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345화 (345/424)

14권 21화

7. 너무 쉬운 일

웅성웅성.

비몽사몽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지 못하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금속 급식판 하나를 들고 줄을 서있다.

개중에는 조나단 파블로도 있고, 윌 패슨, 윌킨 파슨스도 있다.

"후아암! 오늘 메인 메뉴는 뭡니까?"

5톤 트럭을 개조해 만든 커다란 푸드 트럭에 앉아 샐러드를 담아주던 50대의 멕시코 출신 아주머니가 살짝 당황했다.

분명 듣기는 했는데, 선뜻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어려운 이름이었다.

"'응심이'에요, 감독님."

"온신리?"

커다란 조리통 앞에 있던 진호가 씩 웃었다.

"말린 멸치와 밴댕이 육수를 베이스로 하여 감자로 만든 걸쭉한 스튜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아직 아침은 날이 쌀쌀하잖아요. 그래서 한번 만들어 봤어요."

"오, 감자 스튜."

"한 그릇 드시면 잠이 확 깨실걸요?"

"지노가 만든 것일 테니 그렇겠지."

"하하. 자, 여기요."

하얀 플라스틱에 담긴 투명한 갈색 옹심이에서 올라오는 따끈한 김과 말린 어류의 센 냄새에 얼른 걸음을 옮겨 폐차장에 펴 놓은 테이블 중 빈자리에 앉아 한 입 먹은 그는 눈을 번쩍 떴다.

"……크어어-!"

"크아흐!"

"어허!"

어제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속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적당히 비리면서도 담백한 국물이 잠을 쫓아내고 있었다.

"어디……"

그는 엄지손가락 한 마디만 한 크기의 건더 기를 후후 불어 입안에 넣고 씹었다.

"흐! 흐!"

쫀득쫀득 이에 달라붙는 생소한 식감과 뜨거움에 당황했던 그는 이내 고개를 모로 기울이더니 신기하다는 듯 옹심이가 담긴 그릇을 보았다.

"이거 재밌네……"

페인트가 아닌가 싶을 만큼 끈적하면서도 걸쭉한 국물은 또 어떤가. 그게 옹심이의 매력이라는 것을 모르는 조나단 파블로는 생소한 한국 음식에 다시 한번 빠져들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한 그릇 후다닥 해치운 그는 웅심이 그릇만 들고 다시 줄을 섰다.

"그렇게 마음에 드세요?"

"장담하지. 이 감자 스튜는 모든 어머니 요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거야."

"하하하. 마담들도 그렇게 말하시더라고요."

1차 배식이 끝나 다른 사람과 바톤 터치를 하고 조나단 파블로 맞은편에 앉은 진호가 흐뭇하게 웃었다.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흔한 식재료인 감자는 의외로 그걸 메인으로 삼는, 그것도 집에서 손쉽게 할 수 있는 요리가 몇 가지 없다. 기껏해야 감자 수프나 감자 샐러드, 감자구이가 전부다.

그것들도 남으면 처치 곤란인데, 이 옹심이는 그렇지가 않다.

육수를 봉지에 담아 냉동실에 넣어 놓으면 두고두고 먹을 수가 있었다. 감자 옹심이를 만드는 것도 강판에 감자를 갈아 전분으로 만드는데 시간과 정성이 들여야 할 뿐, 전날 자기 전에 해 놓기만 하면 아침에 뚝딱 만들어 버린다.

대표적인 아침 메뉴인 식빵과 베이컨, 계란 프라이를 만드는데 들이는 시간과 엇비슷하다. 그런데 그것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속이 든든하면서도 '건강'하다.

한 번에 대량으로 살 수 있으면서도 장기 보관이 가능한 멸치나 밴댕이는 또 어떤가. 단순히 프라이팬에 볶아 내놓기만 하면 썩 괜찮은 맥주 안주다.

누군가의 어머니고, 부인인 아주머니들은 메모까지 해 가면서 옹심이를 배웠다.

"한국 요리는 정성이다는 말을 누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정말 잘 만들었어."

"으흐흐흐흐. 많이 드세요."

'이런 게 국뽕이지!'

고개를 힘차게 끄덕인 조나단 파블로는 한 입 크게 먹고는 하아하아 거리며 즐거운 뜨거움을 만끽했다.

"아, 정비에 대해 얼마나 배웠지?"

"기본도 못 됐죠. 어렵더라고요."

오늘 날이 밝는 순간 1차 해금조건을 모두 완수하면서 자동차의 구조에 대해 대충 알게 됐지만, 아직 멀었다.

'이제 문제는 2차 해금인데……'

"흠, 그래?"

'그런데도 그 정도라는 말이지……'

진호가 윌킨 파슨스에게 정비를 배우면서 그가 하는 대사에 힘이 붙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만족스러웠던 발성이 이제는 눈을 감고 들으면, 진호가 정비공인지 아님 배우인지 헛갈릴 정도였다.

"알았어, 천천히 해. 어차피 여기서 22일은 더 촬영해야 하니까."

역시 할리우드였다. 스케줄이 무척이나 여유로웠다.

"네."

'어제 말하기는 했지만……. 으음.'

윌킨 파슨스는 고민해 본다고 했지만, 깐깐한 그의 성격이라면 안될 확률도 높았다.

안 된다면 따로 구입해서 몰래하면 그만이었다.

후룩!

잘 끓여진 옹심이를 한 입 먹는 진호에게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의 땀을 닦으며 만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윌킨 파슨스였다.

"뭐해? 가야지. 차 안 고를 거야?"

그는 진호에게 말을 놓기로 했다.

"……어, 진짜요? 그래도 돼요?"

윌킨 파슨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망가진 차를 고쳐 가면서 정비에 대해 아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니까. 우리 정비소에서도 어느 정도 기본을 갖춘 직원들에게는 그 일을 시키지."

"오오!"

운이 좋았다.

남은 국물을 단숨에 들이켠 진호는 몸을 일으켰다.

"가시죠! 그렇지 않아도 고른게 있어요."

"하핫! 역시 그랬군? 뭐지?"

"67년형 쉘비 머스탱 GT 500!"

"허어. 그 숨겨 둔 아가씨는 또 어떻게 발견해서는! 가지!"

"네!"

진호와 윌킨 파슨스는 그렇게 사라졌고, 남겨진 조나단 파블로는 딱딱하게 굳었다가 옹심이가 모두 식은 것도 모자라 모두가 식사를 마친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머릿속을 휘저은 어떤 아이디어때문이었다.

그는 다급히 메모지를 꺼내어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후아. 좋아. 이러면 주인공의 행보에 더 의미가 담길 수 있겠어."

폐차된 차를 근사하게 소생시켜 라스베이거스로 향한다.

나락에 빠진 인생이 끝나고 좋아 질 거라는, 나락에 빠진 인생도 노력하면 좋아 질 수 있다는 암시를 줄 수 있었다.

조나단 파블로는 진호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감독에게 영감을 주는 배우라니……. 정말 뮤즈로군."

'엄마의 고물 자동차는 예전에 폐차시키고, 다른 자동차를 소생시켜 엄마에게 주려고 했다는 부분도 넣어야겠군.'

하지만 어머니는 예전에 죽었고, 그 자동차는 다시 폐차장 한구석에서 잠들어 버렸다.

죽은 아빠의 지인이 찾아 오기 전까지 말이다.

'포드가 정말 좋아하겠어.'

포드는 이번 영화의 투자자 중 한 곳이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진호가 그 고물 자동차를 뜯기 전에 말려야 했다.

차를 고르는 부분부터 찍어야 했기 때문이다.

재빨리 일어났던 조나단 파블로는 갑자기 주위가 소란스러워지자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렸다가 이내 환하게 웃었다.

"왔나?"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50대 톱스타의 걸음을 방해할 수 없어 분분히 물러난 사람들이 일으키는 경악과 충격의 파도가 조나단 파블로의 미소를 더욱 짙게 만들었다.

"오랜만입니다, 존."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 영화에 출연해 줘서 고맙네. 오느라 힘들지 않았나?"

"새롭게 탄생할 할리우드의 스타를 떠올리니 힘든 줄 모르겠더군요."

이미 북미 전체에 지노앓이라는 신조어를 퍼트린 빌보드의 톱아티스트인 진호. 연기력도 대단한 진호이기에 그는 제의를 받자마자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조나단 파블로 가 보낸 진호의 필모그래피 작품들을 보곤 반해 버렸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제 조카는 어디 있습니까? 그 잘 생긴 얼굴을 얼른 보고 싶군요."

"따라오게. 보면 바로 알거야. 자네의 예상보다 더 잘 생겼다는 걸!"

"하하. 정말 기대되는데요?"

그는 짙은 기대감을 가지며 걸음을 옮겨 정비소에 도착했다.

기이잉! 치이잉!

시끄러운 소리가 가득한 정비소 안으로 들어온 그는 눈을 빛냈다.

'단숨에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음?'

그는 의아해하며 조나단 파블로를 봤다.

"여기에 없는 것 같군요."

조나단 파블로도 살짝 당황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런 것 같았다.

"아니야. 분명 여기 있을……아, 저기 있군!"

"어디요?"

"따라오게."

아무리 봐도 없는데 따라오라기에 미간을 좁히면서도 따라갔던 그는 점점 목적지에 다가갈수록 당황해 갔다.

'부, 분명 아까는 안 보였는데?'

약간은 구석진 곳이라지만, 정비소 입구에서는 훤히 보이는 장소였다.

'이건 대체? ……설마?'

그의 머릿속에 하나의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메소드! 그게 이 정도로 깊다니! 이제 20대라고 들었는데!'

할리우드에 괴물이 등장한 것이다.

그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지노!"

"네?"

2차 해금 조건인 '폐차장에서 차구입하기'를 끝내고, 3차 해금 조건이자 습득 조건인 '구입한 차 소생시키기'에 돌입한 진호는 엔진를을 살피다 벌써 스탠바이 시간인가 하고 고개를 돌렸다가 그대로 굳어 버렸다.

할리우드의 거물, 새로운 본 시리즈 등 너무도 유명한 인물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진호가 예상한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메튜 데이먼?"

그, 메튜 데이먼인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우리 처음 만나는 거지? 만나서 반갑다. 앞으로 내가 네 삼촌이야, 조지 오션."

조지 '오션'. 그랬다.

극중 진호의 아빠는 오션스 시리즈의 주인공이자 리더이며 전설의 도둑인 대니 오션, 대니얼 클루니였다.

"헐?"

* * *

"네 아빠는 정말 엄청난 도둑이었지."

"도둑이라……. 시시한 사람이었네요."

어느 날, 옛날에 죽었다던 아버지의 지인이라고 찾아온 메튜 데이먼의 말에 진호는 심드렁했다.

메튜 데이먼은 발끈했다.

자신의 우상이 깔아뭉개졌기 때문이다.

"네가 모르는 것 같은데 네 아버지 대니 오션은 정말 엄청난 도둑이었어! 그가 하루 만에 훔친 돈이 6억……"

진호는 그의 가슴을 치며 실소를 지었다.

"이딴 게요?"

"음?"

메튜 데이먼은 진호의 손에 들린 손목시계를 보곤 경악했다.

이건 극 중 오션스의 멤버인 라이너스 캘드웰이 아니라 진짜 진심으로 놀란 것이었다.

"그, 그걸 언제……"

"이봐요, 미스터 캘드웰. 난 편모가정에서 자랐고, 왜소한 동양인이었어요. 날 보호해 줘야 할아버지란 작자는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없었고요. 그런 내가 이 좆같은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안 해 본일이 있을 것 같나요? 유일한 보호자인 엄마가 17살 때에 그 거지 같은 고물차와 함께 하늘로 사라져 버린 원숭이가?"

"……."

"늦은 밤 이 도시에서 가장 큰저택에 혼자 침입해 아무도 몰래금고 속 금괴를 들고 나온 적도 있고, 페라리를 훔쳐 판 적도 있어요. 혹여 공부를 잘 하면 선생들에게 보호받을 수 있을까 전교 1등을 한 적도 있죠. 그렇게 다 해본 내 결론을 말해 줄까요? 다 시시했어요. 마음의 양심만 조금 무시하면 너무 쉬운 일들이거든요. 보람도 없고. 아, 공부는 아니에요. 컨닝 같은 거 안 해도 쉬웠어요."

메튜 데이먼은 입을 열지 못했다.

진호는 그런 그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6억 달러? 와, 큰돈이네요. 하지만 엄마랑 약속했어요. 그딴 시시한 범죄 따위로 돈 벌지 말라고.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진호가 어깨를 친 순간 메튜 데이먼은 재빨리 손목을 보았다. 어느새 다시 손목시계가 끼워져 있었다.

"전혀 궁금하지 않았던 아버지 소식을 알려 줘서 고맙고, 먼 길오셨으니 관광이나 하다 돌아가세요. 이 도시는 너무 조용해서 관광하기가 좋거든요."

오일이 잔뜩 묻은 수건을 어깨에 걸친 진호는 몸을 일으켜 정비소로 향했다.

그런 그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6억 달러? 그런 돈을 벌었는데도 우리를 안 찾아 왔다고? 역시 내 예상처럼 좆같은 인간이었네."

"……오케이, 컷-! 좋아 -! 쉬었다가 바스트 샷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스태프들은 오늘도 대단한 진호의 연기에 숨을 헐떡였고, 메튜 데이먼은 튕기듯 일어나 날 듯이 달려 왔다.

"와우! 이봐, 조카! 이거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너 도둑이었어? 모델이 아니라?"

"하하."

'스킬 때문이죠.'

[스킬: 괴도 루팡]은 이런 잔재주도 부릴 줄 알았다.

"예전에 도둑 관련 영화를 찍으면서 익혔어요."

"아, 더 씨프. 봤어."

메튜 데이먼은 별거 아니라는 듯 한 진호의 모습에 약간 심각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실제로 이렇게 네 연기를 보니 조지 오션이 왜 도둑질에 심드렁해하는지 이해할 것 같아."

"그렇죠. 조지 오션은 수 많은 매력과 재능이 함축된 대니 오션의 진화판이니까요.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도 얻는 거라곤 돈밖에 없는 도둑질보다는 같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도 손님의 미소를 볼 수 있는 정비공이 조지 오션에게는 훨씬 재밌고 보람된 일인 거예요."

"2만여 개의 변수."

"네. 하나하나 뜯어내면서 아픈 부분을 찾아 낼 때는 성취감마저 있죠."

"……멋지군. 이런 조지 오션이 카지노라는 신세계에 빠지게 된다면?"

"카지노는 불법이 아니고, 운이 지배하는 곳이죠. 조지 오션에게는 난생 처음으로 맞이하는 벽이 될 거예요."

"하지만 곧 성공하게 되겠지. 그게 주인공이니까."

부르르!

메튜 데이먼은 진호, 아니 조지 오션이 카지노에서 할 활약을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이거 이 역할을 받아들이기로 한게 천만다행이군!'

아니었다면 오션스의 멤버이자, 아이언맨2부터 대령으로 합류했던 론 치들이 이 역할을 맡았을 것이다.

대박을 터트릴 게 분명한 이 영화를 말이다.

'이건 오션스의 프리퀄 영화 따위가 아니다!'

오션스는 아마 이 영화의 프롤로 그 정도에 불과하게 될 수도 있었다.

"바스트 샷 촬영 들어갑니다! 지노! 메튜! 준비해 주세요!"

"예!"

둘은 얼른 다시 그 자리에 앉으며 감정을 잡아 갔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