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316화 (316/424)

13권 17화

6. 알려지기 시작하다

"정말 고마워요, 커프."

쇼가 끝나자 진호는 커프 서덜랜드의 손을 꼭 잡았고, 커프는 진호의 어깨를 툭툭쳤다.

"할리우드에 온 걸 환영해, 친구."

그렇게 말한 그는 그대로 돌아섰고, 마크와 에밀리아도 윙크를 하며 돌아섰다.

그들의 쿨한 그 모습에 진호는 잠시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저런 사람들처럼 되고 싶다. ……그런데 뭐지?'

쿨하게 돌아서는 그들에게서 걱정이 읽어졌다.

'왤까?'

아무리 생각해도 완벽했던 오늘의 토크쇼다.

'흐음……'

"미, 미안하다, 진호야. 하마터면……"

정 실장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쭈뻣거리며 다가오자 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정 실장님은 잘 하셨어요. 제게 이목이 집중된 순간 바로 타이밍을 앞당기셨잖아요."

이 말은 진심이었다. 정 실장이 재빨리 유기적으로 행동한 덕분에 플랜이 어그러지지 않을 수 있었다.

오늘의 성공엔 정 실장도 큰 몫을 하였다.

"그, 그래?"

"그럼요. 당연하죠."

"……흐흐흐.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 사랑한다!"

"저도 사랑해요. 아, 그리고……"

"응?"

"아뇨. 아니에요."

'조각보다는 그림이 낫겠지.'

오늘 도와준 커프 서덜랜드와 마크 프리먼, 에밀리아 클록에게 초상화를 그려 보내 줄 생각을 한 진호는 몸을 돌렸다.

"가요."

"오케이! 음?"

"여기 있었군요, 진호 리."

코난 라이언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자 진호와 정 실장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리고 이내 이어진 그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 * *

정말 외계인이 아닐까 의심될 만큼 다양한 재능과 익살 맞으면서도 당당한 그 모습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저격한 것인지 섭외가 쏟아졌다.

그러나 진호와 정 실장은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000쇼. 컨셉: 동양의 신비한 힘.

ooo 모닝. 컨셉: 신비한 기의 힘.

"이거였구나……"

커프 서덜랜드와 마크, 에밀리아의 걱정이 바로 이것이었다.

작곡가로서 임팩트를 터트렸는데, 미국 방송은 진호의 괴력에 더 집중을 했다.

"와, 미치겠네. 이건 뭐지? 이건 너무 잘 해도 문제인 거잖아!"

머리를 벅벅 긁는 정 실장의 말이 맞았다.

'쩝. 너무 폭주했어.'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할 테지만, 그래도 좀 아쉬웠다.

"진호야."

정 실장이 진호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 이거라도 할까?"

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이게 재밌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만……"

피에로 광대보다 훨씬 더 고약한 취급을 받을 것 같았다.

"알잖아요. 이거 하면 사기꾼처럼 생각될 거예요. 미국 코미디 영화에서 동양의 기를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다뤘는데요."

"그건 그렇지만……"

"혹여 정말 잘 돼서 호리호리한 마초처럼 여겨진다고 해도 문제예요. 마초 캐릭터는 한계가 있잖아요. 또 마초 쪽으로 넘사벽도 있고."

"드웨인 저니 존슨……"

"그 외에도 많은 분들이 있죠."

그리고 그들 모두 맡을 수 있는 캐릭터가 한정되어 있었다. 진호는 마초적인 캐릭터도 원하는 거지, 마초적인 캐릭터만 하려는 게 아니었다.

"이거 허락하면 내 스스로 독을 삼키는 거예요."

"끄응. 그래도……"

"그리고 회사에서도 섭외에는 절대 응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잖아요."

"야, 그건 회사가 미국에서 어떤 프로그램이 좋은 건지 몰라서 그런 거고! ……아오, 진짜! 이제 25일밖에 안 남았으니까 먼저 좀 오지!"

'그건 동감입니다.'

그랬다면 지금이 들어온 물에서 아주 좋은 1급수 물만 골라낼 수 있었을 것이다. 컨트롤센터의 부재가 너무 아쉬웠다.

'대체 회사는 무슨 생각인건지……'

정 실장의 말처럼 공사가 다 끝나지 않았어도 물품은 모두 구비되어 있기에 이런 상황이라면 먼저 오는 게 맞았다.

씁쓸하게 웃은 진호는 지갑과 핸드폰, 선글라스를 챙겨 든 채 몸을 일으켰다.

"어디가게?"

"LA 구경이요."

"……있어 봐. 옷 갈아입고 오게."

"됐어요. 혼자 다녀올게요."

"야. 네 얼굴이 얼마나 팔렸는데 혼자 나가? 헛소리 말고……"

"머리 좀 식히고 올게요."

"……아오오!"

진호는 자신 대신 화를 내 주는 정 실장에게 고마워하며 저택을 나섰다.

"택시!"

드르르르륵! 탓탓탓탓탓!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아래.

사람을 태운 롱보드가 미끄러지 듯 앞으로 나아가고, 귀에 이어폰을 낀 사람들이 어딘가를 향해 가볍게 뛰고 있다.

오른쪽으로 펼쳐진 광활한 해변에는 서퍼들이 너울거리는 파도와 씨름을 하고, 모래사장에 돗자리를 편 사람들은 느긋하게 그 모습을 구경한다.

"…… 좋네."

왜 LA를 휴양 도시로 꼽는지 알것 같은 여유로움.

제 갈 길을 가는 사람들 속에 섞여 그들의 느긋한 모습들을 보고 있자니 방금까지의 초조함은 온데 간데없이 사라져 버린 걸 깨닫게 된 진호는 피식 웃어 버리고 말았다.

"그래. 고작 25일 늦어지는 건데, 뭐. 또 물이야 들어왔다가도 나가고, 또 다시 들어오는 거니까."

'이 기다림이 더 큰 파도가 되어 돌아올 수 있고!'

"……끄으아-!"

그렇게 마음이 편해지자 표정부터 달라진 진호는 정말 느긋이 휴양 도시의 풍경을 눈에 담아 갔다.

저벅저벅.

"이제 좀 괜찮아진 거야, 지노?"

"아서씨?"

파파라치가 연예인에게 다가오는 건 정말 흔치 않은 일이었다.

진호는 잘 이겨 냈다는 그의 표정에 숨길 수 없음을 알아차렸다.

"어……. 제가 그렇게 티났던가요?"

"파파라치로서의 육감이지. 자, 여기."

"아, 감사합니다."

둘은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입에 가져갔다.

'…… 좋다.'

마음이 온전히 여유를 찾아서 그런지 바다의 짠 내를 머금은 산들바람마저도 행복하게 느껴졌다.

'LA에 저택을 사길 잘 했지!'

"나한테 묻지 그랬어."

"네?"

"미국인의 취향. 좋은 방송 프로그램."

화들짝 놀란 진호가 아서 첸들러를 바라봤다.

아서 첸들러는 대견하다는 듯 웃었다.

"지노 넌 머리가 좋지. 그리고 신중하잖아."

'그러면서도 한 번 먹잇감을 포착하면 폭풍처럼 몰아치지.'

"네 덕분에……"

탁탁!

아서 첸들러가 카메라를 두드렸다.

그의 카메라는 바뀌어 있었다.

"이렇게 돈을 벌었는데, 그 정도는 하게 해 줘야지."

뭉클.

진호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마음은 정말 고마운데, 아서 씨처럼 연세 많은 분의 취향은……."

"뭐?"

순간 멍해진 아서 챈들러는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쓸데없는 고민이었군.'

그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커피를 입에 가져갔고, 잠시 그들 사이에 기분 좋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러자 들리지 않았던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팅팅팅!

기타 현을 조율하는 소리가 그들의 귀를 붙잡았다.

"오……. 산타모니카 해변에선 버스킹을 하나 보네요."

이제 20살이나 됐을 법한 앳된 외모의 남성. 허름한 일렉기타와 볼에 그린 미국 국기 페인팅이 인상적이었다.

"자주 하지. 나도 옛날에 미국 횡단을 할 때, 여기서 버스킹해서 여행 경비를 벌었고."

"와, 진짜요? 의왼데요?"

"물론 1달러 밖에 못 벌었지만. 그날 기타를 팔아 버렸지!"

"……푸하하하핫!"

좌장! 좌좌좡!

"어?"

배꼽을 잡고 웃던 진호는 귀를 파고드는 거칠면서도 익숙한 선율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린킨파크? in the end?"

"명곡은 시간을 가리지 않는 법이지."

"그건 그렇지만……"

"그렇지. 기타 실력이 형편없어."

"아니, 왜요? 그래도 맥은 잡고 있잖아요."

진호는 도전을 하는 청년을 응원했다.

"하긴……. 버스킹에서 너무 큰걸 바라면 안 되지."

"……아닐걸요?"

"응?"

"노래 실력은 다를 것 같아요."

"그게 무슨……"

[스킬: 아이돌 마스터]가 반응하기 시작한다.

마치 한눈에 반해 버린 듯 심장이 두근두근 뛰고 있다.

'네 재능은 뭐지?'

그렇게 기다릴 때였다.

버스킹 청년의 입이 열리자 진호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It starts with one thing I don't know why It doesn't even matter……."

너무도 숨 가쁘게 토해 내는 랩과 같은 가사.

아무리 이 곡의 앞부분이 랩과 같다고 해도 이건 너무 빠르고, 쉴틈이 없다. 고저도 없이 그냥 토해내기만 한다.

아서 챈들러뿐만 아니라 명곡의 인트로에 잠시 걸음을 멈췄던 사람들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매정히 갈 길을 갔다.

"노래도 형편없군. 린킨 파크를 무시하는 건가?"

"푸하핫! 아니라니까요."

"음?"

몸을 일으킨 진호는 울상이 되어 가는 청년을 향해 다가갔다.

갑자기 앞에 멈춰 서다 못해 바닥에 내려놓는 기타 케이스에 100달러 지폐를 내려놓는 진호의 행동에 놀란 청년은 순간 박자를 놓쳤고, 진호는 계속 하라는 듯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나 워낙 빠른 곡이다 보니 청년은 한 번 놓친 박자를 다시 찾을 수 없었고, 결국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청년은 기타에서 손을 놓으려고 했다.

'안 되지, 안돼.'

진호는 입을 열었다.

"I tried so hard-."

"오2"

"음?"

매정하게 지나쳐 가던 걸음이 그대로 붙들리며 우퍼 소리를 뚫고 울리는 노래를 토해 내는 진호를 응시했다.

그러나 진호는 그들의 반응보다 청년을 보며 어서 따라오라는 듯 계속 노래를 이어 갔다.

"In spite of the way you were mocking me'"

"A, Acting like I was part of your property-!"

'그렇지, 그래.'

떠듬거리며 따라오는 청년의 노래에 진호는 활짝 웃었고,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화음?"

"뭐, 뭐지?"

분명 버스킹 가수인 청년의 노래는 형편없었다.

그런데 진호의 노래가 그 속에 끼어들어 엉켜들자 '제법?'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듣기가 좋아 지기 시작했다. 아니 점점 좋아 지더니 이내 짜릿한 전율을 느끼게 할 만큼 대단해졌다.

그걸 알아차린 청년은 잠시 넋을 놓으면서도 진호의 리드에 이끌려 노래를 이어 갔다.

그렇게 사람의 발이 계속 붙들려갔다.

좌좌좡!

노래가 끝났다.

……짝짝짝짝짝!

"휘이이이익!"

"브라보!"

"오우, 괜찮은데?"

"잘 했어!"

사람들이 박수를 치자 여태껏 얼떨떨해하다가 핫 하고 정신을 차린 청년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가, 감사합니다."

진호는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음. 정말 고마워요?"

"네? 네……"

"그럼 제가 선곡을 해도 될까요?"

진호는 기타 케이스에 내려놓은 백 달러를 가리켰고, 청년은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얼마든지!"

"그럼 세뇨리따요."

"……네?"

"카밀라 케베스와 숀 멘스의 세뇨리따."

"어……"

청년의 얼굴이 당황으로 일그러졌다.

"모르나요?"

'그럴 리가.'

정말 모르는 사람의 반응이 아니었다.

"음은 아는데, 코드를……."

"아, 그럼 상관없어요. 연주는 제가 할게요."

"네에?"

진호는 옅게 웃으며 선글라스를 벗었고, 청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어? 조, 존 리?"

"……뭐? 존 리?"

"지노 리를 말하는 건가?"

관객들도 깜짝 놀라 진호를 보았다.

'됐어. 더 로드 오브 월 스트리트로 얼굴을 알린 것만 해도 충분해.'

관객들은 그를 이진호가 아닌 더 오브 월 스트리트의 존 리로서 알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진호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이 먼 타국에서 이렇게나마 자신을 알아봐 주는 게 어딘가.

이 정도면 성공적인 결과였다.

"어떻게 하실래요."

진호는 제법 집요하게 물었다. 아직 기다리는 걸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오오!"

"해라-!"

"존 리! 존 리!"

갑작스런 깜짝 이벤트에 기회를 놓치지 않은 관객들에 갈등이 생긴 청년은 다시 백 달러를 가리키는 진호의 모습에 기타를 벗을 수 밖에 없었다.

백 달러의 유혹은 너무도 컸다.

무리한 부탁을 들어줘서 고맙다는 듯 웃으며 기타를 넘겨받고 다시 조율을 한 진호는 청년을 바라봤다.

"내가 카밀라 씨 부분을 할게요. 그럼 세뇨리따 시작합니다."

"와아아아아!"

진호는 청년이 반박하기 전에 재빨리 연주를 시작했다.

-띠, 디디딩! 띠딩 띠딩!

"I love it when you call me senorita!"

끈적끈적하면서도 간절한 음성.

진호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입을 떡 벌렸다.

"……와아!"

"와아아!"

진호는 그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에 눈웃음을 지으며 계속 노래를 이어 갔다.

그러다 청년의 차례가 되었다.

사람들은 방금 듀엣을 떠올리며 기대를 했고, 갈등하던 청년은 이내 눈을 질끈 감으며 입을 열었다.

그 순간 사람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Land in Miami. The air was hot from summer rain."

몽환적이라는 게 이런 걸까.

저 여자를 꼬시겠다 끈적끈적하면서도 몽롱한 꿈을 연상케 하는 목소리가 울렸고, 진호는 속으로 양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렇지! 이거였구나-!'

한 가지 장르밖에 못하는 지독한 편식쟁이.

청년은 그런 편식쟁이였다.

"브라보-!"

"휘이이이익!"

청년, 로날드 드롤은 쏟아지는 환호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 내가 화, 환호를 받고 있어? 여기 존 리가 아니라? 왜?'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진호는 그런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가끔 타고나기를 한 장르만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있죠."

"……그게 저라는 건가요?"

"깨달았잖아요. 앞으로 당신이 불러야 할 노래는 락이 아니라, 이런 노래라는 거."

"그런……. 그럼 대체 난 여태까지……"

'누구 한 명 잡아주지 않았구나.'

진호는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나와 함께하죠."

"네?"

화들짝 놀란 그는 진호와 진호가 내민 손을 번갈아 보았다.

"에? 그, 그게……"

너무 당황한 건지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 울상을 짓던 그는 이내 표정을 굳혔다.

기타를 잡고 거리에 나선 지 3년. 이제 사람들의 무관심은 지겨웠다.

"네, 부탁드릴게요."

"와아아아아아아!"

로날드 드롤에게 명함을 쥐어 주고 돌아선 진호에게 아서 챈들러가 다가왔다.

퍽! 아서 챈들러 가진호의 어깨를 때렸다.

"억?"

"수고 했어, 지노! 이렇게 멋지고 황홀한 버스킹이라니! 이거 아주 시끄러워지겠어!"

"네?"

진호는 지금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나 의아해하며 바라봤고, 아서 첸들러는 그런 진호를 어이없다는 듯 보았다.

"지노. 미국은 버스킹을 사랑하는 나라야. 왜냐고? 언더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곳이자, 열망이 가득한 곳이거든! 우리 미국인은 그들의 열정을 너무 사랑하지!"

"음?"

아서 첸들러는 핸드폰을 들며 짓궂게 웃었고, 진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잠깐?"

"저기 핸드폰을 숨긴 채 사라지는 사람들처럼 나도 제대로 홍보해 주지!"

진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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