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330화 (330/424)

14권 6화

빠앙! 빵! 빵!

자동차의 경적 소리가 가득한 뉴욕의 42번 스트리트(42nd Street)와 7번가(7th Avenue), 그리고 브로드웨이가 만나는 중심지인 타임스스퀘어.

높은 빌딩과 화려한 네온사인, 그리고 살아 움직일 것 같은 고해상도의 모션 광고들이 가득한 뉴욕에서 관광객들의 카메라 스포트라이트를 가장 많이 받는 곳이다.

그곳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며, 뉴욕에서 교통 정체가 습관적으로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아, 제발 좀 가라."

택시 안, 소개팅에 늦은 40살의 남성 톰 스미스는 너무 꽉 막혀나아갈 생각을 안 하는 차량들에 심장이 터져 버릴 듯 초조해졌다.

"10년 만의 소개팅이라고! 제발 좀!"

저녁 9시, 40살의 남성과 38살의 여성이 만나 소개팅을 하고 밥을 먹는다. 아니, 이 시간이면 술을 마시는 게 에티켓이라 톰 스미스는 차를 두고 오기까지 했다.

약속 시간까지 이제 겨우 30분만 남았을 뿐이었다.

"오늘따라 엄청 막히네요, 손님!"

택시+도로정체=요금. 숫자가 점점 불어 가는 미터기에 아랍계 남성의 텐션은 절로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이 누굴 놀리나! ……안되겠다!'

어차피 여기서 500미터만 더 가면 약속 장소였다.

"내리겠습니다."

"네? 바, 바로 코앞인데요! 금방 도착합니다!"

"잔돈은 됐어요!"

벌컥!

"에? 손님! 손님!"

'손님은 빌어먹을!'

도로가 얼마나 정체되었는지 눈을 감고 차들 사이로 지나가도 다칠 염려가 없을 정도였다.

"휴우. 오늘은 신이 날 돕는 것 같군."

무단횡단의 딱지를 떼어야 할 교통경찰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걸 좋아해 줘야 할 텐데……"

톰 스미스는 백합과 장미가 섞인 꽃다발에 살짝 코를 묻으며 힘차게 발을 내딛었다.

그 순간이었다.

달칵!

"응?"

마치 전등 스위치를 내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타임스스퀘어에서 빛이 사라져 버렸다.

"헉! 뭐, 뭐야? 정전?"

"무, 무슨 일이야?"

"테러인가!"

톰 스미스뿐만 아니라 순간 장님이 된 모든 사람들이 멈춰서 당황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나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과, 광고판들이…"

80퍼센트가 넘는 모션 광고판들의 빛이 나가 있다. 광고판뿐만 아니라 주위 빌딩들 모두 말이다.

그렇게 2초쯤 지났을까.

"허억! 저건!"

급히 고개를 돌린 톰 스미스는 입을 떡 벌렸다.

모든 모션 광고판들이 하나의 영상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Coming June. 30.

U.S.A 1st Album

Song Artist Lee

……부우웅! 빵빵빵!

우글우글!

마치 방금 전은 꿈이었다는 듯 다시 귀를 파고드는 소음들.

정신을 차린 톰 스미스는 그제야 막혀 있던 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미쳤다……"

* * *

"미친 놈."

평소보다 슬림한 셔츠를 입는 진호를 바라보던 마돈나가 툭 내뱉었고, 그 옆에 있던 케이지는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으음, 노노. 또라이입니다, 도나. 저건 또라이예요."

진호는 얼굴을 와락 구겼다.

"사람을 앞에 두고 또라이가 뭡니까, 또라이 가! 그러는 자기들도 도와줘 놓고 이러깁니까! 두 사람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게 가능했을 것 같아요?"

"재밌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진짜 해낼 줄은 몰랐지!"

그날, 미국 모든 매체와 인터넷을 뒤집어 버린 미국 데뷔 광고.

그럴 수밖에 없다.

미국 하면 1순위로 떠오르는 랜드마크 중 하나이자, 세계 모든 대기업들의 광고가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 타임스스퀘어의 수백수천 개의 광고판들 중 80퍼센트 이상을, 그것도 골든아워인 시간에 20초나 빌려 앨범 홍보를 해 버렸다.

이 무지막지한 기획력, 자본력에 경악과 찬사를 보내지 않을 매체는 단 한 곳도 없었다.

덕분에 미국 내 모든 기획사들도 뒤집어졌다고 한다.

"대체 얼마나 쓴 거야?"

"한 3천만 달러?"

"……진짜 미쳤구나?"

돈 하면 어디 가서 꿇리지 않는 케이지도 입을 떡 벌렸다.

3천만 달러면 할리우드 영화를 몇 편이나 홍보할 수 있는 액수였고, 거의 걸프스트림 전용기 한 대 가격이었다.

진호는 그걸 단 한 방에 날려 버린 것이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죠. 덕분에……"

진호는 옆에 쌓인 일간지와 주간지의 탑을 툭툭쳤다.

"아직까지도 이슈가 되고 있잖아요. 아니, 제 이야기를 싣지 못해서 안달이 났죠."

대체 리는 누구인가. 톱모델이자 배우 진호 리인 것인가 등등 1면은 아니라도 미국 대형 언론사들이 계속 기사를 싣고 있다.

미국 지부 모든 직원들과 HU 에이전시까지 영업력을 총동원해서 그 대형 언론사들에게 '리'의 정체를 흘리며 협약을 맺은 것이다.

그것도 공짜로 말이다.

마돈나와 케이지의 공동 프로듀싱. 거기다 외계인이 쳐들어오지 않는 이상 결코 꺼지지 않는 타임스스퀘어 전광판들을 꺼트려 버린 이벤트의 주인. 이걸 기사로 싣지 않을 수가 없기에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덕분에 미국은 이 '리'가 저 진호리와 동일 인물인지, 혹여 다른 리가 있는 건 아닌지 갑론을박이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마돈나와 케이지가 없었더라면 이렇게까지 할 수 없었을 거야.'

타임스스퀘어의 광고판 중 50퍼센트는 이쪽의 영업력으로 어찌어찌 확보했지만, 추가 30퍼센트는 마돈나와 케이지가 있었기에 확보할 수 있었다.

"그건 그렇지만……. 흐음. 나도 해 볼까?"

어차피 너무 많아서 썩어 가는 돈. 내년 복귀 앨범 발매 때 홍보비로 왕창 쓰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었다.

이런 마돈나의 말에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 드릴게요."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그래 주면 고맙지."

"케이지도요."

"오우. 그럼 이거 지노만큼 대단한, 외계인 같은 친구를 발굴해야겠는 걸?"

"으음. 발견할 수 있을까요?"

"……푸하하하핫!"

씩 웃은 진호는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그의 표정은 어느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아! 아아아!"

케이지는 목을 풀기 시작한 진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윽고 진호의 입에서 이번 데뷔 타이틀의 노래가 흘러나 오자 조용히 눈을 감았다.

-I don't wanna be your……

'역시 환상적인 목소리야.'

절로 볼이 달아오를 만큼 너무도 끈적끈적하면서도 몽환적인 목소리. 눈을 뜨고 바라보면 혹여 동성을 좋아하게 되어 버릴까 공포가 생길 만큼 섹시한 표정은 또 어떤가.

이건 축복이었고, 진호는 음악의 여신 뮤즈였다.

그래서 단숨에 써 재껴 내린 곡이다.

그러나 진호의 재능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 경이로운 프로듀싱 능력.'

이번 타이틀, 아니 총 12개의 곡이 들어간 이번 앨범은 케이지 본인과 마돈나만이 작곡하고 프로듀싱을 한 게 아니다.

진호도 같이 작곡하고, 같이 프로듀싱을 한 것이다.

똑같은 눈높이에서 말이다.

"정말 외계인이 아닐까?"

"곧 그 말도 식상해지겠지."

"과연 그렇겠습니까, 도나? 언제나 저렇게 새로운 모습을 보이는데?"

케이지는 목을 풀고 댄서팀과 마지막 점검을 하는 진호는 가리켰다.

"보세요. 당신과 지노가 만든 작품을."

마돈나는 뜻이 가득 담긴 진짜 춤을 보며 풀썩 웃고 말았다.

진호를 향한 댄서팀의 존경 어린 시선을 보라.

"…… 그럴 수도 있겠군."

타이틀이 완성되자마자 마치 음악의 여신 뮤즈가 강림한 듯 그녀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토해져나왔던 안무. 몸 역시 저절로 움직였다.

그건 그녀의 전성기 이후 겪지 못했던 황홀이었고, 전율이었다.

그런데 진호는 여기에도 의견을 타진하고 다듬으며 뛰어난 안무가의 소질마저 드러냈다.

이건, 이번 앨범은 마돈나 본인과 케이지뿐만 아니라 진호까지 세명이서 함께 프로듀싱을 한 대작이었다.

"이제 단숨에 날아오르겠지?"

"그러겠죠. 여기 데뷔 무대 때문이라도 더더욱."

빌보드에서 성공한 가수라면 그 누구라도 거쳐 가는 무대.

아니, 빌보드에서 제법 대단한 성적을 내지 않는 이상 결코 설 수 없는 무지막지한 무대.

예외라면 K-POP 아이돌들인데 이들이 아닌 이상, 그리고 빌보드에서 1위나 그에 버금가는 이슈를 만들지 못한 이상 첫 데뷔무대나 복귀 첫 무대로 결코 오를 수 없는 프라이드 높은 쇼에서 진호가 미국 데뷔를 한다.

'타임스스퀘어, 그 미친 짓이 모든 걸 프리패스 시키고 있어!'

"정말 미친 친구라니까……"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 맞았다.

진호의 그 미친 짓은 지금 이 순간에도 홍보로 쓸 돈을 아껴 주고 있었다.

"과연 1위를 찍을 수 있을지……"

벌컥!

"진호 리! 준비해 주세요! 5분후 올라갑니다!"

"……예!"

다시 대기실의 문이 닫히자, 몸을 멈춘 진호는 숨을 길게 내뱉으며 뛰기 시작하려는 심장을 다독였다.

'데뷔 무대라지만, 어차피 무대야. 한국에서도, 중국에서도, 일본에서 수십수백 번 서 본 무대. 긴장할 것 없어.'

미국이라고 다를 거 없다.

빌보드에 데뷔를 하는 무대라고 해서 다를 건 없다.

사람이 보고, 사람이 열광하고, 사람에게 보여 주는 것뿐이다.

언제나 처럼 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후우우."

다시 한번 숨을 내뱉으며 마음을 완전히 정리한 진호는 몸을 돌려 마돈나와 케이지를 보았다.

둘은 엄지를 치켜들었다.

'고마운 분들……'

진호는 이번엔 피부색이 모두 다른 댄서팀을 바라보았다.

이제부터 최소 반년간 함께 다녀야 할 가족들.

진호는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파이팅 한번 하죠."

"……오케이."

척척척!

둥글게 모인 그들은 가운데로 손을 모았다.

진호는 그들 한 명 한 명 씩 눈을 마주친 후 입을 크게 열었다.

"하나, 둘, 셋! 성공, 성공, 성공-!"

"우아-!"

대기실을 쩌렁쩌렁 울린 그들의 외침.

진호는 두 눈에 전의를 담으며 몸을 돌렸다.

"갑시다!"

와아아아아아!

함성이 온몸을 뜨겁게 달군다.

진호는 아침햇살을 향해 나아가며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I don't wanna be your!

'자, 그럼 놀아 보자!'

진호는 셔츠를 양손으로 잡으며 그대로 뜯었다.

투두두두두둑!

"……까아아아아악!"

"우와아아아아악!"

* * *

섹시! 그 한 단어로 모든 게 표현된다!

드디어 밝혀진 리는 세계 톱모델이자 배우 진호 리였다!

마돈나, 케이지가 만들어 낸 역작! 새로운 섹시 아이콘!

되돌아온 퍼포먼스의 시대!

진호 리! 그 치명적인 유혹! 섹시계보를 잇다!

섹시는 만국 공통어! 동양에서 온 섹시 아이콘!

저스틴 질버레이크! 난 섹시한게 아니었다. 극찬!

어셰어. 함께 작업하고 싶은 목소리와 춤!

단 하루 만에 빌보드 핫 100, 15위 랭크!

오늘자 주간지와 일간지를 정리하던 정 실장이 1면 기사 타이틀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피유. 역시 난리가 아니네. 이건 뭐 한국보다 더한걸?"

한국보다 더 언론사가 많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 이건 빼야겠군."

진호가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악의적인 말만 써 놓은 삼류 잡지였다. 정 실장은 '팩트 체크. 허위사실 유포 시 고소 요망'이라고 쓴메모를 붙인 후 삼류 잡지를 한쪽으로 치워 두었다.

그러며 좋은 말과 충고 어린 말을 쓴 것들만 챙겨 진호에게로 향했다.

"진호야, 여기 오늘자 신문들과 잡지들. 진짜 어제 그 투데이 쇼오프닝이 대단하긴 대단했나 보다."

"당연하죠.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그런 가수가 아니면 서기 힘든 무대잖아요. 아, 오늘 스케줄 어떻게돼요?"

"아침 10시에 아리랑 TV에 출연하고, 2시에는 뉴욕으로 출발해야돼. 드디어 미국 투어 콘서트 시작이다!"

진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미국은 인기를 얻는 방식이 꽤나 재미가 있다.

그 어떤 가수라도 앨범을 많이 팔기 위해서는 미국 전체를 돌며 콘서트를 열어야 한다. 돈을 버는 것보다는 홍보를 위해 콘서트를 여는 것이다.

진호도 이 시스템을 따라야 했다.

'오늘부터 약 반년. 엄청 바빠지겠지……'

진호는 이를 지그시 깨물며 각오를 다졌다.

"알았어요. 그보다 메디슨 스퀘어가든에서 연락 온 건 없죠?"

"스티븐 팀장 말로는 곧 승복할거라는데?"

"그렇지!"

주먹을 부르르 떤 진호는 다시 아차하며 정 실장을 보았다.

"네, 알았어요……"

우우웅!

"음?"

진호는 갑자기 울리기 시작한 핸드폰을 보곤 의아해했다.

"잉? 이분이 왜? ……아."

피식 웃음을 터트린 진호는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양 사장님."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부탁하나 하자.

"안돼요."

-……왜! 이번에 데뷔시킨 애들 진짜 진국들이야! 얼굴이랑 실력도 다 예뻐!

"게스트가 마돈나와 케이지인데요? 카밀라 카베스랑 브루노마스……아, 네드도 출연하는데요?"

-……나도 이제 늙어서 청력이 떨어진 건가. 누구라고?

"들으셔 놓고 딴 소리하신다."

-아씨, 역시 안 되나……. 알았어, 끊어! 아, 너 내 부탁 깠으니까 박 대표 부탁도 들어주면 안된다!

"PJY는 더 어렵죠. 아티스트가 없는데."

-그렇지! 푸하하하하하! 끊을게!

양진혁이 전화를 끊자 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눈을 빛냈다.

"미안해요, 양 사장님. 우리 애들 알리기도 바빠요. 정 실장님, 애들은 누가 픽업하기로 했어요?"

"매니저 2팀이 이동시키기로 했어. 공항에서 만날 거야!"

"오케이. 그럼 일어나시죠!"

이 기회를 빌어 까탈레나 등 연습생들을 홍보시킬 생각인 진호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