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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322화 (322/424)

13권 23화

띠리링! 땅땅!

사람들은 시작된 연주에 일순간 숨을 삼켰다.

고독하면서도 처절하다.

불 꺼진 재즈바의 피아노 앞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연주자의 모습이 이럴까, 아니면 목적지를 찾아 정처 없이 떠도는 방랑자가 이럴까.

한 자루의 권총. 아니, 날카롭게 벼려진 한 자루의 칼날. 그 위에서 위태롭게 춤을 추는 한 사내가 연상된다.

그러나 그건 곧 바뀌어 버리고 만다.

위태롭지만 화려 하게.

아주 제멋대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졸부같이 변했다가 또 한 번 사랑하는 한 여성을 향해 달려가는 처절함으로 바뀐다.

그에 사람들은, 특히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대체 어떤 삶을 겪었기에 이런 연주를?'

'미치겠군. 20대의 꼬마가 아니라 60대의 늙은이라고 해도 믿겠어!'

재즈가 변화무쌍한 음률의 음악이라고 해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재즈가 삶의 애환을 담은 장르라고 해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이건 재즈의 대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온 인생을 토해 내는 듯했다.

지금 그 숨 막히는 현장에 있는 것이고, 본인들이 할 일은 그저 조용히 경청하는 것뿐이었다.

그 생각은 다른 이들도, 이 연회홀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인듯 연회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진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호스트 코난 라이언은 그 본인의 예상을 벗어난 진호의 실력에 전율마저 느끼고 있었다.

'미쳤군. 이 정도의 실력이라니……'

따당, 쾅!

총 6분간의 연주가 끝나고 잠시 간 내려앉은 침묵.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브, 브라보-!"

"휘이이이이익!"

"미쳤어! 와우! 대체 누가 연주한거야!"

박수가 우레와 같이 쏟아지고, 사람들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진호에게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이미 선약을 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친! 너 진짜 끝장나잖아!"

"뭐야, 이 연주는! 이 가는 손가락으로 한 거 맞아? 이 손가락에 스피커가 숨겨져 있는 거 아니지?"

흥분으로 가득한 그들의 칭찬에 머리를 긁적인 진호는 어떠냐는 듯 케이지와 마돈나, 브루노마스를 바라보았다.

케이지와 브루노마스는 엄지를 치켜들었고, 마돈나는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암사자처럼 눈을 빛냈다.

'아, 그런 눈빛은 좀.'

진호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지노! 대체 어떻게 이런 연주를……아, 지노라 불러도 되지?"

"그럼요. 카베스."

"카밀라라고 불러 줘! 아무튼 지노, 대체 어떻게 이런 연주를 할 수 있는 거야? 어떤 삶을 겪은 거냐고!"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 울상을 짓고 있는 카밀라 카베스는 지금 진호의 삶을 동정하고 있었다.

'감수성이 엄청 예민한가 보네.'

풋 웃음을 터트린 진호는 진정하라는 듯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뭘 그렇게 놀라요. 그냥 내가 맡은 역할들을 연주한 것뿐인데."

"……응?"

주위 사람들도 순간 본인들의 청력을 의심하며 진호를 보았다.

진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말 그대로 제가 여태껏 맡은 역할, 그들의 삶을 연주한 거예요. 카베스가 걱정을 할 만큼 제 삶은 굴곡지지 않아요."

"……말도 안돼."

"에에엑!"

주위 사람들도 입을 떡 벌렸다.

진호는 옅게 웃으며 그들의 반응을 살폈다가 한 사람을 보곤 그대로 얼어 버렸다.

'마, 마돈나 씨?'

진호는 더 사납게 빛나기 시작한 마돈나의 눈을 필사적으로 피했다.

"메소드."

사람들의 시선이 케이지에게로 몰렸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진호를 보았다.

"넌 메소드로 연기하는 거였어. 그리고 그 모든 캐릭터가 아직도 네 안에 살아 숨 쉬고 있는 거야."

'표현이 참……'

역시 가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진호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그의 눈동자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좀 다르기는 하지만……'

흔희 연기에는 두 가지 타입이 있다고 한다.

케이지가 말한 것처럼 메소드, 즉캐릭터 그 자체가 되어 버리는 것과 캐릭터를 본인의 입맛에 맞춰 해석해 연기하는 것.

빠져들거나 빠져들게 만들거나.

[스킬: 연신 연왕]은 그 두 가지의 장점만 합쳐진 스킬이었다.

거기다 여기에 동물이든 사물이든 그 자체가 되어 버리는 [스킬: 유리가면]도 있다.

메소드의 성향이 조금 더 짙다고 할 수 있었다.

"노울스 씨가 연기도 하다 보니 잘 아시네요."

"……다시 소개하지. 케이지다. 본명은 숀 코넬리 카터. 알다시피 프로듀서지. 전화번호를 교환할 수 있을까?"

"아, 네. 당연…… 응?"

핸드폰을 꺼내들던 진호는 케이지의 말에 포함된 한 단어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그는 분명 본인을 프로듀서라고 소개했다.

"지, 지금 그 말은……"

"그래. 같이 작업하고 싶군."

"……억?"

꿈일까, 생시일까.

수 많은 아티스트를 정상에 올려놓은 케이지가 같이 작업을 하자고 한다. 진호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지금 대답을 해 주지 않아도…… 으븝?"

진호의 초점 풀린 멍한 눈이 케이지의 입을 막은 손의 주인에게로 향했다.

"어디서 새치기야, 애송이. 다들 눈독 들이지 마. 이 꼬마는 내가 가져갈 테니까!"

'……네?'

"허어억!"

사람들도 헛숨을 삼킬 만큼 대단한 아티스트이자 프로듀서.

한때 금발의 대표 주자로 불렸던 마돈나가 진호를 향해 욕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진호는 겨우 잡고 있던 정신줄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 * *

"뭘까……"

'이 행운은.'

마치 꿈만 같다.

'혹시 나 지금 영화를 찍는 중인건가?'

그게 아니라면 이런 행운은 말이 되지 않는다.

실력에 자신이 없다는 게 아니라 너무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행운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기 때문이다.

털썩!

"지금까지 재미있었나?"

"……아, 코난."

정신을 수습한 진호는 자세를 바로 하며 옆자리에 앉은 코난 라이 언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상급 가수들과 친해지게 된 것 뿐만이 아니다.

피아노를 연주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쪽을 없는 사람처럼 취급했던 정상급 배우들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하핫, 행운은 준비된 자만 쥘 수 있는 거지."

"그 행운을 제 앞까지 끌어온 건 당신이죠. 정말 이 은혜 잊지 않을게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흐뭇하게 웃은 코난은 진호의 어깨를 두드리곤 일어섰다.

"그러면 끝까지 재밌게 즐겼으면 좋겠군. 난 오늘 파티의 메인인 경매를 준비해야 돼서."

그는 그렇게 안쪽으로 향했고, 진호는 그런 그의 커다란 등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아, 맞아. 자선 경매 파티였지, 참."

'경매라……'

"돈을 좀 써야겠네. 아니, 제대로."

코난 라이언이 쥐여준 이 행운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그래야했다. 진호는 점점 안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을 따라 움직였다.

* * *

이날 진호는 자선 경매에서 약10만 달러를 쓰며 5개의 미술품과 스타의 애장품을 낙찰받았다.

마음 같아서는 얼마를 쓰더라도 출품된 모든 물품을 낙찰받으려고 했지만, 혼자만 하는 경매가 아니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대신경매에 쓴 만큼의 돈을 보태어 코난 라이언의 기부 활동에 한 손을 더 했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 LA의 세트장.

커프 서덜랜드, 마크 프리먼, 에밀리아 클록, 그리고 진호가 서로를 노려보다 뒤돌아섰다.

마치 지금은 물러서지만 다음을 기대하듯, 눈빛이 서늘한 그들의 등은 지독한 투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커엇-! ……오케이-!"

우렁차게 울리는 레이몬드 감독의 외침.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음에도 촬영장에 내려앉은 정적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그건 진호도 마찬가지였다.

……짜악!

모두의 시선이 커프 서덜랜드에게로 향했다.

후련하게 웃으며 박수를 치고 있는 그.

그 순간 정적이 물러 가고 배우들의 몰입이 깨지며 사람들의 손이 들렸다.

짝짝짝짝짝짝짝짝!

"와아아아아아!"

"끝났다-!"

"으아! 수고 했습니다!"

"모두 수고 했어요!"

"으아아아!"

더 로드 오브 월 스트리트. 총15화 제작에 9화가 방송된 현재 시청률 순위 3위. 그 외 인터넷플랫폼 1, 2분기 성적은 2위.

시즌1의 길었던 촬영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마지막 화라 모든 연기력을 쏟아낸 진호는 몰입이 깨진 순간 휘청몸이 흔들렸다가 이내 추스르며 울상을 짓고 있는 에밀리아 클록을 껴안았다.

"히잉! 수고해썽! 훌쩍!"

"어이구, 다작 배우가 왜 이런 걸로 우실까."

그렇게 말하는 진호의 코끝도 발갛게 달아올랐다.

미국에서의 첫 도전. 첫 작품이 성공리에 끝을 맺었기 때문이다.

비록 전미 1위는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가슴이 뻐근할 만큼 만족스러웠다.

'다음은 1위를 노려야겠지.'

진호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욕심의 불이 당겨졌다.

"수고 했어요, 에밀리."

이윽고 그녀를 놓아주며 커프 서 덜랜드, 마크 프리먼과도 포옹을 하며 서로의 수고를 칭찬하던 진호는 세트장 입구를 바라보았다.

우르르르르르!

아이스박스를 든 사람들이 난입하여 사람들이 당황한 그때, 레이몬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뒤풀이는 이곳에서 간단히 맥주를 마시는 걸로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3시간 뒤 호텔로 이동하겠습니다! 모두 배우들의 열연 덕분에 촬영이 일찍 끝났기 때문이니 불평은 배우들에게! 이상!

자, 마셔-!"

"……우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

사람들은 아이스박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후아!"

호텔 연회홀의 테라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며 뜨겁게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자 진호의 입가에도 미소가 맺혔다.

"내 주인공 중 한 명이 여기서 뭐하는 거지?"

"아, 감독님."

레이몬드 감독이 내미는 병맥주를 받아든 진호는 그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시즌2도 잘 부탁드립니다."

레이몬드 감독은 오묘한 눈빛으로 진호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더 로드 오브 월 스트리트의 성공엔 진호가 큰 몫을 했다.

그의 뛰어난 투자 감각과 기획 능력이 아니었다면, 대본이 수정되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의 성적을 거두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연기는 말할 것도 없다. 일개 조연에서 결국 주조연급으로 올라선, 그것도 드라마의 키포인트가 되어 버린 연기력과 캐릭터 해석. 실제 펀드 매니저를 연상시키는 그의 깊은 몰입이 아니었다면, 다른 배우들도 이렇게까지 몰입해 연기를 하지 못했을 터다.

"동양인은 겸손이 과하다더니. 그건 내가 할 말이야, 지노!"

"아하하. 그렇게 말하셔도 전 진심이에요."

아무리 이쪽이 연기를 잘 해도 감독의 연출과 편집이 좋지 않았다면 이런 성적은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그보다 먼저 레이몬드 감독이 진호 본인을 뽑아 주지 않았다면 솔직히 지금도 할리우드의 밑바닥을 훑으며 대본을 찾고 있었을지도 몰랐고, 코난 라이언과 인연을 맺을 수도 없었을 터다.

그런 의미에서 레이몬드 감독은 은인이나 마찬가지였다.

"……크흠. 뭐, 시즌2가 언제 제작될 지 모르겠지만……"

"부르면 바로 달려갈게요. 대신 다음에는 더 비중을 주셔야 해요?"

"그것도 당연한 말이야. 그보다 이제 어쩔 거지? 다음 작품을 찾을 건가?"

레이몬드 감독은 눈을 가늘게 뜨며 진호를 보았다.

나이에 맞지 않게 굵직한 배역으로 다작을 한 진호.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1년에 꼭드라마와 영화를 한 편씩은 찍었다.

'개리 제이머. 그 늙은이가 욕심을 내기 시작할 거야. 어쩌면 벌써 욕심을 내고 있을지도 모르지.'

진호의 연기력을 시험하고자 레이몬드 본인에게 던져 준 개리 제이머라면 지금쯤 진호를 출연시킬 작품을 고르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괴짜라 불리는 레이몬드 본인조차도 그 속내를 다 파악할수 없는 괴짜가 개리 제이머다.

진호를 올해 픽업한다고 장담할수 없었다.

"아니면…… 케이지나 마돈나와 작업?"

"어?"

진호는 깜짝 놀라 레이몬드 감독을 보았고, 그는 의뭉스럽게 웃었다.

"이 바닥은 소문이 빨리 돌지."

"……와, 이 동네도 그런가 보네요."

"본 사람이 너무 많았어."

그리고 진호의 재즈 연주는 그둘이 달려들 만큼 환상적이었다.

기대가 가득한 그의 눈에 풀썩 웃은 진호는 LA의 야경을 바라보며 살짝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케이지와 마돈나.'

둘 중 한 명을 택하기가 무척이나 난해했다.

'곡 작업을 하자면 차라리 케이지가 낫겠지.'

마돈나와도 곡 작업을 하고 싶지만, 그녀에겐 걸리는 점이 하나 있다. 그녀가 '퍼포먼스의 여왕'이라는 것.

'레오 형이 세상 딱딱한 웨이브, 유연한 각목이라 부르는 나인데, 마돈나와 작업을 한다? 그 맹수할머니와?'

거기까지 생각한 진호는 깔끔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자 마음이 무척이나 후련해졌다.

"네. 케이지와 곡 작업을 해 보려고요."

"호오. 그래, 그 역시도 뛰어난 아티스트지. 응원하겠어."

진호는 고맙다는 듯 웃으며 맥주를 홀짝였다.

하지만 그는 세상일이 제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아직도 잘 모르고 있었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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