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335화 (335/424)

14권 11화

4. 라스베가스에서

"…….후우."

쏟아지는 햇살을 못 이겨 눈을 뜬 진호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화장실에서 씻고 나온 그는 커피한 잔을 들고 거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밖을 바라보았다.

따스한 햇빛이 몸을 절로 나른하게 만들었다.

저벅저벅. 털썩!

진호의 맞은편 소파에 앉은 마돈나가 축 늘어지며 진호처럼 밖을 응시했다. 퉁퉁 부은 그녀의 얼굴은 짙은 피로로 덮여 있었다.

약 8분. 단 한 번의 열창.

그뿐임에도 체력이 모두 방전되어 버렸다.

'휩쓸려 버려서지.'

열두 천재들의 12중창. 그리고 마에스트로처럼 그걸 리드하고 진두지휘한 진호. 그들의 선율이 만들어 낸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버렸다.

그 결과, 모든 기력을 밑바닥까지 다 짜내며 감정을 쏟아 낼 수밖에 없었다.

휩쓸리지 않으려 발버둥 쳐서 더 그랬는지도 몰랐다.

터벅터벅. 스윽스윽!

고개를 돌린 마돈나는 눈을 빛냈다.

어젯밤의 주역들이 잠이 깨지 않은 듯 멍한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다.

'진짜 천재들……'

말이 13중창이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이들이 서로 화합하면서도 자신의 존재감은 뚜렷이 드러내어 거대한 파도를 만든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저들은 그걸 해냈다.

'너무도 쉽게……'

마돈나는 진호를 보며 저 같은 놈만 제자로 받았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히 주무셨어요……"

마돈나를 향해 흐느적거리며 인사한 그들이 진호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후다닥!

진태가 빠르게 달려와 진호의 옆자리에 앉았다.

"악! 진태 너-! 비켜! 진호 오빠 옆자리는 내 거거든!"

"내 자리!"

"내 자리라고, 이 바보 똥꾸야-!"

"내 자리!"

"에휴. 봄이가 또 이기지 못하는 싸움을 하네."

"냅 둬. 저러다 포기하겠지."

그 모습 어디에서도 천재라는 면모는 찾아 볼 수가 없어서 다시 헛웃음을 흘린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이젠 집에 돌아갈 시간이었다.

"오늘 출발하지?"

"가시려고요? 식사는 하고 가시지."

"됐어. 딸이 오는 날이야."

"아……. 어제 고마웠어요."

"……흥."

마돈나는 안쪽으로 향했고, 진호는 커피를 입에 가져갔다. 말은 안했지만, 그도 꽤나 지쳐 있는 상태였다.

"좋은 아침이야. 수고해, 미스터 정."

"좋은 아침입니다, 도나. 안녕히 들어가십시오."

멀리서 마돈나와 인사를 나눈 정실장은 진호에게로 다가와 들고 온 것들을 내려놓았다.

투웅!

"크흐흠."

털썩 빈자리에 앉은 정 실장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 있다.

"반응이 좋나 봐요?"

그 말에 아이들의 눈이 일간지와 잡지 뭉치로 향했다.

그런 그들의 눈빛이 점점 맑아져갔다.

아름다운 마무리, 다저스 스타디움을 울리다. 미국을 울린 추모곡.

감사합니다, 진호 리 등등 호평일색인 제목들이었다.

"곡 반응은요?"

다저스 스타디움에서 추모곡이 울린 시각, 인터넷 플랫폼에서도 추모곡이 발표되었다.

"방금 전에 350만 돌파했다."

움찔!

어마어마한 숫자에 아이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고, 진호도 살짝 놀랐다.

이젠 그의 눈빛도 또렷해져 갔다.

"그렇다면 지니어스뿐만 아니라 미국인도 다운을 받았다는 건데……. 다행이네요."

"응. 네가 이 곡의 수익 전부를 기부한다고 해서 더 반응이 좋은 것 같아."

그러냐며 고개를 끄덕인 진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제 다큐멘터리는요?"

"아, 잠시만."

정 실장은 일간지와 잡지 뭉치아래서 A4 종이 몇 장을 꺼내어 진호에게 넘겨주었다.

"원래 발레를 배워 놓고 기만 하는 게 아니냐, 발레를 네 인기를 위해 쓰지 마라 등등 나쁜 반응들이 올라온 건 알지?"

"그렇죠."

지니어스를 제외한 나머지 반응들은 악평이 대부분이었다.

미국에서 프로불편러들이 많았고, 언론은 그 부분만 캡쳐해서 가십거리로 삼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여론이 좀 달라지기 시작했어."

"음?"

"발레계의 인사들이 네 영상에 댓글을 달거나 SNS와 미튜브에서 너를 언급하기 시작했거든. 난 오늘 진정한 천재를 목격하였다, 발레계가 너를 담아낼 수 없어서 미안하다 등등."

"……엥? 갑자기?"

"이제야 그들에게 퍼진 거지! 역시 미국은 반응이 느리다니까! 덕분에 앨범 판매도 다시 탄력받았다!"

"오오?"

"……오오오!"

"역시 선생님!"

아이들은 마치 제 일인 양 박수를 치며 좋아했고, 진호는 잘 됐다며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다행이네. 그렇지 않아도 조나단 감독님에게 미안했었는데……'

진호는 여기에 누군가의 입김이 들어가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래서 또 덕분에! 라스베이거스의 MGM 그랜드와 벨라지오에서 공연해 줄 수 있냐는 문의가 들어왔다!"

"……오오옷?"

빌보드 뮤직 어워드를 개최한 적이 있는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와 라스베이거스의 명물이자, 세계 유명 팝가수들이 공연한 적이 있는 벨라지오 분수쇼의 벨라지오 호텔.

"와아-!"

"축하해요, 선생님!"

얼떨떨 고개를 끄덕인 진호는 열기가 들어차기 시작한 눈으로 정실장을 보았고, 정 실장은 씨익 웃었다.

"할 거냐?"

"당연히!"

그렇지 않아도 LA에 도착하면 숨 고르기를 하려고 애초부터 다음 콘서트까지 약 10일간의 시간을 빼놓았다.

쉬는 시간이 줄어들 테지만, 어떻게든 해야 했다.

"좋았어! 애들아, 일어나! 오늘 아침은 내 특제 고추장찌개다!"

"……와아아!"

"아싸! 진호 형 고추장찌개다!"

아이들은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달려갔고, 진호도 힘차게 걸음을 옮겼다. 정 실장은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다미앙 지사 미국 지부에 전화를 걸었다.

콘서트 준비도 해야하고, 지니어스에도 공지를 올려야 하는 등 시간이 없었다.

* * *

-어째서 선생님께서 그 청년을 칭찬했는지 알 것 같더군요.

"부탁을 들어줘서 고맙네."

-냉정히 평가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부탁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제 눈에 밟혔을 재능이었습니다.

다만 지금보다 조금 더 늦게 영상을 발견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분명 지금과 똑같은 평가를 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더 한 호평을 했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고맙네."

-……예. 수고하십시오.

전화가 끊기자 메리 볼스카야의 어머니인 노파는 핸드폰을 조작해 음악을 틀었다.

진호가 발표한 추모곡이 흘러나 오자 그녀는 눈을 감았다.

이젠 늙어 버려 리모컨을 어디에 뒀는지조차 깜빡깜빡하는 머리가 안무를 창작하고 있다.

"뮤즈라……. 정말 대단한 청년이야."

그녀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걸렸다.

* * *

LA의 저택에서 하루를 보내며 충분히 쉰 진호는 아이들과 함께 라스베이거스로 향하기 위해 차를 타고 집을 나섰다.

"비바! 라스베가스!"

"카지노! 주사위!"

"크! 어차피 인생은 한방! 내가 간다, 라스베가스!"

"응? 너 카지노 못 들어가지 않아? 나이 안돼서."

"……노오-!"

언제나 조용하던 벤이 아이들로 인해 떠들썩했다.

진호는 코알라처럼 딱 달라붙어 있는 진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옅게 웃었다.

뿌다당! 뿌드등!

"응?"

"어? 할리다!"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할리데이 비슨 오토바이들과 그곳에 타고 있는 가죽옷을 입은 미국의 라이 더 형님들.

'와, 진짜 영화에서 보던 거랑 똑같네.'

두건에 기다랗고 덥수룩한 수염.

선글라스까지 딱 영화에서 보던 폭주족들이었다.

"저들을 먼저 보내고 출발하지, 지노."

"네, 그렇게 하세요."

월터는 이 벤의 앞뒤로 붙은 경호팀에게 무전을 보냈고, 차는 바로 멈춰 서며 그들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 순간이었다.

할리데이비슨이 벤의 옆에 붙었다.

쿵쿵쿵!

흠칫! 움찔!

갑자기 미국 폭주족이 창문을 두드리자 아이들은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고, 월터는 총을 꺼내 다리밑으로 내리며 박 대리에게 창문을 내리라며 신호를 주었다.

"무슨 일입니까?"

"지노 리가 탄 차가 맞습니까? 아, 거기 계시는군요. 지노 리."

끼릭.

총이 장전되는 미세한 소리가 숨막히는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켰다.

진호는 눈을 빛냈다.

"무슨 일이시죠?"

'날 해하려는 게 아니야.'

그의 표정, 몸짓, 말투 그 어디에서도 마이너스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스킨헤드의 40대 중년인은 낯빛을 진중하게 굳혔다.

"일단 제대한 군인으로서 선배 군인들의 넋을 위로해 준 당신께 감사하단 인사를 드립니다."

"……아!"

진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고, 월터는 장전을 풀었다.

"그래서 가시는 곳까지 당신을 안내해 드리고 싶은데,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네에?"

진호는 잠시 넋을 놓았다.

'미국은 군인에 대한 존중이 대단하다 하더니……'

그러고 보면 미국에선 이런 일이 종종 있다는 말을 스쳐 지나듯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알고 보면 착한 형님들이라고 했지?'

왕따를 돕는 형님들, 안심귀가 시키는 형님들 등등 민폐만 끼치는 한국의 라이더들과 달리 종종 좋은 일을 하는 형님들.

물론 미국의 라이더 들이 골칫거리라는 건 부정할 수가 없지만, 최소한 이들은 그럭저럭 착한 이들같았다.

"음. 라스베이거스까지 가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오우. 그렇지 않아도 그곳에서 저희 라이더들만의 축제가 있어서 가려고 했던 길입니다."

'……끙. 요거 안 먹히네. 어쩔수 없지.'

"그러면 LA를 나설 때까지만 부탁드릴게요. 아이들이 좀 무서워하거든요."

"하하하. 저희가 좀 험하게 생기긴 했죠.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치익!

"허락받았다. 1스쿼드 나랑 함께 앞에 서고, 2스쿼드는 뒤를 따른다."

-치익! 라져.

-오케이.

"그럼 LA 밖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네. 안전 운전 부탁드릴게요."

"하하하하하하-!"

뿌다당!

라이더들은 앞으로 향했고, 이내 곧 LA 도로에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 일은 진호의 전속 파파라치 윌리엄 채셔를 통해 SNS에 알려지게 되었다.

* * *

"거친 형님들의 호위를 받는 진호 리라……"

'미국에 스며들게 된 것인가.'

좋아요가 벌써 500만을 돌파했다.

LVMH의 황제 아르노 베르베우는 피식 웃으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는 맞은편에 앉아 스테이 크를 써는 디올의 CEO 피에트로 베타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

"뮤즈에게 재밌는 일이 생겼군."

"언제나 재밌는 일을 몰고 다니는 친구니까요. 덕분에 미국 내 매출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아마 깜짝 놀라실지도 모릅니다."

"호오, 자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는 건가?"

프라다나 루이뷔통, 샤넬 등의 패션 브랜드가 강세인 미국.

디올은 그들 브랜드에 비해 약간 처진다고 해도 무방했다.

"어쩌면 곧 루이뷔통을 넘어설지 모릅니다."

어쩌면 LVMH 내에서 디올의 CEO인 피에트로에게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나 다름없는 루이뷔통.

LVMH의 뿌리가 디올이기에 디올의 CEO가 LVMH 그룹의 CEO가 될 확률이 높다지만,현 CEO이자 디올의 전 CEO는 생전 루이뷔통의 매출을 넘어서지 못해서 현재도 그룹 내에서 반쪽자리 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중이다. 후계자 경쟁이 한창이라 할지라도 루이뷔통은 넘어야 할 산이었 다. 그런데 그게 이제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왔다. 아르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피에트로를 향해 냉정한 말을 꺼냈다.

"앙트완과 델핀이 움직이겠군."

눈앞의 결과에 홀려 중요한 일을 잊지 말라는 일침.

움찔!

반사적으로 몸을 굳힌 피에트로는 무슨 속셈인 건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이번에도 늦었습니다, 아르노."

"…… 무슨 일이 생겼군."

"예."

피에트로는 얼마 전 걸려온 전화를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미국 내 모든 차이나타운의 입점을 허락받았습니다."

"……뭣?"

아르노의 엉덩이가 들썩였다.

"화교가 움직였다는 건가? 어째서?"

"이 일도 뮤즈 덕분입니다. 그들이 지노 같은 사람이 홍보하는 기업이라면 충분히 믿을 수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르노는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허어……. 웨이양과 저우지엔이 화교와 연관되어 있을 줄이야……"

외국에 살고 있으나, 그 뿌리는 중국인인 화교.

중국 정치계의 괴물인 웨이양과 저우지엔이 움직인 게 아니라면 진호와 차이나타운이 관계를 맺은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진호가 차이나타운을 들렀다는 소식이 들려온 적이 없기에 더더욱 말이다.

'……쯧. 못난 놈들.'

아르노는 피에트로의 말처럼 이번에도 한발 늦은, 평소 진호와 좋은 모습을 보였다면이 엄청난 일에 한 발 걸쳤을 자식들을 떠올리며 혀를 찼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좀 부족해. 화교는 굉장히 이기적인 족속들이니까."

"절대 부족하지 않습니다. 뮤즈는 지금 미국인에게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피에트로는 아르노의 핸드폰을 툭툭 두드렸고, 아르노는 탄성을 터트렸다.

"그쪽도 이미지 메이킹을 하겠다는 건가……"

"추모는 너무도 좋은 소스이지 않습니까."

"허어."

참 영악하다고 볼 수 있었다.

헛웃음을 지은 그는 화제를 돌렸다.

화교는 이 이상 얽혔다간 귀찮아지는 족속이었다.

"그렇다면 다미앙 토마소가 HU의 본사에 불려 갈 날도 멀지 않았군."

"어쩌면 바로 회장직에 도전할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피에트로는 은근히 아르노를 향해 눈치를 주었고, 아르노는 실소를 터트렸다.

"뮤즈의 손에 결국 루이뷔통까지 쥐여 주라는 거군."

쿵!

너무도 무거운 말이 아르노의 입밖으로 튀어나왔다.

피에트로는 그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고개를 숙였다.

"파도가 밀려오고 있습니다, 아르노. 부디 냉정한 결단을 부탁드립니다."

"냉정한 결단은 무슨……"

툭!

입가를 닦은 냅킨을 내려놓은 아르노는 몸을 일으켰다.

"안젤라 리를 올릴 준비해."

디올 차이나의 지사장인 이미영.

진호가 이모처럼 생각하는 이였다.

이 말은 즉 LVMH 회장직에 한 발 다가섰다는 소리였다.

"……예! 감사합니다!"

"흥."

그렇게 미국에서 먼 프랑스에서도 진호가 일으킨 바람이 태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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