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권 24화
충격! 월간 페이크 레전드의 프로듀서는 이진호?
총 9시간의 콘서트. 처음부터 끝까지 전율이었다.
그 누가 이들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을까!
영화, '난 성자가 아니다' 개봉!
세상을 향한 일침! 사회의 어둠을 노골적으로 비추다!
'난 성자가 아니다' 개봉 첫 주한국에서만 290만 달성!
드라마 역사상 최단 시간 5천만 뷰 달성!
중국, 영국, 프랑스, 스페인, UAE를 비롯한 120개국 수출!
세상은 진호앓이! 이진호 신드롬!
엄청난 한 해였다.
너무도 행복했던 한 해였다.
노래를 좋아하고, 좋아했던 사람.
영화를 좋아하고, 좋아했던 사람.
드라마를 좋아하고, 좋아했던 사람.
예능을 좋아하고, 좋아했던 사람.
그 모두가, 전 세계가 '올 해는 이거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즐거운 한 해였다.
그렇게 세상을 울리고 웃긴 진호는 현재 LA의 저택에서 바지에 다리가 걸려 대차게 넘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쿠당탕!
"억!"
"괘, 괜찮냐!"
다급히 부축하는 정 실장의 손을 밀어낸 진호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웃으며 외면하는 스타일리스트들 때문에 더욱 그랬다.
"크흠."
아무렇지 않은 척 일어나 바지를 올린 진호는 자신의 갑작스런 몸개그에 의아해하다가 깨닫는 점이 있었다.
'이젠 나라도 좀 힘든 건가?'
작년 한 해, 아니 재작년 2분기부터 달려도 너무 달렸다. 한 달반의 사막 횡단에 영화, 드라마, 곡 작업, 전 세계 투어 콘서트. 그리고 아르노의 퇴임식과 피에트로, 미영의 취임식, 다미앙의 취임식까지.
여기에 영화 홍보와 컴백한 모든 레전드들의 콘서트에도 게스트로 섰으니 쉬는 시간은 한 달에 반나절도 채 안 되었다.
마지막 콘서트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끝난 이후로도 거듭된 스케줄에 제대로 쉬지 못했다.
'와, 진짜 빡세게 했구나.'
흠뻑 즐기면서 했기에 힘든 줄 몰랐다지만, 이 정도면 인간을 벗어난 이 몸도 힘들어 할만 했다.
하지만 아직 쉴 수는 없었다.
"아씨, 이 중요한 날에 미끄러지면 어떡하냐! 찝찝하게!"
오늘은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이 있는 날이다.
울컥!
"아니, 왜 미끄러진다는 단어를 써요! 불길하게! 엉덩방아를 찧는다! 어? 그런 단어도 있구만! 나상 못 타면 실장님이 책임질 겁니까!"
"아악! 왜……탄단 말을 해!"
"억? 흐어업! 취소! 취소! 퉤퉤퉷!"
날이 날인지라 휴가를 내고 찾아온 이서형과 다미앙, 팀 존스는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개판이구나.'
하지만 그들도 마음이 썩 편하지는 못했다.
전 세계 모든 가수들이 주목하는 시상식인 그래미 어워드. 단 한 번도 동양인에게 최고상을 준 적이 없기에 좋지 못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참지 못한 팀 존스는 옷을 모두 입은 진호에게 다가가 직접 옷매무새를 다듬어 주었다.
슈트 밑단을 잡아당기는 손길에 간절한 바람이 담겼다.
"……완벽해요."
'언제나 내게 영감을 주는 것처럼.'
"오늘은 특히 더 빛나는 것 같군요, 진."
진호는 여전히 사랑스럽다는 듯 이쪽을 쳐다보는 팀 존스를 빤히 바라보았다.
'팀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난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디올 옴므의 수석 디자이너 팀존스. 그가 찾아와 간절히 애정을 갈구했기에 사람들이 주는 관심이 얼마나 짜릿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이게 내 길이다, 이 길을 걸어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나를 알게 만들자'라는 꿈과 목표를 세울 수 있었던 건 모두 팀 존스 덕분이었다.
"고마워요, 팀. 언제나 고마웠어요."
……싱긋!
"확인해 봐요."
팀 존스가 한 발 물러서자 진호는 전신 거울 앞에 섰다.
'정말 빛나네.'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들이 얼굴과 헤어를 다듬고, 최고의 디자이너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어 직접 검수까지 한 슈트를 입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빛나고 있었다.
그는 이를 지긋 악물었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이래도 안 된다면……'
이쪽에서 먼저 버릴 것이다.
아집으로 똘똘 뭉쳐 있는 그런 상 따윈 필요 없었다.
'부디 그럴 일이 없기를 바라지!'
진호의 눈이 흉흉하게 타올랐다.
"가시죠."
* * *
드르륵.
커다란 밴의 문이 열리자 비명같은 환호가 가득했던 레드 카펫이 조용해진다.
고함을 지르듯 질문을 던지고, 무례할 만큼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는 기자들마저 잠시 손과 입을 멈춘다.
그 누가 있어 그런 무지막지한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수 있을까.
그 누가 있어 그런 엄청난 수익을 선뜻 기부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레드 카펫 위를 오롯이 홀로 걷는 현 시대의 위대한 전설을 향해 존경과 경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저벅! 저벅!
……찰칵! 촤라라라라라라!
셔터음만이 행진가처럼 울리는 것을 제외하면 시간이 멈춰 버린 것 같은 공간을 걸은 진호는 포토존에 서며 사람들을 향해 손을 들었다.
그러자 그 순간.
"……꺄아아아아아아아!"
"지노 리! 여기 좀 봐 주세요!"
"지노 리─!"
깨어난 시간이 타의로 잠시 멈춰져 있었다는 걸 성내듯 우레처럼 울리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소리가 사라져 가는 건 시상식장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걷는 걸음마다 아티스트들의 입이 다물어지고, 시선이 집중되었다.
지대한 관심이 온몸으로 쏟아져오는데도 진호는 흔들리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이젠 애송이라 부를 수 없겠군."
옆에 앉아 있던 마돈나는 피식 웃고는 입을 닫았다.
너무도 진지한 진호를 흔들고 싶다는 장난기가 치솟았지만 꾹 눌렸다. 그녀 역시도 오늘 그래미 어워드에선 진지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그 뻣뻣한 목을 숙일 수 있을까? 만약 숙이지 않는다면?'
그때부터는 보이콧이다.
자신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전세계 모든 음악인이 오길 꿈꾸는 그래미 어워드를 똥통에 처박아버릴 것이다.
그건 그녀만의 생각이 아닌 듯 진호의 주위에 앉은 월간 FL의 레전드들 모두 입을 꾹 다문 채 정면의 무대를 응시했다.
'참 고마운 사람들.'
작게 웃은 미소를 감춘 진호는 요란하게 시작하는 그래미 어워드를 두 눈에 담았다.
* * *
-베스트 팝 솔로 앨범…… 브루노마스! 축하드립니다!
짝짝짝짝짝!
와아아아아!
"다녀올게, 지노."
"축하해요, 피터."
진호와 뜨겁게 악수를 나눈 브루노마스는 무대에 올라 마이크 앞에 섰다.
트로피를 쓸어내린 그는 진호를 보며 담담히 소감을 토해 냈다.
-제가 이 상을 탈 수 있었던 건 단 한 사람 덕분입니다. 그 사람이 누군지는 여기 있는 사람들, 이 그래미 어워드를 시청하는 사람들 모두 알고 있겠죠. 내가 아는 최고의 아티스트, 내가 아는 최고의 프로듀서. 월간 FL의 위대한 지휘자 진호 리. 저기 있는 내 새로운 목표에게 이 상의 영광을 돌립니다. 감사합니다.
한 발 물러난 브루노마스는 그렇게 몸을 돌렸고,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장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담담해도 너무 담담한 소감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중요하게는 프로듀서부터, 사소하게는 키우는 개까지 언급하는 게 수상 소감이다. 너무 기쁘기에 아무 말이나 나올 수밖에 없는 게 수상 소감이다 보니 길어질 수 밖에 없고, 한 해의 노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보니 모두 그걸 용인해준다.
그런데 너무 짧게 끝나 버렸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베스트 알앤비 솔로 앨범! 수상자 아렐!
-다른 때였으면 참 많은 사람을 언급했겠지만, 오늘 받은 이 상에선 단 한 명만 떠오르는군요. 진호 리, 날 보다 더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위대한 음악의 신 뮤즈. 당신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베, 베스트 힙합 솔로 앨범! 수상자 케이지!
-지노. 다음에도 재밌게 놀자. 수상 소감 끝.
파격. 파격. 파격.
TV와 컴퓨터, 핸드폰 앞에 몰려앉은 사람들.
그래이 어워드를 찾은 음악계 관련자들.
그들 모두 마치 짠 듯한 이 상황에 당황을 금치 못했고, 진호의 마음은 파르르 떨렸다.
'여러분……'
이 외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장르 필드의 모든 상을 올해 진호가 준 곡과 프로듀싱을 받아 컴백한 레전드들이 휩쓸면서 그 어느 때보다 시간이 단축되었다.
이제 남은 건 그래미 어워드의 꽃이자 주목도가 가장 높은 올해의 레코드상과 올해의 앨범상, 올해의 노래상, 흔히 제너럴 필드라 부르는 상들이었다.
-제너럴 필드 두 번째 상인 올해의 노래상……. 이건 이변이군요. 그래미 어워드가 생긴 이래 이와 같은 일이 또 있었을까요.
누구 한 명 할 것 없이 모두 진호를 보았다.
그들은 이 이변이 무엇인지 알겠다며 입술을 비틀었고, 진호는 무대를 내려다보며 다리를 꼬았다.
그런 그들의 생각이 맞다는 듯 사회자는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수상 후보를 만나 보겠습니다.
대형 스크린에 나타난 8개의 앨범 재킷 사진들.
월간 FL과 진호의 타이틀곡이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당연하지 않은 결과에 TV를 시청하는 사람들은 모두 뒤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고, 진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수상 노래, 수상 될 아티스트…… 의미가 없겠지만 발표하겠습니다. 올해의 노래 The Last. 아티스트, 작곡가, 프로듀서 진호 리. 축하드립니다.
울컥!
'드디어…… 부줬다!'
너무도 두꺼웠던 유리 천장, 동양인은 결코 넘을 수 없을 거라 포기했던 영광된 자리.
같은 제너럴 필드지만 장려상 혹은 분발하라는 의미에 가까운 최고의 신인상이 아니라 그래미 어워드를 세계 최고로 만든 그 진정한 첫 번째 자리를 드디어 차지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경의를 가득 담아 박수를 보냈고, 진호는 당연하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트로피를 넘겨받고 마이크 앞에선 진호는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부수긴 부쉈는데……'
무슨 일인지 미칠 듯 기쁘지가 않다.
무척이나 덤덤하고, 심장은 싸늘하게 식은 것 같다.
어떻게 말해야 하나 고민하던 진호는 이쪽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사람들의 담담한 시선에, 같이 작업한 레전드들의 그 시선에 깨닫고야 말았다.
'그래, 이건 내가 원하는 상이 아니야. 내가 원하는 상은……'
진호는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었다.
"이 가슴 속의 울림은 잠시 후 다시 올라왔을 때 하겠습니다. 왠지 또 올라올 것 같으니까요."
지독히도 오만한 말이지만, 사람들은 수긍했다.
그리고 그들과 진호의 예상대로 진호는 그 뒤로 두 번 더 몸을 일으켰다.
-이 역시도 이변이었습니다. 올해는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축제였던 것 같군요…….
사회자는 어이없다는 듯, 그리고 마치 이랬어야 한다는 듯 웃었다.
-그래미 어워드의 꽉 막힌 심사위원들이 드디어 정신을 차린 건지, 아니면 이 거대한 거인의 업적에 겁먹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제야 그래미 어워드가 세계 모든 인종을 대표할 시상식이 된 것 같습니다. 자, 그럼 그래미 어워드의 화려한 피날레! 모두가 기다리던 그 상! 올해의 앨범상! 진호 리, 축하드립니다!
짝짝짝짝짝!
다시 쏟아지는 박수를 받으며 무대로 향한 진호는 예상했지만 결국 받아 버린 세 개의 트로피를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가수로서, 프로듀서로서, 작곡가로서 전 세계 최고라 말하는 상.
'받았다.'
드디어 정점에 올랐다.
원하던 걸 쟁취하였다.
바라고 또 바라였기에 가슴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고, 눈물이 흐를 만큼 전율이 일었다.
입을 열면 악 소리부터 나갈 것 같기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내가 왜 음악을 시작했더라?'
어떤 이유였을까.
'……아, 그랬지. 참.'
이유를 떠올린 진호는 수상 소감을 바라고 바라는 사람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제 음악 인생의 첫 시작은…… 남들에게 내 끼를 보여 주는 것에 대한 시작은 여름날 해변에서 여자를 꼬셔 보겠다는 불끈한 청년의 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사소한 이유로 음악을 시작했다.
연예계 일 시작의 단초가 되었다.
팀 존스와 만나기 전, 다미앙을 만나기 전, 연예계 진출은 그렇게 약속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처음으로 얻은 엔터테이너 관련 스킬이자, 세계에서 통하는 기타리스트로 만들어 주는 [스킬: 옥탑방스타]. 결국 언젠가 이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거다.
우연히 해금 조건을 해금하게 된 [스킬: 내가 제일 잘 나가]는 이때까지만 해도 [스킬: 지성이면 감천이다]를 보조해 주는 것에 불과했다.
"스무 살, 대학생, 성인. 해변에서의 헌팅은 로망이었습니다. 이 외모에 그 학벌에 기타까지 잘 치면 어른의 계단을 충분히 밟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하루 온종일 불끈불끈 해서 기타 실력도 팍팍 늘었습니다."
재준이와 함께 어디서 어떻게 헌팅을 할 거고, 잘 된 후 어떻게 할 건지 분 단위로 계획까지 짰다.
"하지만 결국 선 보인 건 이성이 아닌 동기일 뿐인 여자사람 친구들, 이성이 아닌 여자 성별의 선배일 뿐인 선배님들 앞이었습니다. 정말 얼마나 짜증 나던지……"
"푸하하하핫!"
웃음바다가 된 객석을 보며 진호도 옅게 웃었다.
하지만 곧 진지해졌다.
"그렇게 시작해 결국 여기까지 왔습니다. 동양인이니까 안 될 거다. 미국인이나 영국인이 아니니까 안 될 거다. 참 힘 빠지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이젠 그들에게 당당히 말할 수 있겠습니다. 당신들의 생각은 잘못됐다고. 열심히 잘 하면 된다고. 그러니……"
* * *
-남우주연상-! 난 성자가 아니다! 진호 리-!
무대로 향하는 진호의 머릿속으로 많은 일들이 스쳐 지나간다.
처음 출연한 예능 '도전, 셰프의 아바타', 얼굴을 알린 드라마 '천년의 노래.' 그렇게 시작한 연예계 생활. 그렇게 만난 수 많은 사람들.
등 뒤에서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치는 장영진 감독, 시상식장에 들어오기 전 통화한 서정문 족장, 황재상 쉐프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인연을 맺어 가며 좋은 길을 걸어 결국이 끝에 도착하게 되었다.
부모님, 친구 재준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어서 잘 걸을 수 있었다.
'참 길지만 짧았던 시간이었다.'
"축하합니다, 진호 리."
불과 얼마 전 에미 어워드의 드라마 최우수 작품상, 코미디 최고 작품상, 그리고 드라마와 코미디 남우주연상의 트로피를 들었던 손에 오스카의 영광된 최고 트로피가 들리자 진호는 그것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뤘구나.'
서형에게 말했던 가까운 목표를 드디어 이뤘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제 다음 목표를 향해 달려야했다.
더 높고 먼 곳을 향해. 리셋라이프의 끝을 향해.
웃음이 터져 나온 진호는 마이크에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그래미에서 말했습니다. 에미 어워드에서도 말했습니다. 그러니 이곳에서도 말하겠습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끈기를 잃지 마십시오. 즐기십시오. 그렇다면 언젠가 신은 당신을 지켜보게 될 것입니다."
'나처럼. 내가 리셋라이프를 얻은 것처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더 많이 사랑해 주십시오."
진호의 미소는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