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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307화 (307/424)

13권 7화

소복소복.

어두워진 밤. 넓고 큰 창밖으로 하얀 눈이 내리고, 라디오에선 캐롤 노래가 울려 퍼진다.

-I don't want a lot for Christmas.

"이 크리스마스에 우린 지금 뭐하고 있는 걸까."

"그러게요."

커다란 펜트하우스의 소파에 앉은 진호와 정 실장이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동지가 되어야 할 월터마저 크리스마스 휴가를 받아 가족을 만나러 간 상태라 더 우울 할 수밖에 없었다.

"나야 솔로라지만, 넌? 서형 씨랑 통화는 했어?"

"……오늘 가족 여행 갔대요. 지금쯤 비행기 안일 거예요."

"저런……"

진호는 안쓰럽다는 표정을 짓는 정 실장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본인이야 통화를 못하는 것뿐이지만, 정 실장은 이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통화할 연인조차 없는 솔로였다.

"……마시자."

"네."

둘은 조용히 캔 맥주를 부딪쳤다.

"인생은 파도야! 지금은 네가 비록 이렇게 쉬고 있지만, 드라마만 들어가면 어? 네가 누군데, 인마!"

요사이 술에 취하기만 하면 나오는 그의 주사. 진호는 소파에 누워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는 정 실장에게 이불을 덮어 주었다.

"네, 네. 그래요, 잘 될 거예요. 그러려고 이렇게 투자회사에서 일한 거잖아요."

"……그래. 아자아자, 파이팅!"

정 실장이 다시 축 늘어졌고, 진호는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에휴. 뭐가 이렇게 불안한 건지……"

그래도 이렇게 걱정을 해주어서 참 고마웠다.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은 진호는 부엌으로 걸어가 냉장고를 열었다.

"……씁."

냉장고에 술이 한 병도 없었다.

다시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킨 진호는 나갈 채비를 하기 위해 방으로 향했다.

'이제 겨우 8신데, 잘 수 없지!'

그랬다간 내일 아침 굉장히 우울해질 것 같았다.

발을 끌며 흐느적거리며 걷던 진호는 갑자기 멈춰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왠지…… 조용하네."

너무 조용해서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공허해진다.

이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혼자 깨어 있게 되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몰랐다.

'차라리 하양이라도 있으면 나을 텐데……'

가만히 무릎 위에 올려놓기만 해도 이 외로움이 살짝은 가실 것 같았다.

"데려올 걸 그랬나?"

그렇게 생각하던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하양이는 집에 잘 들어가지 못하는 진호 본인을 대신해 부모님을 위로해 주는 가족이다. 그런 가족을 데려올 수는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진호는 피식 웃었다. 하양이를 떠올리자 마음이 살짝 따뜻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웃었다.

'파도네. 마음이 그냥 파도치듯 너울거리네.'

"……흠. 그냥 이참에 강아지 한마리 분양받을까?"

충동적인 생각이었지만, 진호는 이내 그러기로 마음먹었다. 남자 셋만 있는 이 꿀꿀한 펜트하우스에 큰 활기를 불어넣어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일은 유기견 보호소에 가 봐야겠네."

고개를 끄덕인 진호는 점퍼와 지갑을 챙겨 근처의 마트로 향했다.

"50달러 62센트야."

"여기 카드요. 그런데 크리스마스인데 안 들어가세요?"

"지노가 마지막 손님이야. 나도 이제 문 닫고 들어가야지. 눈이 더 쌓이기 전에."

"네, 수고하세요. 메리 크리스마스요."

"그래, 지노도 메리 크리스마스."

구멍가게 같은 작은 마트를 나선 진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빵빵! 우글우글.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

그사이 눈발이 더 굵어지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음?"

진호는 옆 골목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추워?'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간절히 바라고 있다.

진호는 무언가에 흘리듯 걸음을 옮겼지만, 이내 곧 다시 멈춰서야 했다.

"……아, 얻었다."

순간 오싹한 전율이 온몸을 내달리며 머릿속마저 저릿저릿 울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5차 해금을 하면서 [스킬: 블랙 펄의 선장]을 얻은 것이다.

'이거구나!'

[스킬: 블랙 펄의 선장]을 얻게 되자, 4차 해금을 하며 보게 된 파도가 최근에 언제 일어났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이는 5차 해금을 통해 잃었던 자금을 복구하는 와중에 '파도가 일어날 조짐과 그 위치마저도 예측'하게 됨으로써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되자 약간 아쉬워졌다.

'이걸 먼저 알았다면 자금을 더 투자하거나 더 바쁘고 현란하게 움직이면서 파도를 더 크게 키울수 있었을 텐데……'

실제로 이 스킬의 주인공은 이를 통해 파도가 시작하는 딱 그 타이밍에 자금을 크게 투자하거나 현란한 초단타를 하고, 혹은 다른 기업까지 판에 끼게 만들어 결국 세계 증시를 쥐락펴락하였다.

즉, 이는 모든 변수를 예측하고 다스리며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고, 기획과 경영의 영역이었다.

물론 이는 주식이라는 인류의 거대한 도박판 외에서는 써먹을 수가 없지만, 스킬의 시너지를 생각하면 다른 분야에서도 활용하는게 충분히 가능했다.

'이로 인해 극히 짧은 시간 안에 말도 안 되는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말이지. 그것도 내가 판을 주도하면서. 일인 작전세력이라고도 할 수 있으려나?'

작전세력이 그러하듯, 아니 어떤 찌라시가 없음에도 바람 한 점 없는 바다에서 거대한 해일을 일으킬 수 있는 끔찍하고도 무지막지한 능력.

물론 그럴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지만, 이렇게 스킬을 습득하자 마치 방금까지의 우울함은 마치 거짓이었다는 듯 온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어서 코딩을…… 아!"

불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골목안을 보며 갈등하던 진호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골목 안으로 발을 옮겼다.

무시해 버리기에는 구출신호를 보내는 무언가의 목소리가 너무 가늘었다.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촛불처럼 말이다.

빠르게 걸은 진호는 골목 안에 있는 작은 쓰레기통 옆을 보곤 눈을 살짝 놀랐다.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작고 까만 털 뭉치.

진호는 그 위에 수북이 쌓인 눈을 보자 순간 울컥 화가 치솟았다.

하양이 때가 떠올라서 더 그렇게 느껴졌다.

'이렇게 작은 아이를 어떻게!'

"……그래, 같이 가자."

하양이를 구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 마치 운명처럼 느껴졌다.

진호는 재빨리 그 강아지를 안아들었다.

* * *

으아악!

컁! 컁!

'……으응. 응?'

주위가 너무 시끄러워 잠을 깨게 된 진호는 컴퓨터 책상 위에 엎드려 있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까망이!"

그는 급히 옆을 바라보았다가 눈을 크게 떴다.

정 실장이 바닥에 주저 앉아 있고, 까만 털 뭉치가 그의 소매를 문 채 데롱데롱 흔들리고 있었다.

'살았구나……'

어젯밤 너무 바들바들 떨고, 아프다 낑낑거렸기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까망이.

"야, 야! 이건 뭐야! 얘 좀 떼어내 봐!"

"……까망아, 이리 와."

"컁?"

"적 아니야. 이리 와."

"컁!"

까망이라 이름 붙인 강아지는 호다닥 달려왔지만, 무릎 위로 올라오진 못해 폴짝폴짝 될 뿐이었다.

진호는 까망이를 안아 들며 흐뭇하게 웃었다.

"오구오구. 아빠를 보호하려고 했어요? 그랬어요?"

'그것도 이런 몸으로?'

너무 깡마르고 작아서 톡 치면 쓰러질 듯 허약한 아이다.

이래서 버려진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작은 체구. 그래서 제 스스로 편한 숨을 쉬게 될 때까지 얼마나 안절부절못했는지 모른다.

'그러고도 안심이 안 되서 이렇게 무릎 위에 올려놓았지.'

코딩은 해야겠는데, 까망이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어서 무릎 위에 까망이가 따뜻하게 잘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두었다.

'그 상태로 코딩하다가 잠들었고.'

코딩을 모두 끝마치면서 긴장이 풀려 깜빡 잠들고 말았다.

"그거 뭐야!"

"이제부터 가족이 될 아이한테 그거라뇨. 얘 똑똑 해서 다 알아들어요."

"그러니까 뭐냐고!"

"근처 골목에 버려져 있더라고요. 그래서 데려왔어요."

"……아, 그래?"

진호가 진호 했다고 생각한 정실장은 혀를 차며 까망이를 빤히 바라봤다.

"리트리버?"

"검색해 보니까 플랫 코디드 리트리버인 것 같더라고요."

"허어. 리트리버를 버린다고?"

진호는 씁쓸히 웃었다.

"이사 가면서 버린 것 같아요."

'너무 작고 허약하게 태어나서. 병원비가 많이 들어서.'

"아……"

정 실장의 표정이 안 좋아 지자 진호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얘 복덩이예요, 복덩이."

"응?"

"딱 얘 씻기고 나니까 바로 서형씨한테 전화 온 거 있죠?"

"……아, 그러냐."

'거기다……'

진호는 켜져 있는 컴퓨터를 보았다.

"응? 오늘 증시 쉬는 거 아냐?"

"뉴욕 증시만 쉬어요."

"……이놈의 자식이. 내가 헛발질 하지 말라고 했지!"

"이제 직접 투자 안 해요. 시스템 트레이딩으로 돌릴 거예요. 어제 업그레이드하다가 깜빡 잠든 것뿐이에요."

"정말? 그 거짓말 진짜냐?"

"그럼요."

정 실장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진호가 시스템 트레이딩으로는 돈을 제법 버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 잘 생각했어. 그나저나…… 어휴. 아침부터 애 떨어지는 줄 알았네. 걔 병원에 데려갈거지? 그러려고 책상에서 선잠 잔거잖아. 밥은 어떻게 할 거야?"

"까망이 맡긴 후에 먹죠."

"알았어. 준비하고 나와."

그렇게 정 실장이 나가자 진호는 바쁘게 작동되고 있는 시스템 트레이딩 프로그램의 경이로운 수익률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생각했던 게 모두 적용됐어!'

파도, 아니 불꽃이 타오를 전조를 미리 예측하여 장작을 넣거나 빼는 등 이로 인해 불이 얼마만큼 커질지, 또 그 불이 자연스럽게 수 그러들 지점까지 수치화시킬 수 있었다.

분명 스킬들의 시너지가 만들어낸 결과지만, 까망이를 줍고 난 후 이런 일이 생기니 행운이라는 걸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진호는 그사이 무릎 위에서 잠든 까망이를 쓰다듬다가 몸을 일으켰다.

"돈은 시스템 트레이딩 버전2가 벌 테니까 난 까망이를 치료하러 가 볼까?"

오늘은 아주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 * *

어느 투자회사의 도날드 햄프리셔는 모니터를 뚫어지게 노려보다가 이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 미치겠네! 또 뺏겼어!"

"또?"

"어! 진짜 이놈 누구지? 누군데 나보다 먼저 쓸어 담는 거지?"

벌써 얼마를 손해 봤는지 모른다.

정확히는 그 본인보다 먼저 주식을 대량으로 매수하면서 주가를 띄워 놓아 예정했던 것보다 약간 비싸게 주고 샀다.

그건 파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이쪽에서 잡은 타이밍보다 한발먼저 팔아 버리니, 그만큼 대량의 주식이 시장에 던져지면서 주가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떨어지게 되었다.

이게 계속 반복되니 정말 사람미치고 팔딱 될 것 같았다.

"다른 회사 아냐? 그게 아니고서는 우리보다 한 박자 빨리 낚아채거나 내려놓을 수 없는 거잖아."

"아니야. 개인이야."

"……그게 말이 돼?"

"이거나 보고 말해. 요사이 나와 비슷한 일을 당한 동료들에게서 얻은 자료니까."

미간을 좁히며 두꺼운 종이 뭉치를 받아든 동료는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눈을 부릅떴다.

"프로그램이잖아, 이거!"

동료의 외침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분명 인간이 한 것치고는 단타 타이밍이 너무 기계적이긴 해. 그러나 그 타이밍이 정말 예술적이야. 마치 신의 예지를 받은 것처럼! 넌 이게 프로그램으로 가능할 것 같아? 무조건 발목 아래에서 사서 무조건 어깨에서 던지는 게? 무조건 플러스 수익만 내는 게? 이놈은 파도가 제가 원하는 만큼 커질 때까지 기다릴 줄을 안다고! 이게 어떻게 프로그램이야!"

이 말이 뜻하는 건 한 가지다.

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월가에……. 괴물이 등장했다는 소리군."

"그렇지. 현재 뉴욕 증시에서만 이 패턴으로 돌아다니는 자금의 액수가 약 8천만 달러고, 작년 연말부터 현재까지 내가 파악한 수익은 약 880만 달러. 아마 내가 파악하지 못한 것까지 생각하면 그 이상이겠지."

동료가 입을 떡 벌리며 굳어 버리자 도널드는 씁쓸히 웃었다.

'파도를 자유자재로 이용할 줄 아는 괴물이 등장한 거지.'

"……하. 일하기 싫네."

그런 그들은 몰랐다.

이게 시스템 트레이딩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말이다.

* * *

"씁?"

질겁한 진호가 재빨리 귀를 후볐다.

"컁?"

"응? 아냐, 아냐. 자, 자."

까망이는 다시 진호의 무릎 위에서 몸을 말았고, 진호는 푸근히 웃으며 까망이를 쓰다듬었다.

'기특한 녀석.'

유기견의 숙명이랄까. 아님 고질병 이랄까.

당시 검진 결과, 까망이도 피부병과 심장사상충에 감염되어 있었다.

감기 기운도 미약하게 있었는데, 몸이 너무 작고 허약해서 그 작은 감기 기운조차도 치명적이었다.

그런데 까망이는 결국 그 모든 병을 이겨 내며 이렇게 건강을 찾았다. 그게 너무 기특하고 또 기특했다.

그런 까망이가 다시 잠든 걸 확인한 진호는 노트북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이거 봐라? 따라붙는 애들이 있네?'

좋은 파도만을 올라타는 진호 본인의 뒤를 슬그미니 따라붙는 서 퍼들이 있다. 덕분에 파도가 더 역동적으로 치고 있었고, 이대로 관망하다가는 뒷덜미를 잡히다 못해 얼굴까지 드러날 판이다.

그건 무조건 사양이었다.

'흐응, 뭐. 지난 2주 동안 벌 만큼 벌었으니까……'

시스템 트레이딩의 코딩창을 켜고 몇 가지를 수정한 진호는 노트북을 닫으며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정 실장을 보았다.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다 준비했어?"

"저야 언제나 오케이죠. 쿠키와 음료수도 오케이입니다."

진호는 익살맞게 웃었지만, 정 실장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오늘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 가자."

"네."

진호도 낯빛을 굳히며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처음으로 모든 배우들이 모여 대본 리딩을 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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