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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377화 (377/424)

외전 3화

돈이 없어 운동 못하는 사람이 없으면 하는 마음에 헬스장을 차린 강치승은 요즘 한 회원 때문에 골머리가 아팠다.

약 두 달 전에 등록한 이 회원은 거의 50킬로그램이나 빼면서 사람을 기쁘게 하더니, 요즘은 단 100그램도 빠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운동을 설렁설렁 하는 것은 아니다. 강치승 본인이 짜 준 스케줄대로 착실하게 운동을 하고 있었다.

과도기라고 생각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가 없는 현상이었다.

"이러면서도 근육량은 착실하게 늘고 있단 말이지."

너무 빨리 늘긴 했지만 말이다.

갸웃한 그는 지금 한창 운동을 하고 있는 그 회원에게 다가갔다.

철컹! 철컹! 탓탓탓.

"흑! 흑!"

"어머, 저 피부 좀 봐."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묵묵히 바운동을 하고 있는 덩치 큰 회원.

좋게 말해도 잘 생겼다고는 할 수 없지만,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외모를 지니고 있다.

"후욱! 후욱!"

90킬로그램 대의 퉁퉁한 몸집과 180cm 넘는 훤칠한 키, 뽀얗고 하얀 피부는 마치 아기 같아 부럽기까지 하다.

이 회원을 정의하는 단어는 딱하나다.

'건강한 돼지.'

비슷한 체형으로는 씨름선수 출신 연예인 김호동이 있었다. 근육질 몸을 지방이 감싸고 있는 것까지 흡사했다.

"진호 씨."

"네, 관장님."

"솔직히 말해 봐. 밤에 계속 뭐 먹지?"

엄마가 아이에게 '잘못한 거 말하면 용서해 준다'라고 말하는 듯한 온화한 말투와 표정.

진호는 얼굴을 와락 구겼다.

'지금 누굴 놀리나!'

"이거 드시고도 음식 생각나시면 제가 먹었다고 치겠습니다."

진호는 해독 주스라고 쓰고, 악마고문용이라 읽는 주스를 내밀었다.

1차 해금 조건을 해금하고도 계속 먹어야 하는 해독 주스. 부처님도 화를 낼 이 해독 주스의 끝은 스킬을 습득하기까지다.

"……아냐. 믿을게."

몸을 위해 온갖 괴상한 맛도 참아 가며 먹는 게 헬스인의 삶이라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맛이었다.

솔직히 처음엔 변태인가 싶었다.

"진짜 희한하네. 왜 살이 안 빠지지?"

진호가 하루에 운동하는 시간이 약 2시간이다.

설렁설렁 한다면 모를까 트레이너의 지도 아래 빡세게 운동을 하고 있다. 정말 미스터리였다.

'이게 이 스킬이 요구하는 황금밸런스라서요.'

적당한 지방에 적당히 강인한 근육.

케이블을 꼬아 만든 것처럼 단단한 코어.

무병장수의 필수 조건이었다.

'이제 이것도 오늘로 끝이지.'

2차 해금 조건이자, 스킬 습득조건인 '하루 2시간씩 77일 동안 운동하기'.

체질 개선은 거의 끝났다.

스킬이 습득되는 순간, 신체는 아기처럼 깨끗해지며 방탕하고 무절제한 삶을 살아도 무너지지 않게 고정된다.

'한 번 타고 태어나면 거의 변치않는 사람의 체질처럼.'

[스킬: 지성이면 감천이다]나 [스킬: 사상 최강의 제자] 등 몇 가지 육체 관련 스킬처럼 결코 퇴화하지 않게 된다.

"진짜 이럴 리가 없는데……"

"타고나기를 뚱뚱하게 태어나서요."

"……진호 씨 나이가 서른이지? 운동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했고?"

"올해로 서른하나입니다."

"흠. 그럼 근본이 완전히 고정됐다고 봐야겠네. ……하긴, 아예 없는 케이스도 아니고."

강치승 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이제 앞으로는 관리만 하면 되겠어요."

"어? 정말요?"

"진호 씨가 잘 따라와 줘서 빨리 끝내는 거예요. 그렇다고 막 먹어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말고. 그땐 날 죽여 버리겠다는 소리가 나오게 만들 거야."

강치승 관장은 이런 점이 좋았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진호는 시간을 확인하곤 다시 바를 들어 올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5, 4, 3…….'

진호는 재빨리 해독 주스를 마셨다.

그 순간.

둥!

명치에서 시작된 울림이 몸 전체로 퍼져 갔다.

'아, 얻었다.'

노화를 제외한 모든 질병을 막아내어 평생토록 몸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게 할 육체. 그것이 완성되었다.

입가에 진한 미소를 그린 진호는 해독 주스를 낚아채 듯 들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 * *

쏴아아!

물줄기가 쏟아지는 샤워기 아래.

진호는 77일 만에 극적인 변화를 보인 몸을 보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흐읍!'

부풀어지는 가슴의 근육과 조여지는 등허리의 근육이 감격스럽기만 하다. 그동안 살 속에 파묻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던 소중이도 말이다.

"조금은 더 커진 것도 같은데……"

무게감이 예전과 꽤 달랐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참 기꺼운 변화라 굳이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중 제일인 건 이거지.'

몸에 모든 독소가 빠져나가며 피부 재생력도 올라간 건지 튼살이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놀림감이 되고, 경악하게 했던 그 흉물스런 튼살이 말이다. 정말 아기 피부가 된 것이다.

"아이, 좋아."

샤워를 마치고 팬티만 입은 채 거울 앞에 선 진호는 베이비 로션을 발랐다. 얼마 전 친구 재준이 사 온 제품이었다.

'굳이 바를 필요가 없긴 한데.'

전날 필름이 끊길 때까지 술을 마셔도 결코 광이 죽지 않는 애기 피부가 완성된 이상, 피부 관리용 화장품은 의미가 없다.

'그래도 사 준 거니까……'

그렇게 치덕치덕 세수하듯 얼굴을 비비는 진호의 옆으로 한 사내가 다가왔다.

'우와-. 잘 생겼다.'

재준보다 잘 생긴 사람을 본 건 처음이었다.

"안녕하세요."

"아, 예. 안녕하세요."

'목소리도 좋네.'

어깨를 으쓱인 진호는 덜 발라진 곳이 있나 거울을 살폈다.

"피부가 좋으시네요."

"예? 아,네."

'뭐지?'

왜인지 목소리가 이상했다.

"특별히 쓰시는 제품이 있으시나봐요? 손끝, 발끝까지 그렇게 뽀얗기가 쉽지 않은데."

더 들뜨고 집요해진 목소리.

사내의 위아래를 훑은 진호는 슬그머니 옆으로 한 발자국 옮겼다.

뭔가를 눈치첸 사내는 펄쩍 뛰었다.

"혹시 저 모르세요?"

"…… 저희가 아는 사이였던가요? 그렇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성함이?"

눈을 크게 뜬 사내는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와-. 나 아직도 멀었구나. 정말 노력해야겠다."

좌절이 강하게 느껴져 괜히 미안했다.

"반갑습니다. 아니, 이건 아니지. 저는 경훈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배우 방경훈입니다."

"……억! 나 홀로 산다!"

혹여 놓친 호재가 있을까, 무슨 이유 때문에 주가가 그렇게 급등을 했을까 포털 사이트를 뒤지다 실수로 클릭한 연예란에서 얼핏 본 기억이 있었다.

"네, 그거요! 하핫!"

"와, 어쩐지 잘 생겼더라니! 아차.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진호입니다. 현재…… 증권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와! 나 펀드 매니저는 처음봐요! 와, 대단하신 분이었구나."

웃음을 흘린 진호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피부에 대해서 물으셨던 건가요?"

"하하. 예.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제품명을 알 수 있을까요?"

"음……"

갈등이 생겼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죄송합니다. 책임지지 못할 일은 하지 말자는 주의라서요."

"아……"

해독 주스가 만인에게 통한다지만, 혹시라도 통하지 않을 수 있다. 트러블, 아니 강한 거부 반응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런 확률이 있는 이상 결코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럼 수고하세요."

그렇게 옷을 입고 헬스장을 빠져나온 진호는 하늘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그의 머릿속에서 방금 전 일이 재생되었다.

"왜 그렇게 대답했을까."

개인적으로 주식을 하고 있다는 말이 목구멍에 걸려 튀어나오지 않았다.

"백수로 보일까 봐? 뭐가 모자라서? 수익률은 내가 최곤데?"

그렇게 말했지만, 그럴듯 한 명 함한 장이 눈앞을 아른거린다.

먹고살 만하니 한눈을 판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싶었다.

"그래도……"

로망이라는 단어가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동급생들이 어느 회사의 무슨 사원, 무슨 벤처의 대표라는 명함을 나누던 동창회 자리.

'나도 누군가를 만나면 그렇게 명함을 내밀고 싶었지.'

그러다 곧 현실을 깨닫고 더 우울해했던 과거가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개인 법인이라도 하나 만들까?"

작은 갈망이 가슴 속에서 피어났다.

* * *

경기도 수원의 어느 주유소.

작고 마른 체구를 지닌 올해 62세의 이형만이 떠나는 차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안녕히 가세요! 또 오십시오!"

허리를 편 그는 재빨리 선배 직원을 바라보았고, 주유소 유니폼 점퍼를 입은 20대의 청년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잘 하시는데요? 이젠 더 가르칠게 없겠습니다!"

가슴을 쓸어내린 형만은 아직은 매서운 추위에 옷깃을 여미며 사무실 안으로 향했다.

일주일 전, 사전 협의도 없이 해고된 편의점 아르바이트.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쉬지도 못하고 이렇게 주유소에서 총을 잡아야 했다.

"따뜻한 커피 어떠세요?"

"좋죠!"

"에고. 말 편히 하시라니까요, 아저씨."

"하하. 전 이게 편합니다."

"끄응……. 어? 차 들어오네."

고개를 돌린 이형만을 깜짝 놀랐다. 주유소로 진입하는 허름한 SUV는 무척이나 낯익은 탓이다.

"아들 찬데?"

몇 년 전 동료 직원에게서 120만 원 주고 샀다고 해맑게 자랑하며 드라이브를 시켜 준 소중한 추억이 있기에 몰라 볼 리가 없었다.

형만도 앞으로 대중교통 기다리느라 쓸데 없이 시간 버리거나 이젠 사람들에게 치이지 않겠다고 좋아했다.

하지만 유지비 때문에 결국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차였다.

"진호야!"

반갑게 외치며 다가갔던 형만은 경악했다.

"너, 너! 사, 살이!"

"흐흐. 아버지, 가득이요."

"어, 어. 그래. 잠시만!"

주유구에 총을 집어넣은 형만은 차에서 내린 진호를 향해 손을 뻗으려다 멈추고는 제자리에 서서 아래위로 훑었다.

그런 그의 눈에 울컥 눈물이 고였다.

"어디 많이 아팠어?"

지난 추석에 보고 못 본 아들이 반쪽이 되어 버렸다.

일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렇게 됐을까 가슴에 메어 왔다.

"큰 병에 걸린 건 아니지?"

'에구.'

"아니에요, 아버지. 독하게 마음먹고 살을 뺀 거예요. 자, 만져 보세요."

장갑을 벗고 바지에 손을 문지른 형만은 진호가 내민 팔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어? 어?"

진호는 아버지의 손을 잡아끌었다.

"여기 가슴이랑 허벅지도 튼튼하죠?"

"……정말 운동해서 뺀 거야?"

"그냥 걷는데도 무릎이 아프더라고요."

이형만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다.

"어이구, 잘 생각했다. 잘 생각했어. 거봐라. 넌 이 아빠 닮아서 살만 빼면 인물이 훤칠해질 거라고 했잖아! 이제야 내 외모 이어받은 아들 같네!"

진호는 아이처럼 좋아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좀 낯설어했다.

'옛날엔 정말 과묵하셨는데……'

진호가 대학 진학을 관두고 군대에 다녀온 후부터 아버지 이형만의 말수는 많아졌다.

그땐 참 이해되지 않고 겁도 났지만 이젠 이해할 수 있다.

아버지는 남들 다 가는 대학을 보내 주지 못한 게, 든든한 지붕이 되어 주지 못한 게 미안하신 거였다.

"흐흐. 제 외모는 엄마 걸 이어받은 거라면서요?"

"그건 살이 쪘을 때고! 아, 네 엄마한테는 비밀이다?"

"하하하하핫!"

두 부자의 웃음을 멈춘 건 탁 주유가 다 됐다는 주유기의 소리였다.

"오느라 힘들었지? 커피 한잔 마시고 가."

"안 그래도 아버지랑 함께 퇴근하려고 왔어요. 전 근처 카페에서 핸드폰 보고 있을게요."

"……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가슴이 뜨끔했지만, 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엄마랑 함께 계실 때 말씀 드릴게요. 좋은 일이니까 걱정 마시고요."

"……그래, 알았다. 춥다. 얼른 카페에가 있어. 끝나면 전화할게."

고개를 끄덕인 진호는 차를 몰아 근처 카페로 향했다.

* * *

"아, 아들?"

누가 부부 아니랄까 봐 반응이 똑같았다. 여전히 허름한 사글셋방까지 말이다.

진호는 사정을 설명했다.

"왜? 몰라보겠어?"

"…… 역시 내 아들! 살 빼니까 이재정 저리 가라네!"

"에이, 그 정도는 아니다."

"그렇지? 그건 좀 많이 아니지? 엄마도 말해 놓고 아차 했어."

"그것도 아니고!"

"어이구, 잘 생긴 우리 아들. 내 돼지 새끼."

"암튼……"

싱긋 웃은 둘은 서로를 꼭 껴안았다.

진호는 콧속으로 파고드는 진한 젓갈 냄새와 짬 냄새에 가슴이 아려 왔다.

'나 학창 시절만 해도 참 예쁘고 세련되셨는데……'

지금은 얼굴에 기미가 잔뜩 있는 아줌마였다.

"그런데 어쩌다 부자가 나란히 함께 온 거예요? 아들 내일 출근 안 해? 온다면 온다고 말을 하지. 엄마가 가서 삼겹살 사 올까? 있어 봐, 엄마가 금방 사 올게."

"그 전에 제 이야기부터 들어 주세요."

"…… 이야기?"

나진희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었다.

"일단 들어 봅시다."

"당신은 뭐 들은 거 있어요?"

이형만은 고개를 저었고, 둘은 엉거주춤 거실에 앉았다.

그 맞은편에 양반다리를 틀고 앉은 진호는 숨을 깊게 마셨다.

"일단……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저 공장 그만뒀어요."

진호는 들썩이는 부모님의 모습에 얼른 뒷주머니에서 통장을 꺼내어 내밀었다.

"이것부터 보시고 말해 주세요."

이형만과 나진희는 미간을 좁히며 통장을 열었다가 경악했다.

3억 원.

그들로서는 꿈에서도 보지 못했던 액수가 찍혀 있었다.

[스킬: 아이기스]

[병마조차 막아 내는 몸이 진짜 건강한 몸!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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