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15권 7화
"휘유."
아마르가 준 전통의상을 걸치고 나온 진호와 서형에게 박수가 쏟아진다. 선물을 한 당사자인 아마르가 제일 열렬히 박수를 쳤고, 진호는 쑥스러워 하는 서형을 이끌고 당당히 걸어 베후인들이 지펴 놓은 불가에 앉았다.
"선물은 잘 사용하고 있다는 걸 보여 주는 게 예의인 것 같아서 잠시 실례했습니다."
베후인들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아닙니다, 친구여.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마음이 놓입……"
아마르는 진호와 서형의 무릎 위에 올라 몸을 마는 모래 고양이와 사막 여우들의 모습을 보곤 입을 다물었다.
모하메드가 눈을 빛냈다.
"신기하군."
"제가 동물들에게 사랑을 좀 받는 체질이라서요."
"……나처럼 늙은 사람에겐 무척이나 필요한 체질이군! 이놈들은 좀 처럼 말을 잘 걸어 주지 않아서 말일세. 늙었다고 무시하는 게지."
"모, 모하메드!"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모하메드님!"
친할아버지를 비롯해 노인들의 뼈 때리는 농담을 많이 겪어온 진호는 난처해하기는 커녕 아무렇지도 않아 했다.
"하핫. 아, 좀 안아 보실래요?"
"그래도 되겠나?"
고개를 끄덕인 진호는 모래 고양이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작게 속삭였다.
"야옹!"
'귀찮아하지 마라, 인마.'
작은 발을 아장아장 움직인 모래고양이는 모하메드의 무릎 위에 올라 몸을 말았다. 손안에서 느껴지는 작고 따뜻한 생명에 모하메드는 혀를 내둘렀다.
"야생의 모래 고양이는 참 경계심이 많은 동물이거늘……"
그래서 옛 베후인들은 모래 고양이를 먼저 다가오면 '오늘은 운수가 좋겠구나'라고 말할 정도였다.
우연인지 아닌지 모래 고양이가 먼저 다가오는 날엔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다든지, 생각지 못한 오아시스를 찾는다든지 등 행운이 생기곤 했기 때문에 행운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그것도 몇 십 년 전의 이야기였다.
어느 순간부터 모래 고양이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베후인들은 어두운 사막에서의 작은 등불 하나를 잃어버렸다.
이런 모하메드의 설명에 진호는 탄성을 터트렸다.
'그래서였구나.'
이제야 모래 고양이를 향한 이들의 범상치 않았던 반응이나 이쪽을 신기한 동물 살피듯 보며 고개를 주억거리던 모습이 이해되었다.
'뭔가 더 숨겨진게 있는 것 같지만……'
왜인지 귀찮아질 것 같아 진호는 그걸 묻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그래서 그런데 이 아이를 어떻게 할 건지 물어도 되겠나?"
모하메드의 검은 눈이 투명하게 번들거리며 진호를 응시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곳에 모인 베후인 전원의 시선이 집중됐다.
짙은 흥미 속 무기질 같은 눈빛이 온몸을 발가벗기는 것 같은 기분에 진호는 역시 라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잘 돌봐 줄 수 있는 분들에게 맡겨야죠."
흠칫!
"……망설이지 않는구만."
"정이라는 욕심으로 그 아이의 생을 망칠 수는 없으니까요."
담담하게 내뱉어진 그 말은 베후인들의 가슴을 크게 울렸다.
그러나 아직 진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니 이 아이들까지 부탁드리겠습니다, 모하메드."
흠칫!
"오늘 만난 나를 믿는다는 건가?"
"아뇨. 사막에서 만났다 하나 낯선 이에게 스스럼없이 선물을 주는 선인 아마르가 존경하는 모하메드에게, 모든 아랍인들에게 존경을 받는 베후인에게 맡기는 겁니다. 부디 잘 키워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스킬: 골드 아이]로 모래 고양이 와 사막 여우들을 보니 눈을 뜨지 못할 만큼 빛이 나고 있다.
역시나 지금이 결정이 최선이라는 뜻이었다.
짧은 침묵이 그들 사이에 내려앉았다.
"……허어. 새로 생긴 친구가 알고 보니 현자였던 건가."
'이렇게 선량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니!'
모하메드는 그것이 너무 기껍고, 또 기꺼웠다.
"과분한 칭찬입니다."
"훌륭한 친구를 사귀는 건 신의 인도가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이지. 오늘은 참 기쁜 날이 될 것 같네."
모하메드는 베후인들을 둘러보았고, 그들은 흐뭇이 웃으며 몸을 일으켜 각자의 천막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었다.
그에 진호는 놀랐다가 이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바로 가야 하는 건가?"
"아뇨. 그게……"
진호는 어메이징 서바이벌과 그룰, 그리고 본인들의 처지에 대해 설명을 하였고, 모하메드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이 아이와 물물교환을 하는 걸로 치는 게 어떤가?"
……씨익.
진호의 입가가 환한 미소를 그렸다.
"그 말을 해 주시길 기다렸습니다, 모하메드."
"하하하하핫!"
타다다라당! 타다다라당!
붉어져 가기 시작한 하늘 위로 잼베처럼 생긴 타악기의 경쾌한 선율이 울리는 베후인의 쉼터.
불가에서 몸을 흔드는 서형과 진호, 그 주위를 돌며 팔짝팔짝 뛰는 네 마리 동물들에게 환호가 쏟아진다.
마치 동화 속한 장면 같은 모습에 모하메드도 아이처럼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고, 그걸 찍는 나연석은 꽉 쥔 주먹을 부르르 흔들었다.
'이건 대박이다. 진짜 대박이야!'
모든 아랍인들에게 존경을 받는 게 베후인이다 보니 이들을 촬영하는 것은 굉장히 힘들고, 또 베후인도 그런 걸 싫어한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사진이 아니라 영상으로 찍을 수 있게 됐다. 예능 방송으로는 전 세계 역사상 최초였다.
'역시 이진호 이 미친 놈!'
나연석은 지금 진호와 서형의 입에 들어가는 양고기와 술 정도는 눈감아 주기로 했다.
그런 나연석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의 흥겨운 밤은 깊어져 갔다.
진호와 서형의 웃음은 더욱 커져갔고, 대접을 하는 모하메드의 눈빛도 흡족함으로 물들어갔다.
* * *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은 깜깜한 새벽, 주섬주섬 일어난 베후인들과 진호, 서형은 떠날 준비를 마쳤다.
"하루만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워 하는 아마르와 모하메드의 모습에 진호와 서형도 아쉬워했다.
하지만 이젠 정말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벌었던 시간을 다 까먹었어.'
어쩌면 지금쯤 추월을 당했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언젠가 인연이 되면 다시……"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는 작별 인사를 건네던 진호는 베후인들이 내미는 황금 핸드폰들에 입을 다물었다.
모하메드가 짓궂게 웃었다.
"베후인이라고 해서 문명과 떨어져 사는 건 아니라네."
"……푸핫! 제가 실수했네요."
실수를 인정한 진호는 그들과 전화번호를 교환한 후 다시 작별 인사를 건넸다.
"자주 연락할게요."
"나도, 그리고 우리도 현자 친구의 행보를 내 일처럼 생각하며 지켜보겠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아이들도 잘 부탁하고요."
"안녕히 계세요!"
"그래, 잘 가게나."
"잘 가시오! 친구여! 꼭 우승하길 바라겠소!"
베후인들은 떠나는 진호와 서형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진호와 서형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자 미소로 가득하던 그들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자 때문이었습니까, 모하메드."
3일 전 밤하늘을 본 모하메드는 갑자기 그들의 이동을 만류하였고, 베후인은 결국 이곳에 더 머물기로 하였다.
방금 전까지 친근한 할아버지 같았던 모하메드의 눈이 아직도 어둔 하늘을 바라보며 형형하게 빛났고, 밝아지는 하늘에 희미해지는 별무리들이 모하메드의 눈을 가득 채웠다.
"그래. 저 청년이 수년 전 하늘에 떴던 보호하고 인도하는 별이란다, 알리."
"헛?"
베후인들은 화들짝 놀랐다.
수년 전, 갑자기 모하메드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수 많은 별들을 모으는 커다랗고 밝은 별이 갑자기 하늘에 우뚝 솟았다는 말을 말이다.
그것은 수 많은 것을 보호하여 새 시대로 인도하는 별.
그런 대단한 운명을 가진 별이기에 그들, 아니 모든 베후인은 여태까지도 새로운 왕의 재목이 나타나는가 싶어 그 당시 태어난 신생아들을 주의 깊게 살폈었다.
"어찌 동양인이……. 그것도 노래나 부르는 연예인이……. 아니, 그보다 나이가……"
모하메드도 그게 의문이기는 하였다.
"……이 또한 신의 뜻이겠지. 어찌 일개 피조물인 인간이 위대한 신의 뜻을 알까……. 저곳을 보거라, 베후인이여."
모하메드가 하늘의 한 곳을 가리켰다.
"너희의 흐린 눈에도 이젠 수 많은 저 별무리가 보일 터."
"으음……."
"허어. 진짜 였다니……"
보인다. 여태껏 보이지 않았던 별무리 속에서 밝게 빛나는 푸른 별이 말이다.
이 기이한 상황에 그들은 모하메드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들로 인해 그 인도자와 얽힌 것이군요."
고개를 끄덕인 모하메드는 아직까지도 진호가 떠난 방향을 응시하는 모래 고양이와 사막 여우들을 쓰다듬었다.
'연예인. 그것은 그의 수단 중 하나일 테지……'
분명 사막만 바라보며 좁아진 자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일들이 진호에겐 많았을 것이고, 저렇게 수 많은 별들과 함께 나아가는 지금의 진호가 만들어졌을 터였다.
'선량하기까지 하니 더할 나위가 없구나.'
모하메드는 이제 결단을 내리기로 했다.
"모든 아미르 형제들에게 연락을 하거라, 알리."
"모하메드!"
"이것은 베후인의 아미르인 나모하메드의 부탁이자 마지막 명령인즉, 우리 사막의 형제들도 이젠 새 시대로 나아갈 때가 되었다고 전하여라."
부르르!
베후인의 아미르. 알리를 비롯한 베후인들은 더 이상 항변을 하지 못했다.
"예! 아미르!"
"아, 그리고 이 아이들을 보호할 사람들도 좀 보내라 하고."
베후인들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 핸드폰을 꺼내어 아미르들에게 전화를 걸었고, 모하메드는 몸을 돌렸다.
'그의 성품이라면 사소한 도움도 잊지 않을 터. 아미르들의 통 큰행동에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군.'
아미르. 그 말이 뜻하는 것은 통치자.
즉, 모든 아랍국가의 왕들을 뜻하는 단어였다.
'그나저나 늦진 않았으면 좋겠군.'
모하메드는 부디 진호의 마음에 아랍도 담기기를 기도하였다.
* * *
투두두두두두!
진호와 서형은 자신들이 떠나온 방향으로 향하는 헬기를 힐끔 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드디어 도착한 알아인에 비하면 헬기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른 팀들과 얼마나 차이 나요?"
"……음. 가장 빠른 팀보다 30분 늦었어. 너희가 3번째야."
진호와 서형은 혀를 찼다.
베후인들과의 만남은 무척이나 즐거웠지만, 그 때문에 시간이라는 큰 무기를 잃고 말았다.
나연석은 전의를 다지는 둘을 향해 사악하게 웃었다.
"자, 그러면 특별……"
"하지 마세요. 뭔지 모르겠지만, 말하지 마세요."
"또 무슨 짓을 시키려는 거죠, 악마 PD님!"
"……누가 보면 진짜 인 줄 알겠다, 서형아. 나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잖아."
"퍽이나!"
진호는 이젠 일반인에게까지 악마 소리 듣냐며 나연석을 한심한 눈으로 보았고, 나연석은 그대로 삐져 버렸다.
"그래, 내가 다 잘못한 거지. 그래서 그냥 아예 계속 잘못하련다."
'뭣?'
순간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갔다.
"자, 잠깐! 에헤이……"
"어메이징 서바이벌이 시작된 지도 벌써 어언 23일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버텨 주신 참가자분들의 끈기와 생존력을 축하하고, 또 저희 제작진이 그동안 너무 느슨했다는 자책의 의미로 여러분께 하나의 특별한 미션과 새롭게 추가 된 룰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새롭게 추가 된 룰. 뭔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불길했다.
진호와 서형은 나연석의 사악한 미소에 새파랗게 질렸다.
"새, 새롭게 추가 된다는 룰이 뭐죠?"
"별거 아닙니다. 앞으로 부턴 메리트 카드로 인해 쓰이는 모든 돈을 모두 참가자들이 부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앞으로는 자급자족인 셈이죠."
"……네?"
진호의 운빨로 인해 메리트 카드를 다량으로 획득하면서도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젠 제작진에서 돈도 안 준단다.
울컥!
"이야-. 너무 기뻐서 말이 나오지 않나 보군요."
"……그게 말이냐, 방구냐-!"
인내의 끈이 끊긴 서형은 나연석을 덮쳤고, 이미 그녀의 반응이 이상하다는 걸 알고 있던 진호는 재빨리 그런 그녀를 잡아 세웠다. 진호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방송 사고는 막아야했다.
"진정해요, 서형 씨!"
"하지만 저 인간이! 저게-!"
"쉬쉬. 웃어른한테 저거라고 하는 거 아니에요."
진호는 재빨리 다음 말을 하라고 나연석에게 신호를 주었고, 나연석은 이 말을 꺼내기 전부터 예상했던 아주 멋진 그림에 헤벌쭉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특별 미션도 새롭게 추가 된 룰과 연관이 되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오늘 하루 동안 1, 000디르함 벌기!"
움찔 진호와 서형의 몸이 굳었다.
잘못 들은 건 아닌지 눈을 껌뻑인 진호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나연석을 보았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세요? 진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돼요?"
"그렇습니……"
"나 이것도 얻었는데? 그리고 여기는 사람이 많은 도시인데?"
진호는 모하메드가 선물로 주어 배낭에 메어 놓았던 잼베 비슷한 악기를 보여 주었다.
의기양양했던 나연석과 제작진의 표정이 새까맣게 죽었다.
"아……"
이번엔 진호와 서형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서형 씨."
"네!"
"검색해요. 여기 알아인의 최대 번화가가 어딘지!"
1, 000디르함. 아니, 겨우 그 정도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여긴 거지도 억대를 번다는 아랍에미리트잖아?'
진호는 오늘 전 세계 예능에서 이런 종류의 미션 역사상 최고액을 찍어 볼 생각을 가졌다.
* * *
만약 어메이징 서바이벌의 모든 참가자 중 진호 본인 혼자만 연예인이었다면 이런 방법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굳이 노래가 아니라도 방송이라는 특성상 발품만 팔면 1, 000디르함 정도는 금방 벌 테니 말이다.
'하지만 모든 참가팀에는 연예인이 한 명 이상씩 있지.'
진호는 카메라들을 몰고 다니는 이쪽을 주시하며 사라지는 사람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번화가라지만, 부유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그것도 이 아침에……'
[스킬: 괴도 루팡]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저들의 지갑은 무척이나 두둑하다고 말이다.
"진호 씨, 정말 돈을 벌 수 있을까요? 지금은 출근 시간인데……"
"걱정 마요."
'저 사람들은 출근 따윈 걱정하지 않으니까.'
자리를 잡고 짐을 푼 진호는 잼베 비슷한 악기를 통통 두드리며 시선을 더욱 끌어 모았다.
'그렇지. 이래야지. 자, 그럼 시작해 볼까?'
탕다다당! 탕다다라랑!
동겹고 경쾌한 선율이 허공을 울리자 진호는 이곳 모든 이들의 시선과 걸음을 붙들기 위해 입을 크게 벌렸다.
일단 시작은 영화 알라딘의 프린스 알리였다.
절로 발이 붙들린 사람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고, 나연석을 비롯한 제작진은 이마를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