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363화 (363/424)

15권 14화

'그런데 미국에서도 이 거짓말 탐지기가 유행인 건가. 아니, 그보다 왜 갑자기 달아오른 거지?'

코난의 설명은 이랬다.

한 유명 가수가 브루노 마스의 곡을 욕심내어 SNS에 '이런 대단한 곡을 페이크 싱어들이 부르는 건 말도 안 된다'라는 글을 올린 것이다.

'그러니까 한때 10대와 20대 여성들의 대통령이라 불렸던 가수의 게시글이 일파만파 퍼졌고, 덩달아 페이크 레전드가 주목받게 되었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그 가수는 하는 짓이 정말 밉상인데 이번 만큼은 좀 고마웠다.

"그런데 코난은 왜 제가 그 프로듀서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코난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비볐다.

"다 조사해 봤지. 지노 네가 한국에선 이벤트의 황제라고 불리는 걸 말이야! 지금 한국에서도 네가 유력시된다며?"

"……코난이 한국에 관심이 많은 줄은 몰랐네요."

"왜 이래? 나 이래 봬도 태권도 푸른 띠야. 얍, 얍!"

"오-. 태권도를 알아요?"

"방송 때문에 좀 다녀…… 아니, 화제 돌리지 마. 정말 너지? 미국과 한국 두 나라에서 그런 레전드들을 모을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밖에 없어!"

정곡이라는 화살이 푹 하고 심장을 찔렀지만, 진호는 낯빛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거 저 아니에요. 저도 그분을 찾고 있는 중이에요."

코난은 절대 믿지 않겠다는 듯 거짓말 탐지기를 내밀었다.

한숨을 뱉은 진호는 거짓말 탐지기에 손을 얹었고, 이내 곧 진실 판정을 받았다.

"쳇. 다른 프로듀서를 찾아 봐야 하려나? 오케이, 잘 있어!"

코난은 그렇게 몸을 돌렸고, 진호는 순간 얼이 빠졌다.

"간다고? 정말 이것만 찍고 간다고?"

"커엇!"

PD의 컷 사인이 크게 울리자 코난과 코난을 따라가던 스태프 모두 걸음을 멈췄다. 코난은 다시 몸을 돌려 진호에게로 다가와 양팔을 벌렸고, 진호는 피식 웃으며 그를 끌어안았다.

"오랜만이야, 지노."

"오랜만이에요, 코난. 잘 지냈죠?"

둘은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쌓였던 이야기를 나누며 공항 밖에 세워진 차로 향했다.

"내 쇼에 오는 거 잊지 말고. 아니, 내 쇼에 가장 먼저 들러야 해! 알았지?"

"하하, 알았어요. 코난 쇼는 제 미국 스케줄 중에서 첫 번째로 출연하는 토크 쇼가 될 거예요. 됐죠?"

"그렇지! 빌! 녹음했지?"

진호는 누군가를 연상시키는 코난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작별을 고했다.

"잘 들어가고, 쇼에서 봬요."

"그래. 지노도 얼른 집에 가서 쉬도록 해."

"네, 수고하세요."

"그런데 지노."

"네?"

"정말 너 맞지?"

두서가 없는 질문이었지만, 알아들은 진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경악하는 코난이 탄 차의 차문을 닫았다.

"가죠, 정 실장님."

"야, 그렇게 밝혀도 돼?"

"괜찮아요. 절대 말하지 않을 테니까."

인물 됨됨이도 됨됨이지만, 코난은 뼛속까지 방송인이다.

그는 월간 프로젝트 페이크 레전드가 미국 전역을 태우기 전까지 침묵을 할 터였다.

이런 진호의 설명에 정 실장은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보다 레일라 스위프트와 아렐, 아리아나 그로데가 연락해 왔다고요? 저를 어떻게 알고요?"

레일라 스위프트와 아렐, 아리아나 그로데는 그 누구도 이견을 낼 수 없는 빌보드의 여제들이다.

"응. 마돈나 씨와 노울스 씨가 권유했대."

"도나랑 지젤이요?"

진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와, 미쳤네."

후에 완성될 그림을 생각하니 온몸에 전율이 흐를 정도다.

'……도나와 지젤도 이걸 생각하고 권유한 거구나! 암튼 이 양반들도 참!'

진호는 눈을 빛냈다.

'이런 먹잇감은 주워 먹어 줘야 예의지!'

"알았어요. 미팅 잡아 주세요!"

"알았어!"

정 실장은 주먹을 불끈 쥐며 대답했다.

* * *

-서형 씨, 우리 저것들도 챙기죠!

그 말과 동시에 화면이 암전되면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다.

"뭐야? 왜 여기서 끝나는 거지? 대체 뭘 챙긴다는 건데! 질! 이거 다음 편 어딨어?"

"다음 주에 방영됩니다, 개리!"

"뭣?"

마치 사탕을 뺏긴 아이처럼 눈을 크게 떴던 개리 제이머는 이내 실소를 터트렸다.

그는 어메이징 서바이벌 1화를 시청한 소감을 뱉어 냈다.

"무섭군."

흡입력이 대단하다.

연출, 카메라 무빙, 자막, 편집, BGM 등 무엇 하나 흠잡을 곳이 없다. 아니, 자막이나 효과음은 같은 연출가이자 제작자인 개리 제이머에게 충격을 주었다.

누군가는 별거 아니라 할 수 있는, 또 누군가는 꼼수나 잔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작은 포인트가 시청자의 눈과 귀를 강제로 흡입시켰기 때문이었다.

센세이션이라고 칭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이게 한국식 예능……"

이뿐만이 아니다. 나연석은 미남미녀의 출연자들로서 시청자의 눈을 잡아 세우더니, 진호를 이용해 뒤통수를 쳤다.

1화 오프닝부터 중반까지 잘 드러나지 않았던 진호.

그런 그가 연회장에 도착한 순간부터 모든 흐름이 진호에게로 쏠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진호는 사람들의 예상과 전혀 다른 행보를 보였다.

보통 이런 식의 예능은 초반엔 출연자 전원 어리바리를 타는 게 일반적인데, 진호는 결코 제작진을 신뢰하지 않는 모습으로 큰 웃음을 주더니 이후 모든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안배를 두었다.

그리고 그건 결국 찰떡같이 먹혀들면서 이레귤러 가 되었다.

이런 이레귤러는 연출가로서 무조건 피해야 하는 종류의 출연자지만, 나연석이 오히려 그걸 맛깔나게 버무림으로써 몰입감을 한층더 끌어올렸다.

제작진과 출연자의 기가 막힌 하모니. 말하지 않아도 통한다는 건 바로 이걸 두고 하는 말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무조건 뜨겠어."

"지노에게 특혜 논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지노와 디렉터 나가 한국에서 자주 어울렸던 건 사실이니까요."

"전혀. 다음 화에서 지노는 제작진에게 뒤통수를 제대로 맞을 거야. 아마 고난이란 고난은 다 당하게 되겠지."

아마 시청자들까지 '저건 좀……

혹은 '악마인가?' 라는 말이 나올만큼 엄청난 고난이 될 터였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습니까?"

"여태껏 그렇게까지 당해 왔으니까 저 성격 좋다고 소문난 지노가 디렉터 나를 비롯한 제작진을 믿지 않는 거야. 그리고 디렉터 나는 지노가 어떻게든 빠져나갔기 때문에 저렇게 악독해질 수 있는 거고."

연예계 관계자의 입장으로 볼 때, 나연석을 비롯한 제작진과 진호의 관계는 서로에게 축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치 톰과 제리처럼 아웅다웅하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임팩트를 줄 수 있으니 말이다.

"대체 한국의 예능이 얼마나 지독하기에 저 지노가……"

"제대로 준비도 시키지 않은 채 사막에 내던지는 걸 보니…… 음."

아니다. 몇몇 PD만 악독할 뿐이다.

그 점을 모르는 개리 제이머는 '여태껏 방영된 미국의 모든 예능은 애들 소꿉장난이었군'이라는 끔찍한 생각을 하면서 제작자로서의 혼을 불태웠다.

"그나저나……"

개리 제이머는 나연석의 옆에 앉아 있던 조나단 파블로를 떠올렸다.

'레이몬드에게 잠시 맡긴 지노를 중간에서 채갔단 말이지……'

도둑도 이런 도둑이 없었다.

개리 제이머는 진호를 떠올리며 눈을 빛냈다.

'어메이징 서바이벌이 종료됐을 때의 지노는 완전히 완숙된 후겠지.'

수 많은 미국인과 함께 울고 웃을 테니, 그때의 진호는 동양에서 온스타가 아니라 그냥 '톱스타 이진호'가 될 터였다.

그렇다면 앞으로 취해야 할 행동은 하나다.

"질!"

"네, 개리."

"지노에게 대본과 시나리오를 보내고, 이 말을 전해! 어떤 작품을 택하든 넌 주인공이라고!"

질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개리 제이머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지 보자고, 존.'

미국, 아니 세계 최고의 제작자인 개리 제이머가 진호를 욕심내기 시작했다.

* * *

어메이징 서바이벌. 정말 어메이징한 서바이벌이었다.

한국에서 온 어메이징한 디렉터들. 제 정신인가?

줄연자를 죽이려는 제작진?

출연자와 출연자만의 경쟁이 아니다! 진짜 적은 제작진!

이게 한국의 스타일이다!

사탄인가, 악마인가. 결코 인간이나 천사가 할 생각은 아니었다.

우리는 한국의 예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호평도 이런 호평이 있을까.

마치 로비라도 받은 것처럼 미국 일간지들이 모두 어메이징 서바이벌에 대한 호의적인 기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그에 인터넷 세상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호는 거실 테이블에 생긴 종이 뭉치의 산을 보며 두 눈을 껌뻑이고 있을 뿐이었다.

"이걸 누가 보냈다고요?"

"개, 개리 제이머가!"

정 실장뿐만이 아니다. 개리 제이 머가 미국 지부로 보낸 저 대본들을 직접 들고 온 장경아 지부장도 온몸을 부르르 떠는 중이었다.

다시 대본의 산을 본 진호는 지금 가슴을 가득 채우는 감상을 솔직하게 토해냈다.

"와우."

개리 제이머는 CSI 시리즈, FBI 성범죄수사대 등의 수 많은 드라마뿐만 아니라 굉장히 많은 영화를 성공시킨 세계 최고의 제작자다.

그런 그가 이렇게 많은 대본을 보내며 아무거나 고르라고 한다. 어떤 작품을 고르든 주인공이라고 말이다.

"장 지부장님. 로비했어요? 얼마나 하셨어요?"

"……진호 씨가 하신 거 아니었습니까?"

"……작은 조각품 하나 보내지 않았는데요."

"그럼 왜 이 대본들이 진호 씨에게 온 겁니까?"

"그러니까요. 왜 온 거죠?"

"하이, 지노! 잘 잤…… 왓 더 헬?"

대체 누가 통과시킨 건지 집 안으로 들어온 레일라 스위프트가 거실에 펼쳐진 광경에 화들짝 놀라며 한 발 물러섰다.

진호도 그녀를 보곤 깜짝 놀랐다.

"레일라가 여긴……아, 오늘 녹음하는 날이지, 참."

비밀리에 하는 녹음이기에 어떤 차가 접근을 하든 바로 들여보내라고 정문에 지시해놓았던 게 기억 났다.

"이번에도 들키지는 않았죠?"

"걱정 마. 다 따돌렸으니까. 그보다 그건 뭐야?"

"아."

진호는 상황을 설명했고, 연기자이기도 한 레일라 스위프트는 입을 떡 벌렸다.

그녀는 잠시 동안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니까 그 개리 제이머가 저렇게 많은 시나리오를…… 아무거나 고르라고……"

그녀의 입에서 미국인들이 하는 평범하지만 거친 욕설들이 쏟아져나왔다.

"나! 나도 출연 할래! 여주인공으로!"

"연기력이 지금보다 10배가량 늘면 추천해 볼게요."

음악가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그녀이지만, 연기력은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굉장히 부족했다.

"……쳇."

본인도 본인의 연기가 어설픈 걸 아는지 레일라 스위프트는 더 조르지 않는 대신, 메고 온 기타 가방을 끌어내리며 빈 소파에 앉았다.

디리링!

'흠.'

그저 기타 줄을 훑는 것뿐인데, 눈과 귀가 그녀에게 붙들려 버린다. 그녀가 왜 레전드라 불리는지 절절히 이해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감탄을 하던 진호는 이내 제대로 자세를 잡은 레일라가 시작한 연주에 잠시 그녀에 대한 평가를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걸 어레인지 하다니……. 이사람도 도나랑 같은 과구나.'

타고난 천재. 그녀가 10대라는 어린 나이부터 성공을 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진호는 그녀의 짧은 연주가 끝나자 진심으로 박수를 쳤다.

"어때? 괜찮아?"

"훌륭해요. 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곧바로 같이 작업하고 싶을 만큼!"

레일라 스위프트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며칠 전의 녹음을 통해 진호의 천재성을 충분히 만끽한 그녀다.

거기다 노트북 안에 쌓여 있던 천여 개의 명곡들.

'이건 무조건 잡아야 하는 기회

"진짜? 난 무조건 찬성……"

"안돼-!"

우당탕!

무언가 쏟아지는 소리와 절규 같은 외침에 고개를 돌렸던 레일라 스위프트는 충격을 잔뜩 받은 얼굴을 하고 있는 육중한 덩치의 백인 여성을 보곤 눈을 크게 떴다.

"……아텔?"

빌보드의 디바, 아렐.

레일라 스위프트는 재빨리 진호를 보았고, 진호는 다급히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그에 레일라 스위프트는 싱긋 웃으며 일어나 진호의 멱살을 잡았다.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보실까?"

"……아하하하하하."

진호의 뒷목에 식은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레일라 스위프트가 오늘 다시 진호의 저택을 찾은 건 재녹음 때문이었다. 진호도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그녀는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런데 왜인지 아닌 것 같다.

그런 그녀의 생각이 맞다는 듯 진호는 싱긋 웃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가 된 것 같아서요."

어메이징 서바이벌이 인터넷과 길거리 신문 가판대를 차지하면서 일순간 월간 프로젝트 페이크 레전드에 대한 관심이 멀어졌다.

이는 아주 훌륭한 기회였다.

"다음 단계?"

충격에 굳어 있던 아렐도 호기심을 진하게 드러냈다.

"네, 다음 단계."

"그게 뭔데?"

"듀엣이요."

"……응?"

"레전드와 레전드의 듀엣."

"자, 잠깐, 그거……?"

진호는 경악하는 둘의 모습에 입술을 비틀었다.

'청자들은 페이크 싱어와 페이크 싱어의 듀엣이라고 생각할 테지만……. 나중에 진실이 밝혀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 파장은?'

여태껏 단 한 번도 합을 맞춰 본적이 없는 레일라 스위프트와 아렐이다. 서로가 추구하는 장르가 너무 확연하게 다르다 보니 팬들조차도, 아니 당사자인 레일라 스위프트와 아렐조차도 생각해 본적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진호는 확신했다. 두 사람이 조화를 이루었을 때, 엄청난 작품이 탄생할 거라고.

진호는 넋을 놓은 두 사람을 보며 실실 웃었다.

'아마 대단하겠지.'

진호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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