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370화 (370/424)

15권 21화

7. 마무리

"와."

우글우글!

지하철에서 내린 강경미는 한쪽으로 향하는 엄청난 인파에 혀를 내둘렀다.

"이게 다진호의 콘서트를 관람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엇! 경미 누나!"

"호재야!"

둘은 손을 잡고 방방 뛰었다.

"이게 얼마만이에요! 대체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된 거예요?"

"왜냐고?"

입술이 비죽비죽 올라간 경미는 지갑을 열어 보여 주었다.

"짜잔!"

"……헐? 말도 안돼! 누나 공무원 된 거예요?"

"그것도 7급! 한 번에 붙었잖아!"

9급도 아닌 7급.

호재는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와-. 진짜 독하다, 독해. 축하해요, 누나!"

"뭘. 다 진호 오빠 덕분이지."

어려서 연예인 뒤꽁무니만 따라다녔던 자신이 공부를 시작해 좋은 대학에 가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바로 7급 행정직 공무원이 될 수 있었던 건 모두 진호 덕분이었다.

팬들을 위해 강의 동영상을 찍고, 굿즈 살 돈으로 봉사 활동을 하거나 부모님 선물 사 드려라 쓴 소리하고, 그렇게 수 많은 재능이 있는데도 계속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 진호가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의 강경미도 없었을 것이다.

"너도 그렇잖아."

한국대 경제학과에 들어간 호재.

진호가 퀸을 모창 하는 것에 반한 호재는 '진호의 팬이라면 똑똑해야 된다'라는 지니어스의 분위기가 아니었다면 본인에게 공부에 대한 재능이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자랐을지도 몰랐다.

"어디 저뿐인가요. 우리 모두 그렇죠."

일찍이 노래에 대한 재능을 발견해 예술학교에 진학한 지니어스도 있고, 미술이나 사진에 대한 재능을 발견해 관련 학과에 진학한 이도 있고, 요리에 대한 재능을 발견해 요리학교에 들어간 이도 있다.

그리고 지니어스는 팬클럽운영자금 중 일부를 장학금으로 돌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지니어스가 무사히 학업을 마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진호도 그에 동조하여 매년 엄청난 액수의 장학금을 지니어스에 전달했다.

'나도 그렇게 장학금을 받은 아이 중 한 명이고.'

그 장학금이 아니었다면, 호재 자신은 아마 어둡고 허름한 사글세골방에서 핸드폰과 컴퓨터 게임만 하다가 인생을 허비했을지도 몰랐다.

"우리 모두 진호 형이라는 축복을 받은 거 예요."

"그렇지……"

맞는 말이다. 자신들 모두 진호가 키운 아이들, 이진호 차일드라고 할 수 있었다.

"아, 늦었지만, 축하해."

"어흐흐. 그래도 경영학과에 들어가지 못한 건 너무 아쉽슴돠! 아오! 왜 그렇게 경쟁자가 많은 건지! 같은 지니어스들도 있으니 뭐라 할 수도 없고!"

"풋. 가자."

둘은 인파에 몸을 맡기며 월드컵 경기장으로 향했다.

"스탠딩석은 이쪽입니다!"

"C석 입장은 이쪽입니다!"

"응? 이번엔 물이랑 손수건 안나눠 주는 건가?"

"앗! 공지 확인 안 하셨나 봐요. 이번 콘서트부터 물이나 수건 등 콘서트 필수품들은 모두 각 좌석아래에 넣어 놓기로 했어요! 스탠딩석은 저쪽 입구에서 나눠 줄 거고요! 아, 참고로 필수품을 담은 가방은 LVMH 산하 패션 브랜드들에서 협찬해 주었습니다!"

"오오오!"

호재는 헛웃음을 흘렸다.

"진호 형 돈 지랄은 나날이 커지네요."

LVMH 산하 패션 브랜드에서 지원했다면, 에코백 같은 게 아니라 패션 아이템일 게 분명했다. 여태까지 그래 왔으니 말이다.

"진호 오빠가 돈을 썼겠니? 이미 지니어스라는 걸어다니는 간판들로 돈맛을 깨달은 LVMH가 옆구리를 쿡쿡 찌른 거겠지."

"……와, 이 양반들 대가리 끝장나게 좋네! 이건 뭐 숫제 유행을 강제로 만들려는 거잖아!"

진호의 한국 5대 도시 투어 콘서트에 참가할 인원이 약 50만 명이다. 그 많은 숫자가 똑같은 백을 들고 다닌다?

물론 LVMH 산하 패션 브랜드의 숫자가 꽤 많기에 한 패션 브랜드당 약 3만개 정도일 테지만, 그 정도면 충분히 유행을 선도 할수 있었다.

"그렇지. 그런 백을 공짜로 받은 우리가 입을 가만히 두지 않을 테니까!"

"SNS에서 엄청 자랑 하겠죠."

'아마도 중저가 라인일 테지. 쉽게 살 수 있도록!'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은 호재는 아차하며 입을 열었다.

"SNS하니까 갑자기 생각난 건데, 페이크 레전드의 진짜 프로듀서는 누굴까요?"

처음 미국에서 페이크 레전드의 프로듀서는 나라며 어느 듣보잡이 TV에 출연했을 때, 세상은 천재작곡가이자 프로듀서가 나타났다며 들썩였다. 그리고 이내 다른 의미로 더 크게 들썩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정말 그럴 듯했다.

페이크 레전드의 주옥같은 곡들은 현장에서 직접 연주하며 기량을 뽐내고, 또 페이크 싱어들을 직접 대동했기에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 사기 행각은 얼마 가지 못했다.

처음에는 곧 잘 따라 하던 그와 페이크 싱어들은 거의 매일같이 나오는 페이크 레전드의 신곡을 어느 순간부터 버거워하더니, 그날 나온 신곡조차 연주하지 못하거나 그날의 페이크 싱어와 전혀 다른 인물들을 대동하여 TV에 출연해버리기도 한 것이다.

당연히 그 사기꾼은 순식간에 궁지에 몰리더니 몰락해버렸고, 진호의 앨범 발매가 엄청난 이슈를 끌면서 상황은 그렇게 흐지부지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며칠 전, 다른 이가 등장해 내가 진짜 페이크 레전드의 프로듀서라고 주장하면서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사람 진짜 이기는 한 걸까요? 대중 매체는 전혀 출연하지 않은 채 오직 SNS에서만 활동하잖아요. 가면 써서 얼굴도 가리고."

"선례가 있으니까 조심하는 거다?"

"정말 당당하다면 대중 매체에 출연했겠죠."

이런 이유 때문에 현재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는 진짜 다 아니다로 개판이 된 상태였다.

새로이 나타난 이의 음악성이 이전의 사기꾼보다 더 뛰어난 탓에 더더욱 그러했다.

"아님 신곡을 먼저 연주해 보던가."

"그렇기는 하네……"

"하아. 이럴 때 월간 페이크 레전드의 진짜 페이크 싱어들이 나와서 맞다 아니다를 말해 주면 속이 시원할 텐데……"

그 사기꾼이 몰락하면서 같이 대동했던 페이크 싱어들도 함께 몰락했다.

"그러니까……. 아, 너 좌석 어디야?"

"저요? 여기요."

"에고. 여기서 헤어져야겠네. 끝나고 치킨에 맥주 콜?"

"누나가 산다면! 저 돈 없는 대학생이에요."

"과외 1순위 한국대생이 돈 없는 게 말이 되냐……. 그래, 콜! 이따가 보자! 잘 놀아!"

"누나도요! 쪽팔리게 구급차에 실려 가지 말고요!"

"……노력해 볼게!"

그렇게 호재와 헤어져 자신의 좌석을 찾아 앉은 강경미는 재빨리 의자 아래를 더듬어 묵직한 상자를 빼내었다.

"헐. 루이뷔통이다. 축하드려요!"

"아하하. 감사합니다. 님은 뭐예요?"

"저는 디올이요! 백팩이에요!"

"와, 득템하셨네요. 학생?"

"네, 고등학생이요. 그래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진짜 진호 오빠 미친 거 아니에요? 아니, 어떻게 팬한테 이런 선물을 턱턱 할 수 있는 거죠? 이번 카지노 때문에 팬 된 거라서 겨우 굿즈 몇 개산 것뿐인데!"

강경미는 마치 소중한 보물인 양 백팩을 꼭 끌어안은 채 방방 뛰는 여고생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게 진호 오빠의 영업 방식이에요.'

내가 퍼 주는 것보다 더 퍼 주는 연예인.

진호는 한 번 빠지면 결코 헤어날 수 없는 늪이었다.

텅! 텅! 텅!

"시작한다!"

"꺄아아아아아!"

불이 꺼지고, 어스름한 실루엣이 무대 중앙으로 이동하게 커다란 화면을 통해 보이자 오늘 콘서트를 찾은 사람들은 목이 터져라 악을 질렀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곧 흘러나오는 전주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딴, 따다, 딴, 따.

"어? 어어어?"

"이, 이 노래는?"

진호의 노래가 아니다.

그러나 무척이나 잘 아는 노래였고, 그렇기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진호는 굳이 다른 가수의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명곡들이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의아해하던 그들은 이내 곧 하나의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에, 에이. 설마!"

"그렇겠지? 그 사람이 어떻게 오프닝을 해!"

설마설마하던 그들은 이내 무대의 불이 터터텅 소리를 내며 켜지자 그대로 미쳐 버릴 수밖에 없었다.

-Havana ooh na na ayy.

작은 키의 히스패닉계 여성. 빌보드의 새로운 여제 카밀라 카베스.

그녀가 오프닝을 장식한 것이다.

"미, 미쳤어! 우아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악!"

콘서트 장은 순식간에 후끈 달아올랐고, 강경미는 방금 전 호재와 나눴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눈을 부릅떴다.

'서, 설마?'

* * *

'와-.'

동양, 그것도 비영어권의 나라의 수만 관객들이 자신의 노래를 따라 부른다.

그 감동은 순식간에 그녀의 몸과 마음을 모두 흔들었고, 결국 전력을 다하게 만들었다.

"안녕하세요! 한국-!"

꺄아아아아아아!

안녕하세요-!

온몸을 뒤흔드는 함성에 그녀는 카타르시스마저 느꼈다.

'이래서 빌보드 가수들이 한국에 오는 거구나!'

솔직히 진호가 오프닝에서 달라고 해서 참 기분이 상했었다.

초대형 뮤직 페스티벌도 아니고, 일개인의 콘서트에서 오프닝을 선다는 건 그 콘서트를 여는 가수보다 급이 낮다는 소리밖에 안 되니 말이다.

하지만 이젠 그런 것 따윈 신경이 쓰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런 감동과 쾌감을 알려줘서 고마워!'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백스테이지 쪽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무대 위로 걸어 나오는 진호에게 와락 안겼다.

우아아아아악!

N00000!

'지금은 돼-!'

그녀는 진호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려 했지만, 턱 이마를 잡아 밀어내는 손길에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었다.

"안돼, 카밀라. 나 여자친구 있다고."

마이크를 통해 전해진 진호의 그말이 콘서트장을 울렸다.

꺄아아아악!

"……쳇."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물러섰고, 진호는 뾰로통 입술을 내미는 그녀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암튼 미국 애들은 선이 없어요, 선이. 나 싸우면 네가 책임질래!'

진호는 로얄석을 바라봤다가 가슴을 쓸어 내렸다.

'다, 다행이다! 아직 표정이 괜찮아!'

살짝 미간이 찌푸려진 정도에 불과했다.

그렇게 여자친구 이서형을 일견한 진호는 그제야 콘서트장 전부를 둘러보았다.

'……와우.'

꽉 찬 객석과 발 딛을 틈 하나없어 보이는 스탠딩 에어리어. 매번 감사하고, 또 가슴을 벅차게 만드는 광경이다.

이렇게 자신을 사랑해 주는 팬들이 있음이 언제나 감사하다.

"안녕? 모두 오랜만이죠?"

안녕하세요-!

까아아아아!

진호는 활짝 웃으며 카밀라 카베스를 가리켰다.

"바쁜 와중에 저라는 못난 친구를 위해 미국에서 날아와 준 카밀라 카베스에게도 힘찬 함성을 보내 주세요."

그에 터진 함성에 카밀라 카베스는 눈치껏 양팔을 번쩍 들어 흔들었다.

진호는 팔짝팔짝 뛰며 손키스까지 날리는 그녀의 모습에 못 말리겠다며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오프닝이 내 곡이 아니라서 실망했어요?"

아니요-!

"다행이네. 그럼 이제 놀 준비해야죠!"

꺄아아아아악!

진호는 다시 눈치껏 퇴장하는 그녀를 향해 고맙다는 눈인사를 보내고는 음향팀을 바라봤다.

"자, 가즈아-!"

꺄아아아아아아아!

* * *

한국에선 너무도 오랜만에 여는 콘서트다.

불평 하나 없이 기다려 준 팬들을 위해 진호는 진심과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진호의 마음이 전해진 건지 팬들도 광란의 파티를 열었다.

"후욱! 후욱!"

허억! 헉!

관객들의 거친 숨 소리가 들려오자 진호는 입술을 비틀었다.

"뭐야. 겨우 이거 놀았다고 지친거예요? 좀 쉴까요?"

아뇨-!

아직 멀쩡하다는 외침들이 진호의 심장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래! 내가 쉬고 싶다! 내가 지쳤으니까 좀 쉽시다! 어차피 곧 1부 끝나잖아! 확 씨, 그냥 지금 끝내 버릴까 보과!"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스태프가 날다시피 가져온 의자에 앉은 진호는 물을 마시며 달아오른 콘서트장을 식혀 갔다.

관객들의 숨 소리가 잦아지자 그는 이제 때가 되었음을 알아차렸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1부도 마무리할 겸 쉬어 가는 의미로 한 곡을 불러 볼까 해요. 음, 근데 내 곡은 아니에요."

웅성웅성.

"다들 혹시 월간 페이크 레전드라고 아시나요?"

……네에!

와악! 설마!

"오, 다들 알고, 또 제가 카밀라를 부른 이유를 알아차린 것 같네요?"

대답과 비명 같은 함성이 우렁차게 들려왔다.

"솔직히 너무 욕심이 나고, 또 너무 불러 보고 싶더라고요. 페이크싱어들이 부른 모든 곡들이. 여러분은 그렇지 않던가요?"

그랬어요-!

꺄아아아아아아아!

"흐흐, 그래서 카밀라를 부르고야 말았어요. 아, 미쳤다는 말은 하지 말기. 나 이러는 거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면서!"

사람들은 대답대신 함성을 질렀다.

볼에 고정된 핀 마이크를 매만진 진호는 히죽 웃으며 카밀라 카베스가 걸어 나올 백스테이지 쪽을 바라보았다.

"그럼 시작할게요. 카밀라 카베스와 저의 듀엣곡 New Would!"

두 사람의 듀엣이 끝나자 콘서트장은 순간 적막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건 폭풍이 몰아치기 전의 고요일 뿐이었다.

……꺄아아아아아악!

우아아아아아아아악!

진호는 활짝 웃었다.

"아쉽지만 일단 1부 끝! 다들 화장실 다녀와요. 그래야 이따가 더 힘내서 놀지!"

아아아.

아쉬워한 사람들은 이내 주섬주섬 일어나기 시작했고, 진호도 몸을 일으키며 카밀라 카베스를 보았다.

그녀는 눈을 빛내며 입을 뻐끔거렸다.

'시작해?'

고개를 끄덕인 진호는 입을 열었다.

"하아아. 역시 대단한 곡이야. 그렇지, 카밀라?"

"당연하지! 이건 정말……. 내게 줬으면 무조건 정규 앨범 타이틀로 삼았을 거야!"

몸을 돌린 진호와 카밀라 카베스는 마이크를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가 흘러 나가는데도 모른 척 백스테이지를 향해 걸을 뿐이었다.

"후우. 그런데 정말 희한해. 솔직히 SNS에서 자기가 프로듀서라고 말하는 사람이 이런 대작들을 만들었다고는 볼 수가 없거든. 지노는 그렇게 생각 안 해?"

"아, 나도. 솔직히 레벨이 좀 많이 낮더라고. 그 사람은 감성을 제대로 표현 못하잖아."

"내 말이!"

일어서려던 사람들은 몸을 멈추었다.

둘은 등 뒤로 그걸 느꼈지만, 결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첫 번째 사기꾼의 사기 행각이 들통난 후, 내 예상과 다르게 다른 사기꾼들이 우후죽순 생겨나지 않았어.'

한 명 만이 소심하게 SNS로 관심을 끌고 있을 뿐이었다.

그건 진호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답은 한 가지였다.

지금 소심하게 사기 행각을 하고 있는 사기꾼을 치워 버리면서 불을 질러야했다.

레전드도 욕심을 내는 명곡이라는 불을 말이다.

진호와 카밀라 카베스는 서로를 보며 눈을 빛냈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