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343화 (343/424)

14권 19화

"뭐야, 이건."

어젯밤, 지니어스를 대상으로 판매할 게임을 제작하느라 날을 샌 진호는 정 실장이 넘겨준 수정된 대본에 잠이 확 깨는 걸 느꼈다.

"왜 그래? 수정이 이상하게 됐어?"

"아뇨……"

손을 저은 진호는 대본을 차분히, 무척이나 진지하게 훑었다.

그리고 끝까지 읽은 감상은 대본의 첫 장을 넘겼을 때보다 더 황당했다는 것이다.

'진짜 뭐지, 이건?'

스케일이 커졌다.

촬영장소만이 아니라 배우진, 주인공의 과거도 확 바뀌었다.

'이걸 제작할 여건이 되나?'

속사정을 알고 있지만, 딱히 도울수 있는 일이 없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진호는 작은 불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진호는 재빨리 조나단 파블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놀라운 말을 듣게 됐다.

"얼마요?"

-7천만 달러.

툭 내뱉는 조나단 파블로의 말은 마치 만우절의 거짓말 같았다.

"우리 블록버스터 찍어요?"

-놀랍군. 한국은 7천만 달러로 블록버스터를 찍을 수 있는 건가?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아니, 그 전에 투자자는 다 구한 거예요?"

순간 후욱 콧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히! 거의 미국 소재의 기업들이야!

진호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된 거예요?"

-글쎄……. 행운의 여신이 나에게도 찾아 왔다는 것만 말해 주지.

"음?"

-그보다 수정된 내용은 어떻지?

"내용이요?"

진호의 몸이 순간 후끈 달아올랐다.

"당연히 최고죠! 그보다 이걸 정말 그쪽에서 허락한 거예요?"

-이미 조율됐어.

"……브라보."

수정 이전의 주인공 과거는 꽤나 불우하면서도 약간은 진부했다. 어느 작은 도시의 동양인 소년. 편모가정으로 자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결국 정비공으로 살아가는 게 주인공이다.

미국인에게는 꽤나 익숙한 삶이다.

그런 주인공의 과거가 확 바뀌었다. 태어나기 전 죽었다는 주인공의 아버지에게 비밀이 생긴 것이다.

이 주인공의 아버지는 어느 유명한 영화의 등장인물이었다.

이로 인해 극의 전개가 더 다이 나믹하게 바뀌게 되었다.

-오케이. 주인공의 허락도 떨어졌으니 그대로 진행하지! 한 달만 기다려!

"네! 정말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아, 그런데 주인공이 죽은 아빠와는……."

-못 만나지.

"에이, 아깝다. 알았어요. 수고하세요!"

-지노도 수고해! 아, 지금 만들고 있는 그게임이 우리 영화 크랭크 인 전에 완성되면 좋겠군!

"네?"

진호는 끊긴 전화를 멍하니 바라보다 가만히 정 실장을 응시했다.

"왜, 왜?"

"……아뇨."

고개를 저은 진호는 빳빳한 새 대본과 아침을 먹으며 다시 확인하려 가져온 수정 이전의 헌 대본을 번갈아 보며 [스킬: 골드 아이]의 스위치를 켰다.

[스킬: 아이돌 마스터]와의 시너지 효과로 생긴 스위치를 말이다.

그 순간.

'와……'

태풍이다. 아니, 소용돌이다. 빳빳한 새 대본 위로 행운을 나타내는 황금색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게 얼마나 높고 커다란 지 천장을 뚫어 버릴 것만 같았다.

그 장엄한 광경에 잠시 넋을 놓았던 진호는 수정 이전의 대본을 보았다.

'얘는 2미터 크기의 파도가 사방에서 몰아쳐 오는 모습이었는데……'

초대박의 향기가 온몸을 적시는 것 같았다.

'이게 정말 초대박을 친다면 짜릿한 전율이 온 몸을 관통했다.

"그나저나 정비공이라……"

그렇지 않아도 주인공이 자동차 수리공이라 얻을까 말까 고민을 했던 스킬이 있다. 자동차 정비공에서 시작해 최고의 자동차 기업의 오너가 되는 스토리의 스킬.

"흐음……"

'이 자식이 또 무슨 사고를 치려고?'

무척이나 자주 보아 온 반응에 섬뜩해진 정 실장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야, 그런데 너 어떻게 할 생각이야? 그래미 어워드에 시상자로 선정됐잖아."

순간 진호의 눈빛이 번뜩였다.

하지만 그는 곧 어이없다는 듯 정 실장을 보았다.

"최고의 신인상과 올해의 앨범상, 올해의 레코드, 베스트 팝 솔로 앨범에도 노미네이트 됐죠!"

이건 진호로서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그래미 어워드는 재작년 10월부터 작년 8월 31일까지의 성적을 바탕으로 수상을 하는데, 진호가 빌보드 1위에 오른 것이 8월 10일즈음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아는데…… 받을 수 있을까?"

그 마돈나조차도 제대로 된 상을 받지 못한 경직된 곳이 그래미 어워드다 보니, 도박 사이트나 언론등에서도 온통 진호가 아닌 다른 인물을 수상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미 어워드는 랩 부분을 제외하면 거의 백인들의 잔치잖아."

"……와. 매니저란 사람이 연예인기를 죽이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내 말은!"

진호는 피식 웃었다.

정 실장의 걱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솔직히 진호도 크게 욕심을 내지 않는 상황이었다.

"설사 못 받는다고 해도 노미네이트가 된 게 어디에요. 그리고 시상자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니죠. 한국인이 시상자가 된 건 레오 형네 그룹 다음이잖아요."

"그렇기는 하지만……"

"그리고 이거 나가면 제가 세우는 재단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요."

주목을 받으면 받을수록 기부금이 늘어날 터였다.

'그리고 지니어스 애들도 좋아할테고.'

거기까지 생각을 정리한 진호는 핸드폰을 들었다.

"오랜만이에요, 팀. 완성됐어요?"

팀 존스, 오랜 친구이자 디올 옴므의 수석 디자이너의 이름이었다.

* * *

꺄아아아악!

찰칵, 찰칵, 찰칵!

"음."

난생 처음 밟아 본 그래미 어워드의 레드카펫.

빌보드의 모든 음악계 종사자들이 걷고 싶어 하는 성지라는 생각때문인지 괜스레 가슴이 뜨거워졌다.

'수상하면 정말 좋겠다……. 아, 그러고 보면 시상자도 난생 처음이네.'

"어때?"

진호는 옆을 보았다.

그의 옆에서 마돈나가 새하얀 드레스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가슴과 등이 훅 파인 그 드레스는 팀 존스가 직접 디자인한 걸작이었다. 팀 존스는 고맙게도 언제나 처럼 이번 앨범에 도움을 준 마돈나와 케이지에게도 시상식에 쓸옷을 보내 주었다.

"당연히 예쁘죠. 우리 회사 최고의 스타일리스트가 변장을……"

콰악!

진호의 허리에 둘러져 있던 마돈나의 손이 그의 옆구리를 쥐어뜯었다.

"억?"

"큭큭. 여자에게 변장이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고, 지노. 특히 이렇게 주름이 계곡처럼 깊은 늙은 아줌마에게는……"

콱!

새빨간 루비가 장식된 하얀색 하이힐이 발을 헛딛는 척 날렵한 턱시도를 입은 케이지의 발을 짓이겼다.

"끄억?"

"시끄러, 애송이들. 웃어. 이제 카메라 앞이잖아?"

오싹!

진호와 케이지는 그들 인생 최고의 연기력을 발휘하며 미소를 지었다.

촤라라라라라!

"꺄아아아아아아!"

"와우."

"오오. 역시 세계 1위의 모델. 핏이 엄청난데?"

"슈트의 라인도 범상치 않아!"

"지노! 다섯 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는데 소감이 어떻습니까!"

진호는 대답 대신 기자들을 향해 갈무리해 두었던 존재감을 아낌없이 풀어놓았고, 그에 자극을 받은 마돈나와 케이지도 아우라를 아낌없이 표출했다.

그 순간 기자들은 장담했다.

지금 자신들이 찍는 이 장면이, 그리고 이들 셋이 올해 그래미 어워드의 베스트 드레서이자 베스트 사진으로 뽑힐 거라고 말이다.

그렇게 포토타임을 가지고 퇴장한 마돈나는 흡족한 표정을 지우며 진호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어떠냐고. 그래미의 레드카펫에 선 소감이."

"……아."

그제야 마돈나의 질문을 알아들은 진호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한국과 크게 별다를 건 없지만……'

"끼아아아아악!"

"우아아아아악!"

"푸하하하핫!"

"……헐?"

깃털이 녹색인 칠면조가 인간이 되면 저럴까.

아니면 카나리아가 타조처럼 커지면 저럴까.

진호는 순간 이곳이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장이 아니라 할로윈 파티장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고 말았다.

"하아. 저건 또 어디서 나타난 또라이지? 처음 보는데?"

"하하. 내버려 두세요. 저런 친구들이 있으니 이 우중충한 시상식이 밝아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런 미친 짓을 하는 건 가가로 충분하잖아……"

골치가 아프다는 듯 고개를 저은 그녀는 진호를 또렷이 응시했다.

"아무튼 소감이 어때?"

"아."

시선을 돌린 진호는 그녀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한국과 약간은 다르긴 하지만……"

마돈나와 케이지는 이어지는 진호의 말에 '이것 봐라?' 라는 듯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그래미 어워드가 시작되었다.

* * *

생에 처음인 시상자 역할.

한국에서 시상자 섭외를 받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동안은 스케줄상, 혹은 아직 시상자로서 누군가에게 상을 건넬 만큼 성공하지 않았다는 말로 거부를 했었다.

'이런 자리였구나.'

진호는 본인이 아니라 뒤의 스크린을 응시하는 객석의 가수들과 음악계 관계자들을 보며 지그시 이를 악물었다.

'내가 무대의 중앙에 있는데도 모두 딴 곳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참……'

짜증이 슬쩍 고개를 든다.

그러나 조명이 밝아지자 진호는 애써 웃을 수밖에 없었다.

모두의 시선이 다시 집중되었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아, 신인상은 날아간 걸까.'

이다음이 최고의 신인상이다. 그런데 이 일을 시킨다는 건 그 뜻이 하나밖에 안 되었다.

"와우. 정말 대단한 아티스트들이 많네요. 나도 분명 작년에 엄청 잘 나갔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하하하하하."

"여기서 시간을 끌면 이 상에 노미네이트 된 분들에게 욕을 먹을 것 같으니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두르르르!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BGM이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장을 울렸다.

"축하드립니다. 베스트 랩 앨범상수상자는 빌라지!"

"……우아아아아악!"

진호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듯 울상을 지으며 올라오는 흑인 아티스트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아, 배 아파.'

그래도 한 해 고생하고 노력한 그를 위해 진심을 담아 축하해 준진호는 주인공에게 무대를 인계하고 내려왔다.

입맛이 약간 텁텁했다.

그렇게 자리로 돌아온 진호의 양손을 마돈나와 케이지가 토닥였다.

"수고했어, 애송이."

"신인상을 못 타게 된 건 좀 아쉽지만, 그 스테파니 가가나 카밀라 카베스도 못 타 버린 빌어먹을 상이니까 너무의미를 두지 마."

"……이야-. 참 좋은 조언이시네요. 기운이 막 빠져요."

진호는 스크린에 투영되는 본인의 사진을 보곤 시선을 돌렸다.

섹시한 황금 드레스를 입은 카밀라 카베스가 시상자였지만, 계속 보자니 힘만 빠졌다.

"흥! 네가 한 달만 빨리 앨범을 냈어도 지금 네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달라졌을 거야. 재향군인회를 등에 업어놓고 그런 힘 빠진 소리를 한다는 게 말이 돼?"

"헐. 제가 늦게 내고 싶어 늦게 냈어요? 그쯤 돼야 팬들이 물이 맞아도 감기 걸리지 않으니까 그런 거지?"

"변명이다, 애송이."

"자, 자. 서로 진정하고. 그보다 지노, 영화는 언제 크랭크 인을 하는 거야?"

"아, 다음 달 이맘때 크랭크 인을 할 거에…… 응?"

갑자기 주위에서 소음이 사라졌다.

세 사람은 갑자기 너무도 조용해진 시상식장에 의아해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진호는 무언가를 발견하곤 양 주먹을 들어 눈을 비볐다.

"어……. 도나, 케이지. 나 지금 환각을 보나 봐요. 저기 스크린에 저와 두 분이 나오고 있어요. 희한하네. 나 어제 푹 잤는데……"

"그거 놀라운 말이군. 나도 지금 같은 걸 보고 있거든."

"하. 나는 지금 마이크가 내 앞에 있는 환각도 보고 있는 중이야."

그 순간이었다.

"……푸하하하하하하!"

"큭큭큭큭큭! 미쳤어!"

휘이이익!

휘파람 소리마저 귓속을 파고들었다.

"응? 응?"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이리저리 돌린 진호는 이내 상황을 파악하곤 입을 떡 벌렸다.

이변이 일어났다.

'근데 이거 굉장히 익숙한 상황인데! 데자뷰가 아닌 것 같은데!'

"설마 나……"

-이제 꿈에서 깰 때가 되지 않았나요, 지노?

카밀라 카베스의 달큰한 목소리에 철렁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순간 여태까지 들리지 않았던 한 명의 외침이 들려왔다.

"야, 이 자식아-! 너 왜 만날 그러냐-!"

너무도 강렬한 정 실장의 외침.

진호는 다시 깨달았다.

'아, 나 또 사고쳤구나. 그래미 어워드까지 와서……'

"와."

진호는 한 번 더 넋을 놓았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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