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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306화 (306/424)

13권 6화

보글보글보글.

팔뚝만 한 우럭 두 마리로 만든 육수에 얼큰한 라면 스프와 한 스푼의 쌈장, 다진 마늘, 전복, 굴, 킹크랩, 새우, 랍스터가 들어 간초호화 라면매운탕이 끓고 있다.

코를 파고드는 얼큰한 냄새에 침을 꼴깍꼴깍 삼키던 사람들은 옆에서 방금 잡아 올린 고등어 두마리를 도톰하게 회 치는 진호를 간절히 쳐다보고 있다.

-라면! 이제 다 끓었잖아! 라면 -!

-미쳤냐!

-거기 어디에요? 지금 갑니다.

-여권이 어디 있더라……

-선장님! 그 배 좌표 찍어 주세요. 지금 출발했습니다!

"아, 맞다. 정 실장님."

"어? 왜? 지금 라면 넣어?"

"아, 네. 그래 주시고 19금 걸어주세요. 술 마셔야 되니까요."

당연하게도 그 발언은 채팅창을 뒤집어 놓기에 충분했다.

-안돼!

-이건 너무하잖아, 씨발!

-굿 바이-!

-응. 엄마 아이디로 들어와.

-아빠 아이디는 안 되냐?

-선장님! 그 배 좌표 찍어 주세요. 정말 출발했습니다!

두근!

난리가 난 채팅창을 보며 피식 웃던 진호는 갑자기 변화한 감각에 4차 조건이 해금됐음을 알아차렸다.

누군가 한 명은 핸드폰을 살려둬야 했기에, 그리고 4차 해금을 하면 확인할게 있기에 정 실장의 핸드폰으로 방송을 하고 있던 진호는 본인의 핸드폰을 꺼내어 모바일 홈 트레이딩 시스템에 접속했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뇨. 아니에요."

'으흥-. 이런 감각이구나?'

주가의 그래프가 만들어 내는 파도가 보인다.

얼마나 높이 올라갈지, 얼마나 낮게 거꾸러질지,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저 수평선 너머 멀리에서 밀려오는 파도의 높낮이조차도 모두 그냥 알게 된다.

그냥 앞으로 그려질 파도가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알아차려져 버린다.

'미쳤네.'

허탈히 웃던 진호는 낯빛을 굳혔다.

'이거 위험하다.'

저릿저릿!

온몸에 전율이 내달리기에 더 위험하다.

자칫하다가는 세상 그 누구라도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이 되어 버릴 수 있는 능력.

숨이 가빠진 진호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 순간.

탁!

진호의 손에서 핸드폰이 사라졌다.

진호는 멍하니 정 실장을 보았다.

"야, 또 헛발질할 생각 말고 여기에나 집중해. 씨바, 새우 살이 푸석푸석해지잖아!"

"……푸핫!"

'그래. 내가 지금 뭔 생각을 하는 건지. 적당히 조절만 하면 되는 걸 가지고……'

"그래요, 그래. 아주 나랑 붙어다니더니 요리사 다 됐어요?"

"시끄러! 라면 넣는다? 진짜 넣는다?"

"옙! 넣으세요!"

"오케이!"

정 실장은 재빨리 라면을 넣기 시작했고, 채팅창은 더 이상 못 보겠다고 날 죽이라며 난리가 났다.

진호는 그걸 보며 환하게 웃었다.

'뭘 살까나……'

부우우우우웅!

"지노-!"

"진호야-!"

"젓가락 딱 멈춰! 먹지 마-!"

"응?"

"엥?"

진호와 정 실장, 월터는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배와 그 위에서 방방 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눈을 껌뻑였다.

"…….헐."

팬들이 진짜 왔다.

그것도 한 척이 아니었다.

* * *

"삐졌냐?"

"형, 삐졌어?"

"Jino, Are you crying?"

"시끄러, 다 꺼져요. 아버님, 어머님들도 그러는 거 아닙니다. you. you. shut up! go away!"

"hahahahaha!"

"어흠흠."

"아이고. 젊은 사람이 어쩜 이렇게 손이 야무져?"

"잘 먹었어요. 그리고 낚시 잘 하데?"

다시 떠나왔던 항구로 돌아온 진호는 후다닥 멀어지는 사람들을 보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뉴욕으로 겨울바다 원정 낚시를 온 저 사람들 때문에, 팬이 몇 명 섞여 있는 저들 때문에 조갯살 한 점은 커녕 국물조차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다 뺏겨야 했다.

정말 아주 나쁜 사람들이었다.

그중 가장 어이없던 사람은 개인 요트를 타고 온 찰리 스미스였다.

진호는 입맛을 다시고 있는 그녀를 어이없다는 듯 보았다.

'아니, 당신 오늘 일하는 날이잖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꿀잼각!

-우리 진호 꿍쳐 두었던 새우 한마리까지 뺏겼죠?

-회 셔틀! 넌 낚고 회쳐라! 먹는 건 우리가 하겠다!

-배고파? 응, 나는 배불러! 꺼억!

"다 꺼져! 방송 끝! 정 실장님, 방송 꺼요!"

-악! 나 방금 왔는데!

그렇게 방송을 끈 진호는 슬그머니 걸음을 옮기는 찰리 스미스의 소매를 잡았다.

"차장님, 일은요?"

"……점심시간?"

"펀드 매니저에게 점심시간이 있었나요?"

"……흠흠, 이건 모두 지노가 잘못한 일이에요. 300달러짜리 라면이라니!"

"언제든 이런 걸 끓여 드실 재력이 있으시면서……"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이런 미친 짓을 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충분히 사치를 부릴 맛이 긴 하더군요."

진호는 찰리 스미스를 신기하다는 듯 보았다.

서양인은 딱히 좋아하지 않는 마늘을 많이 넣은 라면이다. 아니, 한국 라면은 기본적으로 맵기 때문에 서양인의 입맛에 잘 맞지 않는다.

'곰탕면이나 짜파게티 정도가 입맛에 맞지.'

특히 곰탕면을 듬뿍 끓여 밥까지 말아 주면, 아주 땀을 뻘뻘 흘려가며 잘 먹는다.

모델들에게 실험해 봐서 안다.

"그나저나 차장님도 지니어스일줄은 몰랐네요……"

오늘 방송은 지니어스를 위해 한 방송이다. 팬이 아닌 이상 방송에 들어올리가 없었다.

"골드 등급이에요. 앨범이나 한정판, 화보집을 제법 샀거든요. 그때도 말했듯 모델 때부터 팬이었요."

"아, 그랬군요. 절 좋아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흠. 팬이라……. 말할까, 말까.'

4차 조건을 해금하면서 살폈던 종목 중 마치 썰물처럼 빠지듯 뚝떨어지는 종목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건 그녀의 팀이 담당하고 있는 종목 중 하나였다.

좀 고민하던 진호는 결국 말하기로 했다.

'팬이니까.'

"그리고 빌커먼 시멘트, 며칠 내로 떨어질 거예요. 그것도 꽤."

'7퍼센트 정도.'

"네?"

"그럼 모레 뵙겠습니다. 가요, 실장님. 월터."

"자, 잠깐?"

진호는 무시하며 걸음을 옮겼고, 남겨진 찰리 스미스는 멀어지는 그의 등을 멍하니 바라봤다.

"……에이, 설마."

아무리 진호라라도 주식까지 조예가 있을 순 없었다.

그러나 그는 외계인이었다.

"……혹시?"

* * *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는게 이런 것일까.

진호는 계속 올라가기만 하는 수익 현황에 입술이 귀밑까지 찢어져야 했다.

'이제 2차 해금 조건에서 손해본 자금만 원상 복구를 하면 스킬습득이야. 그렇게 되면……'

지금 감각이 완벽히 자리 잡으면서 직접 만든 시스템 트레이딩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다.

파도가 일어날 전조나 꺼질 전조의 값을 시스템 트레이딩에 적용시킬 수 있을 거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이제 17퍼센트 남았어!'

4차 조건을 해금한 그날, 커다란 파도를 일으키는 종목을 몇 개발견하고 분산 투자하여 단 하루 만에 엄청난 수익을 냈다. 손해본 자금의 대부분을 단 이틀 만에 복구한 것이다.

'오늘 확인해 보니 모두 호재 뉴스들이 있었지. 늦어도 3일 안에 모두 복구할 수 있을 거야.'

그 말은 곧 스킬의 완전 습득까지 3일 남았다는 소리였다.

"후루룩! 하읏! 하, 뜨거워!"

"매워! 그런데 맛있어!"

진호는 방송을 본 것인지 끓여달라고 조른 300달러 라면을 맛있게 먹는 청소팀 사람들을, 아니 직접 재료와 냄비나 버너 등을 몰래 가져왔기에 결국 인건비만 든 라면을 맛있게 먹는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맛있어요?"

"그걸 말이라고 해? 앞으로 우리 회식은 이거야!"

"찬성!"

"다음엔 더 큰 냄비를 가져오겠어!"

"푸핫! 크크크."

배를 잡고 웃은 진호는 그제 못먹은 라면을 향해 젓가락을 뻗었다.

'그나저나 그런 악재일 줄은 몰랐는데……'

오늘 아침 10시 빌커먼 시멘트가 약 1천만 달러를 투자한 신기술개발에 실패했다는 뉴스가 올라왔다. 그 때문에 현재 빌커먼 시멘트의 주가는 한편의 공포 영화를 보는 것처럼 추락하고 있었다.

'뭐, 어차피 신경 쓸 이유는 없지만. 신경 써서도 안 되고. 이제 곧 당신들 주가가 떨어질 거라고 말해 봤자 고소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나저나 이렇게 되면 캐릭터를 다시……'

타다닷! 벌컥!

진호와 대기실에 있던 청소팀 사람들의 고개가 열리는 문 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하아. 하아."

청소팀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

찰리 스미스였다.

사람들은 급히 냄비 앞을 가리며 라면이 담긴 그릇을 허리 뒤로 숨겼다.

"저, 저기…… 이건!"

"지노! 나 좀 봐요!"

"저요? ……아."

대충 무슨 일인지 알아차린 진호는 몸을 일으켰고, 둘은 회사 근처의 카페로 향했다.

그리고 청소팀 사람들은 냄비와 그릇을 든 채 탈의실로 들어갔다.

그대로 버리기에는 라면이 너무 맛있었다.

"어떻게 된 거죠?"

'역시.'

찰리 스미스는 입을 다문 진호의 모습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내부 정보를 미리 습득한 건가요?"

'워후. 이분이 큰일 날 말을 하시네.'

내부 정보. 자칫했다가는 험한 사람들로 가득한 미국 교도소에서 감방 생활을 하거나 막대한 액수의 민사소송을 당할 수도 있는 말이다.

진호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감이었어요."

"감?"

"네. 육감."

진호는 그녀에게 모바일 홈 트레이딩 시스템을 켜서 보여 주었다.

이 역시도 진호가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여기 수익 현황 보이시나요?"

"……흡?"

찰리 스미스는 진호의 핸드폰을 낚아채다시피 가져와 올 1월부터의 수익률을 살피기 시작했다.

"……말도 안돼."

오직 플러스만 거듭하고 있는 수익 그래프.

이건 모든 펀드 매니저가 바라고 또 바라는 이상향이었다.

진호는 다리를 꼬며 입을 열었다.

"뭐랄까. 주가 그래프를 가만히 보다 보면 언제 주가가 상승하고 떨어질 것 같다는 촉이 아주 가끔씩 와요. 강렬한 의지가 뇌를 속이는 게 아니라 정말 불길하거나 수익이 날 것 같다고 느껴지죠. 스미스 씨도 그럴 때가 있지 않나요? 주식을 할 때만이 아니라 아침에 눈을 뜬 순간 '아, 오늘은 왠지 재수 없겠다'라는 그런 감각이 느껴질 때가."

"……굉장히 부러운 능력이네요. 그 육감이 빌커먼 시멘트가 떨어질 거라고 경고한 건가요?"

"네. 마치 귀신을 본 것처럼 오싹해지더라고요. 그런 감각이 느껴질 땐 아니나 다를까 주가가 폭락했죠."

"……진짜 부러운 능력이네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그래서 제 투자는 오직 시스템 트레이딩과 제 육감으로만 합니다. 이제 답이 됐을까요?"

진호는 이제 다 봤으면 핸드폰을 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찰리 스미스는 그런 진호에게 순순히 핸드폰을 넘겨주었다.

진호가 투자회사에 청소부로 입사한 순간 번지점프를 하듯 처참하게 떨어진, 지하 밑바닥의 밑바닥까지 파고 들어간 마이너스 수익을 확인해 버려서 의심을 할 수 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 내에서 정보를 얻은게 아니었어.'

"미안해요. 너무 놀라서 그랬어요."

"아니에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손해는 좀 줄이셨나요?"

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가 저었다.

"빌커먼 시멘트의 CEO가 어제 전화를 주더라고요."

"……아, 홀딩을 하기로 한 거군요."

"네. 신기술 개발이 실패했을 뿐이지, 빌커먼의 시장 점유율이 떨어질 일은 없으니까요. 그래서 제 선택은 홀딩이었어요."

진호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떨어진 주가는 다시 오르는 법이고, 빌 커먼은 중소기업이지만, 준수한 매출을 올리고 있는 회사니까. 기술력이 좋다는 건 당연한 이야기고.'

시멘트, 콘크리트, 페인트 등 여러분야에 발을 걸친 빌커먼 시멘트는 쉽사리 무너질 곳이 아니었다.

진호가 본 그래프의 파도도 조금씩 반등했었다.

"의심이 풀렸다면 이만 일어나도 될까요? 식사를 아직……. 아, 대기실에서 취사를 한 건 비밀로……."

"……흐음."

이번엔 그녀가 다리를 꼬았고, 진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브런치용 샌드위치라면 그 입을 다물 뇌물이 될까요?"

"난 당신의 팬이에요, 지노."

"같이 먹죠."

"역시 지노라니까. 이래서 우리가 좋아하는 거죠."

"시끄럽습니다. 당신 같은 악질 팬은 필요 없어요."

"사랑해요, 지노."

"네. 저는 안 사랑해요."

미우나 고우나 팬이고, 앞으로 2주 정도 같이 봐야 할 인물이다.

한숨을 내쉰 진호는 그렇게 브런치를 파는 카페로 향했다.

'그나저나…… 이렇게 되면 올해 크리스마스도 혼자인 건가? 분명 나한테는 서형 씨가 있는데도 왜 계속 크리스마스는 혼자인 거지?'

이건 누군가의 농간이 분명 했다.

진호는 화창한 하늘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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