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390화 (390/424)

외전 16화

15센티미터나 되는 기록에 장경아 부장을 비롯해 4명의 직원이 달라붙었다. 그래서인지 꽤 빠른 시간 내에 검토를 끝낼 수 있었고, 조명희는 그 결과를 가지고 진호의 옆 자리에 앉았다.

"HU에서 엔터 투자 담당을 맡고 있는 조명희 과장입니다."

"예, 예. 로엠 컴퍼니의 정구호입니…… H, HD?"

"아, 죄송합니다. 전직장의 명함을 꺼내고 말았군요. 여기 있습니다."

조명희는 실수인 척 명함을 회수하며 새 명함을 내밀었지만, 그렇지 않아도 위축되어 있던 정구호는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그는 옥탑방을 보고 실망했던 마음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조명희 옆에 앉아 있는 진호는 차를 홀짝이며 그 모습을 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고민했는데 말이야.'

최대한 이설아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 방법을 찾기 위해 꽤나 고민했는데, 이렇게 직접 알아서 찾아와 버리니 약간 허탈하기까지 했다.

"검토해 보니 자금 운용을 알뜰히 하셨더군요."

"회사에 사장 겸 직원이 저 혼자라서 말입니다……"

"메이크업 및 스타일링도 사장님께서 직접 하셨고요."

흠칫!

"그, 그렇습니다만 그걸 어떻게?"

"숫자는 많은 걸 말하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대출도 성실히 갚는 중이고, 중간중간 여러 업체에서 후원을 받으셨군요."

"……부끄럽게도 제 친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예. 부끄러워하셔야 할 것 같군요. 후원은 후원이고, 행사비는 행사비인데 말이죠."

"그건!"

"요사이 갑자기 매출이 뛰었던데 이유가 있습니까?"

요령 좋게 화제를 돌려 버린 조명희의 말에 정구호는 화를 낼 타이밍을 놓쳐야 했다. 그것도 모자라 금세 미소를 지었다.

"어떤 고마운 분의 도움으로 너튜브에 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행사가 많이 잡히는 중입니다!"

그는 어필을 하기 위해 크게 외쳤다.

"겨우 한 명 있는 소속 연예인이 무명 5년 차에서야 겨우 인지도를 얻어 간다라……"

조명희는 진호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진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유는요?"

"배우라면 뒤늦게 포텐셜이 터져도 크게 성장하는 경우가 있지만, 가수는 무명 기간이 3년을 넘기면 상품성이 소멸하기 때문입니다."

"흠, 그래요?"

진호는 하얗게 질린 정구호를 힐끔 보았다.

"언더에서 활동해 팬이라도 있다면 약간이라도 가능성이 있겠지만, 지금까지 활동한 건 겨우 축제나 지방 행사뿐. 그것도 경기권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경영인으로서 쓰레기입니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 이상 절대 할 수 없는 뒷말을 삼킨 조명희는 결정을 내려 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테이블을 검지로 두드리기 시작한 진호는 이제 안쓰럽기까지 한 정구호의 모습에 두 번째 시험을 하기로 했다.

"얼마를 생각하고 계시죠?"

"5천만 원입니다! 이번에 겨우 얻은 곡은 정말……"

진호는 손을 들어 입을 막았다.

그는 직원들이 정리한 자료를 두드렸다.

"5천만 원이면, 정구호 씨 회사의 지분을 25퍼센트나 살 수 있습니다. 거기에 현재 유보금을 생각하면 2천만 원 정도면 될 것 같은데……. 욕심을 부리는군요."

모든 게 낱낱이 파헤쳐졌음에 정구호는 많은 걸 내려놓게 되었다.

"유보금은 유보금입니다. 여유 자금이 없는 이상 아무리 곡이 좋아도 지금까지와 같은 일을 반복할 뿐입니다. 그래서 5천만 원을 말한 겁니다."

"즉, 음반 제작까지는 2천만 원이 부족할 뿐인데, 가수의 활동 지원을 위해 3천만 원이 필요하단 소리군요."

"예. 그렇습니다. 이번엔 정말 잘 해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도 이게 마지막이라서!'

"흐음……"

정구호의 속내를 눈치채지 못한 진호는 생각에 잠겼다.

'솔직하네.'

2차 시험은 통과였다.

그는 궁지에 몰렸는데도 이설아를 팔지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 시험을 하기로 했다.

"좋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시죠. 제가 1차적으로 3억을 투자하겠습니다."

"……예?"

"대표님!"

다시 손을 들어 조명희와 엉덩이를 들썩이는 직원들의 입을 막은 진호는 눈을 매섭게 뜨며 정구호를 노려보았다.

"대신 매출의 95퍼센트는 제가 가져갈 겁니다. 동의하십니까?"

"그런! 말도 안 됩니다!"

"아, 당연히 가수에게 지급될 돈은 계약 비율대로 지불할 겁니다."

"예? 그럼 그 말은……"

"예. 나머지 5퍼센트 내에서 사장님의 월급을 포함하여 가수 활동지원까지 모든 걸 해내야 한다는 말입니다. 발생된 손해까지 모두 다 말입니다."

즉, 실패해도 성공해도 정구호는 무조건 빚쟁이가 된다는 소리였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정구호 씨.'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가 아닌, 이번엔 정말 잘 해 주고 싶다는 말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

진호는 마지막 시험을 통해 그의 진심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생각할 시간을 드릴 테니……"

"아뇨.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호오?"

언젠가 한 번 겪어 본 듯한 상황.

"진심이십니까?"

"예. 더 잘 될 수 있는 아이였는데, 제 욕심 때문에 무명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제가 빚쟁이가 되더라도 그 아이만큼은 꼭 성공시키고 싶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은 듯 담담한 모습은 진호의 가슴을 울렸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투자하죠. 조 과장님?"

"……여기 있습니다, 대표님."

진호는 조명희가 내민 투자 계약서에 몇 개의 숫자를 적어 정구호에게 내밀었다.

담담히 받아들어 살핀 정구호는 이내 눈을 부릅떴다.

"이, 이건? 대표님!"

진호는 따뜻하게 웃었다.

"언론에서 저보고 암울한 엔터에 한줄기 빛이 되어 주길 원하는 것 같더군요. 1차 투자금 5억에 순수익의 30퍼센트. 총 2년 계약이며 2차, 3차로 계속 자금이 투자될 겁니다. 그러니 우리 2년 안에 승부를 보도록 해 보죠. 가능하시겠습니까?"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구호는 진호가 펜을 잡고 내미는 손을 꼭 붙들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 * *

정구호가 연신 고개를 숙이며 떠나자 직원들이 도끼눈을 떴다.

"실수하셨습니다."

진호는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로엠에서 멈춘다면 당연히 그렇겠죠. 하지만 로엠이 첨병이 된다면요?"

움찔!

"……설마 저평가 된 회사를 쓸어 모으시려는 겁니까?"

"주식의 기본이잖아요. 발목에 사서 어깨에서 판다."

"무릎에 사서 어깨에서 파는 겁니다만……"

"크흠. 아무튼 그렇게 확보한 저평가 상품들 중 한두 개만 제대로 터져 주면 충분히 본전 이상을 기대할 수 있겠죠. 그렇게 되게 만들거고요."

"……아! 설마?"

진호는 경악하는 장경아를 보며 히죽 웃었고, 무슨 일인지 모르는 직원들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대표님. 그 순간에 거기까지 생각하실 줄이야……. 만날 이런 모습만 보이신다면 참 좋을 텐데."

"네에? 허! 저처럼 좋은 대표가 어딨다고요!"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그건 대표님의 양심에 묻도록 하겠습니다."

"……."

양심에 묻는다니 할 말이 없었다.

입맛을 다신 진호는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며 일어섰다.

"전 그럼 경호업체를 만나고 오겠습니다! 내일까지 1차 목록 정리해 두세요!"

"예, 다녀오십시오."

'……너무 유능해도 안 좋아!'

진호는 흥흥 콧김을 뿜으며 옥탑방을 나섰고, 직원들은 그런 진호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말은 저렇게 하셨지만……"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 거겠죠."

"투자자로서는 절대 해선 안 될 행동이지만, 이 삭막한 세상에 저런 분이 계셔서 다행이라고 생각되네요."

장경아는 직원들의 말에 같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저평가 된 우량주를 찾아 봅시다! 대표님이 한 푼이라도 더 벌게 하려면 말이죠!"

"예, 부장님!"

* * *

이영재에게 받은 주소대로 찾아온 진호는 눈을 껌뻑였다.

[스킬: 갓물주의 눈]으로 봐도 가치가 하나도 없는 허름한 4층 건물이다. 돈을 준다고 해도 사지 않을 건물.

'분명 SJ 전속 경호회사의 하청이라고 했는데……'

요인과 시설 경호에 굉장히 특화되어 있다고 했다.

"……아, 씨. 그냥 갓 오브 워를 얻을까?"

사람을 병기로 만들다 못해 전장의 지배자가 되게끔 하는 [스킬: 갓 오브 워]. 한두 달만 시간을 투자하면 얻을 수 있기에 혹할 수밖에 없었다.

"……에휴. 그래도 적극 추천했으니까."

보안과 안전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영재가 침을 튀기면서까지 추천했기에 믿어 보기로 했다.

'나 혼자 스킬을 얻어 봤자 장부장님들까지 지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는 건물 계단을 올라 백호 경호의 문을 두드렸다.

끼기긱!

"실례합니…… 아?"

'헉!'

진호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험상궂게 생긴 남녀 다섯 명이 이쪽을 쳐다보며 눈을 빛냈기 때문이다.

'자, 잘못 찾아왔나?'

경호업체를 찾아왔는데, 웬 조폭들만 있다.

'마, 맞는데?'

저 멀리 정면 벽에 백호라고 쓰인 족자가 떡 하니 붙어 있다.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지선 씨! 커피 좀 내와요! 달달하게!"

"예, 대표님!"

"자, 이쪽으로! 이쪽으로 -!"

그쪽으로 가지 않으면 맞을 것 같은 기세에 진호는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찾아 오셨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고객님?"

'살벌하네, 진짜.'

강치승이 귀엽게 보일 정도로 꿈에 나올까 무서운 미소였다.

"아차, 내 정신 좀 봐. 백호 경호의 대표인 최덕재입니다. 재작년말에 특임대를 소령으로 예편하였고, 현재는 요인 및 시설 경호를 전문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요인 암살이나 시설 폭파가 아니라요?'

"저희 사무실이 이렇게 허름해보여도 얼마 전에는 SJ 그룹의 영식을 근거리에서 경호할 만큼 실속이 있으니 탁 터놓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아, 그게……"

달그락!

"드시면서 이야기 나누십시오."

"……감사합니다."

후룩 마신 커피 한 모금이 위축된 심신을 풀었다.

호흡을 가다듬은 진호는 주머니속 핸드폰을 만지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이영재 실장이 추천해 주셔서 이렇게 약속을 잡게 됐습니다."

"……아! 오늘 3시에 예약하셨던! 요새 좋은 일 하시는 투자 회사 HU의 대표님이셨군요!"

"예, 이진호입니다."

"잘 오셨습니다. 전화로 상담하기로 최소 세 명 이상의 경호원이 필요하시다고요."

"예. 사무실에 한 명 씩 두 명, 직원이나 제 출장 시 따라붙어 경호할 인원 한 명. 이렇게 기본으로 세 명인데……"

경호원의 숫자가 고작 다섯 명이다.

그 기색을 알아차린 최덕재가 푸근히 웃었다.

"걱정 마십시오. 지금 경호를 나간 직원까지 총 열 명이고, 계약내용에 따라 경호 인원은 달라지게 될 겁니다. 모두 운전면허를 소지하고 있기에 운전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고, 영어는 기본으로 탑재하였기에 여차하면 통역도……."

그그극!

"아, 마침 일을 보러 갔던 직원이 왔군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던 진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저 사람은?'

덩치가 큰 백인.

이태원 술집에서 봤던 그 백인이 분명했다.

진호는 이 우연에 놀람을 금치못했다.

"외국인이 계시네요?"

"아. 원하지 않는다면……"

"아뇨. 계약하시죠."

최덕재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럼 계약은 어떻게……"

"백호 경호 전부로 하죠. 저분이 제 개인 경호를 맡는 조건으로."

"……예?"

"계약 기간은 일단 1년으로 할까요?"

"예?"

진호는 말을 잇지 못하는 최덕재를 향해 싱긋 웃었다.

'친척들을 생각하면 외국인이 낫지.'

* * *

'끄아아!'

"컥?"

기지개를 펴며 방을 나서던 진호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Good morning, sir."

'……아, 어제 계약을 맺었지. 참.'

계약을 맺자마자 백호 경호는 바로 업무를 시작했다.

"월터도 잘 잤어요? 식사는요?"

"교대를 하기 전에 먹었습니다."

"밤사이 별일은 없었고요?"

"CCTV 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에고, 쉬시면서 하시지."

고개를 저은 진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은 좀 바쁘게 돌아다닐 거예요."

어젯밤, 장경아와 직원들이 모바일 게임 개발 업체를 하나 찾아 냈다. 올해로 창립 3년 차 업체인데, 다운로드 수 30만에 평균 평점 4.7이상의 게임을 다섯 개나 개발해낸 저평가 우량주였다.

"업무 시작 첫날인데, 좀 미안하네요."

"아닙니다. 제 일이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딱딱하네.'

조금 불편했지만, 차차 나아질 거라고 생각한 진호는 화장실로 향했다.

쏴아아!

"후우우."

김이 뿌옇게 서린 거울을 닦아낸 진호는 입술을 씹었다.

"…… 잘 돼야 할 텐데."

불편한 오해를 하지 않았으면 싶다.

다시 숨을 길게 내뱉은 진호는 화장실을 나섰다.

이제 업무를 시작할 때였다.

* * *

"정말요? 투자를 받은 것도 모자라 투자자님이 오신다고요?"

정구호의 호출에 의해 아침부터 회사를 찾은 이설아는 그의 서프라이즈 선언에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그렇다니까! 조금 이따가 오시면 투자금을 어떻게 써야 할지 회의를 할 거야!"

"어, 얼마나 받았는데요? 저 이제 녹음할 수 있는 거예요?"

"녹음만 하겠냐! 유명 배우님들 써서 뮤직비디오도 찍을 수 있어! 5억이니까, 5억!"

"……오, 오억이요! 오어억?"

"그래! 설아야, 이제 넌 뜨기만 하면 되는 거야-!"

"아……"

이설아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동안 돈이 없어 먼 곳의 행사를 가려면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가야 했던 그녀. 소속사가 빵빵한 신인 가수에게 밀려 쓸쓸히 돌아서고, 행사장에 도착하면 노래를 준비하기보다 주최 측이 준비한 다과부터 챙겨 간 비닐봉지에 넣었던 궁상 가득한 과거를 떠올린 그녀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에구, 이 좋은 날 왜 우냐. 뚝!"

"……뚝!"

거칠게 눈물을 닦아 낸 이설아는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그래서 투자자님은 어떤 분이세요?"

"아, 그게……"

우우웅!

"오셨다! 예, 대표님! 네, 지하로 내려오시면 됩니다!"

전화를 끊은 정구호는 재빨리 공짜로 얻은 물티슈를 내밀었다.

"얼굴!"

"꺅!"

거의 세수를 하다시피 얼굴을 문지르는 순간, 뚜벅뚜벅 진호가 계단을 내려와 등장했다.

이설아는 눈을 부릅떴다.

"사, 사장님?"

당신이 여기 왜 있냐는 눈빛에 진호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설아 씨가 여기 왜 있어요?"

"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