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326화 (326/424)

14권 2화

무언가 어긋나 있다.

불합리의 극치를 보는 것 같다.

기본 자세조차 버벅거리며 헤매더니 수백 번 똑같이 어설픈 자세를 취하자 이보다 더 소름끼칠 수가 없을 만큼 완벽해졌다.

턴도 마찬가지다.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처음부터 완벽하지만, 결코 완벽하지 않은 턴을 천여 번 계속 하더니 결국 손끝과 발끝에 감정을 담게 됐다.

그러다 결국.

슉! 슉!

너무도 작은 소리.

85kg의 육중한 몸이 한 바퀴를 도는데 들리는 소리라곤 날카로운 칼날이 바람을 가르는 것 같은 작은 소리뿐이다.

느리다. 아니, 빠르다. 아니, 느리다.

어긋난 톱니바퀴를 억지로 돌리고 돌리다가 결국 쑤셔 넣어져 맞물려지는 것 같은 배움의 속도.

그런데 다른 곳에도 어긋난 톱니바퀴가 있다.

이래서 어긋나고, 불합리의 극치라고 말하는 것이다.

"재밌는 걸 데려왔네, 도나."

이렇게 기이하고 기괴한 재능이 있을까.

몸은 또 어떤가.

마치 신이 이 재능도 가지고, 이 재능도 가지고, 이 재능도 가지라며 온갖 재능을 짬뽕시킨 뒤 아주 정성들여 빚은 것 같다.

마돈나는 친구의 말에 대답을 않고 계속 똑같이 완벽한 턴을 하는 진호를 노려봤다.

'춤을 그렇게 못 추더니……'

춤을 못 추는 게 아니었다. 그저 '제대로' 배우지 않은 거 였다.

춤에 대한 거대한 재능이 저 얍실하면서도 완벽한 육체 안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잠들어 있었던 것뿐이었다.

"어때? 키울 맛 나겠어?"

"말이라고 해?"

노년의 여성은 양손을 들어 가슴께 앞에서 부딪쳤다.

짝악-!

슉! 슉! 슉!

레슨실을 쩌렁쩌렁 울린 박수 소리에도 듣지 못한 듯 계속 턴을 하고 있는 경이로운 집중력.

"내게 맡겨. 내가 비록 엄마보다는 실력이 떨어진다고 해도 어디가서 꿇리진 않으니까."

"……됐어. 같이해. 저 애송이는 내 거야."

"새 애인?"

"그러면 더할 나위 없지만, 늙은이의 주책이지."

"호. 이제야 철이 들었구…… 응?"

"흡?"

무언가를 느낀 둘은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을 부릅떴다.

'진입했어.'

'겨우 하루 만에 그 세상에 진입하다니……. 이 무슨!'

바늘귀보다 더 좁은 원에서의 완벽한 턴.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재능을 가진 천재가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여 신의 허락이 있을 때만이 들어설 수 있는 그 찰나의 세상.

진호가 그 세상에 돌입한 것이다.

경악했던 그들은 이내 더 경악할수밖에 없었다.

한 번, 혹은 두 번으로 끝나야 하는 그 간절하고 마약 같은 그세상에 진호가 계속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때 문이 열리며 조나단 파블로가 들어섰다.

* * *

짝짝짝짝짝!

"와우. 다시 봐도 정말 놀랍군요. 어떻게 이럴 수 있죠?"

코난뿐만 아니라 객석에 앉은 사람들도 감탄과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반응을 살핀 진호는 세상 착하게 웃었다.

'됐다! 터졌어!'

"글쎄요. 저도 왜 이런 체질을 타고난 것인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어요. 어떤 까칠한 동물도 전 다가갈 수 있다는 것?"

"푸하하하하하! 그것 참 부러운 체질이군요! 난 알레르기만 있는데 말이죠!"

하하하하하!

객석에서 웃음이 터지자 코난은 눈을 빛내며 마무리 멘트를 했다.

"지금까지 코난 쇼, 그리고 진호 리였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와아아아아아!"

그렇게 쇼가 끝나자 진호는 코난과 악수를 하였다.

"고마워요, 코난."

"내가 더 고맙지."

예상대로 평소보다 시청률이 더 나왔다.

"내일부터 반응이 뜨거울 거야."

"그 달궈진 냄비가 식기 전에 다른 장작을 집어넣어야죠."

"이를테면 케이지와의 작업?"

진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보면 알아요."

"엇? 뭔가 더 있는 거야?"

"보면 안다니까요. 대신 장담할게요. 그걸 알게 된 순간 코난은 내게 다시 단독 게스트를 보장후다닥!

"진호야!"

진호는 갑자기 세트장으로 난입한 정 실장의 행동에 의아함을 느꼈다. 하얗게 질린 정 실장은 말대신 핸드폰을 보여 주었다.

그에 진호도 하얗게 질렸다.

-주접 다 떨었으면 돌아와야지? 5시간 주겠어. 아, 비행기 보내 놨으니까 오는 길에 턴 천 번씩 해.

마돈나가 보낸 문자.

5시간이라는 단어가 뇌에 틀어박혔다.

'5시간에서 1분이라도 늦는다면?'

오싹!

"그, 그럼 저 먼저 갈게요! 다음에 봐요, 코난!"

후다닥!

"뭐, 뭐야? 무슨 일인 건데?"

코난은 멍하니 멀어지는 진호를 바라보았다.

* * *

샤악! 샤악! 샤악!

이제 막 해가 떠오르는 아침, 손바닥만 한 앙증맞은 빗자루를 든진호가 발레 학원의 나무 바닥을 쓸고 있다. 그런 그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땀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무리 작은 빗자루라고 해도 정상급 운동선수보다 더 피지컬이 좋은 진호가 이렇게 땀을 흘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토슈즈를 신은 채 발끝으로 걸으며 청소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찍고 있는 조나단 파블로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릴 수밖에 없었다.

조나단 파블로는 아침부터 눈빛이 형형한 두 마리의 암사자를 향해 다가갔다.

"이거 학대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도나."

"풋."

마돈나는 자신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메리 볼스카야를 보았다.

새치가 난 머리칼을 틀어 올린 볼스카야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힘드니?"

진호는 기겁하며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당연히 힘들죠! 그걸 말이라고-!'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메리 볼스카야는 마돈나와 똑같은 성격을 가진, 아니 그보다 더 나쁜 성격을 가진 여성이라는 것을 말이다.

'적당히 좀 할걸-!'

진호는 그저께 밤의 그 순간을 떠올렸다.

'완벽한 턴의 느낌……'

이 스킬은 3차 해금 조건부터 무척이나 까다로워지는데, 해금 조건이 '모든 턴 한 번씩 완벽하게 해내기'다.

이 완벽하게가 문제다.

리셋라이프를 할 당시에는 마치 낚시 게임처럼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는 1밀리미터의 바가 2밀리미터의 존에 완벽하게 정지될 때만 카운트가 되었던 턴.

그 효과로 핸드폰이 떨리며 짜릿한 손맛을 느끼게 했다.

그런데 실제로 그걸 해내니,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짜릿짜릿했다.

다시 생각해도 정말 엄청난 느낌이었다. 이래서 발레리나들이 발레에 그렇게 목을 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니 4차 해금 조건인 '모든 턴 완벽하게 천 번씩 해내기' 또한 전혀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마약을 갈구하듯 계속해서 턴을 해냈다.

'육체 관련 스킬들의 시너지가 그걸 가능케 했지……'

어떤 것이든 한 번 각인된 자세와 호흡이라면 언제든지 똑같이 재현할 수 있는 신체다.

'그게 문제였어, 그게!'

오늘 새벽 5시.

4차 조건마저 해금시켜 버리며 그 충격에 몰입이 깨져 버린 진호는 큰 아쉬움을, 그리고 어느새 나타나 이쪽을 찍고 있는 조나단 파블로 때문에 놀라움을 느끼기도 전에 온몸을 엄습하는 공포를 느껴야 했다.

먹이 사슬 꼭대기에 선 맹수 두마리가 먹잇감을 노리는 듯한 눈빛 탓이었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밤새 육체를 혹사시킨 반동으로 아직도 온몸이 욱신거리는데, 발끝으로 걸으며 청소를 해야 하는 것 말이다. 그것도 마치 폴더블폰처럼 몸을 접은 채.

"이 정도야 뭐! ……힘들지만 할 수 있습니다!"

'청소기를 주시면 안 될까요-!'

너무 힘든 나머지 허세를 부릴뻔한 진호는 식은 땀을 흘리며 메리 볼스카야의 눈치를 보았고, 눈을 가늘게 뜬 그녀는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 대상은 진호가 아니라 조나단 파블로가 든 6밀리 카메라였다.

"이 청소는 내가 러시아 발레단에 들어갔을 때 했던 일이죠. 내가 들어간 발레단에선 이걸 통과 의례라고 불렀어요. 여기서 도망가는 사람과 남는 사람이 1차로 갈렸거든요. 그러나 진실은 다르죠. 육체와 정신을 단련시키는 거예요. 절대로 무대에서 쓰러질 수 없도록."

이제야 이 고문 같은 행위의 뜻을 알아차린 사람들은 하얗게 질렸고, 진호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억울했다.

'전 그 무대에 서지 않을 건데요! 어디까지나 그냥 발레만 배우러온 것뿐인데요-!'

억울해서 미치고 팔딱 뛰겠는데 절대 입 밖으로 낼 수가 없다.

등에 꽂히는 맹수의 시선이 너무 아프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진호는 어느새 옆으로 온 조나단 파블로에게 도와 달라 간절한 눈빛을 보냈지만, 그는 고개를 슬그미니 돌릴 뿐이었다.

'나쁜 사람! 날 원하면서-!'

"청소에 집중 안 하지?"

"네, 넵!"

진호는 다급히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결국 걸레질까지 끝내고 나서야 청소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흐억! 헉! 헉!"

이렇게 숨이 턱까지 차오른 적이 얼마 만일까.

"겨우 이 좁은 공간을 청소하면서 그렇게 헉헉거리다니. 쯧."

'좁아? 100평은 족히 되어 보이는 이 공간이? 마돈나, 당신이 해봐-!'

원래 사람을 단련시키기 위해서는 나쁜 사람, 좋은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게 최고인데, 여기는 나쁜 사람만 있다.

진호는 울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는 웃었다.

"시, 식사하셔야죠? 밥 차릴게……"

벌컥!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고개를 돌린 진호는 입을 떡 벌렸다.

어느새 레슨 시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오는 아이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지노!"

"지노다!"

"아냐! 아쿠아맨이야!"

"아니야! 외계인이거든!"

투다다다다다!

"지노! 지노! 정말 물고기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어?"

"지노! 외계인 맞지? 우주선은 어디 있어?"

'아쿠아맨? 외계인? 아……'

진호는 그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젯밤 시간을 내서 다녀온 코난쇼.

돌아오자마자 다시 지독한 레슨을 받느라 방송 반응을 확인하지 못했는데, 미시건의 작은 마을에 사는 이런 작은 꼬마들까지도 알만큼 대단했던 것 같다.

아직 정 실장이 오지 않아서 장담은 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이번 기획의 첫발이 성공적으로 내딛어진 것 같았다.

'어이구. 이 귀여운 것들!'

진호는 꼬마 아가씨들을 꽉 껴안았고, 아이들은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진호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 * *

며칠이 흘렀을까. 레슨을 받는 아이들도 카메라에 익숙해져 갈 때, 진호는 다음 해금 조건을 해금해가고 있었다.

'미치겠군, 미치겠어. 이게 진짜 천재라는 건가!'

조나단 파블로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후욱! ……!

공기를 가르는 소리는 들려도, 착지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마치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 고양이처럼 날렵하고, 부드럽다.

아니다. 한 마리의 백조다.

허공에서 쫙 뻗은 다리는 창공을 향해 펄럭이는 날개였고, 하늘과 땅을 향한 양팔은 머리와 꼬리였다.

일순간 진호의 몸을 공기가 감싸는 것 같았다.

'이건……!'

그렇게 흥분하는 조나단 파블로와 달리, 이번에도 소리 없이 착지한 진호는 다시 점프를 하려다가 멈춰 서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5차 해금을 하긴 했는데……'

5차 해금 조건인 완벽한 점프 500번. 방금 해내었다.

덕분에 근육이 다시 변화하였지만,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흐음."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거지?"

진호는 굳은 얼굴로 나타난 메리 볼스카야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시잖아요. 진짜 백조는 이러지 않아요."

[스킬: 유리가면]이 경고하고 있다.

이따위 건 결코 백조가 아니라고 말이다.

'이건 백조보다 차라리…….'

"왜 백조 따위를 신경 쓰는 거지?"

메리 볼스카야가 이상하다는 듯 물어왔다.

"넌 지금 기본을 배우는 것뿐이야."

"……네? ……아! 아아아!"

한심하다는 메리 볼스카야의 눈빛에 지금까지 엄청난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메리 볼스카야는 그런 진호를 더 한심하다는 듯 보았다.

"헛소리 말고 점프나 연습해. 아직 한참 멀었어!"

"알아요. 그런데 저 그냥 점프 말고 빠 드 샤를 연습해도 될까요?"

6차 해금 조건인 완벽한 빠 드 샤 3시간.

백조의 호수에서 고양이 스텝이라고 불리는 점프다.

"그래서였군. 백조의 호수를 본거야."

"아하하."

"모자란 놈. 네 한계를 정하지마! 힘을 아끼는 버릇을 들이지마!"

'오오, 명언이다.'

"아하하. 하지만 저도 코르 드 발레, 아니 군무를 해야 하잖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순간 메리 볼스카야의 눈이 다시 한심함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말을 하는 건 마돈나였다.

그녀는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리며 앞으로 나섰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왜 다른 놈들에게 널 맞추려고 하는 거지?"

"……어?"

저릿!

왜인지 전율이 온몸을 관통했다.

"그, 그럼?"

"다른 놈들이 너에게 맞추게 해. 그게 가수고, 아티스트야! 알았어, 애송이?"

"그렇지. 최소한 내게 배운 발레리노라면 응당 그래야 하지. 그리고 그게 진짜 천재인 거고."

찌리릿!

전율이 다시 온몸을 관통했다.

"……와."

진호의 눈이 번뜩 빛나기 시작했다.

"지금 그거 저 인정하시는 거 맞죠? 그렇죠?"

"시끄러!"

"흥!"

"흐흐흐."

'이거 이러면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잖아.'

눈빛을 굳힌 진호는 학원 구석에 굴러다니는 분필을 들고 와 바닥위에 지름 5센티미터의 작은 원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패턴은 굉장히 불규칙적이었지만, 원 안에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뭐하는 거지?"

"빠 드 샤요."

'주인공은 청소 도구를 모아 둔 창고, 그 좁은 공간에서밖에 연습을 할 수 없었지. 들켰다가는 쫓겨나는 걸로 끝나지 않으니까.'

그래서 궁리하고 궁리하였다.

어떻게 하면 공간을 제대로 이용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들과 똑같아질 수 있을까.

'빛 한 점 없는 그 공간에서 주인공은 그렇게 스킬을 해금해 갔다.'

어느새 원을 다 그린 진호는 그 중앙에 서며 눈을 감았다.

그러자 메리 볼스카야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 이건? 네, 네가 이걸 어떻게?'

"후우우! 박수로 타이밍을 주세요."

메리 볼스카야는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짜악!

그리고 진호는 언젠가 브로드웨이의 한 극장에서 켓츠 속고양이에 빙의됐던 것처럼 고양이에 빙의되며 높이 떠올랐다.

메리 볼스카야는 그 깃털 같은 점프에 이를 악물었다.

"뭐하는 거야! 더 빨리 -! 3번!"

'어째서 네가 그 발레단의 훈련법을 알고 있는 거냐!'

볼쇼이. 그곳의 훈련법을 말이다.

[스킬: 무중력]

[진정한 댄서는 중력마저 조절한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