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332화 (332/424)

14권 8화

멍……

로날드 드롭과 까타레나 등 연습생들은 넋을 놓고 있었다.

"……내가 45000명 앞에서 노래를 불렀어."

"심지어 환호해줬어."

"45000명이 내 이름을 외쳤지……"

"내가 부른 노래를 같이 불러 줬어."

"……."

가슴 속을 가득 채우는 이 감정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그들은 이러다 몸이 터져 버리는 건 아닐까 미칠 것 같았다.

타악!

"뭐해? 뒤풀이하러 가야지."

너무도 해맑고 후련한 미소가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은 돌아서는 진호를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곧 두 눈에 존경이란 두 글자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6시간이나 노래를 불렀는데도 저렇게 아무렇지 않다니……'

앙코르에 앙코르, 또 앙코르. 진호는 멈출 줄을 몰랐다.

"정 실장님, 내일 스케줄이 어떻게 된다고요?"

'콘서트 시작 전보다 더 쌩쌩해보여!'

'우리도…… 아니,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크다. 너무도 크다.

그들은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하는 것을 느끼며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다.

우르르르르!

"끄으아-!"

무리의 선두에서 걸으며 기지개를 편 진호는 나른한 미소를 지었다.

"아, 어서 맥주를 마시고 숙소로 돌아가 침대에 다이빙하고 싶다."

거의 1년 반 만의 콘서트였다.

그 흥분. 그 고양감. 그 전율.

만족스럽고도 또 만족스러웠고, 1년 반 동안 쌓인 스트레스와 에너지를 모두 쏟아 낸 것처럼 후련하기까지 했다.

'역시 난 이게 천직이야. 이젠 버릴 수가 없어.'

정말 버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진호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런 그에게 마돈나와 케이지가 다가섰다.

"오늘 괜찮았어, 지노."

"흥. 그럭저럭하더군."

"……푸흐흐. 감사합니다."

둘은 진호를 I뭇하고도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오늘 진호의 퍼포먼스와 무대 장악력은 분명 톱스타의 그것이었다.

또 그 엄청난 체력과 아직까지도 쌩쌩한 성대는 어떤가.

'성급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이 친구는 아마 앞으로……'

'흥.'

그들의 눈빛은 더욱 따뜻해졌다.

그러다 갑자기 둘의 낯빛이 살짝 흐려졌다.

"그런데……"

"네?"

마돈나의 눈빛을 받은 케이지는 한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이 열기에 물을 뿌려서 미안하지만, 아마 말이 나올 거야, 지노."

"잉? 뭐가요? 무슨 말이요?"

"지금은 새벽 2시니까."

고개를 모로 기울인 진호는 이내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깨닫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푸핫! 걱정 마세요!"

"응?"

"따라와요."

진호는 그들을 이끌고 경기장 입구 쪽으로 향했고, 마돈나와 케이지의 낯빛은 조금 더 흐려졌다.

'이 친구가 미국의 밤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으면 좋을 텐데……'

이젠 지하철도 끊겨 버린 새벽이었다.

분명 언론들이 물어뜯을 게 분명 했다. 미국을 모르는 동양인의 어리석은 앙코르 행렬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그들은 귓가를 울리는 소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웅성웅성!

그림자에 숨어 경기장 입구 쪽을 본 사람들은 눈을 부릅떴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부우우웅응! 끼익!

"이쪽입니다!"

"뉴욕 북부는 이쪽이에요!"

"브루클린은 이쪽이에요!"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수 많은 버스들과 그 버스들에 오르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안내하는 스태프들.

마돈나와 케이지, 연습생들은 경악하며 진호를 보았고, 진호는 그런 그들을 보며 싱긋 웃었다.

"두 분은 잘 모르겠지만, 난 원래 콘서트에서 돈을 안 남겨요."

굳이 콘서트가 아니라도 돈을 벌구멍은 많았고, 솔직히 말해 이렇게 해도 돈은 무척이나 남았다.

마돈나와 케이지의 입은 더욱 크게 벌어졌다.

"자, 그럼 조용히 갑시다. 맥주가 우릴 기다리고 있어요."

"오오오오오!"

* * *

씨티 필드. 울고 웃다. 그리고 감동하다!

45000명을 향한 외침. 오늘 집에 가지 마?

진호 리, 버스 1000대를 빌려 팬들을 모두 무사 귀가를 시키다!

빌보드 가수도 시도하지 못한 완벽한 마무리! 너 뭐하는 놈이냐?

미국을 아는 스타의 앙코르 행렬! 진호 리, 목은 괜찮은 건가!

진호 리는 K-POP가수인가, 빌보드 가수인가?

아침부터 뉴욕의 모든 일간지들이 떠들썩하다.

동양에서 온 스타의 이야기라 기사를 쓰지 않으려고 해도 쓰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푸흐흐. 얘들 뒤집어졌다. 우리가 소스를 주지 않았는데도 기사를 막 써 주네. 하긴, 이놈들이 네가 어떤 놈인지 어떻게 알았겠어? 어흐흐흐흐."

연예인의 일이라면 일단 물고 뜯고 왜곡하는 삼류 잡지조차 '동양인의 돈지랄'이라는 기사를 낼 정도였다.

"그런데 목은 좀 괜찮냐?"

후루룩!

진호는 청량고추를 듬뿍 썰어 넣은 김치찌개를 한 입 먹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으, 좋다. 김치 맛은 뉴욕 한인타운이 훨씬 좋은 것 같지 않아요?"

"김치를 후원해 주신 이모님이 전라도 출신이시래."

"어쩐지……. 젓갈 넣은 비율이 기가 막히더라니."

전국 팔도의 김치는 모두 맛이 다르고 또 모두 맛있지만, 진호의 취향은 전라도 김치였다.

정확히는 푹 익힌 묵은지였다.

'묵은지 송송 썰어 지방 많은 앞다리 살을 가득 넣어 푹푹 끓이면…"

"캬-! 속이 풀린다!"

"맛있어요, 선생님!"

"……오냐. 많이 먹어."

"네!"

한국에 산 지 얼마나 됐다고 어느덧 한식에 적응, 아니 한국 아저씨 입맛이 되어 버린 아이들을 따뜻하게 바라본 진호는 땀을 뻘뻘 흘려 가며 김치찌개를 먹는 로날드 드롭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입에는 좀 맞아? 안 매워?"

……탁!

숟가락이 테이블에 거칠게 놓였다.

"선생님."

"으응?"

"제가 여태껏 먹은 음식은 그냥 쓰레기였습니다. 이런 환상적인 음식이 존재하다니! 이 요리 이름이 뭐라고요?"

"……아냐. 그렇게 아부 안 해도 돼. 네 어머니 삐지신다."

"괜찮습니다. 엄마 음식 못해요. 스크램블을 만드는데도 팬을 태우세요."

'……그게 가능한 일인가?'

프라이팬에 기름을 듬뿍 넣고 곱게 푼 계란 물을 부어 젓가락이나 뒤집개로 휘휘 젓기만 하면 완성되는 게 스크램블이다.

완성도를 따지지 않으면 계란 프라이보다 훨씬 쉬운 음식인 스크램를.

"어, 응. 그래……"

'아버님이 주부…… 아니, 아버님도 음식을 못하는가 보구나.'

그렇지 않다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냥 한식이 입에 맞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매운 거 많이 먹으면 당장 오늘부터 지옥을 겪을 수 있으니까 적당히 먹어."

"예!"

힘차게 대답하면서도 제 몫의 김치찌개를 야무지게 퍼먹는 로날드 드롭을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 진호는 정 실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오늘 스케줄이 어떻게 돼요?"

"9시에 라디오, 11시에 봉사 활동, 5시에 워싱턴으로 이동."

"응? 필라델피아와 볼티모어는요?"

이번 투어는 뉴욕에서 시작해 시계 방향으로 이동한다.

"건너뛰게 됐다."

"……아아."

끝내 조율이 안된 것이다.

'확실히 내 인지도라면 조율이 안될 수 있지.'

그래도 많이 아쉬웠다.

"더 노력해야겠네요."

"당연히 그래야지."

"아, 그리고 제 다큐멘터리 방영은 언제 해요?"

"오늘 저녁 12시!"

"오오-. 타이밍이 괜찮은데요?"

"……그래. 나쁘지는 않지."

진호는 조용히 이를 가는 정 실장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본디 다큐멘터리 방영일은 어제였다.

그런데 아마존에서 하루를, 정확히는 메인 화면 노출 이벤트를 하루 밀려나게 만든 것이다.

"뭘 그렇게 열을 내요. 제 앞 작품 성적이 좋았나 보죠."

"……에휴. 이놈은 진짜."

"흐흐흐."

할 말이 많지만 참는다는 정 실장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인 진호는 밥을 크게 퍼서 입에 가져갔고, 정 실장은 고개를 저었다.

'정말 아무렇지 않은데……'

어차피 후회할 쪽은 아마존이다.

언제나 처럼 수백만 명의 지니어스가 화력을 쏟아붓는 순간 그들은 넘죽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지니어스 말고도 많이 봐 주면 좋겠는데……'

부디 그래 줬으면 하는 소망이었다.

"응?"

"왜 그러세요?"

"야, 이것 좀 봐 봐."

정 실장이 태블릿 PC를 진호에게 보여 주었다.

"여기가 한국의 맘 카페 같은 사이트인데…… 아니, 그냥 브루클린의 중고교생 부모 카페라고 생각하면 돼. 중고교생에게 어떤 식재료가 좋냐, 사춘기 자식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등등 자식 키우는 노하우를 나누는 사이트."

"그런데요?"

"여기에 네 글 올라와 있다."

진호는 눈을 끔뻑였다.

"……엥?"

재빨리 확인한 게시글의 내용은 별다른 게 없었다.

새벽 3시에 집 앞에 버스가 도착하기에 놀랐고, 거기서 자기 딸이 내리기에 더 놀랐다. 그리고 버스를 대절해 안전하게 딸을 귀가시켜 준 진호 리에게 감사하고, 그의 결정에 찬사를 보낸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이거 하나뿐만이 아니야. 여기 봐 봐. 브루클린에 살면서 어제 네 콘서트에 온 애들 부모들이 글 올렸다."

"……!"

진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전 세계 어느 곳이든 부모의 영향력은 엄청난데, 그 부모의 세대는 실질적인 구매층이자 대중적인 인기의 척도라고 볼 수 있다.

50대 이상의 사람들도 알아야 '국민'이라는 별명이 붙는 것처럼 말이다.

"바, 반응은요?"

"당연히 죽이지! 이렇게 훌륭한 가수가 있었냐, 동양인이라고 얕볼게 아니었다, 이런 가수라면 충분히 용돈을 허락해 줄 수 있다, 우리 딸이 좋아하는 가수인데 이 가수 강의 동영상 보고 성적이 두 단계나 올랐다, 난 이럴 줄 알았다 등등! 너 완전 좋게 찍혔어!"

"……오오오!"

진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다 의아해하며 정 실장을 보았다.

"그런데 실장님이 여길 어떻게 알아요?"

"정보부의 다니엘 팀장이 알려주던데? 원래 실질적인 구매층은 부모라서 미국 기획사들도 수시로 모니터링하는 곳이라고."

"…… 역시 미국 현지 직원을 채용하길 잘 했네요."

미국 기획사가 모두 아는 곳이라고 해도 미국인이 아닌 사람은 발견하기가 힘든 사이트다.

돈을 쓰길 잘 했다는 생각이 팍팍 들었다.

고개를 끄덕인 진호는 다른 게시글들을 살피다가 핸드폰을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네, 장 지부장님. 뉴욕 부모 카페들 확인해 보셨어요?"

-예. 그렇지 않아도 6월 한정판굿즈를 제외한 모든 굿즈의 생산량을 늘렸습니다.

"역시……"

진호가 하고 싶었던 말도 바로 이것이었다.

정 실장이 말한 '우리 딸이 좋아하는 가수인데 이 가수 강의 동영상 보고 성적이 두 단계나 올랐다.'는 댓글.

이 댓글을 보고 눈이 번쩍 뜨이지 않을 부모는 없었고, 실질적으로도 '진짜 냐'며 굉장히 많은 리리플이 달렸다.

그리고 살펴보니 이번 뿐만 아니라 예전에도 이런 게시글들이 꽤 있었다.

굿즈를 대량 판매하기에 딱 좋은 흐름이었다.

"앞으로 체크 잘 해 주시고, 좋은 글들을 올려 주신 분들에게 소정의 선물을 보내 주세요. 이왕이면 그분들의 자식인 제 팬들 앞으로 부모님과 같이 쓰라는 메시지를 담아서."

-그렇다면 차라리 무작위 추첨을 통한 경품 증정이 좋겠군요.

"뉴욕은 1000명으로……"

'아니지, 잠깐?'

진호는 번뜩 떠오른 생각이 눈을 크게 떴고, 그건 진호를 아주 많이 겪어 온 장경아도 마찬가지였다.

"지부장님!"

-투어 도시를 대상으로 무작위 추첨 이벤트를 진행하겠습니다. 각 도시마다 1000명씩!

"캬-! 역시! 척하면 착이라니까!"

예산은 딱히 문제가 안 된다.

LVMH에서 도와줄 테니 말이다. 거기다 콘서트 한 번이면 1000명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이벤트로 인해 미국 내 굿즈 판매량이 증가하겠지. 그리고…… 필라델피아와 볼티모어 등 진호를 외면 한 곳들 역시 압박을 받게 될 터였다. 지니어스와 그들의 부모들에게 말이다.

"아, 콘서트 장소 대여를 못한 도시들에서도 차례차례 이벤트를 진행해 주세요. 그들도 제 팬이니까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200명 정도로 해서 이벤트를 진행시키겠습니다.

"네. 그리고……"

진호는 떠오르는 생각들을 말하기 시작했고, 진호의 통화에 숟가락을 놓은 연습생들은 진호를 보며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그동안 한국어 수업 역시 들은 그들은 대략적으로 나마 진호의 말을 알아듣고 있었다.

'기획사랑 동등하게 이야기하다니……. 너무 멋져!'

'대단해.'

'나도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

그들의 존경은 더욱 깊어졌다.

* * *

"목사도 이 정도로 사생활이 깔끔하진 않을 것 같군."

"그는 여자나 유흥보다는 새로운 걸 배우고 스스로를 단련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타입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여."

퉁!

노인이 떨어트린 두꺼운 종이 뭉치가 책상에 부딪치며 둔중한 소리를 냈고, 비서는 업계의 거물인 노인이 만족했다는 것에 작은 성취감을 느꼈다.

"다음 행선지가 어디라고?"

"지금쯤 이곳 워싱턴에 도착했을……."

우우웅!

말을 멈춘 비서는 재빨리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녀는 문자로 온 내용을 확인하곤 눈을 빛냈다.

"진호 리답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왜지?"

"6.25 참전 기념관으로 향했다는 정보입니다. 오직 매니저와 경호원 한 명만 대동한 채. 전속으로 따라다니는 파파라치마저 떼어 뒀다고 합니다."

"……호오."

"차량을 준비할까요? 1시간의 여유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고개를 끄덕인 노인을 몸을 일으키며 눈을 빛냈다.

'외계인이라……'

그의 얼굴이 기대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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