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권 20화
7. 영화 같은
아쿠아리움에서의 일은 옷을 갈아입는 것부터 시작했다.
"오우."
"와!"
"이 유니폼을 만든 디자이너는 연락해 주세요! 여기 당신의 뮤즈가 있습니다!"
누가 입어도 귀여운 푸른 셔츠와 베이지색 바지건만, 진호가 입으니 마치 하이패션 브랜드의 신상품 같아 보였다.
맨날 똑같은 유니폼을 입는 이곳의 아쿠아리스트들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진호와 본인의 옷을 비교했다.
그렇게 옷을 갈아입은 그들은 아쿠아리움 탐방에 나섰다.
"와……"
"오오-!"
뭐가 그리 바쁜 지 머리 위로 빠르게 지나가는 물고기 떼들과 인사하는 듯 스르르 스쳐 지나가는 가오리 한 마리.
그 신비롭고 아름다운 모습에, 물속을 걷는 듯한 그 기이한 느낌에 물고기를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코난마저도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중 백미는 거대하다 못해 마치 바다를 뚝 떼어다 옮겨 놓은 듯한 초대형 수조였다.
"우와!"
"허어!"
떼를 지어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들 사이로 더 느긋이 팔과 다리를 휘젓는 거북이와 거대한 위용을 자랑 하듯 술렁술렁 몸을 좌우로 휘젓는 고래 상어.
큐레이터는 방금 전처럼 신이 나서 설명을 했고, 진호는 연차가 1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직업과 물고기를 사랑하는 그의 모습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을 가졌다.
'고래상어는 무슨 맛일까?'
고래상어는 포유류다. 그렇다면 불을 이용하는 게 더 맛있는 식재료가 될 테지만, 상어의 맛이 날지 고래의 맛이 날지 가늠을 할 수가 없어서 망설여졌다. 고래는 그 특유의 휘발성 기름 냄새가 있기 때문이다.
'그 기름 냄새를 최대한 억제하는 레시피가 있긴 한데……'
흠칫!
"응? 아……"
진호는 왜인지 빠르게 멀어지는 고래상어를 아쉽다는 듯 바라볼수밖에 없었다.
"진호."
"네?"
"여길 손가락으로 두드려 봐. 이분에게 허락받았으니까, 얼른!"
무슨 소리냐는 듯 작은 목소리로 재촉하는 코난을 바라봤던 진호는 이내 피식 웃었다.
무언가를 잔뜩 기대하고 있는 얼굴.
'내가 동물들과 교감하는 영상들을 봤구나. 흠…….'
진호는 다시 수조를 빤히 바라보았다.
'통할까?'
두드린다는 것은 곧 음파가 퍼진다는 말과 똑같다.
동물과 소통할 수 있는 스킬인 [스킬: 페로페로몬].
솔직히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페로페로몬이 이 두꺼운 강화 유리벽을 뚫을 수 있을까? 아까 올때는 안 통한 것 같던데……'
진호는 수조에 손을 가져갔고, 코난은 기대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제작진도 재빨리 진호와 수조를 카메라로 잡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통! 통!
'…… 역시.'
기대는 기대로 끝났다.
"왜-! 이봐, 물고기들! 여길 봐! 너희의 왕이 왔다고! 너희도 동물이잖아!"
'……정말 고맙네.'
코난 라이언은 계속해서 진호를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얼굴과 이름을 알려야 하는 연예인으로서 참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자, 그럼 다른 동물을 만나러 갈까요?"
진호는 눈을 번뜩였다.
실내, 그것도 물이 꽉 차 있는 곳은 다 둘러봤으니 이젠 실외다.
'돌고래! 범고래! 그리고 물개-!'
물에 사는 멍멍이들을 보러 갈 차례였다.
"끝! 가시죠!"
사람들은 멍하니 진호를 보았다.
"안가요? 어서 가서 동물들 봐야죠!"
"어, 어!"
사람들은 급히 네 개의 커다란 양동이를 카트에 올린 채 밀기 시작한 진호를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와우. 손이 정말 빠르네요."
"요리를 좋아해서요. 물고기 손질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대단하네요. 아, 이쪽이에요."
하나의 문 앞에 선 큐레이터는 끌고 온 카트에서 작은 사이즈 물고기가 든 양동이를 들었다.
'물개다!'
먹이 사이즈가 작으면, 먹이를 먹는 동물의 사이즈도 작다고 봐야했다.
"에이미는 좀 예민해서……"
진호는 주의 사항을 말해 준 후문을 열고 들어가는 큐레이터의 뒤를 따르며 양팔을 활짝 벌렸다.
'댕댕아-!'
"꾸어엉?"
'어?'
크다. 뭔가 엄청 크다.
진호 본인보다 더 긴 신장에, 몸무게는 족히 세 배는 나갈 것 같은 육중한 체구와 살벌하게 길고 두꺼운 두 개의 송곳니.
'바다코끼리냐!'
좌절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고개를 좌우로 기울이다가 이내 눈을 동그랗게 뜬 바다코끼리.
'어? 야? 자, 잠깐?'
"꾸어엉-!"
꿀렁꿀렁꿀렁! 쿵쿵쿵!
"헛!"
"억! 피, 피해!"
사람들이 기겁하며 피할 때, 진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내가 그럼 그렇지.'
그는 육탄돌격을 하는 바다코끼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에이미, 거기서."
"꺼엉?"
"스톱하라고, 인마. 스톱."
꿀렁!
바다코끼리는 그대로 멈춰 섰고, 사람들은 경악하며 진호를 보았다.
특히 큐레이터는 마치 귀신을 본듯 하얗게 질려 있었다.
다시 한숨을 내쉰 진호는 바다코끼리에게 다가가 코를 툭툭 쳤다.
"뿌어엉!"
꿀렁! 쿵!
좋다고 옆으로 한 바퀴 구르는 바다코끼리.
진호는 해맑은 미소를 연기하며 큐레이터를 응시했다.
"얘가 엄청 착하고, 훈련이 잘 되어 있네요."
"……네, 네! 그렇죠! 에이미가 요새 좀 예민해서 그렇지 원래 애교가 많거든요!"
하마터면 인명 사고가 터질 뻔했다.
본인의 목이 잘리는 것뿐만 아니라 에이미도 살처분 될 수 있었다.
"머리도 좋아서 말도 다 알아먹고요-!"
"그렇죠? 저도 그런 것 같아요!"
필사적인 둘의 마음은 그렇게 감동적인 합의를 이뤄 냈다.
"껑?"
'쉿! 조용히 해, 인마. 가만히 있어.'
"꺼엉……"
"……오우! 역시 모든 동물의 왕 타잔-! 처음 본 바다코끼리도 당신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군요!"
"에이미가 순해서 그런 거죠. 와서 한 번 만져 볼래요?"
"거기서! 아까처럼 내 손목을 잡으면 고소하겠어!"
"거참, 사람이 왜 그렇게 소심해요? 자, 자."
"악! 날 놔줘! 이 괴물아-!"
진호는 질질 끌고 온 코난 라이언의 손을 바다코끼리의 얼굴에 얹었고, 바다코끼리는 빤히 코난라이언을 보았다.
"봐요. 순하죠? 말랑 말랑 하고."
"……와우."
진호는 얼어 버린 코난 라이언의 모습에 살짝 웃으며 살짝 입을 열었다.
'자, 이 남자한테 살짝 안겨 봐.'
꿀렁. 턱!
"어? ……와우."
"귀엽죠? 밥을 줘 보세요."
"그, 그래도 될까?"
"원래 예쁜 짓을 하는 동물들한테는 간식을 주잖아요. 얘도 똑같을 거예요. 그렇죠?"
"……아. 네, 네."
진호는 가져온 양동이를 코난 라이언을 향해 들어 올렸고, 그는 떨리는 손으로 물고기를 하나 집어 바다코끼리 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바다코끼리 에이미는 마치 내숭을 떠는 듯 입을 조금만 벌려 물고기를 받아먹었고, 큐레이 터는 난생 처음 보는 모습에 입을 떡 벌렸다.
"……이 사랑스러운 모습을 봐-!"
눈이 돌아 버린 코난 라이언을 외면한 진호는 큐레이터를 보았다.
"그런데 바다코끼리는 원래 이렇게 작은 물고기를 먹는 건가요?"
"……아, 네! 바다코끼리는 물고기를 씹는 게 아니라 삼키는데, 목에 걸리면 안 되니까……"
큐레이터는 이후로 묻지도 않은 부분까지 설명했는데, 무리 생활을 이루는 바다코끼리가 왜 지금 혼자인지, 지금 남편이 오고 있다는 말까지 하였다.
이후 진호와 코난 라이언은 범고래와 진호가 그토록 대망하던 물개,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팽귄까지 만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먹이를 다 준 둘은 뒤늦은 점심을 먹었다.
"지노, 넌 정말……. 아, 말을 편하게 해도 될까요?"
"그럼요. 당연하죠."
"고마워. 아무튼 넌 정말 대단해. 진짜 타잔인 거야?"
범고래의 장난에 진호가 물속에 빠졌다. 범고래가 진호의 바짓단을 물고 그대로 물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사실 [스킬: 페로페로몬]의 영향이었지만 다른 이들 눈에는 방송사고로 보일 수밖에 없었고, 진호가 재빨리 범고래의 지느러미를 잡고 수영하지 않았더라면 범고래들은 살처분되고, 코난 쇼는 페지 될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그 장면을 다시 처음부터 촬영해서 다행이지!'
범고래의 장난에 빠지는 게 아니라 범고래쇼를 연습하는 걸로 장면을 바꿨다.
코난은 그걸 허락해 준 진호를 정말 고맙다는 듯 보았고, 진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저도 잘 모르지만, 동물에게 사랑받는 체질이 있다나 봐요. 그 사육사들도 보면 동물들이 유난히 따르는 분들이 있잖아요."
"아, 그런 거였군."
'이런. 안 믿으시네.'
그래도 다행이었다. 이제 더 이상 할 일이 없을 테니 말이다.
'있어 봐야 관객을 안내해 주는 것뿐이겠지. 수조만 안 들어가면 돼, 수조만.'
어느 영화의한 장면을 떠올린 진호는 고개를 털며 햄버거를 크게 베어 물었다.
"오, 기대 이상의 맛인데요?"
정말 정성 들여 만든 맛이다.
"들어 보니 직원들 복지가 꽤나 수준급이라더군."
"아, 그래서 그렇게 웃으며 일할수 있는 거구나……"
고개를 끄덕이던 진호가 코난 라이언을 보았다.
"어때요? 지금도 물고기가 끔찍하게 느껴지세요?"
"……어?"
코난 라이언은 그제야 본인이 그 흉물스런 물고기로 물고기에게 밥을 줬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와우. 내 카운슬러도 못한 일인데……"
"저도 코난 같은 사람을 몇 분아는데, 그분들이 물고기를 싫어하는 건 그 눈과 비늘 때문이더라고요."
"맞아! 거기다 그 고약한 냄새는 정말!"
"그렇죠. 물고기가 부패하기 시작하면 냄새가 정말 지독하죠. 거기다 곤약, 데빌 텅처럼 물컹한 식감에 입안에 퍼지는 비린내."
"으으으!"
"그런데 잡자마자 먹으면 괜찮아요."
"음? 원래 그러지 않아?"
진호는 검지를 까딱였다.
"미국 스시집에서 쓰는 거의 모든 물고기는 선어, 즉 숙성시킨 거예요. 일본식이 그렇거든요."
"아……. 맛이 농축된다는 말이군."
"비린 맛도요."
대번에 코난 라이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래도 코난의 나이라면 물고기를 먹는 게 좋아요."
"으음……. 그건 그렇지."
코난 라이언은 하버드를 졸업한 엘리트다. 물고기가 인체에 얼마나 유익한 생물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극복할 생각 들면 연락하세요. 대구살 탕수육을 시작으로 생선맛을 알게 해 드릴 테니까."
"……왜지?"
코난 라이언의 눈빛이 순간 서늘하게 가라앉았고, 진호는 그 눈을 가득 채운 의심과 경계에 어깨를 으쓱였다.
"당신이 절 도와줬으니까요. 그것 뿐이에요."
"……하하핫! 정말 특이해."
"자주 듣는 말이죠."
코난 라이언은 그렇게 말한 후 다시 햄버거를 먹으며 오후에 있을 관람객 안내용 자료를 외우는 진호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래, 이렇게 착하고 성실한 사람은 도와줘야지.'
의미심장하게 웃은 그는 진호와 똑같은 자료를 외우며 햄버거를 베어 물었고, 둘은 조용히 식사를 마쳤다.
"와아아!"
"까아아!"
"우와아!"
전쟁은 저기 먼 나라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낸 후 휴게실로 돌아온 진호는 이제부터 큐레이터들을 존경하기로 굳게 다짐했다.
"아쿠아리스트도 극한 직업이네."
끼이익! 털썩!
"비글이 백 마리……. 여기가 지옥……. 꼬르륵!"
카메라 있어서 그런지 오버스럽게 쓰러진 코난 라이언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지만, 진호는 그런 그를 이해한다는 듯, 그리고 잘 살아 돌아왔다는 듯 보았다.
진호는 그래도 초등학교 5학년 단체 관람이었지만, 코난 라이언은 초등학교 2학년 단체 관람의 안내를 맡았다.
"수고 했어요."
"지노, 너도……"
코난 라이언은 메인 작가 소나를 노려봤다.
"이제 끝이지? 이제 집에 가면 되는 거지? 퇴근이라고 어서 말해!"
진호도 간절히 바라봤다.
'그래요! 이제 퇴근이라고……'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그는 깨달았다.
'아니네. 그럼 이제 뭐가 남았……아, 잠깐?'
그는 헛숨을 삼켰다.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고, 범고래쇼 연습도 하고, 관람객 안내도 했다. 남은 건, 비전문가가 할 수 있는 건 이제 딱 하나 남았다.
'그건 에반데!'
그런 진호의 간절한 마음을 모르는지 소나는 활짝 웃으며, 진호와 코난 라이언에게는 악마의 그것과 같은 미소를 지으며 등 뒤에서 수세미를 꺼내었다.
"청소만 하면 퇴근이에요, 코난. 그 초대형 수조 청소요. 아, 참고로 그 다음은 상어 수조예요."
'에라이.'
코난 라이언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 건 덤이었다.
* * *
'그래! 물이잖아. 페로몬은 분명 느리게 퍼질 거야!'
그렇다면 충분히 수습할 수 있다.
일단 근처에 있을 물고기들부터 흩어 버리는 걸 반복하면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다.
'그래! 그렇게 하자!'
"후읍!"
풍덩!
빠르게 떨어져 내리는 몸. 물방울에 어지러워졌던 시야가 밝아지자 진호는 한숨을 내뱉었다.
'느리게 퍼지기는 개뿔.'
헤엄치던 것을 멈춘 채 이쪽을 쳐다보는 수백수천 마리의 물고기들. 진호는 절로 영화 속한 장면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아쿠아맨.'
보그르르르!
카메라를 들고 따라온 카메라맨의 입에서 공기 방울이 세차게 뿜어졌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