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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383화 (383/424)

외전 9화

약 반년 전, 한 슈퍼 개미가 나타나 경이로움을 넘어서 말도 안되는 수익률을 올리며 증권가를 뒤집었다.

손을 대는 종목마다 무조건 상한가를 쳤고, 미국, 일본, 홍콩, 영국등 전 세계 증시와 선물, 전자화폐까지 가리지 않고 누비며 강렬한 임팩트를 주었다.

그러다 얼마 전 장렬하게 폭발해버리면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 슈퍼 개미가 이 사람일 줄이야! 그것도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을 줄이야!'

진호가 주식을 던지던 기세는 거의 국가에 악재가 오는 사태나 자살하려는 사람의 그것과 같았다.

진호는 턱을 긁었다.

상황이 좀 난처해졌다.

'채용을 위한 미끼를 던진 것뿐인데……. 실수했네.'

진호는 비밀 서약서를 떠올렸다.

"역시 증권가에는 알려졌나 보네요. 아, 보안이 개똥이네. 개인 정보보호법 따윈 모르는 건가?"

오싹!

장경아는 마른침을 삼켰다.

순간의 말실수로 인해 이곳이 사지로 변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서는 건 더 위험을 자처하는 일이었다.

그녀는 오히려 더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아니, 진호가 그 괴물 슈퍼 개미임을 확인한 순간 어떻게든 함께 일하고 싶어졌다.

"일부러 던지셨던 거군요."

진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더 했으면 좋지 못한 일에 얽히게 됐을 테니까요."

'역시! 괴물이 자제력을 갖추게 된 거였구나!'

더 오싹해졌다.

"……실례가 안 된다면 JH 법인의 비전을 물어도 되겠습니까?"

"비전이요?"

진호는 입맛을 다셨다.

"거창하게 비전 같은 건 없습니다. 적당히 벌고, 적당히 쓰고, 적당히 베풀면서 살아가는 것이 전부니까요."

"아……"

솔직히 실망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인 비전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마음에 들었다.

'모험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한 번 크게 데여서 그런지 모험보다는 안정을 찾게 된 그녀였다.

"카페에서 이야기하실 때, 제게 국내 증시와 건물 관리를 맡기신다고 하셨습니다. 국내 증시에 관하여 어느 정도의 재량을 주실 수 있을 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이거 허락은 안 해 주시고 계속 묻기만 하시네요. 하지만 중요한 일이니 말하도록 하죠. 전부 입니다."

"저, 전부 말입니까?"

"손해를 보건 대박을 치건 모두 장경아 씨의 재량에 맡기겠습니다. 물론 제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투자를 결정할지는 염두에 둬야겠지만요."

"재량껏……"

장경아의 두 눈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신색을 바로 하며 진호의 두 눈을 또렷이 노려보았다.

"연봉 8천에 인센티브 3퍼센트를 주실 수 있겠습니까?"

"시드 머니는 30억, 직함은 부장이면 충분할까요?"

진호에게 날개 한쪽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 * *

장경아는 3일 후 합류했다.

'내 침대……'

햇빛이 제일 잘 들어오는 위치에 있던 침대가 화장실 근처로 이동하게 되었다. 가슴이 쓰렸다.

'그런데 뭐가 이렇게 많지?'

비밀 서약서까지 쓰자마자 당당히 법인카드를 요구한 그녀는 굉장히 많은 짐과 함께 아침 7시에 출근했다.

"팩스는 여기에 두면 되나요?"

"예, 거기다 두시면 됩니다."

팩스뿐만 아니라 책, CD, USB 등 잡다한 짐들이 굉장히 많았다.

옥탑방 전체 공간의 3분의 1을 할당했는데, 짐을 모두 정리하면 꽉차 버릴 것 같았다.

'진짜 펀드 매니저는 이런 걸 쓰면서 일을 하는구나……'

진호는 신기하고 재밌어하며 신나게 옮겼고, 장경아는 그런 진호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보았다.

"대표님."

"네?"

"실례가 안 된다면 여태까지 어떤 방식으로 일하셨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정보는 어느 곳을 통해 얻으셨고, 자료 취합은 어떻게 하셨는지도 말입니다."

움찔!

진호는 볼을 긁적였다.

"그런 거 없는 데요……"

"……예?"

"믿지 않으실 테지만 감으로 했습니다."

장경아는 팩스에 넣을 용지를 든 채 굳어 버렸고, 진호의 어깨는 움츠러들었다.

'진짠데.'

실제로 감이라는 단어 외에는 달리 표현할 만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눈을 껌뻑이던 장경아는 이내 이해했다.

"그런 거군요. 알겠습니다."

'아직은 오픈을 못하겠다는 거겠지.'

앞으로 함께 일하게 됐다지만, 아직 서로를 신뢰를 할 수 있을 만한 사이는 결코 아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자신의 노하우를 공유한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

'나라도 안 했을 거야. 아니, 절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지. 죽을 때까지!'

고개를 주억인 그녀는 다시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진호는 지금 그녀가 엄청 큰 오해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주가 그래프의 파도를 보고 거래를 하는 건데 정보 따위가 있을리 없었다.

'그러고 보면 블랙 펄의 선장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스킬이구나.'

새삼 스킬의 능력에 감탄한 진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내 입장에서는 저렇게 생각하는 게 더 편하니까.'

진호는 자신의 책상에서 올려 둔 A4용지 한 장을 장경아에게 내밀었다.

"앞으로 2주일간 스윙하며 지켜 볼 종목을 몇 개 골라 봤습니다. 매도 타이밍과 예상 수익률은 함께 적어 뒀고요."

"예?"

낚아채다시피 A4 용지를 가져 온장경아는 흠칫했다.

"역시……. 대표님은 편식을 하지 않는군요."

제약부터 건설, 테마주로 보이는 종목들까지 가리지 않았다. 잡식도 이런 잡식이 없었다.

그런데 예상 수익률이 미쳤다.

'한 종목당 최소 수익률이 18.7퍼센트라니!'

2주일이 아니라 1년이라고 해도 이 정도 수익률이면 거의 대박이다.

'역시 다른 팀이 있는 거구나!'

그것도 규모가 아주 클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토록 정밀한 수익률과 매도 타이밍을 도출할수 없을 테니 말이다.

'진짜 수익은 해외 증시에서 낸다는 거겠지!'

운용 예산이 얼마인지 가늠조차 안 되는 엘리트 팀이다.

진호에게 팀이 따로 있을 거라는 가설은 이미 몇 번 나왔던 만큼 놀랍지는 않았다.

'하지만 질 수 없지!'

그녀는 굴러온 돌이 되기로 다짐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것 좀 봐 주시겠습니까?"

'또 뭔가 오해를 하는 것 같은데……. 에휴, 이젠 모르겠다.'

"뭐죠?"

진호는 장경아가 내민 서류철 속 내용을 확인하곤 눈을 빛냈다.

사락사락.

"……대부분이 1년 이상 중장기 투자네요. 이곳들이 가능성 있어보이던가요?"

초조하게 기다리던 장경아의 얼굴이 활짝 폈다.

'이 종목들은 모르고 있구나!'

굴러온 돌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예! 그리고 맨 뒷장의 내용들을 다시 보시면……"

"작전 의심주들이군요. 그 앞 내용들은 단타용 종목들이구요."

"……벌써 주목하고 계셨군요."

뭐랄까. 담담한 표정으로 어깨를 축 늘어트리는 모습을 보니 왜인지 강아지가 연상되었다.

'……강아지나 키워 볼까?'

잠시 쓸데 없는 생각을 한 진호는 감탄했다.

그녀가 더 믿음직스러워졌다.

"대단하네요. 혼자 조사하신 건가요?"

"예!"

맘씨 좋은 쩐주를 만나면 포트폴리오로 제출하기 위해 정말 코피 쏟아 가며 준비한 것이었다.

퇴사를 당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조사할 수 있었던 종목들. 개중 몇 개는 회사에 다니는 중 다음 투자 종목으로 생각했던 것들이다.

'다행이다!'

"훌륭합니다. 그런데 이거 혼자서 감당할 수 있겠어요?"

"……매도 타이밍이 겹치는 것들은 포기해야 할 듯합니다."

'포기할 줄도 아네.'

진호는 그녀가 더욱 마음에 들었다.

"제가 전에 말했죠? 국내 증시에 한해서는 모든 권한을 드린다고."

"……예?"

대답 대신 의미심장하게 웃은 진호는 한쪽을 가리켰다.

"커피 메이커는 저기 있고, 간식은 냉장고에서 꺼내 드시면 되요. 식사는 원룸 앞 뷔페에서 드시면 되고요. 아, 그리고 가장 중요한게 있어요."

장경아는 바짝 긴장했다.

진호는 그런 그녀를 보며 씩 웃었다.

"복장은 자율."

"……예?"

"편한 옷차림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잖아요? 완전히 못봐 줄 의상만 아니면 됩니다. 그럼 좀 이따가 봐요."

"어, 어디 가십니까?"

진호는 기타를 보여 주었다.

"아직 근무 시간 전이니 취미 생활 좀 하려고요. 아, 맞아. 식사는 하셨어요?"

장경아는 무척이나 자유로운 진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회사…… 괜찮은 건가?'

출근한지 두 시간도 안 됐건만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 * *

딩!

"아."

'아프다.'

얇은 면도날에 베인 듯이 손가락끝이 쓰라렸다.

"아, 갑자기 하기 싫어지네."

하루 종일 욱신거려 키보드를 치기 힘들어서 의욕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아니지. 아니야."

세상 어떤 일이든 쉬운 건 없다.

"앞으로 100번만 치면 스킬 습득인데,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지."

2차 해금 조건이자, 스킬 습득조건인 '30곡 10번씩 연습하기'.

이제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여기서 포기했다가 나중에 맘 바뀌면 어떡할 거야? 이 기타도 겨우겨우 구한 건데.'

마음씨 좋은 천사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이 스킬을 습득할 순 없을 터였다.

'아무튼 이걸 습득하기만 하면……'

진호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애는 몇 명이나 낳아야 하지?"

"결혼하셨습니까?"

"느아악!"

기겁하며 돌아선 진호는 장경아 부장을 발견하곤 가슴을 쓸어내렸다.

"무슨 일이세요?"

"앞으로 보름간은 그동안 세웠던 계획을 다듬는 기간으로 삼고, 그동안은 점심 식사를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업무가 시작되면 식사 스케줄을 조정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그리고 그런 건 보고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예. 그런데 정말 결혼하신 겁니까?"

"……장 부장님은요?"

"마흔 살 늙은 아들 하나, 다섯살 딸 하나 있습니다."

"……아하하. 그, 그런가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농담을 하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큼. 그러면 다녀오겠습니다."

진호는 귀가 빨개져 돌아서는 장경아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런데 펀드 매니저들은 점심을 거르는 건가?"

왠지 그럴 것 같기도 했다.

주식 거래라는 게 단 1초 만에 희비가 가려지기에 장이 열리는 시간에는 자리를 비우지 못할 테니 말이다.

"그러면 속 버리는데……"

안타까워 한 진호는 몸을 일으켰다.

일을 하러 갈 시간이었다.

* * *

부우웅. 끽!

섬방 케미컬이라는 간판이 걸린 제법 큰 건물 맞은편에 차를 세운 진호는 담배를 빼물었다.

치익!

"현재 종가 2, 700원, 두 달 후 2만 원."

7배에 가까운 수익이다.

"작전주 맞네."

너무도 허름한 건물과 낙후된 주차장. 거미줄까지 껴 있는 입구는 그만한 호재가 일어날 만한 회사로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 맞나?"

애매하다. 몇 달 후 이쪽 계통 관련해서 뛰는 회사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회사도 폭락을 했다가 다시 반등한다.

"……대체 두 달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7월을 기점으로 국내 증시와 일본 증시가 약동을 한다.

"아베 새끼가 또 뭔 짓을 저지르는 건가? ……또 개소리만 해 봐라. 확 씨, 일본 증시에 불을 질러버릴라니까."

빡세게 10년이면 일본 증시를 암흑으로 빠트릴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부채 비율이 높은 일본에 미국의 리먼브라더스 파동때보다 더 극악한 경제 암흑기가 도래시킬 수 있었다.

'물론 그 전에 죽겠지만.'

무려 한 국가를 공격하는 건데 무사할 거라곤 볼 수 없다.

고개를 저은 진호는 다시 섬방케미컬을 보았다.

"부디 화려하게 부활해 주시길. 개미들이 덜 죽도록."

주식이라는 도박을 하는 이들이 불쌍하다는 건 아니다.

그들의 가족들, 돈을 잃고 힘들어 할 개미들의 가족이 눈에 살짝 밟힐 뿐이다.

하지만 딱 그뿐이다. 완벽한 타인을 신경 쓸만큼 좋은 성격은 아니었다.

진호는 담배를 던지며 다른 작전 예상 주의 회사들을 찾았다.

주식뿐만 아니라 직접 투자할 만한 회사가 있을까 해서 말이다.

* * *

그날 밤, 장경아와 조촐한 회식을 한 진호는 이후 스킬 조건을 해금하는데 매진했다.

둥둥, 띵-.

"아."

'얻었다.'

기타를 내려놓은 진호는 눈을 감았다.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그의 입술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느낌이구나……'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 아래에서 들려오는 차 지나가는 소리, 저 멀리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고함 소리.

그 모든 게 악기 소리처럼 들려왔다.

너무도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뮤지션들은 이런 세상에서 사는 건가?"

갑작스럽게 든 영감에 작곡을 했다는 작곡가의 말을 이젠 이해할수 있을 듯하다.

진호는 마치 무언가에 흘리듯 내려놓은 기타를 들어 사방에서 들려오는 각종 소리들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띠리리링! 띠링!

주위의 소리들과 화합을 이루며 널리 퍼져 가는 기타 소리.

'아, 좋다. 좋아.'

절로 웃음이 나오고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흥이 솟구친 진호는 결국 주위 소리를 무시하며 신들리듯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행복의 파도를 헤엄치던 순간 터더터엉 기괴한 소음이 침범해 그의 세상을 깨부줬다.

"아……"

조금만 더 연주했으면 좀 더 높은 곳으로 향했을 것 같다는 안타까음이 든 진호는 솟구치는 화에 고개를 돌렸다가 깜짝 놀랐다.

"이설아 씨?"

그녀가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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