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323화 (323/424)

13권 24화

8. 처음이지?

챱챱챱챱!

"아, 알았어! 일어날게! 일어난다고!"

"왕! 핵핵! 왕!"

눈을 뜬 진호는 침 범벅이된 얼굴을 쓸어내리며 살이 많이 오른 까망이를 노려봤다.

"너어."

"끄으응?"

"……에휴. 이리 와!"

무엇을 잘못한지도 모른 채 똘망똘망 빛나는 까망이의 눈을 보니 혼을 낼 수가 없었다.

까망이를 덮치듯 끌어안은 진호는 침대 위를 됨굴었고, 까망이는 어지럽다고 발버둥을 쳤다. 그렇게 한바탕 난리를 치른 뒤에야 몸을 일으킨 진호는 오늘도 화창한 LA의 맑은 하늘을 보며 기지개를 쭉폈다.

"끄으-!"

'드디어 내일인가?'

케이지와 만나는 날이 말이다.

수 많은 아티스트를 키워 낸 그의 안목은 어떨지, 음악관은 어떨지 기대가 너무 돼서 어젯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모레에는……"

코난 쇼가 방영된다.

"……으흐흐. 좋네, 좋아."

뭐가 이렇게 딱딱 맞물리는지 소름마저 돋을 정도다.

"끄응?"

"아무것도 아니야. 자, 그럼 가자. 씻으러."

"……왕!"

덥썩!

진호는 도망치려는 까망이를 재빨리 안아 들었다.

"어딜, 인마. 어딜. 넌 수영은 좋아하면서 목욕은 왜 싫어하는 거야?"

"끄응! 끙!"

진호는 몇 번 발버둥 치다가 축늘어지는 까망이에 웃음을 터트리며 화장실로 향했다.

"오?"

씻고 나온 진호는 집안을 가득 채운 매콤한 향기에 눈을 크게 뜨며 재빨리 부엌으로 향했다.

그곳엔 놀랍게도 앞치마를 두른 정 실장이 있었다.

"와, 부대찌개다!"

그것도 정말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정 실장표 부대찌개다. 자취 경력만 10년 이상의 내공에서 나오는 정 실장표 부대찌개는 진호도 쉽사리 따라하지 못하는 맛을 가지고 있었다.

"헐, 계란 말이도 있다. 오늘 무슨 날이에요? 누구 생일이에요?"

"내일부터 중요한 일이 있잖아. 오늘은 컨디션 관리해야지! 필요한 거 있으면 나한테 다 말해!"

"오오오!"

박수를 친 진호는 재빨리 밥을 푸기 위해 움직였다가 정 실장의 국자에 가로막혀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방금 말했지. 필요한 거 있으면 다 말하라고! 넌 그냥 식탁에 앉아 있어!"

"……오올. 옙!"

냉큼 식탁에 앉은 진호는 정 실장의 뒷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그의 쫙 펴진 등에서 기쁨과 자부심이 가득 느껴졌다.

'그럴 수밖에 없나.'

미국 지부뿐만 아니라 다미앙 지사까지 발칵 뒤집히게 만든 그 케이지와의 작업이다.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가수 중 한 명으로 불리는 케이지.

저런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따르르르릉!

"응?"

정 실장의 고개도 부엌에 있는 내선 전화기를 향해 돌아갔다.

"오늘 누가 오기로 했어요?"

"아니?"

"그래요? 그럼 누구지?"

진호는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몸을 일으켰다.

"됐어. 앉아 있어."

"정 실장님이 됐어요. 부대찌개에 집중하세요. 나 지금 엄청 기대하고 있는 거 알죠?"

진호는 재빨리 부대찌개를 바라보는 정 실장을 향해 히죽 웃어주고는 내선 전화기를 들었다.

"네, 이진호입니다."

-저, 정문입니다. 지, 지금 손님께서 찾아 왔……아, 바꿔 달라십니다.

"응?"

뭔가 언젠가 겪은 듯한 상황.

'아, 제니퍼가 온 건가? 걔가 이 아침엔 왜…….'

의아해하며 귀를 기울인 진호는 이내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덜컥 굳어 버리고 말았다.

-나야. 문 열어.

분명 어디선가 들어 본 목소리다.

그것도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렇게 몸이 먼저 반응해 버릴 만큼 충격적인 만남을 가진 누군가의 목소리.

한참을 고민하던 진호는 이내 입을 떡 벌렸다.

"마, 마돈나?"

-그래. 문 열어, 애송이.

진호는 기겁하며 전화기를 바라봤다.

'당신이 여기 왜 와-!'

* * *

저택에 비상이 걸리고, 모든 이들의 몸에 긴장이 잔뜩 서렸다.

"오. 존슨 스튜로군. 오랜 만인데?"

진호는 눈을 껌뻑거렸다.

"응? 마돈나가 부대찌개를 어떻게 알아요?"

부대찌개는 다른 말로 존슨탕이라고도 한다.

"당신은 한국에서 공연한 적이 없잖아요."

"한국에서 공연한 적이 없을 뿐이지, 한국인 친구가 없는 건 아니야. 덕분에 한식을 좋아하게 됐지."

"……아."

"그리고 내 딸이……. 흐음……"

"마, 마돈나?"

마치 먹잇감의 품질을 살피듯 위아래로 훑는 그 시선에 진호는 슬그머니 중요한 부위를 감추며 몸을 틀 수밖에 없었다.

'딸이 내 팬인……아, 패션을 좋아하나 보구나.'

"흠, 그런데 사용인이 적군. 매니저와 경호원만 있는 건가?"

"청소업체와 계약해서 괜찮아요."

집 안을 살피던 마돈나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음식을 직접 해 먹는 건가?"

"요리하는 게 좋아서요. 아직 식사 안 하셨으면 같이 먹어요."

"아니, 아침은 안 먹는 주의라서."

'네, 그러시겠죠.'

"그럼 녹차랑 빵이라도 좀 드세요. 그 연세에 아침 안 먹으면 뼈가 빨리 삭아요."

"흥. 인체가 이미 내게 적응했으니까 괜찮아. 그래도 준다고 하는 건 마다하지 않겠어."

"네, 네. 거실로가 계세요. 정실장님, 안내 좀."

"아, 응! 마, 마돈나. 저,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고마워요, 매니저."

싱긋 웃은 마돈나는 정 실장을 따라 움직였고, 진호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이내 혀를 찼다.

"뭐야. 예쁜 말도 할 줄 알잖아. ……쳇."

비죽 입술을 내민 진호는 물을 끓이기 위해 가스레인지로 향했다.

아무리 입상인 손님이라도 손님은 손님이었다.

물론 이 이상 선을 넘는다면 끝이지만 말이다.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작은 사이 즈의 빵들과 다기 세트를 쟁반에 들고 거실로 향한 진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 할머니는 또 어딜 간 거야? 찻물 식는데."

최고의 차 맛을 우려내기 위한 황금 온도에 맞춰 찻물을 끓여 왔는데, 정작 대접해야 할 손님이 없다.

그러나 진호는 그녀가 어디에 있을지 예상이 갔다.

"작업실에 있겠네. 쯥."

자리에 앉은 진호는 녹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약 십여 분의 시간이 흐르자 이쪽을 향해 거침없이 걸어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털썩!

소파에 앉은 그녀가 눈을 빛냈다.

"훌륭해."

"제가 일일이 다 살펴보고 고른 기기들이니까요. 얼른 드세요. 적당히 식었어요."

"고맙게 먹지."

차로 목을 축이다 눈썹을 꿈틀거린 그녀는 손가락 두 마디 정도 사이즈의 작은 빵을 입에 넣었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상큼하면서도 진한 파인애플의 향과 입안을 달달하게 녹이는 생크림. 부드러운 카스테라 빵이 그 두 개를 감싸며 아찔한 화합을 이루고 있다.

"이건?"

"입맛에 맞으세요?"

"어디서 파는 거지? 이름은?"

"하와이에서의 하룻밤. 한국에서만 팔죠."

"멀어……"

작게 낙담한 그녀는 시장기가 돌기 시작한 건지 빵과 녹차를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말없이 먹기만 하던 그녀는 진호가 가져온 것을 모두 먹어 치우고 나서야 손을 멈췄다.

후룩!

녹차로 마지막 입가심을 한 그녀가 진호는 노려보았다.

"내가 왜 온지 알지?"

"네."

안다. 아니, 정확히는 알게 되었다.

'그 마돈나가 퇴짜를 맞았다고 이렇게 직접 설득하러 찾아 올 거라고 누가 생각하겠어.'

진호도 설마 그럴까 계속 혼란 해했지만, [스킬: 셜록의 후예]가 너의 예상이 맞다고 말해 주었다.

"좋아, 대답은?"

"죄송합니다."

이미 그녀에게 한 번 한 사과.

진호는 감히 다음에 하자는 말대신 진심을 담아 사과만 했고, 마돈나는 그 뒤통수를 바라보다 몸을 일으켰다.

"흐응……. 그래. 알았어."

'응?'

진호는 재빨리 고개를 들었다.

이른 아침부터 찾아온 것치고는 너무 빠른 포기였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등을 돌린 후였다.

"지금은 이렇게 가지만, 명심해. 난 결코 포기한 게 아니야."

"네?"

"난 한 번 찍은 먹잇감은 절대 놓치지 않아."

오싹!

마치 맹수의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은 것처럼 온몸의 솜털이 쭈뼛 솟았다.

'뭐지? 뭐야?'

뭘 경고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육감이 미친 듯 경보를 울리고 있었다.

"어……. 바, 밖까지 배웅해 드릴게요."

"됐어, 나오지 마. 또 보자."

진호는 바로 걸음을 옮기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봤다.

'정말 가는 건가?'

만약 억지로라도 그녀를 배웅했다면 아마 달랐을 생각을 한 진호는 그녀가 먹고 남은 잔해를 수습했다.

"……그래도 야무지게 드셨네."

말투는 참고약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어 줘서 참 고마웠다.

거기다 솔직히 말만 고약할 뿐, 그 행동들은 분명 혼자 사는 손자를 걱정하는 할머니의 그것과 굉장히 비슷했다.

음식들이 정갈하게 가득 찬 냉장고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안도하던 모습.

'기본적으로 착한 분이야. 멀다고 낙담할 때는 살짝 귀엽기도 했고……'

"에브브. 뭔 소리야."

고개를 저은 진호는 쟁반을 들며 일어섰다.

불청객도 갔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아침을 먹어야 했다.

* * *

드르륵! 쿵!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60대 노년의 여성은 사납게 웃고 있는 마돈나를 보며 피식 웃고 말았다.

"잘 됐나 보네."

"아니, 잘 안 됐어."

마돈나의 절친이자 그녀의 매니저인 사라 선셋은 살짝 놀랐다.

"오호, 감히 마돈나를 거부한 거야? 얼굴만큼 귀여운 아이네?"

"아니. 그 성실한 애송이는 그래도 될 자격이 있지."

"흐응. 그래서 내가 그랬잖아. 그아이는 너랑 맞지 않을 거라고."

여태껏 제대로 된 댄스곡을 부른 적이 없는 진호다. 퍼포먼스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마돈나와 작업을 할 확률은 극히 낮았다.

"거기다 그런 실력을 가진 아이가 곧 관에 들어갈 아티스트와 작업을 할 리가 없잖아."

매니저 사라의 독설에 코웃음을 친 마돈나는 더 사납게 눈을 빛냈다.

"그래서 더 가지고 싶어."

사라 선셋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지금 경악하고 있었다.

'자존심을 빼면 시체인 마돈나가 이렇게 애타게 바라는 가수라니?'

사라 선셋은 믿을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떤 점 때문에 그렇게 매달리는 거야?"

"그래. 그 환상적인 재즈 연주만큼 황홀한 곡들……. 그게 저기 저택의 작업실에 있었어."

진호의 매니저인 정 실장은 진호의 곡 작업실에서 마돈나에게 잘 보이고자 팝 장르의 곡 몇 개를 틀어 주었다. 그 순간 그녀는 다시 한번 진호라는 아티스트에 반해버리고 말았다.

'보물함……이라고 했지?'

정 실장이 자랑스럽게 한 그 말이 맞았다.

진호의 노트북은 보물함이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다른 사람은 절대 알 수 없지만, 무조건 욕심을 낼 수밖에 없는 황제의 보물함.

"호오. 역시 네드 시런을 프로듀싱한 건 우연이……"

"딱 내 거라고 생각되는 곡도 있더라고."

"뭣?"

마돈나는 입을 떡 벌리는 사라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녀 본인도 그곡들을 들었을 땐 온몸에 전율이 흘렀으니 말이다.

주인만 잘 만나면 진호를 단숨에 정상에 올려놓을 곡들. 때문에 얼마나 잘 났는지, 얼마나 잘 났기에 이쪽을 거부한 건지 직접 평가하기 위해 홧김 반, 그리고 혹시 나하는 마음 반을 가지고 진호를 찾았던 마돈나는 깔끔히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더 강하게 소유하고 싶어졌다.

"케이지에게로가 줘."

"……응?"

마돈나는 이쪽을 말뜻을 깨닫고 다시 경악하는 사라 선셋을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마돈나와 케이지가 힘을 합쳐 동양에서 온 천재 아티스트이자 세계최고의 모델을 프로듀싱한다. 내 재기의 타이틀로 어떻게 생각해?"

"……지금 케이지가 어디에 있는지 연락해 볼게."

고개를 끄덕인 마돈나는 눈을 감으며 입꼬리를 강하게 뒤틀었다.

"이건 거부 못할 거야, 애송이. 넌 똑똑하니까. 그렇지?"

그녀는 분명 말했다.

한 번 찍은 먹잇감은 절대 놓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렇게 그녀를 태운 차는 케이지가 있는 곳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 * *

턱이 빠진다는 게 이런 걸까.

긴장된 마음에 현관 앞에서 옷매무새까지 다지며 들어온 진호는 케이지 옆에서 담배를 물고 있는 마돈나를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애송이, 내가 또 보자고 했지?"

'……이거였냐!'

그때 맹렬히 울리던 육감의 경고가 말이다.

진호는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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