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외전 4화
"에그머니나!"
"허억!"
이형만과 나진희는 벌렁 뒤로 넘어갔다.
"이, 이건 뭐냐? 무슨 돈이야?"
"아, 아들. 혹시 나쁜 짓이라도 한 거야?"
진호는 안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어 내밀었다.
"미래 투자 관리팀장 이진호? ……티, 팀장? 네가?"
"고등학교 선배님 중 한 분이 투자 회사를 차리셨는데, 거기에 입사하게 됐어요. 그리고 말이 팀장이지 그냥 청소하고, 서류 파쇄하고, 창고 정리하는 잡일꾼이에요."
[스킬: 블랙 펄의 선장]을 얻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이제 우린 부자라고 어떻게 말할수 있을까.
아무리 부모님이라도 믿지 못할 이야기였고, 자칫 말이 돌았다간친척들 간에 분란만 일으킬 수 있었다.
"……일단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럼 이 돈은? 이 돈은 뭐냐?"
"그 선배가 좋은 소스 있으니 투자해 보는 게 어떠냐고 해서.
"아이고, 이놈아. 주식 같은 걸 왜 해, 이놈아!"
진호가 왜 주식을 했는지 알 것 같기에 이형만과 나진희는 가슴을 칠 수밖에 없었다.
"설마 너 전셋집 살 거라고 모으던 거 모두 투자한 거야?"
"네. 그러니까 그런 수익이 난 거죠."
"……아이고. 아이고!"
"걱정 마세요. 이젠 더 이상 투자 하지 않을 거니까요."
"그게 말이야, 방구야!"
이형만은 통장을 내밀었다.
"난 이 돈 못 받는다."
"아버지!"
예상 밖의 일이었다.
"하나 있는 자식 놈이 지 인생을 걸고 번 돈을 어떻게 받아! 나, 아니 네 엄마랑 이 아빠 이날 평생 빌빌거리며 살았어도 그렇게 염치없지는 않았다."
"……아버지."
울컥 눈물이 치밀었다.
진호는 애써 꾹 누르며 품에서 통장 하나를 더 꺼내었다.
안심시켜 드리려고 가져온 것이었다.
"이걸 한번 봐 보세요."
"뭔지 대충 짐작은 가는데 이런다고 이 아빠 생각이…… 협!"
"어, 엄마야!"
5억 2천 만원. 이번엔 5억이었다.
진호는 다시 넘어가는 부모님을 보며 싱긋 웃었다.
"그걸로 원룸 건물 하나 사서 건물주 되려고 하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마침 여유가 생기면 저곳에 살아야지 하고 봐 둔 건물이 있다.
"지어진 지 오래된 원룸은 4억대에 가격이 형성되어 있더라고요. 그건물 담보 잡고 대출 받아서 리모델링 싹 끝마치면 월세도 제대로 받을 수 있을 테고요."
"……."
이형만과 나진희는 두 통장과 진호를 번갈아 보았다.
"……허어-."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왜 이런 도박을 했냐고 혼내야 할까, 아니면 도박에 성공했으니 축하해야 한다고 할까.
해 준 것도 변변치 않은데, 이렇게 큰돈을 벌었다고 통장을 내미는 아들을 보니 스스로가 부끄러워지고 자괴감마저 들었다.
"이제 엄마, 아버지도 고생 끝행복 시작입니다. 건물주 아들내미가 용돈 팍팍 보내 드릴게요."
"……그래도 이 돈은 못 받는다. 차라리 이 돈 보태서 더 좋은 건물 사."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버지. 부모님이 이렇게 사글셋방에 사시는데, 어떤 자식 놈이 건물주라고 떵떵거리며 살겠어요. 제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니까 받아주세요."
"어느 부모가 돈 때문에 자식 놈 더 잘 되는 길을 막겠어. 세상에 그런 부모 없다."
상황이 이렇게 될 거라곤 생각못한 진호는 가슴이 답답했다.
'아니, 그냥 받으시면 되지! 앞으로도 해 드릴 게 얼마나 많은데!'
그러나 어떤 말을 해도 받지 않을 태세다.
그래도 이렇게 큰돈이 생긴 상황에서도 자식을 먼저 생각하는 부모님의 마음이 무척이나 고맙고, 또 감사했다.
"아버지."
"네가 무슨 말을 해도……"
"제 연봉과 원룸 수익을 합하면 달에 못해도 500만 원 이상 벌어요."
이형만과 나진희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들에겐 3억과 5억보다 500 만원이 더 크고 현실성 있게 다가왔다.
진호는 동요하는 부모님을 향해 처연한 미소를 지었다.
"효도하게 해 주세요. 앞으로 효도 많이 할게요."
이형만과 나진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놈이 언제 이렇게 컸을까. 해준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빨리 컸을까.'
갑자기 참 든든하고 자랑 스러우면서도 섭섭했다.
주유소의 매서운 추위와 부쩍 주름진 아내의 손을 떠올린 그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
"……미안하다. 이 아빠가 못나서 미안해."
"흑."
진호도 눈을 질끈 감았다.
부모님의 약한 소리가 대못이 되어 가슴에 박혔다.
하지만 가슴은 참 따뜻했다.
* * *
어젯밤은 그 어느 때보다 웃음꽃이 피었던 것 같다.
과거 십대 때가 연상될 만큼 행복했었다.
있을 때 아껴야 한다는 부모님의 말 때문에 외식을 못한 건 아쉽지만 말이다.
'그건 차차 해결해 나가면 되지.'
"그래, 조심히 들어가고."
"네. 그리고 이왕이면 위층은 원룸으로 쓸 수 있는 상가 건물로 알아보세요."
"거, 건물? 아예 건물을 사라는 거냐?"
"아들!"
원래부터 이럴 생각이었지만, 진호는 슬그미니 말을 돌렸다.
"알아보니 이 근처에서 노후 투자를 위해 건물을 보러 다니시는 분들이 평균 3억 정도를 생각하신대요. 뭐, 조금 초과하면 대출 쓰면 되고요."
이걸 조사했기에 3억을 내민 것이다.
"대출 같은 거 함부로 하는 거 아니다. 이자는 무서운 거야."
"노후 준비까지 문제없으셔야 저도 걱정을 덜죠. 네?"
"…… 알겠다. 대신 명의는 네 앞으로 할 거다. 계약할 때 꼭 내려와."
"네?"
"오기 힘들면 등본이랑 인감도장보내고. 나중에 어차피 네 건물이 될 텐데 세금을 두 번 낼 필요 없잖아."
진호는 아버지의 단호한 태도를 통해 더 이상 우겨도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다.
"…… 알겠어요. 대신 꼼꼼히 알아보셔야 해요. 아들 명의 건물을 고르시는 거니까요."
"걱정 말고 얼른 올라가. 날이 안 좋다."
등을 떠미는 부모님의 얼굴이 밝아서 기분이 참 좋았다.
이게 효도 하는 자식의 기쁨인가 싶었다.
"예. 자주 연락드릴게요."
차에 오른 진호는 서울로 향했고, 이형만과 나진희는 서로를 보았다.
"입단속 잘 해야 해."
"당신이나 술 먹고 떠벌리지 마세요."
"걱정 마. 오늘부로 술을 끊을 거니까!"
'개가 똥을 끊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나진희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다 하늘을 보며 양손을 모았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진호 보살펴 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앞으로도 부디 온정으로 보살펴 주시길 감히 바랍니다."
이형만도 황급히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렸다.
"우리 진호 몸 건강하고, 어디 다치는 곳 없이 행복하게 살게 해주십시오. ……이왕이면 참한 색시도 한 명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부모는 그렇게 한참 동안 자식의 행복을 빌었다.
한편 서울에 도착한 진호는 차를 세운 채 한 건물을 가만히 응시했다.
찰칵! 치이익!
"후우."
지금 사는 원룸과 똑같은 7층짜리 건물이지만, 평수도 넓고 지대가 높은 곳에 있어서 이 동네에서 가장 큰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도 모텔이었다고 했다.
"여기서 바라보는 풍경은 어떨까 참 궁금했는데……"
이 드넓은 서울 바닥에 건물이 저렇게나 많은데, 내 집은 없다 푸념했던 삶. 높은 곳에서 멀고 넓게 바라보며 꿈을 키우면, 분명 이룰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래서 이 동네에 도착하자마자 '저긴 내 집이다' 점찍어 뒀다.
"하지만, 비쌌지."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어쩔 수 없이 지금의 집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미련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사자."
마음만 먹으면 100평 아파트와 빌라, 주택 그 어떤 것이든 살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게 됐지만, 그런 곳에 살면 훨씬 좋고 편하겠지만, 가슴에 응어리져 있는 미련은 풀어 버리고 싶었다.
진호는 다시 차에 올랐다.
* * *
부동산 거래에 대해 하나도 모르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두 가지다. 하나는 열심히 관련 법률을 공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동산 법에 대해 아는 변호사를 고용하여 법률 자문을 받는 것이다.
쓸데 없이 시간을 낭비하기 싫은 진호가 택한 건 후자였다.
그는 동네의 작은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갔다.
딸랑!
"어서 오세요!"
벌떡 일어난 차가운 인상의 20대 후반 여성이 미소로 맞이해준다.
'어? 혼혈인가?'
"법률 상담을 받으러 왔습니다. 2시로 예약을 잡았습니다."
"아, 10시에 전화를 하신 분이군요. 변호사님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변호사님-!"
여성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진호는 제법 놀랐다.
'변호사님도 혼혈?'
이국적인 외모가 인상적인 꽤 잘 생긴 미남이었다.
그는 재빨리 서류 몇 장 없는 책상을 빠져나왔다.
"하핫! 어서 오십시오! 잘 오셨습니다. 이쪽으로. 다연 씨, 여기 음료 좀."
"네, 변호사님!"
'……뭐지?'
두 사람 모두 텐션이 너무 높다.
"반갑습니다. 명안 법률 사무소의 대표 변호사 도명안입니다."
"예. 이진호입니다."
명함을 주고 받은 진호는 살짝 놀랐다.
'다미안…… 토마소? 다미앙 토마소?'
영어로 된 이름은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설마 한국분이 아니신 겁니까?"
"보시다시피 혼혈이기도 하고, 외국인 노동자들과 이주민들을 위해 변호도 하다 보니 아버지 나라 쪽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요새는 다미앙 변호사님으로 많이 불리세요."
달칵.
음료를 내려놓는 도다연의 말에 도명안은 혀를 찼다.
"쓸데 없는 말은 하는 게 아닙니다, 도다연 씨."
"죄송합니다, 변호사님."
'남매구나.'
진호는 웃음을 터트렸다.
"훌륭한 일을 하시는군요."
"누군가는 해야 될 일 아니겠습니까? 하하. 그래서 건물 매매에 대한 법률 자문을 받으러 오셨다고요?"
"자문이 마음에 든다면, 그 뒷일까지 맡길까 합니다. 물론, 변호사님께서 시간을 내실 수 있다는 전제하에 말입니다."
"……일단 매물부터 볼 수 있을까요?"
"여기 있습니다."
진호는 등기부등본을 내밀었다.
"아, 이 원룸을 말하시는 거였군요. 흠……. 그런데 여긴 연식이 오래되고 접근성도 좋지 않고, 용도 변경까지 해서 값어치와 수익률이 썩 좋지 못할 텐데요."
"그렇습니까?"
쓸데 없는 걸 물어보지 않고, 필요한 걸 말해 준다.
진호는 이 변호사가 마음에 들었다.
앞서 만났던 6명의 변호사와 달리 말이다.
"솔직히 수익은 크게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5층부터 7층까지는 제 주거 공간으로 쓰고, 나머지는 내부 공사를 제대로 해서 임대할 생각입니다. 5층부터 7층까지도 건물의 반절만 쓸 예정이고요."
도명안 변호사의 표정이 변했다.
"……정말 훌륭한 일을 하시려는 분은 사장님이시군요. 예산은 어느 정도로 잡고 계신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7억 안쪽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원룸 시세가 약 6억 정도다.
"예산도 합리적이시군요."
도명안 변호사는 등기부등본을 챙겼다.
"제게 맡겨만 주신다면, 10일 내에 그 건물을 사장님 명의로 돌려놓겠습니다. 의뢰를 하시겠습니까?"
"수임료는 1퍼센트 드리겠습니다. 일주일 안에 마무리 지으신다면 말이죠. 아, 부동산 중개 수수료는 별도입니다."
"믿을 수 있는 시공업체까지 해서 5일 안에 연락드리겠습니다."
더 이상 들을 건 없다.
몸을 일으킨 진호와 도명안은 악수를 했다.
* * *
도명안 변호사는 정말 약속을 지켰다.
부동산 중개 사무소로 향하는 진호는 가슴이 설렐 수밖에 없었다.
"내 집. 내 건물."
울림이 참 좋은 말이었다.
하지만, 작은 걱정이 생겼다.
'시공업체가 날림 공사를 하면 어떡 하지?'
거의 출근을 하듯 매일같이 들를 생각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사기 치면 눈을 뜨고 있어도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런 사기를 당했다는 이야기도 많지 않던가.
"이럴 때 그 스킬이 있으면 든든할 텐데……"
건물의 현재 가치부터 미래의 가치, 부실, 누수 등을 한눈에 잡아내는 엄청난 스킬. 주인공이 부동산 황제가 되는 스토리의 스킬이다.
건물을 매매할 생각을 가질 때만 스킬이 발현되기에 일상생활에 지장도 없었다.
"……아니지. 그렇게 염치없을 순 없지."
[스킬: 블랙 펄의 선장]과 [스킬: 아이기스]만 해도 충분하다 못해 흘러넘치는데, 이 이상 바라는 건 욕심이 아니라 추악한 탐욕이었다.
가볍게 미련을 털어 버린 진호는 부동산 중개 사무소 안으로 들어갔다.
"이 분이 저희의 의뢰인이십니다."
사무소 안에는 도명안뿐만 아니라 50대와 60대의 남녀도 있었다.
"어머, 사장님이 무척이나 젊으시다-. 로또 맞으셨나봐! 우리 사장님 땡 잡으셨다!"
'저 아줌마가 여기 복덕방 주인인가 보네.'
초면에 쓸데 없는 소리를 하는 걸 보니 그런 것 같았다.
진호는 그녀를 무시하며 모자를 쓴 노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좋지 못한 사정으로 건물을 내놓으셨다는 소리는 들었습니다. 부디 무사히 해결하시길 바랍니다."
"…… 고맙네. 사전에 협의는 다된 것 같으니 길게 끌 것 없이 바로 도장을 찍지."
진호는 도명안을 바라보았다.
"공실률이 80퍼센트나 되고, 보증금 3천에 담보 대출도 2억 있는데, 그걸 떠안는 조건으로 3억 7천에 마무리 지었습니다. 남은 세입자들도 이번 달 말까지는 방을 빼주기로 했습니다."
도명안의 귓속말은 꽤 놀라웠다.
'진짜 능력 좋네.'
"수고하셨습니다. 나머지 이야기는 잠시 뒤에 하죠."
진호는 품에서 인감도장을 꺼내어 계약서에 꾹 찍었다.
그 순간이었다.
찌릿.
'엇?'
진호의 눈이 부릅떠졌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