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권 20화
상을 탔다는 감격보다는 일단 무대로 향하는 게 먼저 였다.
정신없이 시상대로 걸음을 옮긴 진호는 트로피를 넘겨주며 자신을 끌어안은 카밀라 카베스의 온기를 느끼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상을 탔다는 걸 인식하게 되었다.
"축하해, 지노."
"…… 고마워, 카밀라."
그렇게 시상자가 물러나고 몸을 돌린 진호는 헛숨을 삼켰다.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장을 가득 채운 가수들이, 가요계 관계자들이 오직 진호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전 시상자로 섰을 때의 짜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벅찬 감격이 웅웅 가슴을 먹먹하게 울려 갔다.
"솔직히……. 후우, 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고국에선 작은 성공을 거뒀다고 해도 이 빌보드에서는 애송이였기 때문입니다. 저기 마돈나의 입버릇처럼 말이죠."
삐뚜름 비틀어지는 마돈나의 장난기 가득한 얼굴에 벌렁벌렁 뛰던 심장이 약간은 차분해진다.
"마돈나와 케이지, 두 거장이 너무도 큰 행운을 베풀어 줬다고 해도 저는 언제나 도전자일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더 열심히 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정이란 게 노력을 한다고 모두 알아봐 주던가요. 그런데 이 노력을 알아봐 주었습니다. 지레 포기했던 이 상을 제 손에 쥐어 주셨습니다."
진호는 상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내 지니어스, 다미앙 씨, 장경아 지부장님, 내 매니저 정구호 실장님, 경호원 월터.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의 이런 저를 세상에 낳아주시고, 이렇게 존재하게 해 준 6.25 참전용사분들, 재향군인회분들. 감사합니다. 더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은 사람은 너무도 많지만, 시간상 여기서 말을 줄여야겠네요. '엄마! 아버지! 나 그래미에서 상 탔어요!'"
마지막 말은 한국어로 크게 외친 진호는 사람들을 보며 짓궂게 웃었다.
"이상 중고 신인 이진호였습니다! 지금까지 그래미 어워드를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후로는 상타지 마-!"
"……푸하하하핫!"
"휘이이이익!"
상을 머리 위로 번쩍 든 진호는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자리로 복귀했고, 마돈나와 케이지는 수고했다는 듯 진호의 어깨를 툭툭쳤다.
뒤늦은 감사의 포옹을 그들과 한 진호는 모든 욕심과 미련을 내려놓고 편안히 무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잠시 후.
"어, 저 또 왔습니다?"
그래미 어워드가 웃음바다가 됐다.
이날 진호는 놀랍게도 최고의 신인상과 베스트 팝 솔로 앨범상을 동시에 석권하면서 빌보드에 큰파동을 일으켰고, 전 세계 모든 음악 차트에서 역주행이 일어났다.
* * *
그래미 어워드 2연패! 장하다, 대한의 건아!
다시 빌보드에 군림한 한국인!
솔로여서 더 값졌다! 이 세상 최고의 아티스트 이진호!
정부, 예체능특기자 병역면제 특례 개정 움직임?
세상에 한국을 알리다!
진호의 약진은 한국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모든 언론들은 진호의 성공을 다뤘고, 언제나 처럼 K-POP 스타에 관한 병역면제 특례에 관한 말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며 갑을박론이 치열하게 일어났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드디어 영화, '카지노'가 크랭크 인을 했다.
덜컹!
미국 애리조나 주의 어느 교도소의 문이 열리며 청바지와 셔츠를 입은 동양계 미남이 저벅저벅 걸어 나온다.
그러다 잠시 멈춰 선 그는 교도 소를 바라보며 씁쓸히 웃고는 다시 몸을 돌려 발을 땐다.
무겁게 땅을 내딛는 발의 그 어디에서도 해방의 기쁨은 찾아 볼수가 없었다.
여자친구를 보호하기 위해 주먹을 휘둘렀지만, 그녀의 배신으로 들어오게 된 교도소.
무려 3년을 갇혀 살았다.
그 긴 시간은 억울함과 분노를 지워 버렸지만, 대신 미래조차도 암울하게 만들었다.
더 나락으로 떨어진 인생. 앞으로 펼쳐질 그 고단한 삶을 떠올리면 결코 웃을 수가 없었다.
부우우우웅! 끼이익!
"후우우."
그는 답답한 가슴을 토닥이며 은색 버스에 올랐다.
"커엇-! ……오케이!"
"후아!"
"와."
조나단 파블로는 너무도 흡족한 미소를 지었고, 스태프들은 진호의 깊은 연기력에 멈췄던 숨을 토해내며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은색 버스에서 발길을 되돌린 진호는 재빨리 조나단 파블로에게 다가갔다.
"어때요?"
"내 표정 보면 몰라? 이 가슴을 두드리는 애드리브 정말 좋았어! 이 생각은 대체 어떻게 한 거야?"
"흐흐흐. 제 마음이 관객들에게 잘 전해질지 모르겠네요."
"당연히 잘 전해지지! 그렇지 않아도 동양인이라 억압받고 살았는데, 이젠 더 암울해졌잖아! 그 우울한 마음을 향해 힘내자라는 걸 이렇게 담담하면서도 깊게 표현해내다니! 솔직히…… 방금의 롱테이크는 내가 여태까지 본 모든 영화의 오프닝 교도소 신 중에 최고였어! 훌륭해!"
"에이, 그 정도는 아니죠."
그래도 칭찬을 받으니 무척이나 기뻤다.
"무슨!"
억울해 엉덩이를 들썩인 조나단 파블로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젠 진호의 겸손함에 익숙해진 탓이다.
그는 다시 한번 감탄했다.
'이 복잡한 연기를 단 한 번 만에 끝내다니……'
리허설 이후 카메라 롤이 딱 한 번 돌았는데 성공시켜 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보다 나은 장면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답은 한 가지였다.
"자! 다음 신 찍을 준비합시다!"
첫 신부터 대박의 향기가 물씬풍겼다.
* * *
"와……"
도시 외곽의 폐차들이 높이 쌓인 폐차장.
녹과 먼지가 가득 쌓인 더러운 곳이지만, 진호의 눈은 반짝였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본 장면이라서 그런지 이런 곳을 꼭 한번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자동차 엔지니어 스킬 해금 조건 중에 정비소와 폐차장을 들르는 것도 있는데……'
왜인지 이 공간에 온 게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흐음……'
"왔어?"
"윌!"
벌써 스탠바이에 들어간 건지 다리를 살짝 절뚝이며 걸어오는 머리가 많이 벗겨진 노년의 배우를 보며 진호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윌 패슨, 아마 겟돈에서 브루스 웰 무리의 2인자와 식스티 세컨즈에서 다리를 절며 나온 그 배우이자 할리우드에서 꽤나 유명한 사람이었고, 이번 영화에선 주인공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진호와 둘은 진하게 끌어안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빨리 온 거야?"
"노 NG! 다이렉트로 바로 찍고 왔습니다."
"오! 역시."
"흐흐. 그런데 윌은 왜 이렇게 빨리 왔어요? 우리가 만나는 신은 내일 찍잖아요."
"이렇게 늙은 사람은 집에 없어 주는 게 가정을 위한 길이야."
"그러게 젊었을 적에 집에 잘 좀 들어가시지……"
팍!
짜증 난 노인의 손바닥이 진호의 머리를 스치듯쳤다.
"시끄러. 넌 절대 결혼 같은 거 하지 마."
"할 겁니다. 제 여자친구가 얼마나 여러모로 예쁜데요."
"그래, 지금은 예뻐 보이겠지."
안쓰럽다는 듯 진호를 본 윌 패슨은 아차하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군대 이야기는 뭐야? 내 SNS에 글을 남기는 한국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하던데 말이야."
진호와 같이 영화를 찍는다는 말이 퍼지자 그의 SNS에 팔로워 숫자가 폭증했다. 대부분 진호의 팬이었다.
"아, 한국이 징병제인 건 아시죠?"
몰랐다는 듯 놀랐던 윌 패슨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흠. 언제 가는데? 이 영화 홍보는 끝내고 가는 거지?"
"하하. 그런 게 아니에요. 징병제인데 병역특례라고 면제를 해 주는 법이 있거든요."
진호는 지금 한국에서 제법 떠들썩한 예체능 병역특례법 개정에 관하여 이야기 해주었다.
"호오. 징병제 나라에는 그런 법이 있나 보군."
"설사 간다고 해도 서른 넘어서 갈 거라서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아니면 내후년에 열리는 응씨배대회에 출전해도 되고.'
[스킬: 골드 아이]가 생긴 이상 질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야했다.
"휴우, 다행이군. 따라와. 저분들과 인사해야지."
"아, 네!"
이 폐차장도 겸한 자동차 정비센터의 수리공들은 배우가 아니었다. 진짜 정비공들이었다.
'오! 기름 냄새.'
씻은 것이 분명함에도 그들의 전신에서 오일 냄새가 훅 풍겨 왔다.
몸에 배어 버린 냄새인 것이다.
"반갑습니다, 이진호입니다. 앞으로 며칠 동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표정이 약간 경직된 60대의 노인이 손을 내밀었다.
"드라마와 노래 잘 들었습니다, 미스터 리. 그리고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선배들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윌킨 파슨스입니다."
'아, 이분 군인이셨구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맞잡은 그의 손은 무척이나 두껍고 딱딱했으며 거칠었다.
그러나 그의 미소는 참 푸근했다.
'좋은 분이네. 그리고……'
마찬가지로 표정이 경직된 사람들이 이쪽을 신기한 동물 보는 듯 한 시선을 보내온다.
그 순수한 눈망울에 진호는 혹여 촬영 협조를 제대로 해 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작은 걱정을 덜어낼 수 있었다.
"아, 늦었습니다. 이 영화의 감독인 조나단 파블로입니다."
"오! ……그래, 안토니 스타크의 비서! 당신이 영화감독이었다니!"
"……하하하."
정비공들이 방금 전보다 더 신기한 동물을 보듯 바라본다.
누군가는 재빨리 주머니를 뒤져 마커펜을 꺼내 들었다.
'푸핫! 감독님이 나보다 더 유명하시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는 미국 최고의 히어로 영화로 꼽히는 아이 언맨과 어벤져스 시리즈 모두에 출연했으니 말이다.
부르릉!
'아, 왔다!'
고개를 돌린 진호는 환하게 웃었다. 자신의 트레일러가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어둔 밤, 트레일러의 계단에 앉은 진호는 주먹만 한 크기의 돌을 깎고 있다.
카각, 카각.
조각칼이 지나갈수록 점점 형태를 갖춰 가는 그건 분명 사람이었다.
그 순간.
부아앙!
진호가 낀 에어팟에서 강력한 배기음이 울렸다.
'4기통 박서의 배기음.'
부우웅!
'메르세데스? 아니……'
카각!
"후. 이제 마무리만 하면 되겠다."
잠시 조각칼을 내려놓으며 핸드폰을 끈 진호는 옆에 둔 맥주를 입에 가져가며 불이 켜진 정비소를 응시했다.
"이 늦은 저녁까지 일하시네. 일이 많이 바쁜가?"
'으음. 그러면…… 쩝. 역시 힘들겠네.'
"차는 사람과 같습니다. 차도 겨울을 나는 동안 아픈 곳은 없는 지 건강 검진을 받아야 하죠."
얼굴에 오일이 묻은 윌킨 파슨스와 조나단 파블로가 다가왔다.
진호는 싱긋 웃었다.
"그리고 죽어 가는 차는 소생시킨다."
이 영화 주인공의 대사다. 탁월한 손재주와 두뇌를 타고난 주인공은 어려서부터 모든 일을 쉽게 했는데, 그 때문인지 무엇을 하든 쉽게 질려 버린다.
그런 주인공에게 난관이 생겼으니 그건 걸핏하면 퍼져 버리는 엄마의 고물 자동차였다.
정밀하게 맞물린 수만 개의 부품은 주인공의 도전 의식을 자극했고, 결국 주인공은 자동차 정비에 푹 빠져 버리고 만다.
너무 의외의 말이었던지 윌킨 파슨스는 눈을 껌뻑였다가 풀썩 웃었고, 조나단 파블로는 웃음도 터트렸다.
그러다 그는 진호가 손에 들고 있는 조각품을 보곤 깜짝 놀랐다.
"지노, 그거 직접 조각을 한 건가?"
"호오. 군인입니까?"
"아, 이거요?"
진호는 참전용사들 가운데 지금까지도 사진이 남은 분들을 조각해서 그분들이나 유족들에게 보내고 있다. 이런 그의 설명에 둘은 눈을 크게 떴다.
'이거다!'
"그래, 맞아! 극 중 조지는 탁월한 손재주를 가졌지! 어쩐지 뭔가 좀 허전하다 싶었는데!"
진호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노!"
"감독님!"
"그래! 이 장면을 넣자! 돌아가신 엄마를 그리워 하는 장면으로!"
"찬성입니다!"
"수고해! 난 대본을 수정해야겠어!"
조나단 파블로가 후다닥 달려나가자 진호는 파이팅이라며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둘의 그 모습에 살짝 넋을 놓았던 윌킨 파슨스는 다시 조각품을 보며 푸근히 웃었다.
"보통 손재주가 아닙니다."
"하하. 과찬이세요."
진호는 머리를 긁적였고, 20대 시절 군대를 다녀온 윌킨 파슨스는 무척이나 기꺼워했다.
"흠……. 혹시 이 영화의 내용을 물으면 실례일까요?"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영화라서 그런지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다.
"아, 그럴 리가요.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만 않으시면 돼요. 영화내용은……"
진호는 영화 내용과 주인공, 배우 라인업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했고, 윌킨 파슨스는 다시 놀랐다.
"와우. 유명한 배우들이 출연하는군요."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점이 있다.
"모두 조나단 감독님의 힘이죠. 뭐, 저를 라스베이거스로 이끌 중요한 사람은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요. 솔직히 누군지도 몰라요."
"그게 말이 됩니까?"
"감독님이 그건 나중의 재미를 위해 남겨 두자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누군지는 대충 예상이 간다.
아마 그 시리즈의 조연출연자 중 한 명 일 터였다.
'일주일 후에 온다고 했지? 그때면 확실히 알게 되겠지.'
윌킨 파슨스는 어깨를 으쓱이는 진호를 보며 영화 주인공에 대해 떠올렸다.
'나와 비슷하군.'
주인공처럼 암울한 과거는 없지만,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좋았던 자신이 자동차 정비공이된 이유도 수만 개의 부품이 정밀하게 돌아가는 자동차가 도전 의식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냥 자동차가 좋았다.
'흐음……'
윌킨 파슨스는 진호를 빤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참전 군인들을 지원하는 이 훌륭한 청년이 맡은 역할이 내 과거와 비슷하다라……'
왜인지 그냥 우연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진호는 눈빛이 점점 뜨거워지는 그를 보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왜 그러세요?"
'내가 뭘 잘못했나?'
한 번 좋게 보이니 약간 움츠린 모습도 너무 예뻐 보였다.
윌킨 파슨스는 말하기로 하였다.
"음. 내게 정비에 대해 배워 보겠습니까?"
"……네?"
'어라?'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온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일까.
그렇지 않아도 스킬을 얻을까 말까 살짝 고민을 하던 진호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동차 엔지니어 관련 스킬의 1차 해금 조건인 '자동차 정비사에게 일주일 동안 정비 배우기.'어렸을 적 사고뭉치였던 주인공은 봉사 활동을 나갔을 때, 복지원차를 무상으로 점검해 주는 자동차 정비사와의 만남으로 자동차 정비에 호기심을 느끼게 된다.
다만, 여기에는 전제 조건이 붙는데, 가르쳐 주는 사람의 자격 요건이 최소 자동차정비기능사 자격증을 습득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너무 바빠 보여서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또 이번 영화에서 이 정비소 신은 그리 많지가 않아서 약간 아쉽기는 해도 다음으로 미룰 수 있었다.
그런데 결국 기회가 왔다.
죽은 지식을 살아 있는 지식으로, 디테일이 살아 있는 연기로 만들 기회가 말이다.
'내가 왜 배기음 소리를 들었는데?'
"부탁드리겠습니다!"
윌킨 파슨스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맺혔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