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320화 (320/424)

13권 21화

'어쩌지?'

현실에선 일어날 수 없는 영화와 같은 일.

진호의 머릿속이 순식간에 엉클어졌다.

그 순간이었다.

풍덩-! 푸그르르르!

'응? ……오!'

물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코난 라이언.

'그래! 수조 청소는 나 혼자 하는게 아니었지!'

눈을 빛낸 진호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모두 여기 이 사람을 봐-!'

푸그르르르르르르!

* * *

슈우우우우우!

길이가 족히 2미터는 되어 보이는 상어가 옆을 스쳐 지나간다.

'가. 휘이, 저리가.'

뽀그르르르! 슉!

멀어져 가던 상어가 몸을 틀어 다시 진호에게로 향했고, 진호는 그 상어의 코를 잡아 옆으로 밀었다.

'아, 좀 가라고! 안 그래도 지금 아슬아슬하다고!'

물고기들이 뒤이 어떨어져 내린 코난을 바라보는 것으로 사건의 초점을 흐트러트리면서, 그 틈을 타 물고기를 해산시키는 것으로 겨우 현실판 아쿠아맨이 되는 걸 막았다.

상어들의 이런 애교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사람 심장마비 걸리면 네가 책임질 거냐!'

마치 하나의 구조물처럼 딱딱하게 굳어 움직일 생각을 못하는 코난 라이언. 지금 당장이라도 이 상어 수조를 뛰어나가고 싶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절절하게 전해져온다.

진호는 그런 코난 라이언을 다독이며 슬그미니 상어 수조 유리 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제작진의 얼굴이 놀람과 경악, 그리고 흥분으로 굳어 있는 탓이다.

촬영 중간부터 따라붙은 정 실장도 이마를 잡고 있었다.

'늦었구나……'

그 어떤 로비를 해도, 혹은 협박을 해도 편집을 하지 않을 얼굴들이다.

진호는 속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 방송이 나간 직후, 자신을 아쿠아리움이나 바다에 보내려는 여러 방송국의 제안서가 날아오는게 눈에 보이는 듯했다.

'이걸 어쩐다……'

그토록 피하려고 했던 '이미지 고정'.

이대로 촬영이 끝나면 영락없이 현실판 아쿠아맨 확정이었다.

'가까스로 마초 이미지를 벗었더니 현실판 아쿠아맨. 내가 힘이 세다는 이미지도 있으니 거의 확정…… 응?'

진호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정실장을 바라봤다.

'사고? 또? 아, 내 이야기구나.'

왜인지 미안하다는 생각보다는 피식 웃음이 나오며 마음이 편해져 갔다. 그러자 놀랍게도 방금까지 머릿속을 괴롭혔던 생각들이 깔끔하게 지워져 버렸다.

'그래. 이미지가 고정되면 어때. 마초 같은 한계가 뚜렷한 캐릭터만 아니면 됐지. 어차피 외계인 이미지, 아니 이런 모습이 오히려 외계인 이미지에 더 부합되겠어. 차라리 잘 됐…… 아!'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외계인은 한국에서 처음 방송에 뛰어들었을 때보다는 훨씬 나은, '요리 천재 미남 모델'보다는 훨씬 나은 이미지 프레임이었다.

거기까지 떠올린 진호는 왜 장경아 지부장과 스티븐 팀장이 오늘의 목적지를 가르쳐 주지 않았는 지를, 그리고 미국 방송에 대해 잘 모르는 정 실장만 딸려 보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 프레임을 씌우기 위해서였구나!'

푸핫 웃음이 나왔다.

'정말 재밌는 사람들이 영입됐네……. 그렇다면?'

투욱! 툭 툭!

배에 닿는 상어의 코, 마치 미워하지 말라는 듯 코를 톡톡 부딪치는 상어의 행동에 진호는 상어를 쓰다듬었다.

뽀그르르르!

'그래, 네가 뭔 죄가 있겠냐. 미리 알아차리지 못한 내 죄지.'

[스킬: 나는야, 자연의 왕자]와 [스킬: 페로페로몬]의 조합이 너무 강력한 탓일 뿐이다.

투욱! 툭!

'알았어, 인마. 안 미워할게. 자, 그럼 저거 물어 와!'

상어 수조 속에 있는 작은 조형물을 가리킨 진호는 상어가 떠나자 딱딱하게 얼어 있는 코난 라이 언의 손을 잡고 수조 유리로 향했다.

그런 그의 눈은 마치 밤하늘의 별무리처럼 반짝이기 시작했다.

'놀아 볼까?'

"푸하!"

"푸후우! 나 올려 줘! 어서-!"

코난 라이언이 물에 빠진 사람처럼 발버둥을 치며 손을 뻗자 아쿠아리스트는 웃음을 터트리며 얼른 그의 손을 잡아서 끌어 올렸다.

그렇게 올라온 그는 양팔을 하늘로 뻗으며 눈물을 주륵 흘렸다.

"사, 살았다-! 난 살았어! 예스! 예스! 오, 신이시……아."

코난 라이언은 이쪽을 찍으며 히죽거리는 스태프들을 보았다.

그에 심상치 않음을 느낀 스태프들은 그대로 굳었다.

"……죽여 버리겠어!"

"마, 막아!"

"너희들 다 해고야! 다 해고라고-!"

한편의 코미디 같은 장면. 자력으로 올라온 진호는 아웅다웅하는 그들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릴 수 밖에 없었다.

"푸하하하하핫! 얘들이 그렇게 무서웠어요?"

덩치 큰 스태프에게 잡혀 아등바등하던 코난 라이언이 도끼눈을 뜨며 진호를 째려보았다.

"너나 무섭지 않겠지, 타잔! 아니, 아쿠아맨!"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동자는 표정과 다르게 빛나고 있었다.

상상했던 것 이상의 그림. 상어와 장난을 치는 진호의 모습은 정말 충격 그 자체였다.

'놀아도 너무 잘 놀았어! 정말 아쿠아맨처럼! 자, 넌 이 말에 어떻게 반응할 거지?'

그는 개인적으로 진호가 회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미지가 고정이 될 수 있어.'

지난번 쇼에서 진호는 가까스로 마초적인 이미지가 고정되는 걸 피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진호가 어떤 선택을 해도 현실판 아쿠아맨이 되어 버린다.

'이 때문에 시청률이 상승할 테지만……'

이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진호에게는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는 일. 코난 라이언은 그게 무척이나 걱정되었다.

'정말 외계인처럼 여겨질 수…… 음? 잠깐?'

외계인이라는 단어에 코난은 지난번 쇼에서 진호가 한 말을 떠올리며 놀랄 수밖에 없었고, [스킬:

셜록의 후예]를 통해 그의 속 마음을 모두 읽어 낸 진호는 짓궂게 웃었다.

'정말 착한 분이라니까.'

"아쿠아맨이라뇨. 이왕이면 모든 동물의 왕이라고 불러 주세요. 아님……."

진호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초능력 쓰는 외계인?"

어차피 이미지가 고정된다면 차라리 외계인처럼 불가사의한 존재가 나았다. 무엇을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이해해 버릴 테니 말이다.

"……와우."

코난 라이언은 진호가 그린 큰그림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대단하다니까!'

매번 새로운 모습만 보인다.

그게 결코 쉬운 게 아닌데 말이다.

'흐음. 외계인의 이미지를 가져간다라……'

그의 눈이 의미심장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 * *

"오케이! 커엇-!"

"……수고하셨습니다-!"

짝짝짝짝짝!

"리! 오늘 정말 대단했어! 환상적이었다고!"

"리! 정말 아쿠아맨인 거 아니야?"

진호는 흥분해서 달려드는 코난쇼 제작진들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방송은 2주 뒤에 나갈 거야, 리!"

"네, 수고하셨어요!"

환하게 웃으며 돌아선 진호는 기지개를 쭉 폈다.

"끄으으-! 아!"

진호는 푸후우 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침에 들어와서 촬영을 마치니 해가 저문 밤이었다.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지노."

"아, 코난 씨."

코난 라이언이 느릿하게 다가오며 맥주캔 하나를 내밀었다.

"캬-! 센스! 캠핑카에 맥주도 넣고 다녀요?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흐흐. 열심히 일하고 마시는 맥주는 결코 포기할 수 없으니까!"

치익! 딱!

둘은 캔맥주를 부딪쳤다.

꿀꺽꿀꺽!

"크으! 오늘 정말 대단했어, 지노."

"코난 씨도 정말 대단했어요."

"……욕은 아니지?"

"아하하."

'눈치도 빠르셔라.'

진호는 슬그미니 고개를 돌리며 맥주를 들이켰고, 코난 라이언은 그런 진호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연기에 작곡, 노래, 힘, 그리고 동물에게 사랑받는 엄청난 친화력.'

진호가 지난 몇 달 만에 미국에 선보인 재능들이다.

코난 라이언은 그 몇 달이라는 짧은 시간에 주목했다.

'결국 지노가 가져가려는 외계인 이미지는 초월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이것도 할 수 있을까라는 기대 가득한 의문을 가지게 만드는 이미지다.'

다재다능. 이는 엄청난 축복이었다.

"지노."

"네?"

"넌 이 미국에서 뭘 하고 싶은거지?"

굉장히 무거운 질문이었다.

순간 맥주 한 모금에 취했나 싶었던 진호는 코난 라이언의 진지한 표정에 자세를 바로 하며 입을 열었다.

"미국이 아니에요."

진호의 눈이 살짝 몽롱하게 풀렸다.

"음?"

"미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여기 미국을 비롯해 저 아프리카 오지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이진호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은 거예요. 그걸 위해 이 미국행을 택한 겁니다. 미국은 세계니까요."

처음 이 바닥에 발을 내딛었을 때부터 계속 바라본 목표.

할리우드와 빌보드는 그걸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코난 라이언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거…… 마치 영화 속 주인공같은 목표로군."

"이뤄진다면 정말 영화와 같겠죠. 하지만 기필코 이뤄 낼 겁니다."

코난 라이언은 진지하게 빛나는 진호의 눈을 보며 참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역시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게 아니로군. 그렇다면……"

"지노."

"예, 코난."

"내 파티에 참석하지 않을래?"

"……파티요?"

진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 자선 경매 파티."

코난 라이언은 미소를 지었다.

"네게 꽤나 유익할 거야."

"흐음?"

* * *

"그러고 보니 자선 경매 파티는 또 처음이네."

자선 경매에 참가해 물품은 산적 있어도 자선 경매 파티에는 참가한 적이 없었다.

"무조건! 절대로 그곳에서 실수하시면 안 됩니다!"

스티븐 팀장의 강력한 충고.

스티븐 팀장뿐만이 아니라 미국에서 영입한 사람들 모두 조심 또조심하라고 충고를 했다.

"아니, 내가 맨날 사고만 치는 사고뭉치도 아니…… 물론 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어? 그렇게 정색하면서 어?"

찔렸다. 굉장히 찔린 진호는 더 이상 자폭하기를 관두기로 했다.

"야, 그런데 너 이런 식의 셀럽파티에 초대된 건 처음 아냐?"

"에이, 제가 무슨…… 어라?"

정 실장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거린 진호는 이내 허탈하게 웃었다.

"그건 또 그러네요?"

모델들과 뒤풀이 파티를 한 적은 많아도 이렇게 셀럽파티를 간 적은 없었다. 셀럽으로 유명한 진호 본인인데 말이다.

"음. 그 비슷한 건 몇 번 간 적이 있는데……. 왜지?"

"그동안 네 행동 반경이 아시아에 국한되어서? 아님 파리."

"……아항.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네요."

이제야 떠올랐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초대장이 날아왔지만, 개중에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그런 할리우드 스타나 가수들에게서 초대장을 받았지만, 그냥 가기 귀찮아서 참석하지 않았던 것이다.

'실장님 말처럼 아시아와 파리만 돌아다니다 보니 이 먼 미국까지 오기가 귀찮았던 거지.'

영국이나 프랑스에서도 셀럽파티 초대장이 오긴 했지만, 비슷한 이유로 모두 무시했었다.

'그냥 평소에 다녔다면……'

거기까지 생각한 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의미 없는 가설일 뿐이었다.

'어차피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할 테지. 음?'

"……우와."

"허어. 사람들 모여 있는 거 봐라."

어느새 가까워진 목적지인 뉴욕의 유명한 호텔 입구.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저, 저거 다 기자겠지?"

"그러겠죠?"

어깨를 으쓱인 진호는 다시 한번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와, 씨. 미쳤네. 연말 시상식에도 저만한 숫자가 모이진 않겠다!"

"여긴 미국이잖아요, 미국. 그럼 다녀올게요."

"그, 그래! 우린 찜질방에 있을 테니까 나오면 연락해!"

찜질방이란 말에 눈을 껌뻑인 진호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고, 차는 멈춰 섰다.

그러자 밖에 서있던 흑인 경호원이 차 문을 열었다.

드르륵!

촤라라라라라라라!

선글라스를 꼈음에도 눈이 부시도록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

"어? 지노 리?"

"뭐? 지노 리라고?"

'와……. 나 인기 있네. ……물론 세계 정상에 선 모델 이진호로서의 인기일 테지만.'

그게 못내 아쉬운 진호는 경호원이 가자는 듯 등을 살짝 밀자 고개를 끄덕이면 발을 내딛었다.

그렇게 로비에 들어서니 또 다른 안내자가 바통을 이어 받아 진호를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보여 줬던 초대장을 수습한 진호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안내원의 뒷목에 맺힌 땀을 보며 '사람들이 많이 왔구나'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이 왔을까? 역시 연예인들일까? 흐음……'

유익할 거라는 코난 라이언의 말.

진호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 말이지닌 속내를 다시금 되짚어 봤다.

그 순간이었다.

또각! 또각! 또각!

"응?"

"…….어?"

옆에서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던 진호는 파란 드레스를 입은 여성을 발견하곤 그대로 굳어 버렸고, 그건 그 여성도 마찬가지였다.

"……샤론?"

"Baby?"

샤론 테즈.

그녀는 진호가 디올의 전속이 되기 전부터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크리스챤 디올 향수의 뮤즈이자 여신인 대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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