 가 보죠. 월터?"

고개를 끄덕인 월터가 진호의 와이셔츠 소매에 붙은 단추형 마이크를 두드렸다.

"호출하십시오."

"네. 수고하고 계세요."

그렇게 조명희와 함께 지하실을 내려간 진호는 '펄 게이트'라는 문패가 붙은 문을 두드렸다.

우당탕! 와, 왔다-!

"응?"

"……풉. 귀엽네요."

"그렇다고 울리면 안 됩니다."

"봐서요."

"하하."

그들은 한 1분 쯤 기다린 후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종훈아! 차!"

정신이 없었다.

'이 세 명이……'

개발자 겸 프로그래머, 경영인이었다.

진호는 제법 깔끔한 내부를 둘러보며 눈을 빛냈다.

'20대 남자 셋이 모였는데도 이렇게 깔끔하다고?'

곳곳에 놓인, 근래에 산 게 분명한 미니 화분이나 방향제 향기가 마치 대접을 받는 것 같아서 절로 미소를 짓게 했다.

"반갑습니다. HU의 대표 이진호입니다. 이쪽은 조명희 과장님."

"HU에서 엔터 담당을 맡고 있는 조명희 과장입니다."

"펄 게이트의 대표 곽종훈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쪽으로!"

소파로 안내한 곽종훈은 바로 두툼한 종이 뭉치를 내밀었다.

"이건?"

족히 20센티미터는 되어 보이는 종이 뭉치.

"저희 펄 게이트의 투자 계획서 입니다! 대표님께서 얼마를 투자 해 주실지 몰라서 투자액별로 계획서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예에?"

진호와 조명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천 원 한 장이라도 남의 돈을 빌려 쓴다면 그보다 더 한 걸 보여줘서라도 이해를 시켜야 한다는 게 저희 아버지의 지론이라서 말입니다. 그리고 제가 경영학도 출신이라서……"

"아……"

명치에 걸려 있던 고구마가 이제야 넘어가는 느낌이다.

진호와 조명희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걸렸다.

"신기하군요."

"취업과 꿈은 다른 법이니까요. 지금은 꿈을 택했지만 말입니다. 하하."

'마인드가 좋네.'

"꿈과 재능이 일치하였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런데 펄 게이트의 뜻을 물어도 되겠습니까?"

"아, 그게……"

세 명의 얼굴이 빨개졌다.

"지, 진주가 무한대로 나오는 커다란 차원게이트를 만들고 싶다고 그렇게 지은 겁니다. 다이아몬드는 불가능하니까……"

"하핫! 꿈이 커서 좋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건 저희가 가져가 검토해 본 후 투자 여부를 정하겠습니다. 그리고…… 되도록 저희 HU가 세 분의 꿈에 동참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고개 숙여 인사한 진호와 조명희는 좋은 기분으로 펄 게이트를 나설 수 있었다.

* * *

'꿈을 이루면서 살 수 있는 건 참 행복한 일이지. ……그런데 내꿈은 뭐였더라?'

초등학교 때는 분식집 사장님이었다.

'중학교 때는…… 음. 딱히 기억이 안 나네.'

그냥 좋은 성적을 받고, 재준과 재밌게 노는 게 전부였던 것 같다.

아버지가 퇴직하신 이후부터는 돈으로 바뀌었지만 말이다.

사락! 사락!

"어떤가요, 조 과장님?"

"어설픈 점이 많이 보이지만, 이 정도면 훌륭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본인들의 아이덴티티가 시장에서 어떻게 먹히는지를 확실히 알고 있는 점이 그렇습니다."

"…… 좋네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오후에 인터뷰가 있으시다고요."

"아, 예. 5시니까 여러분과 점심을 먹고 천천히 출발하면 됩니다."

'펄 게이트가 제대로 준비해 줘서 일찍 끝났어.'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여유롭게 식사를 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건투를 빌겠습니다, 대표님."

'건투까지야……'

"하하. 예."

끽!

차를 세운 월터가 문을 열며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아, 수고했습니다."

'음?'

차에서 내리던 진호는 웬일인지 시끄러운 원룸 입구에 의문을 품으며 다가갔다.

"뭐하는 겁니까?"

"아, 이것 좀…… 사, 사장님?"

사색이 된 세입자들의 모습에 의아해한 진호는 그들이 안절부절못하며 바라보던 것을 보곤 깜짝 놀랐다.

"고양이?"

그것도 다 죽어 가는 두 마리의 작은 고양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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