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권 22화
키기긱! 부르릉!
"……와아아!"
"그렇지!"
짝짝짝짝짝!
차에서 내린 진호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박수에 호응하여 양팔을 하늘 위로 번쩍 들었다.
잠도 제대로 못자고 9박 10일동안 꼬박 매달려온 끝에 67년형 쉘비 머스탱 GT 500을 드디어 소생시킨 것이다.
그리고.
'얻었다!'
키잉!
순간 시야가 좁아졌다가 넓어지며 감각에 작은 혼란이 생겼다.
하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이런 거였구나. 자동차가 말을 건다는 게!'
진호는 아직 녹조차 제대로 벗기지 않은 자동차를 쓰다듬었다.
자동차가 말하고 있다.
얼른 녹을 벗겨 달라고, 얼른 광택을 내달라고, 얼른 달리자고.
그리고…… '어느 부분이 부족하다고'.
엔진의 점화 포인트, 배기 흡기의 양과 속도, 공기 저항의 차체라인 등 자동차가 어느 부분이 부족하고 답답한지 말해 주고 있다.
이 부분만 개선된다면 더 빨리 달릴 수 있다, 이 부분만 개선된다면 더 안전할 수 있다 등을 말이다.
'이러니 세계 최고의 자동차를 만들었지.'
이 스토리의 주인공은 결국 말년에 영화 제5원소에서 나오는 완벽한 자동주행 시스템을 갖춘 호버 자동차를 만들게 된다.
'너무 쉽게 알아차리잖아.'
"수고했어, 지노."
윌킨 파슨스가 대견한 눈으로 진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동차 정비에 관해 먼지 한 톨만큼도 지식이 없던 진호가 약20일 만에 웬만한 자동차 정비사못지 않은 능력을 가지게 됐다.
물론 윌킨 파슨스의 가르침이 대단하기도 했지만, 진호의 습득 능력과 노력은 정말 경이로웠다.
'확실히 똑똑한 사람은 다르군.'
진호는 하루에 3권씩 자동차 정비에 관한 책을 돌파했다. 제아무리 이 일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할지라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하.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제 진짜 시작이죠."
진호는 차체를 통통쳤다.
"도색을 해야 진짜 자동차죠."
"……하핫! 그래, 맞는 말이야. 그러면 준비를 해 오지."
"아, 저도……"
윌킨 파슨스는 고개를 저으며 조나단 파블로와 메튜 데이먼을 가리켰다.
진호가 정말 자동차를 소생 시킬 거라고는, 그것도 윌킨 파슨스가 도움을 줬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해낼 거라고는 생각도 못한 둘은 얼떨떨해하고 있었다.
그러다 조나단 파블로는 두 눈을 번쩍 뜨며 다가와 진호의 손을 강하게 잡았다.
"잘 했어, 지노!"
영화가 개봉한 후 진호가 차를 소생시키는 장면을 찍은 메이킹필름을 선보인다면 꽤 괜찮은 홍보 수단이 될 것 같았다.
"넌 정말……"
조나단 파블로는 진호의 목 주변을 만지거나 볼을 잡아당겼고, 진호는 웃음을 터트렸다.
"인간 맞으니까 그만하세요."
"……믿기지 않으니까 그렇지! 바로 도색할 건가?"
"그래야죠. 물론 이 자동차에 시동을 거는 모습부터 찍어야 할 테지만요."
맞는 말이었다.
"하하하하하! 자, 촬영 준비합시다!"
조나단 파블로가 물러나자 메튜 데이먼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지으며 차를 어루만졌다.
"이제 차가 고장 나면 지노를 부르면 되는 건가?"
"푸하핫! 가요. 촬영해야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접근했지만, 그의 엄청난 재능에 욕심이 생겨 계속 머무르며 조지 오션을 꼬드기던 라이너스 캘드웰, 메튜 데이먼은 자동차를 소생시킨 진호가 짓는 미소에 모든 걸 포기 하고는 돌아서려고 한다.
그 순간 진호는 그런 그를 붙잡는다. 그동안 메튜 데이먼이 내뱉은 온갖 감언이설로 인해 라스베이거스라는 곳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즉, 조지 오션의 인생이 커다란 분기점을 맞이하는, 아니 조지 오션의 인생이 아예 바뀌어 버리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었다.
둘은 그 중요한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 * *
사막을 달리는 은색의 67년형 쉘비 머스탱 GT 500.
그 주위를 몇 대의 차량들이 호위하는 듯 함께 달리며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다.
"정말 말도 안돼."
눈을 감은 메튜 데이먼이 분노를 토해 냈다.
오디오를 쓰지 않는 장면이기에 그의 입은 신랄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떻게 단 하나의 분야에서도 노미네이트가 되지 않을 수가 있는 거지? 빌어먹을, 골든글로브!"
올 1월에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진호는 단 한 분야에서도 노미네이트되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더 로드 오브 월 스트리트가 노미네이트되면서 겨우 체면을 지켰다.
진호는 몇 달 전 이야기를 이제야 말하며 화를 내는 그를 어이 없다는 듯 보았다.
"에미 어워드는 결코…… 제기랄!"
작년 9월에 열린 에미 어워드에서도 마찬가지였다는 걸 떠올린 메튜 데이먼은 눈을 떠서 진호를 보았다.
"미안하다, 지노. 정말 미국인들을 대표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할게. 아무리 개선하려고 노력하려고 해도……"
메튜 데이먼은 한숨을 내뱉었고, 진호는 씁쓸히 웃었다.
"괜찮아요. 제가 부족했던 탓이죠, 뭘."
아니다. 화가 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더 로드 오브 월 스트리트는 아주 좋은 성적을 거뒀고, '존 리'는 꽤나 사랑을 받았다. 물론 더 성적이 좋은 드라마가 있고, 또 더 매력적인 캐릭터도 있었기에 작은 상 정도만 바랐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아니었다. 당시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몰랐다.
'하지만 다음은 정말 다를 거야. 내 연기에 그 어떤 흠도 잡지 못하게 할 테니까.'
이런 마음을 먹었기에 이 스킬을 얻은 것이다. 사소한 부분에서도 완벽해지기 위해서.
"빌어먹을 인종 차별!"
'그래. 인종 차별 따윈 할 수 없도록 완벽하게.'
다시 다짐을 하는 진호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치익! 거기 둘, 잡담 말고 연기하는 게 어때? NG잖아.
"하하. 옙.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존."
-……그럼 5분 쉬었다가 다시가지. 저녁은 라스베이거스에서 먹어야지.
"옙!"
둘은 다시 몰입을 하였고, 이후 단 한 번 만에 통과가 되었다.
그렇게 도착한 라스베이거스.
진호는 저 멀리 보이는 향락의 도시를 보며 눈을 빛냈다.
* * *
"벨라지오와 윈, 샌즈라고요?"
라스베이거스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벨라지오.
그리고 라스베이거스의 수 많은 카지노들 중에서도 그 규모와 질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윈과 샌즈.
벨라지오는 카지노 관련 영화에 자주 등장했기에 예상했지만, 윈과 샌즈까지 촬영장소로 섭외했다는 소식에 진호는 깜짝 놀랄수밖에 없었다.
그건 메튜 데이먼도 마찬가지였다.
"휘유. 그 고상한 억만장자들이 허락을 할 줄이야…… 존, 역시 능력이 좋은데요?"
메튜 데이먼의 그 말에 조나단 파블로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그도 이렇게 쉽게 그곳들을 섭외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탓이다.
벨라지오만 봐도 그렇다. 제아무리 진호가 벨라지오 분수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다지만, 그것과 벨라지오 호텔 카지노에서 영화 촬영을 허락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라스베이거스 최고라는 자부심과 격에 어울리는 '배우'라는 자격을 갖추지 않으면 결코 촬영을 허락하지 않는 곳이 벨라지오이기 때문이다.
가수로서의 진호라면 부족함이 없겠지만, 배우로서는 완전히 별개로 봐야 하기에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윈과 샌즈는 더 하다. 여태껏 그곳들을 배경으로 찍은 영화가 한 손에 꼽을 정도이기에 이렇게 단번에 허락을 받을 거라곤 생각못했다.
'섭외 요청을 넣자마자 바로 허락이 떨어졌지.'
메튜 데이먼이 이 영화에 출연한다는 말은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렇다면 역시……'
조나단 파블로는 진호를 바라보았다.
"네?"
"…… 아니야. 아무튼 내일은 윈에서 첫 신을 찍을 예정이니까 그렇게 알고 있도록 해."
'그래, 아니겠지.'
조나단 파블로는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하며 몸을 일으켰다. 쉬어야 하는 배우들을 더 이상 붙잡고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그가 떠나자 메튜 데이먼은 기지개를 쭉 폈다.
"으으으! 하아, 피곤하다."
진호는 진심으로 피곤해하는 메튜 데이먼을 보며 어이없어했다.
"아니, 오늘 뭘 했다고요?"
오늘 찍은 신은 겨우 15컷밖에 안 된다. NG가 난 것까지 합해도 촬영 시간은 고작 5시간에 불과했다.
이런 진호의 말에 메튜 데이먼은 크게 웃었다.
"5시간이면 많이 찍은 거지! 내 나이를 생각해 봐!"
"아, 그렇죠. 메튜도 60대죠."
"아직 50대야!"
콰악!
메튜 데이먼의 주먹이 진호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악! 폭력 반대!"
다급히 물러나는 진호의 모습에 실실 웃은 메튜 데이먼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15컷을 고작 5시간 만에 찍다니……'
할리우드에서 하루 평균 찍는 신은 고작해야 10컷에 불과하다.
엑스트라나 특수 효과를 대규모로 동원한다면 고작해야 3컷도 못 찍을 때도 허다하다. 이런 할리우드에서 진호의 촬영 속도는 분명 오버페이스였고, 이례적이었다.
'정말 괴물이 등장했고, 그래서 더 미안하군.'
골든글로브와 에미 어워드의 행태에 관계자도 아니건만 쥐구멍에 숨고 싶을 만큼 수치스럽고 미안했다.
'산드라 조의 수상으로 인해 나아졌나 싶더니만…… 쯧, 아무래도 안 되겠군. 이건 결코 팍스아메리카나 그레이트 아메리카가 아니야!'
정말 위대한 미국이 되기 위해서는 그 어떤 편견도 있으면 안된다고 마음을 먹은 메튜 데이먼은 진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일어났다.
'어차피 평생 놀고먹을 돈은 있어!'
"그럼 난 이만 쉬러 가지. 가족들과 맥주를 마시고 푹 자야겠어."
메튜 데이먼이 핸드폰을 흔들자 진호는 얼굴을 구겼다.
"에이, 부러워."
"……하하하하핫! 그럼 내일 보자고, 지노."
"예, 뭐. 수고하세요."
그렇게 메튜 데이먼이 멀어지자 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진짜 여기 할리우드는 여유롭다니까. 어떻게 겨우 5시간 찍은 걸로 저렇게 피곤해할 수 있지?"
한국은 10시간에서 12시간 촬영이 기본이다. 그것도 여러모로 말이 많아서 굉장히 줄어든 거다.
"흠, 그런데 가족들과 영상 통화를 하는 게 그렇게 전투적으로 생각해야 할 일인가?"
'굉장히 심각해 보이던데……'
그런데 또 안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의아해하던 진호는 돌연한숨을 내쉬었다. 촬영이 너무 빨리 종료되면서 시간이 엄청 애매하게 남았기 때문이다.
"……윈 호텔이나 놀러 가 볼까? 사전답사도 할 겸?"
고개를 끄덕인 진호는 몸을 일으켰다.
카지노를 한 바퀴 둘러본 후 커피 한잔 마시고 돌아와 새로이 애마가 된 쉘비 머스탱을 점검하면 얼추 잘 시간이 될 것 같았다.
진호는 핸드폰을 들었다.
"네, 정 실장님."
* * *
"아니, 내가 무슨 10살짜리 애도 아니고……"
"시끄러. 네가 또 무슨 사고를 칠 줄 알고?"
"……콱 삐뚤어질까 보다."
"그러기만 해 봐. 너 죽고 나죽는 거다."
"쳇. 음?"
윈 호텔의 로비에 들어서며 정실장과 아옹다옹하던 진호는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일단의 무리에 얼른 옆으로 비켜섰다.
"어? 저 사람은?"
진호뿐만 아니라 정 실장마저무리의 선두를 보곤 깜짝 놀랐다. 윈 리조트의 창시자이자 억만장자인 스티븐 윈. 그 거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눈이 마주친 스티븐 윈은 살짝 놀랐다가 이내 고개를 돌리곤 길을 갔고, 진호는 이 우연한 만남에 머리를 긁적였다.
"진호야, 가서 인사해야 되지 않을까?"
"늦었어요."
"야! 그래도 너 여기서 촬영하잖아……"
"저 정도 위치에 계신 분이라면 제가 누군지조차 모를걸요? 그리고 지금 다가가면 해프닝 생길거예요. 저기 우락부락한 경호원들이 막아서."
"아……"
갈등하던 정 실장은 이내 포기 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왜인지 화가 솟아 미간을 좁혔다.
"진호야, 더 노력하자. 저런 사람이라도 널 먼저 알아보고 인사할 수 있도록! 알았지?"
"네. 그럴게요."
그가 어느 부분에서 화가 난 건지 알아차리게 되어 웃음이 터질 뻔한 진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 내 연예인이 뭐가 부족해서 모를 수가 있어? 어?"
결국 웃음을 터트린 진호는 정실장의 손을 끌며 안으로 향했다.
'흠. 그런데 스티븐 윈 회장이나 그 옆에 있던 분도 날아는 눈치던데……. 에이, 착각이겠지. 여든 넘은 분이나 중동 사람이 날 어떻게 알아?'
아무리 전 세대를 아우르는 가수가 됐다지만, 그래도 한계는 있는 법이었다. 중동에도 지니어스 지부가 있다지만, 스티븐 윈이라는 엄청난 거물과 나란히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 자신을 알 리가 없었다.
한편 로비를 나선 스티븐 윈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저 청년이었군. 회장님께서 눈여겨보는 연예인이.'
그는 윈 호텔의 진정한 소유주이자, 창 가문의 가주인 테드 창이 한 말을 떠올렸다.
'회장님뿐만 아니라 화교 전체가 지켜보는 아이라고 했던가?'
조나단 파블로가 윈 호텔을 촬영장소로 쉽게 섭외할 수 있었던 건 테드 창의 입김이 덕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윈은 저 청년 덕분에 더 부흥할 거라고도 했지……'
"그래, 이제야 기억나는군. 진호 리!"
"음? 그를 아십니까?"
전통 의상인 하얀색 토브를 입은 50대 아랍계 남자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알다마다요. 진호 리는 우리 나라에서도 꽤 유명합니다. The J란 작품을 우리 나라에서 찍으면서 유명해졌죠. 아마 두바이였을 겁니다. 그리고……"
아랍계 남성은 스티븐 윈의 귀에 대고 은밀히 말했다.
"본 왕가의 공주님께서 엄청난 팬이십니다. 왕비님께서도 저 사람이 작곡한 피아노 연주곡은 꼭 구매를 하시고요."
"아……"
"아, 맞아! ……음, 미안하지만 잠시 제게 시간을 줄 수 있겠습니까?"
대충 남성의 뜻을 알아차린 스티븐 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죠."
"감사합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닙니다. 저와 함께 가시죠."
"음?"
"저와 함께 가신다면 말을 하시기가 더 편할 겁니다."
"오! 그래 주시겠습니까?"
스티븐 윈은 사우디에서 찾아 온 엄청난 큰손을 위해 얼마든지 시간을 투자할 수 있었다.
그는 해맑게 웃으며 돌아서는 남성의 모습에 눈을 가늘게 떴다.
'부흥을 한다더니…… 허어.'
그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