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권 25화
'될까, 말까.'
진호는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다.
'아니, 케이지는 왜 저 할머니를……'
작은 원망을 담아 케이지를 보았던 진호는 모든 걸 깨달을 수 있었다.
'헐? 와……'
차라리 쥐약이라면 뱉을 수라도 있다.
그러나 이건 뱉을 수도 없는 엄청난 보약이었다.
'그래, 인정한다. 얕봤어.'
그녀의 소유욕을 얕봤고, 그녀의 두뇌를 얕봤고, 그녀가 살아온 세월 속에서 쌓은 연륜을 얕봤다.
'이러면 거부할 수가 없잖아.'
이렇게 간절히 바라는 사람을 뿌리칠 만큼 매정하지도 못했고, 비즈니스 측면으로 봐도 이건 무조건 해야 할 일이었다.
무려 마돈나와 케이지의 조합이다.
까망이 방귀 소리를 녹음해서 시장에 내놔도 100만 장 이상은 무조건 팔린다고 봐야 했다.
'그런데 대체 왜지?'
아무리 생각해도 재즈 연주 하나 가지고는 그녀가 이렇게 매달리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았다.
"이유가 뭐예요?"
"보물함."
"하아. 정 실장님……"
이쪽이 사고를 치지 않으니 저쪽에서 사고를 쳐 버렸다.
"뭘 들었는…… 아니, 반응을 보니까 마돈나를 생각하며 쓴 곡을 들었나 보네요."
"오호? 그게 내 곡이었어?"
"한 명의 음악인으로서 당신은 무척이나 영감을 주는 아티스트니까요."
마돈나. 전성기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작곡가라면 한 번 쯤은 함께 작업을 해 보고 싶다 꿈꾸는 아티스트다.
"그런데 왜 날 거부한 거지?"
"내가 곡을 주는 것과 마돈나의 입맛에 맞춰 내가 쓸 곡을 작업을 하는 건 다르잖아요. 그리고 그 재즈 연주가……"
진호는 말끝을 흐렸지만, 그 뜻은 마돈나에게 확실히 전달되었다.
"그랬군. 인정해. 확실히 난 늙고 찌들었지."
마돈나의 말처럼 화려한 퍼포먼스라는 건 결국 감각이다.
그 감각이 늙고 찌들어 버린 그녀가 프로듀서라는 키잡이가 된다면 꽤나 골치 아파질 수밖에 없었다.
"그건 또 그만의 멋이 있지만요. 드릴 곡도 작곡해 뒀어요."
"아, 혹시?"
마돈나는 이건 무조건 내 거라고 생각했던 그 곡을 떠올렸다.
"에이. 정 실장님이 그것도 들려줬나 보네."
"하하하하하하! 정말 건방진 애송이라니까!"
"칭찬 감사함돠!"
재빨리 대답한 진호는 케이지를 보았다. 마돈나의 의도를 알게 됐으니 이제 그의 말을 들어 볼 차례였다.
"나도 네 영상들과 음악을 들었어, 친구. 음악 세계가 굉장히 넓고 깊더군."
케이지는 눈을 빛냈다.
솔직히 그는 진호의 음악 자료를 확인한 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마치 모두 다 내 거라는 듯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음악 세계관.
케이지는 이런 괴물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믿을 수 없었고, 또이 괴물이 왜 빌보드에 진출하지 않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자신이 먼저 진호를 발견할 수 있어서 말이다.
'어차피 가만 놔둬도 언젠가 정상에 설 저 천재를 이렇게 끌어올려주면?'
케이지 본인의 명성이 다시 다져지고, 훗날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터였다. 물론 진호가 얻을 이득은 말할 것도 없었다.
진호는 강렬하게 욕심을 드러내는 그를 보며 옅게 웃었다.
"그래서 어떤 곡을 작업하려는 건데요?"
"그건…… 으븝?"
마돈나가 마치 이 말은 자신의 것이라는 듯 케이지의 입을 막으며 입을 열었다.
"리듬, 그리고 퍼포먼스의 크로스."
"……네?"
진호는 잠시 귀를 후볐다. 듣지 말아야 할 단어를 들은 것 같았다.
그러나 사악하게 빛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 잘 들은 게 맞는 것 같았다.
"춤 배우자. 애송아."
"아……"
진호의 머릿속으로 세상 딱딱한 웨이브, 유연한 각목이라던 레오의 잔인한 평가가 떠올랐다.
진호는 작게 좌절했다.
* * *
쿵쿵쿵쿵쿵!
EDM과 힙합이 크로스 된 격렬한 비트가 울리는 공간.
마돈나와 케이지는 입을 헤 벌렸다.
"My god…… what the hell?"
혼이 나간 것 같은 케이지의 반응은 그나마 양반이다.
"내,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똥을 보는 건가?"
피노키오가 춤을 춰도 이보다는 유연할 것 같은 모습.
나무를 깎아 만든 애벌레가 꿈틀거려도 이보다는 아름다울 것 같은 춤사위에 마돈나는 바퀴벌레로 인해 세상이 멸망한 것 같은 충격과 공포를 느껴야 했다.
"때려치워-!"
결국 입술 끝에 겨우 걸려 있던 담배를 집어던진 마돈나는 플레이어의 전원을 꼈고, 격하게 춤을 추던 진호는 왜 그러냐는 듯 둘을 보았다.
"왜 벌써 꺼요. 이제야 필 받기 시작하는데!"
"닥쳐-!"
춤을 배우자는 말을 하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레전드, 퀸오브 팝 마돈나로서 퍼포먼스를 가르치기 전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 한 말일 뿐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
"어, 어떻게 이런 춤이 성립이 될 수가…. 하하. 그래, 세상이 멸망한 거야. 아니지.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와서 잘 생긴 안드로이드가 추는 춤을 보는 걸 거야. 그렇지 않고서는……!"
"하하. 제 춤이 좀 유니크하긴 하죠?"
"닥치라고-! 닥쳐, 좀!"
진호는 재빨리 입을 다물었고, 마돈나는 새 담배를 질겅질겅 씹다가 다시 내팽겨쳤다.
그녀로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줌.
"분명 리듬감은 넘치는데, 어떻게……. 어떻게-!"
진호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하는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스킬을 배워야겠네.'
그렇지 않아도 케이지와 작업을 하면 리듬을 탈 수밖에 없는 곡이 탄생할 것이기에 춤 관련 스킬을 얻으려고 했었다.
애써 잘 뽑은 곡에 그루브를 탈수 없을지언정 세상 딱딱한 각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기에 생각은 해 두고 있었다.
'무슨 스킬을 얻어야 하려나…….'
의외로 춤 관련 스킬은 몇 가지나 있었다.
"케이지."
"네, 마돈나."
"저 쓰레기가 인간이 되기 전까지 곡 작업은 중지야."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거 말이 너무 심하시네. 아니, 내가 뭘 얼마나 못 춘다고……. 물론 더럽게 못 추는 건 맞지만, 그래도!'
[스킬: 아이돌 마스터]를 얻은 이상 춤은 냉정하게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춤은 필인데……. 클럽에서는 잘 먹히는데……"
콰악!
"악!"
"개 소리 말고 따라와."
"따, 따라갈게요! 따라갈 테니까, 귀! 귀 좀!"
"따라와-!"
'사, 살려!'
진호는 케이지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줄 뿐이었다.
"사람이 되어 돌아오길 바랄게, 친구!"
"……이 배신자-!"
부우우우웅!
달리는 그녀의 차 안. 진호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눈을 감고 있는 마돈나의 모습에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전 뭘 배우러 가는 거예요?"
"넌 그냥 닥치고……"
"내가 배우는 거잖아요. 그러니 뭘 배울지는 알아야죠."
진호는 단호하게 말했다.
잘못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잘못한 것 같기에 그녀의 페이스대로 따라 줬지만, 이제 부터는 아니었다.
그런 마음이 전해진 건지 눈을 뜬 마돈나는 진호의 굳은 눈을 보다가 피식 웃었다.
"발레."
"……발레요?"
마돈나는 조소를 지었다.
"왜? 발레가 우스워 보여?"
"그럴 리가요. 전혀 아닙니다."
진호는 진지하게 말했다.
리셋 라이프에도 발레리노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 처절하고도 지독한 세계.
백조의 호수가 칭찬받는 이유는 그들이 바로 백조이기 때문이다.
수면 위로는 우아하게 날개 짓을 하지만, 수면 밑으로는 가라앉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발레리나, 발레리노들의 삶을 게임으로라도 겪어 보았기에 결코 우습게 여길 수 없었다.
'정말 처절한 스토리였지. 한국인으로서 볼쇼이에서 성공하는 건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니까.'
다만 왜 하필 발레인 것인지가 궁금했다.
"마돈나는 현대 무용을 배우지 않았나요?"
"중학교까지는 발레를 배웠어. 그리고 그게 마돈나라는 존재를 이룬 토양이 됐지. 내가 만약 발레를 배우지 않았다면, 지금의 마돈나는 없었어."
"아……"
마돈나의 눈이 번뜩였다.
"발레는 표현의 예술이야, 애송이."
"모든 춤이 그렇죠."
"그리고 모든 춤의, 모든 움직임의 근원이지."
"근원?"
"그래, 근원."
진호는 선뜻 이해할 수 없는 말에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발레의 뜻이 '춤을 추다'라는 이탈리아어에서 기원된 건 알지만……. 음……"
발레의 어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에 살짝 놀랐던 마돈나는 고민하는 듯한 그의 모습에 코웃음을 췄다.
"배우면 알게 될 거야. 왜 발레가 모든 춤의 근원인지!"
"그러면 지금 어디를 가는 거예요?"
"날 가르쳐 준 선생님에게."
"엑? ……네에?"
'사, 살아 있……아, 마돈나도 그렇게 많은 연세가 아니지, 참.'
이젠 백세시대다. 놀랍기는 해도 믿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흠. 그러면 발레를 습득해야겠네.'
마돈나는 지금 그 본인이 퀸 오브 팝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토양을 소개시켜 주려는 것이다.
몇 번 보지 않은 동양인을 위해서 말이다.
'이렇게 날 위해 주는데 어떻게 다른 스킬부터 얻겠어.'
진호는 눈을 빛냈다.
"그렇다면, 아직 연락하지 않았다면 발레 쇼부터 관람시켜 주세요."
"음?"
"대단한 분을 만나러 가는데 발레에 대해 쥐똥만큼이라도 알고 있어야 하잖아요."
발레 스킬의 1차 해금 조건이 '발레 공연 감상하기'다.
어차피 해야 될 거 번거롭지 않으려면 가는 길에 해치워야 했다.
이런 진호의 마음을 모르는 마돈나는 그의 기특한 말에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사라! 지금 볼쇼이가 뉴욕에 있지?"
"알았어, 예약할게!"
그렇게 그들은 뉴욕의 브로드웨이로 향했다.
* * *
-헉헉! 그럼 전 계속 따라가겠습니다! 빌어먹을, 운동을 하던가 해야지, 원!
달칵!
정 실장의 전화가 끊기자 사람들이 가득한 회의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대체 지노의 정체가 뭡니까, 보스."
하얗게 질려 말하는 스티븐 팀장뿐만이 아니다. 미국에서 헤드 헌팅한 모든 직원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회의실 한쪽 벽을 모두 채운 수십 개의 모니터속에 있는 다미앙을 비롯한 다미앙 지사의 고위 임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마돈나와 케이지의 결합. 상식을 벗어나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었다. 그런데 그걸 여기 있는 직원들이 아니라 아티스트 본인이 해결해 버렸다.
이번만큼은 한국 지사의 임직원들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정말 외계인인 겁니까?"
스티븐 팀장의 말투에 열은 박탈감이 서렸다.
-외계인의 초능력도 이 정도는 못하지 않을까요?
왜인지 놀리는 듯한 다미앙의 말에 스티븐 팀장의 미간이 좁혀졌다.
-스티븐 팀장.
"예, 지사장."
-당신의 상식으로 진호 씨를 판단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우리가 판단하고 제어해야 합니다! 그게 기획사의 역할입니다! 소속 연예인이……"
-아뇨. 우린 서포터입니다. 진호씨에게만큼은 진호 씨가 무슨 일을 하든 지지하고 도와주며 그 행위를 널리 퍼트리는 서포터란 말입니다.
"그게 무슨! 그런 거라면 그냥……"
-그게 맘처럼 안 되니까 다미앙 지사가 만들어진 겁니다.
"……무슨!"
"아이돌 프로젝트, 아니 모델 프로젝트가 시행되기 전 팀 다미앙의 직원 숫자가 약 스무 명이었습니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만 스무 명."
-그리고 모델 프로젝트, 아이돌 프로젝트 등 다미앙 지사가 현재 진행하는 모든 프로젝트는 진호씨의 손에서 탄생했습니다.
장경아의 말을 받은 다미앙의 말에 사람들은 입을 떡 벌렸다.
"……맙소사."
다른 사람들도 경악했다. 다른 프로젝트들은 모르지만, 아이돌 프로젝트는 다미앙 지사의 최대 캐시카우였다.
그러나 아직 다미앙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프로젝트 관여 지분율도 50퍼센트 이상. 진호 씨가 투자한 자금까지 합하면, 진호 씨의 지분율은 65퍼센트까지 치솟습니다.
"그, 그게 말이 됩니까?"
-말이 되더군요.
"홀리……"
"오 마이 갓……"
-거기다 진호 씨는 다미앙 지사의 최대 주주기도 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진호 씨의 지분이 저보다, 아니 본사보다 많습니다.
"무슨! ……아!"
다미앙이 방금 말했다. 프로젝트들 내 진호의 지분율에 대해 말이다.
"그, 그럼 그 수익을 모두…"
-예, 재투자와 여러분의 월급으로 나갑니다. 진호 씨가 계약을 계속 8 대 2를 유지하는 것도 그런 의미입니다. 9 대 1 혹은 9.5 대 0.5와 8대 2 사이의 차익을 여러분에게 드리는 겁니다.
사람들은 탄성을 터트렸다. 고작10, 15퍼센트의 차이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진호가 벌어들이는 수익을 고려 하면 포기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액수가 되기 때문이다.
'LA 저택 수십 개는 살 수 있는 돈을 포기하다니……'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을까!'
그들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거 서포트가 될 수밖에 없군요. 저희의 두 번째 보스이니 말입니다!"
감동하고 감탄했으며 또 일 욕심이 갑자기 치솟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미련의 끈을 모두 놓지 못한 스티븐의 말투에 다미앙은 코웃음을 쳤다.
-저도 진호 씨의 모든 재능을 파악했다면 제어했을 겁니다. 소속 연예인의 밑바닥도 모르는데 어떻게 제어할 수 있겠습니까?
"예? 그게 무슨……"
-장 지부장.
"마돈나의 발레 은사에게 발레를 배우러 간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발레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일 수 있다.
아니어도 좋다. 진호의 운동 신경은 이미 일반인의 범주를 초월했으니 금세 배워 버리고 말 터였다.
-해 보세요.
"예!"
말하지 않아도 그들은 통했다.
-미국 지사 여러분도 이번에는 한국 직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세요. 미국에 대해 빠삭하게 아는게 당신들이라면, 진호 씨에 대해 빠삭하게 아는 게 우리 들이니!
'그리고 느끼고 받아들이십시오! 진호 씨가 진호 했다는 게 무엇인지!'
다미앙은 이 기회에 미국 직원들의 생각을 뜯어고치기로 했다.
그리고 이 기회를 빌어서 미국에서 헤드 헌팅을 한 직원들과 지사에서 보낸 직원들을 화합시켜 하나의 유기체로 만들기로 했다.
다미앙뿐만 아니라 한국 직원들 모두 미소를 지었다.
'어서 와. 이런 연예인은 처음이지?'
자신들만 당할 수는 없었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