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권 14화
5. 필드
"진호 씨!"
"지노-!"
하얗게 질린 이서형이 미식축구공을 집어던지며 진호의 손을 살폈다.
"괜찮아요? 뼈 부러진 거 아니에요?"
분명 무언가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렸다. 아닌 게 아니라 손바닥에서 작은 멍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녀는 식겁하며 달려오는 한 청년을 향해 도끼눈을 뜨며 삿대질을 했다.
"이봐욧! 공공장소에선 조심해야 되는 거 몰라욧! ……이씨, 너 죽을래-!"
이서형은 바닥에 떨어진 미식축구공을 뻥 차 버리며 방방 뛰었다.
"……푸하하하하핫!"
"지금 웃음이 나와요! 야!"
"읏차. 자, 난 괜찮으니까 진정하시고."
그녀를 등 뒤에서 끌어안은 진호는 이젠 숫제 파랗게 얼어붙은 청년을 향해 활짝 웃었다.
"난 괜찮으니까 앞으론 조심해주세요. 사람 많은 곳이잖아요. 제 여자친구가 공을 차 버린 건 미안해요."
분명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었는데, 서형이 화를 내는 것을 보니 화가 씻은 듯 사라져 버렸다.
"죄, 죄송합니다앗-!"
진호가 어서 도망치라며 손을 젓자, 청년은 다시 사과를 하곤 공을 회수하여 도망치듯 사라졌다.
"야-! 너 거기 안 서!"
"정말 괜찮으니까 그만 화내요."
"뭐가 괜찮아요!"
꾸욱!
그녀가 멍이 올라오는 자리를 살짝 눌렀다.
"푸흐흐. 그렇게 눌러도 안 아파요."
그녀는 의심과 불신이 가득한 눈으로 진호를 보았지만, 진호는 진심이었다.
[스킬: 사상 최강의 제자]를 비롯한 여러 육체 관련 스킬과 지독한 단련이 만든 몸이다. 겨우 이 정도 충격에 근육이 다치거나 뼈가 부러질 만큼 허약하지 않았다.
손바닥이 아팠던 건 혹여 손이 밀려 이서형에게 부딪칠까 봐 마치 총알처럼 점으로 부딪친 그 충격을 흘리지 않고 모두 받아 냈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손바닥, 정확히는 손바닥 피부에 생긴 멍이다. 근육이나 뼈가 상한 건 절대 아니었다.
'교통사고 정도의 충격이 아닌 이상 이 몸은 안 다쳐.'
그것도 일반인은 중상을 입을 정도의 충격이어야 찰과상이나 입을 정도일 것이다.
다른 육체 관련 스킬을 다 제쳐 두더라도 [스킬: 사상 최강의 제자]로 인해 만들어진 근육과 골격의 밀도는 인류 최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거짓말 정말 이에요?"
"알잖아요. 나 엄살 심한 거."
"씨이……"
진호는 울상을 짓는 그녀의 어깨를 쓸어내렸고, 한인 회장 사모님은 눈을 빛내며 지원 사격을 했다.
"어머머! 진짜 잘 어울리는 한 쌍이네!"
"그렇죠? 제가 그래서 청혼 날짜만 생각하고……"
콱!
"허억!"
'며, 명치!'
"팔불출은 그만 하됐죠!"
"…….호호호호호! 따라와요. 안내해 드릴게요."
"어으.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서형 씨, 가요."
"진짜 아주 한 번만 더 그래 봐!"
'내가 뭘 어쨌다고……'
진호의 입술은 삐죽 튀어나왔지만, 서형이 잡아 오는 손에 대번에 헤벌쭉 찢어졌다.
삐어엉!
스피드 건이 있다면 이렇게 측정했을 것이다.
시속 157km/h.
몸을 제대로 풀지 않은 상태에서 한 시구였지만, 이미 스킬을 얻은 이후 계속 연습해 왔기에 진호의 구속은 더 높아져 있는 상태였다.
여기에 여자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은 남자의 마음이 더 해졌다. 전력투구였다는 소리다.
"……우아아아아!"
"빠, 빨라! 봤어? 시속 100마일은 될 거야!"
환호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관객석으로 돌아온 진호는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서형에게 거만한 표정을 지어 주었다.
"풉. 수고 했어요."
서형은 옆에 앉는 진호에게 소시지를 물려 주며 어깨를 콱콱 주물렸고, 주위 사람들은 그런 둘을 부럽다는 듯 보았다.
수백 명이 모이는 제법 큰 행사에다가 한인 청년회가 주관하는 행사이다 보니 이런 저런 먹거리들을 팔고 있었다.
"이런. 맥주가 다 떨어졌네요."
"내가 사 올게요!"
"씁! 혼나. 미국까지 힘들게 온 사람이 왜 손을 까딱하려고 그래요?"
서형은 배시시 웃었고, 진호는 몸을 일으켜 캔 맥주를 파는 곳으로 향했다.
"저, 저기……. 미스터 리."
"음?"
미식축구 보호 장비를 차고 있는 혼혈 한인 세 명.
그중 선두에 있는 건 아까 사과를 하러 왔던 그 청년이었다.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어이쿠야.'
쩌렁쩌렁 울리는 외침에 살짝 놀랐던 진호는 이내 푸근히 웃었다.
'성격들이 착하네.'
"괜찮아요. 별로 다치지도 않았고요. 그보다 근골이 대단한 걸 보니 정식 선수인가 봐요?"
한 명은 족히 100킬로는 나가 보이는 거구였고, 나머지 두 명도 80킬로그램은 족히 되어 보였다.
'만져 봐야 확실히 알겠지만, 겉으로 본 것만으로도 근육의 질이 대단해. 절대 범재의 그것이 아냐.'
"예! 저희 모두 대학리그에서 뛰고 있는 정식 선수입니다! 저와 얘들 모두 스탠퍼드 카디널 1군선수죠."
"어? 거기 엄청난 강호 아니에요?"
진호가 알기로 스탠퍼드 카디널은 미국대학리그에서 언제나 Top 10안에 드는 강자였다.
"아, 아세요?"
그들은 한국인인 진호가 그걸 안다는 것에 놀라면서도 뿌듯해했다.
"알죠. ……어? 스탠퍼드 카디널?"
그걸 떠올리자 청년의 얼굴이 갑자기 낯익어졌다.
진호는 이내 곧 화들짝 놀랐다.
"혹시 새뮤얼 로드 아니에요? 카디널의 갈색표범! 그럼 이쪽이 코뿔소고, 이쪽이 스피어?"
"허어억!"
"저, 저희를 어떻게?"
진호는 혀를 내둘렀다.
"와……. 당연히 알죠."
지니어스 USA에 있는 한인 팬들이 우리 미국엔 이런 자랑도 있다며 게시글들을 올리기 때문이다.
덕분에 진호는 이들뿐만 아니라 미국 고교와 대학, 프로리그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선수들의 모든 프로필을 꿰뚫고 있었다.
이런 진호의 설명에 그들 셋은 깜짝 놀랐다가 이내 기쁨을 참지 못했다.
"저, 저희가 유, 유명하다뇨. 그, 그렇지 않아요."
"하하하. 아직 한참 멀었죠."
"유명하지 않을 리가요. 세 분 모두 NFL 지명 1순위잖아요."
정말 대단한 선수는 고교리그에서 바로 발탁되어 NFL로 향하지만, 뒤늦게 꽃이 피는 경우도 있다.
이들 셋이 그런 케이스다.
새뮤얼 로드는 40야드를 4.5초에 돌파하는 준족의 러닝백이고, 100킬로미터는 족히 될 청년은 호평을 받고 있는 라인맨, 나머지 한명은 킥이 마치 투창을 하는 것처럼 곧고 빠르며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는 키커다.
'그런데 이들이 왜 여기에……. 아, 대학리그가 끝났구나. 참.'
진호가 알기로 저번 달에 끝났다.
그렇다면 쉬는 중인 게 분명 했다.
"후배들을 가르치러 온 거예요?"
"…… 저희보다 잘 됐으면 하니까요."
'착한 친구들이네.'
아직도 이런 사람들이 있어 주어서 참 마음이 따뜻해진다.
진호는 핸드폰을 들었다.
"네, 정 실장님. LA 한인 청년회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운동지원기금으로 50만 달러 기부해 주세요. 그리고 다른 주의 한인 청년회도 조사해서 제가 지원할 수 있도록 해 주시고요."
한국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한국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세 사람은 화들짝 놀라며 진호를 바라보았다.
"저도 재외 동포들이 잘 됐으면 해서요."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애들한테 엄청 도움이 될 거예요!"
"뭘요. 서로 돕고 살아야죠."
"그, 그……!"
"네?"
진호를 부른 새뮤얼 로드는 머릿속에서 말이 꼬인 건지 방방 뛰며 말을 더듬었다.
"그, 그! 시, 시……!"
"시축?"
"그래, 그거! 미스터 리! 저희 미식축구 경기에서도 시축을 해 주실 수 있습니까?"
진호는 재밌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제 홍보 아이템을 늘려 주시는 건가요?"
"……미국에선 야구만큼, 아니 그보다 인기 있는 스포츠가 미식축구니까요."
약간의 허세가 섞인 듯하지만, 그부분은 진호도 알고 있다.
미식축구는 NFL 슈퍼볼 역대 최고 시청률이 50퍼센트를 넘을 만큼 엄청난 인기를 끄는 스포츠였다.
'나도 그곳의 개막식이나 하프 타임무대에 서고 싶으니까 알고 있지.'
성공한 연예인이 아니라 성공한 사람만 설 수 있는 영광스런 무대다. 성공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무대에 서는 순간 성공해 버리고 마는 마법 같은 무대.
미국에 도전하는 사람으로서 그걸 모를 리 없었다.
'그리고 나도 이들의 활동에 도움을 줄 수 있겠지.'
수백만의 지니어스가 이들을 응원할 테니 말이다.
지금도 수십 명의 지니어스가 오늘 모인 수백 명의 관중 속에 있었다. 오늘 일은 분명 지니어스 내에서 이슈가 될 터였다.
'그렇게 되면……'
"음……. 미식 축구 시축이라……"
진호는 눈을 빛내는 그들의 시선을 살짝 피하며 생각에 잠겼다.
'……스킬을 얻을까?'
미식축구 관련 스킬이 있다. 얻기가 쉬운데 그 재능마저도 [스킬: 외계인]처럼 반칙인 스킬.
이틀이면 충분히 얻을 수 있었다.
'그래, 얻자. 기회도 왔으니까.'
"그럴게요. 단."
환호성을 지르려 했던 그들은 의아해하며 진호를 보았다.
"저도 같이 뛸 수 있다면요."
"……예?"
* * *
"돌았어. 미쳤어. 그 위험한걸!"
"하하. 다치지 않을게요."
"……몰라요! 조금이라도 다치기만 해 봐!"
옅게 웃은 진호는 팩 돌려진 그녀의 얼굴을 잡아 그 입술에 입을 맞춘 후 돌아섰다.
"저, 정말 괜찮겠습니까? 미식축구는 엄청 험한데……"
"괜찮아요, 괜찮아."
"……음. 그럼 공부터 한번 받아보실래요? 이게 공을 잡기가 꽤 어렵거든요."
알고 있다. 하지만 진호는 처음 듣는다는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 그래요?"
"예. 일단 공을 받는 기본 자세가……."
그렇게 진호를 세심하게 가르치던 새뮤얼 로드는 살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몸의 균형이 안정적이야. 스포츠에 재능이 많다더니……'
웬만한 와이드리시버 저리 가라할 만큼 안정적인 폼이다.
"와우. 진짜 우월한 육체네요. 이번엔 공을 한번 받아 보시겠어요?"
"오, 벌써요?"
진호는 눈을 빛냈다. 이 스킬의 1차 해금 조건이 바로 '20미터 거리에서 미식축구공 던지기'이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날아오는 공을 받는 순간 주인공의 모든 재능이 깨어난다. 즉, 이 스킬은 1차 해금만 해도 스킬이 가진 모든 재능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반칙 중 반칙인 해금 조건이었다.
'하지만 스토리는 배드 엔딩악마라 불릴 만큼 천재적인 재능에 취한 스토리 주인공의 끝은 알코을 중독에 의한 심장마비였다.
"예. 조금씩 거리를 벌려 가면 될 것 같아요."
'거리를 벌린다? 아.'
한 발 뒤로 물러선 새뮤얼 로드는 양손으로 잡은 미식축구공을 마치 배추를 던지듯 가볍게 던졌다.
진호는 당연하다는 듯 받아 들었다.
"오! 역시! 그럼 한 발 더 물러날게요."
그렇게 몇 발이나 물러났을까.
공은 어느새 굴곡이 큰 포물선이 직선에 가까운 포물선을 그리며 서로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의 거리가 20미터 떨어진 순간이었다.
슈우욱! 퍼억!
찌리릿!
"…아."
변했다. 더 강인하고 더 탄력적으로.
그렇지 않아도 생고무와 다름이 없던 육체가 단 몇 초 사이에 그렇게 바뀌어 버렸다.
'그리고 이게 천재의 시야.'
보인다. 아니, 보이듯이 느껴진다.
땅과 허공, 하늘. 그곳에 난 수 많은 길이 말이다.
갑작스런 감각의 변화와 육체의 변화에 약간 혼란스러워하던 진호는 이내 모든 걸 수습하고는 씩 웃으며 앞으로 한발 크게 내딛었다.
그리고 투창을 하듯 팔을 뒤로 잡아당겼다가 몸의 중심을 앞으로 옮기며 팔을 크게 휘둘렀다.
휘이이익!
마치 진짜 창이 허공을 가르며 쏘아지듯 날아가는 공.
아니, 날아오는 공에 새뮤얼 로드는 눈을 크게 떴다.
'어?'
아름답기까지 한 폼에 너무도 이상적인 루트.
그는 잠시 넋을 놓았다.
"아, 진짜 태클을 해도 될 지 모르겠네. 정말 해도 돼요?"
진호에게 모든 걸 가르친 후 멍해 있던 새뮤얼 로드는 진호를 마치 조심히 다뤄야 하는 병아리 보듯 투덜거리는 고교생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될 거야. 어차피 네 태클은 안통할 테니까."
"네? 로드!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니, 안 통해. 고교 레벨의 태클 따윈."
"로드!"
"진짜로."
새뮤얼 로드는 보호 장비를 입은 채 몸을 푸는 진호를 또렷이 바라보며 단언했다.
"표범이라는 단어는 내가 아니라…… 아니, 그냥 저분은 외계인 그 자체야."
"……미스터 리가 모델이라도 소개시켜 준대요?"
새뮤얼은 어이없어하는 고교생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네가 진짜 천재를 알아?"
"……모델이 아니라 배우를 소개받는 거네. 혼자만 치사하게."
발끈한 새뮤얼은 반박하려다가 그만두고는 진호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어른들 말로 운동회 같은 거라 룰이 꽤 허술해요. 그리고 이벤트성도 좀 첨가되어 있죠."
"아, 그래?"
양측 모두 경기장 양 끝에서 있다.
진호가 아는 것과 꽤 달랐다.
"그러니까……"
새뮤얼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제가 킥을 하면 달리세요. 최대한 멀리 찰 테니까. 그리고 저기 끝까지 달리기만 하면 되요."
……씨익!
"그거야 쉽지."
입꼬리를 비튼 진호는 아이실드가 장착된 헬멧을 눌러쓰며 자세를 잡았고, 새뮤얼은 미간을 좁히며 앞으로 나섰다.
'그래. 말처럼 쉽지.'
그러나 결코 쉽지 않다. 킥이 떨어지는 장소는 전쟁터고, 이때 신체와 신체가 부딪치며 일어나는 충격량은 어마어마하다.
보호 장비까지 합해 평균 중량 90킬로그램 이상의 전차들이 부딪치는 사선이기에 부상자도 다수발생한다.
새뮤얼은 그런 전장에 진호를 밀어 넣는 것이지만, 결코 걱정하지 않았다. 현재 천재라 칭송받는 그조차도 고개를 들지 못하게 만드는 천재의 재능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삐이익!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휘슬 소리가 울리자 새뮤얼은 이를 악물며 필드 중앙을 향해 공을 걷어찼다.
타닷! 뻐엉!
그리고 그 순간 진호의 허벅지가 부풀어 오르며 땅을 박찼다.
[스킬: 폭군]
[광속은 나의 영역이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