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350화 (350/424)

15권 1화

1. 어메이징

"하아."

"하악."

잿빛의 이불이 덮인 침대 위, 알몸의 남녀가 뜨거운 신음을 내며 서로의 쾌락에 집중을 하고 있다.

"……오케이!"

조나단 감독의 컷 사인이 외쳐지자 진호는 자신의 몸 위에 올라타있는 알몸의 여성을 번쩍 들어 옆에 내려놓고는 굴러서 침대를 빠져나왔다.

촬영장에 웃음이 퍼졌다.

진호는 여성 에이미 샤크에게 이불을 덮어 주었다.

"괜찮아요?"

"……네."

"수고했어요."

너무도 흡족한 연기였다.

함께 호텔로 들어올 때 충격을 받은 엠마 샬롯을 향한 승리자의 눈빛과 순간 여자 친구가 있다는 걸까먹을 만큼 고혹적이고 섹시했던 침대 위에서의 연기.

그녀는 여태껏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게 이해되지 않을 만큼 재능이 무척이나 충만한 배우였다.

"그럼 가요."

"아,네."

무슨 일인지 뭔가 포기한 듯한 표정을 지은 그녀는 침대에서 내려와 촬영장 바깥으로 향했다.

"응? 어디가요? 모니터링 안 해요?"

"……네?"

진호는 깜짝 놀라는 그녀의 반응에 의아해하며 손짓을 하고는 조나단 감독에게로 향했고, 멍해져 있던 에이미 샤크는 이내 몸을 두른 이불을 주섬주섬 동여매며 진호에게로 향했다.

그렇게 모니터링이 시작됐다.

'여기가 이런 풍경이구나……'

단역 배우에겐 허락되지 않은 영역이자 그녀가 꼭 오고 싶었던 그곳. 괜스레 가슴이 떨렸다.

커다란 모니터 속에서 흘러나오는 그녀 자신의 연기를 이렇게 노컷으로 적나라하게 보는 것도 처음이라서 심장이 격정적으로 뛰었다.

"아흥!"

'핫!'

깜짝 놀란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옆을 바라봤다가 살짝 충격을 받았다. 진호와 조나단 감독 모두 눈빛이 차가웠기 때문이었다.

"스톱. 이 부분이 좀 부족한 것 같은데, 다른 각도로 찍어 보는 건 어때요? 신음 소리도 좀 비는 곳이 있는 것 같고."

"아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 못해 훌륭해. 어차피 2분 이상 끌어갈 신은 아니니까."

'이게 주연 배우와 감독의 대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만족스러워요?"

"네? 네, 네!"

"그래요? 흐음……"

모니터를 한참 동안 바라보던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미진하긴 하지만, 편집을 잘만 하면 아주 후끈하면서도 조지 오션이 성공이란 마약에 중독되어 가는 장면이 훌륭하게 나올 것 같았다.

진호는 에이미 샤크에게 손을 내밀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쉽지 않은 연기였을 텐데 이렇게 훌륭하게 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또 현장에서 봐요."

울컥.

그녀로서는 단 한 번도 듣지 못한 말, 단 한 번도 받지 못한 인정.

"네에!"

고개를 푹 숙인 에이미 샤크는 결국 눈물을 뚝뚝 흘리며 촬영장을 빠져나갔고, 사람들과 함께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진호는 정 실장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정 실장은 재빨리 에이미 샤크의 뒤를 쫒았고, 진호는 다시 모니터를 응시했다.

'쩝. 이런 신만 아니었다면 내가 직접 스카우트했을 텐데……'

명함을 직접 내미는 순간 엄청난 오해를 받을 상황이라 아쉬울 뿐이었다.

한편, 옷을 갈아입고 나온 에이미 샤크는 어느새 밝아 버린 라스베이거스의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얀 봉투가 그녀의 주먹 안에서 구겨졌다.

"난 틀리지 않았구나……. 정말 틀리지 않았어……"

"처음 뵙겠습니다, 미스 샤크."

"네? 어?"

분명 진호의 매니저였던 사람이다.

그녀의 머릿속에 '설마'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HU 에이전시 다미앙 지사의 매니저 파트, 치프 매니저 구호 정입니다."

'HU 에이전시! 치프 매니저!'

HU 에이전시는 그녀도 아는 세계적인 모델 에이전시였다.

"연기 정말 인상적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런데 이번에 본 다미앙 지사에서 신설한 배우 파트의 두 번째 배우가 되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에이미 샤크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 * *

에이미 샤크가 합류하면서 배우파트가 본격적으로 가동되었다.

진호는 운이 흘러넘치는 시나리오만 골라 미국 지부에 넘겼고, 에이미 샤크는 바쁘게 움직이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부르릉! 카가각!

떠날 때 입었던 셔츠와 청바지, 그리고 허름한 운동화를 신은 채 떠날 때 탔던 차에서 내린 진호는 놀란 눈으로 이쪽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정비소의 사장님이자 어린 조지 오션의 보호자였던 윌 패슨을 끌어안았다.

"어떻게 된 거야? 이 도시를 떠난 거 아니었어?"

"고향이 최고더라고요."

회한이 잔뜩 서려 있는 말투였다.

"……그렇지. 고향만큼 좋은 곳은 없지. 그런데 이쪽 아가씨는?"

"결혼할 사람이요."

진호는 엠마 샬롯을 한 팔로 끌어안았고, 그녀는 진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활짝 웃었다.

"반가워요, 윌. 조지에게 말 많이 들었어요."

"……아니, 떠난 지 얼마나 됐다고. 정말 라스베이거스는 최고의 도시인가 보군."

"하하. 가요."

"진짜 뭐가 뭔지……. 그래서 라스베이거스는 어땠는데?"

"음……. 관광지로만 쓸모 있는 곳?"

하늘 높이 올라갔다가 지옥까지 추락하고 다시 제왕이 되었다.

라스베이거스의 이면은 일반인이 살 곳이 아니었다.

'그래도 약간은 재미가 있었지. 이 사람이 곁에 있어 줘서 더욱 더.'

엠마 샬롯이 아니었다면 결코 그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진호는 더 힘을 주어 그녀를 안았고, 그렇게 셋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정비소 안으로 향했다.

"오케이, 커엇! 좋았어-!"

"와아아아!"

짝짝짝짝짝!

진호와 엠마, 윌 패슨도 모든 스태프들을 보며 손바닥이 터져라 박수를 쳤다.

그렇게 영화 '카지노'의 모든 촬영이 끝났다.

할리우드라고 해서 뒤풀이 장소가 휘황찬란한 곳은 아니었다.

평판 좋은 레스토랑을 빌려 술과 안주를 먹으며 떠들썩하게 놀 뿐이었다.

그래도 길고 길었던 몇 달 동안의 레이스가 끝나서 그런지 모두 밝은 표정으로 허리띠를 풀고 왁자지껄 떠들었다.

"장담하건데, 분명 카지노는 여태까지 동양인의 이미지를 모조리 부숴 버릴 영화가 될 거야."

"당연하지! 소스가 너무 좋잖아!"

"휴머니즘과 교훈도 듬뿍 담겼죠!"

"완벽히 미국스러운 영화였고, 완벽한 연기였어. 정말 같이 촬영해서 영광이었어, 지노."

"……넷 다 취했어요?"

술을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쥐구멍을 찾는 진호의 모습에 조나단 파블로, 메튜 데이먼, 윌 패슨, 엠마 샬롯은 웃음을 크게 터트렸다.

이후 이야기를 나누던 메튜 데이먼과 월 패슨은 다른 사람들과 술을 마시기 위해 자리를 떴고, 엠마 샬롯은 취해 버린 건지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그래서 차기작은 생각해 둔 거 있어?"

"이제 영화 촬영이 끝났는데, 뭘 벌써부터 차기작을 논해요?"

"음? 더 로드 오브 월 스트리트에서 연락 안 왔어? 시즌2 찍을 때가 넘었는데?"

진호는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나단 파블로는 충격을 받았다.

"말도 안돼. 존 리는 네가 아니면 안 되는 역할이잖아!"

"아마존이나 방송국에선 다르게 생각했나 보죠."

"……지노 너의 현금 동원력을 무시할 만큼 엄청난 자본이 투자 됐나 보군. 중국계 자본인가?"

아니다. 레이몬드 감독이 말하길 중동 쪽의 배우였다.

그러나 더 이상 말하기 싫은 진호는 입을 다물었고, 맥주를 들이 켠 조나단은 테이블을 내려쳤다.

"레이몬드 이 병신 같은 또라이 놈이 결국. 월 스트리트가 누구 덕분에 그렇게 떴는데!"

진호는 마치 본인의 일처럼 화를 내 주는 조나단 파블로가 무척이나 고마웠다.

"좋아. 기다려. 내가 곧 끝장나는 드라마 하나를 골라서 네게 보내줄 테니까!"

"으흐흐.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FUCK!"

조나단 파블로는 치미는 화를 참을 수 없어 일어났고, 진호는 볼을 긁적였다.

"그러면 쉬는 거야?"

"…… 역시 안 잤네. 내숭이 아주 그냥 막 생활이셔."

움찔 몸을 굳힌 엠마 샬롯이 배시시 웃었다.

그러다 이내 낯빛을 굳혔다.

"전에는 미안했어. 진심이야."

"……예전에 사과했잖아요. 됐어요. 그리고 그 질문에 답을 하자면 별다른 작품이 없는 이상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앨범 작업……. 아, 영화 OST 중 반절 이상을 작곡했지?"

"즉, 영화가 망하면 음악 활동도 망한다는 거죠. 흐흐."

"거짓말. 자신 있으면서."

"빙고."

웃음을 흘린 둘은 전보다 더 가까워지는 걸 느꼈다.

우우웅!

"응?"

테이블 위에 올려 둔 핸드폰 액정에 너무도 익숙한 이름이 떠올랐다.

진호는 몸을 일으키며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와, 이게 얼마 만이에요! 나 PD님! 그동안 잘 지내셨죠?"

이 늦은 밤 전화를 건 사람은 나연석 피디였다.

-아니. 잘못지냈는데.

"허어. 누가 우리 피디님을 힘들게 했을까요."

-약속 먹튀한 누가 힘들게 했지.

"에이. 먹튀는 아니죠! 하숙집 찍었는데!"

-……쳇!

진호는 그의 연락이 너무 고마웠지만, 포기하기로 했다. 지금은 미국에서 인지도를 쌓아야 하는 시기였다.

-진호야.

"네, 피디님."

-내가 너 사정 뻔히 아는데 한국으로 부르겠니?

진호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나연석은 세계를 돌아다니는 PD였다.

'그렇죠. 한국에는 부르지 않겠죠.'

그런 진호의 의심은 이어지는 나연석의 말에 여지없이 깨졌다.

-일단 내 말부터 들어봐. 이번에 미국 유명 방송국에서 합작 제의가 들어왔어. ABC알지? 영후랑 여정호도 함께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야. 아, 정호가 우리 방송국에 합류한 건 알지?

"당연히 알죠."

서정문 족장의 건강 악화로 인해 리얼 정글에 가다는 결국 폐지되었고, CP였던 여정호는 승진 심사에서 탈락하여 방송국을 옮겼다.

사내 정치에서 밀렸다고 했다. 그리고 박영후 PD는 나연석 사단으로서 어디까지 먹힐까의 메인 PD였다.

"그런데 그거 굉장히 불길한 조합인데요?"

여정호에 박영후, 그리고 나연석의 조합은 어벤져스에 버금가는 조합이었다. 출연자 굴리기의 어벤져스. 연예인으로서는 결코 섭외되면 안 되는 조합.

-진호야, 내가 정말 사랑하는 진호야.

"그렇게 다정하게 부르지 마세요. 내가 한두 번 속아요?"

-잘 속지도 않잖아.

맞는 말이다.

-솔직히 너도 땡기지? 나랑 정후, 영후의 조합이다? 너 이거 쉽게 오는 기회 아니다?

"……끄으응."

맞다. 이게 문제다. 분명 약을 파는 건데, 엄청 끌린다.

웃음과 휴머니즘 포인트를 기가 막히게 뽑아내는 3명의 조합인데, 기대가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렇기에 미국에서도 초대형 방송국인 ABC가 이들에게 합작 프로젝트를 제안한 것일 터였다.

속아서 구르는 건 정말 둘째 문제였다.

"그럼 미국 측 감독은 누군데요?"

'딱 이것만 듣고 판단하자. 이상한 감독이면 어쩔 수 없지만 포기……'

-그쪽에선 너랑 인연이 있는 조나단 파블로 감독이나 레이몬드 감독을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 레이몬드 감독이 그렇게 또라이라며?

"네?"

'누구?'

진호는 화들짝 놀라 멀리 떨어져 있는 조나단 파블로를 보았다.

'이 세 명의 조합에 조나단 감독님이나 레이몬드 감독님이 얹어진다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런데 레이몬드 감독은 시간이 안 될 텐데요?"

-응? 아닐걸? 내가 알기로 배우섭외 문제로 상부랑 마찰 빚어서 이번에 메가폰 내려놨다고 하던데?

'진짜?'

그건 몰랐다.

설마 한 진호는 좀 이따가 레이몬드에게 연락을 하기로 했다.

-아, 맞아. 너 월 스트리트에 출연 안 한다며? 어떻게 된 일이야?

"그런 일이 좀 있어요. 그나저나……"

화제를 돌리려 한 그는 곧 심각해졌다.

"아, 이거 진짜 쥐약인데. 진짜 독약인 게 분명 한데……"

-진호야, 내가 설마 널 나쁘게 되라 하겠니? 나 못 믿어? 그리고 내가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이 말 너한테 처음 하는 거다? 대한민국 모든 연예인 중 너한테 처음 하는 거야.

"……아, 진짜! 알았어요. 회사랑 상의하고 연락드릴게요!"

-흐흐! 그렇지! 우리 사랑스런 진호라면 이렇게 대답할 줄 알았지!

"아직 한다고 안 했습니다! 끊어요!"

전화를 끊은 진호는 마른세수를 했다.

"아, 진짜 미치겠네."

진짜 쥐약에다 독약인데, 안 먹을 수가 없는 제안이었다.

거기다 예능 사상 최대의 프로젝트였다.

"무슨 일이야?"

진호는 잠시 갈등하다가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나! 나 출연하고 싶어! 나 꽂아줘!"

"엠마를 왜 꽂아 줘요. 내가 꽂아준다면 에이미 꽂아 주지."

"왜! 내가 어때서!"

생각 좀 하라는 듯 웃어 준 진호는 결국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네, 다미앙 씨."

* * *

결국 진호는 출연하기로 결정했다.

공백기를 지울 수 있는 총 한 달반의 초장기 프로젝트라서 더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나연석, 박영후, 여정호의 조합은 정말로 끔찍했다.

"어디를…… 어떻게 한다고요?"

"아랍에미레이트를 도보로 관통한다고. 원래 미국을 할까 싶었는데, 그건 좀 너무 쉬운 것 같아서……. 아무튼 중간중간 미션이 있을 거고, 최종 목적지는 두바이! 미션들이 좀 재밌을 거야. 우리만 믿어!"

'이야-.'

정말 감탄만 나왔다.

"……그래서 돈, 아니 생존자금은 얼마나 주시려고요?"

"에이, 우리 진호한테 돈이 무슨 필요가 있어? 어때? 재밌겠지?"

진호는 싱긋 웃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켰다.

"미국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조심히 돌아가세요."

"……진호야! 너 도장 찍었다!"

진호는 바짓가랑 이에 매달리는 나연석을 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게요. 내가 왜 사인부터 했을까요……'

정말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손목부터 분질러버리고 싶은 만큼 눈앞이 캄캄했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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