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298화 (298/424)

12권 23화

8. 한걸음

다미앙은 지사가 설립되자, 아시아 총괄 지부에서 후임으로 키우던 최철규를 끌어오며 모델 파트로서의 몸집을 키웠다.

덥썩!

이제는 다미앙 지사의 치프 디렉터가 된 최철규 팀장이 진호의 손을 꽉 잡았다.

"어디가. 못가."

그뿐만 아니다. 다크서클이 볼까지 내려앉은 모든 캐스팅 디렉터들이 이 시국에 빠져나가려는 배신자 진호를 죽일 듯 노려봤다.

"어쩌겠어요, 약속인데."

싱긋 웃으며 그의 손을 떼어 내는 진호의 두 눈도 퀭했다.

수십만 개의 데모 동영상 확인.

그것은 지옥이었다.

"이거 네가 한 기획이잖아!"

"많이 기다리셨대요. 죄송합니다."

"너 이거 조삼모사야! 어차피 갔다 와도 확인해야 돼!"

더 환하게 웃으며 손을 뿌리친 진호는 다급히 몸을 돌렸다.

'난 여기서 빠져나가겠어! 사랑합니다, 나 피디님!'

벌써 20일째다. 하루 19시간 이상 영상을 확인하고 또 확인한 게 말이다.

'이분들 실력을 믿지 않았다면, 또 3차 선별을 끝내지 않았다면 이렇게 도망칠 수도 없있겠지만……'

모두 한 끗발 날리던 캐스팅 디렉터들이라서 그런지 원석을 고르는 눈이 먹잇감을 찾는 매의 그것 처럼 대단했다.

그런 그들이 3번이나 걸러서 추린 원석들이다.

[스킬: 아이돌 마스터]도 부정을 하지 않으니 이렇게 맘 편히 도망칠 수 있는 것이었다.

총 투자 금액 미정, 예산이 무한하게 투자되는 연습생 프로젝트.

이제 두 번만 더 거르면, 연습생 확보를 끝낼 수 있었다.

'수고하세요! 다녀와서 확인할게요!'

그렇게 회의실을 빠져나온 진호는 기지개를 쭉 폈다.

"캬-! 공기가 다르구나, 공기가."

군인이 맡는 부대 밖 공기가 이럴까.

방금까지 축 쳐졌던 몸에 활력이 생기자, 진호는 까타레나 등 슈퍼스타 지니어스를 통해 계약한 연습생들을 보기 위해 움직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까타레나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강의실 문에 난 작은 창을 통해 열심히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는 연습생들을 본 진호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이들은 데뷔 전까지 최소 5개 국어를 마스터할 예정이었다.

"그 정도가 아니면 곤란하고. 그러면 이제 문제는……"

진호 본인이다.

슈퍼스타 지니어스의 대 성공으로 인해 미국에서 프로모션 제의가 쏟아지고 있지만,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그토록 바라던 미국인데, 정말 왜 이러냐.'

한참을 고민하던 진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시간은 많으니까."

일단은 나연석 피디의 예능이 먼저 였다.

'이번엔 또 어떻게 뒤통수를 치려나?'

어떤 수작이든 받아쳐 줄 준비를 마친 진호는 걸음을 성큼성큼 옮겼다.

* * *

"삼촌!

"진호야!"

진호와 우해진은 서로 얼싸안고 방방 뛰었고, 고급한식당에 모여있던 스태프들은 흐뭇이 웃었다.

진호는 그런 그들을 보며 살짝 긴장했다.

'아예 카메라를 오픈했네? 뭐지?'

뒤통수를 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닌가 싶은 나연석과 그의 사단이 카메라를 오픈시켜 놓았다.

음모의 냄새가 풀풀 풍겼다.

진호가 미씹적은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그때, 우해진이 핀마이크를 손으로 쥐며 진호의 귀에 속삭였다.

"요새 연습생 발굴한다고 바쁘다며?"

진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삼촌도 뉴스 보셨군요."

몇몇 기획사들이 주축이 되어 연습생 무단이탈 사건을 언론에 고발했다.

그 탓에 진호는 상도의가 없는 사람이 될 뻔했지만, 재단장한 홍보부 전원이 달려들어 눌러 버렸다.

"정말 뉴스에서 나온 그대로야?"

"그렇다면 그런 거라고 볼 수 있죠. 다만 기획사 입장이 아니라, 연습생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질 테지만."

연습생이 대거 빠져나갔다면, 연습생들의 변심을 따질 게 아니라 연습생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봐야 한다.

"역시 그렇지? 그래서 다 받아들이기로 한 거야?"

"그럴 리가요. 언론에도 이야기했듯 저희가 한국에서 뽑을 인재는 모델이에요. 그들 아이돌이 아니라. 그리고 무턱대고 사고부터 치고 보는 사람은……아, 그건 나구나, 참."

대책 없이 사고를 치는 사람을 데려올 만큼 인재가 없는 게 아니었다.

"푸하하하하핫!"

"흐흐흐. 그보다 삼촌은 좀 어떠셨어요?"

"나야 잘 지냈지. 재밌는 작품 없나 시나리오 확인하고, 취미 생활하고. 이 나이엔 새로운 일이 생기지 않는 게 최고……"

"계속 그렇게 귓속말만 할 거예요?"

"아."

부루퉁한 나연석의 모습에 진호와 우해진은 씩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나연석은 그런 그들을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밥 먹기 전에 끝낼까요. 아니면 밥 먹은 후에 이야기할까요."

그동안 나연석에게 당한 게 꽤 있는 진호와 우해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를 하려고 그런 말부터 해? 하숙집 시리즈 시즌3 찍으려는 거 아니었어? 그러고 보니 승원 씨는 왜 안 와?"

최승원과 우해진.

진호가 이번에 합류하는 하숙집 시리즈는 이 두 사람이 주축이 된 예능이었다.

"아, 이번 시즌엔 승원 씨는 합류하지 않으실 거예요."

"뭐?"

"진짜요?"

진호도 깜짝 놀라 엉덩이를 들썩였다.

"일신상의 사유가 있으셔서요."

"아……. 예지 유학 문제 아직 마무리 안 됐어?"

"그러시다고 하더라고요."

진호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최승원은 자식 바보라고 불릴 만큼 굉장히 가정적이고 가족에 헌신하는 아버지다. 딸의 앞으로의 인생을 결정할 유학 문제라면, 방송 활동을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

"아쉽네."

"그러게요……."

어, 잠깐. 그러면 요리는요?"

"당연히 진호 네가 해야지. 할 수 있지?"

싱글싱글 웃는 나연석을 보자 진호는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거였구나!'

나연석의 뒤통수가 말이다.

카메라를 처음부터 오픈한 이유가 있었다.

"와…… 치밀하다, 치밀해. 그러니까 지금 진호보고 빠져나가지 말라고 카메라로 압박 주는 거잖아?"

"에이, 그건 아니죠. 이미 출연한다는 말을 녹음해 놨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저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닙니다."

'맞잖아요!'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는 그를 본 진호는 입을 뻐끔거렸다.

"그리고 카메라 숨겨 봤자 어차피 진호가 다 발견할 테니 쓸데없는 시간 낭비를 줄인 것뿐이에요. 그보다 할 수 있지?"

"뭐……"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숙박 업소가 꽉 차도 충분히 커버할 수 있었다.

"그러면 해진 삼촌은 접객 담당이시겠네요?"

"거기다 플러스 우케아."

"뭐야, 이번에도 처음부터 만들어야 돼?"

"아, 좋아하신다. 그렇게 기쁘세요?"

"내, 내가 뭘……. 커흠. 그렇지 않아도 만들고 싶은 거 생각해 놨으니까 나만 믿어!"

진호와 사람들은 훈훈히 웃었다.

진호는 세상 그 무엇보다 밝게 웃는 나연석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러면 보조는요? 어떤 분이세요?"

움찔!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을까, 아니면 예상치 못한 타이밍이었기 때문일까.

그 나연석의 몸이 눈에 띄게 경직되자 진호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설마…… 아니죠?"

아닐 것이다.

기존 하숙집 시리즈가 왜 3인 체제였던가.

누군가 프런트를 보고, 누군가 프라이팬을 잡을 때, 청소 등 잡일을 도맡아 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나연석이라고 봐야 했다.

그런 나연석이 그림을 어그러트리는 일을 벌일 리는 없었다.

"그렇죠? 아니죠?"

"그럼-. 나 피디가 어떤 사람인데 그런 몹쓸 짓을 하겠어!"

우해진도 끝에 가서는 화를 낼듯 강하게 말했다.

"아니지, 나 피디?"

두 눈에 불안이 가득한 그들을 보며 나연석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요. 당연히 아니죠."

자신만 콱 믿으라는 듯 너무도 온화한 미소에 진호와 우해진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미심쩍은 부분이 약간 있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을 놓는 게 아니었다.

"그렇지! 내가 나 피디를 콱 믿었다니까! 하하핫!"

"그래서 보조를 해 주실 분은 누구신데요?"

"아, 보조해 주실 분?"

피식!

나 피디의 입에서 실소가 터지자 진호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뭐지?'

갑자기 미친 듯 불안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문 밖에 계실 거예요. 들어오세요, 선생님!"

"응?"

"선생님?"

드르륵!

사람이 너무 놀라면 비명도 안나온다고 했던가?

그 말이 맞았다.

"…….꺽?"

"억?"

문이 열리며 나타난 노인을 본진호와 우해진은 경악하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허리를 90도로 접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이진호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어이구, 그래. 해진이, 오랜만이야."

우해진조차도 선생님이라고 말해야 하는 인물.

진호는 고개를 숙인 채 실실 웃고 있는 나연석을 죽일 듯 노려봤다.

'왜 김순재 선생님이 여기 계시는데! 이 미친 인간아-!'

그랬다. 마지막 멤버이자, 잡일꾼은 대한민국 연기 역사의 산증인이나 다름없는 김순재였다.

* * *

-푸하하하하핫!

"꺼져."

……푸하하하하하핫!

"좀 닥쳐 주겠니, 친구야?"

-김순재 선생님이라니! 김순재 선생님이라 니-! 제멋대로 이진호도 이번엔…….

진호는 그냥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마른세수를 했다.

"하아……"

사정을 알고 있는 정 실장은 하얗게 질린 채 그런 진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잘 해! 절대! 절대 말실수하면 안돼! 몸가짐도 똑바로 해야 돼! 사고도 3번, 아니 10번 생각하고쳐! 아니 그냥 선생님이 무슨 말씀하시면 네 하고 뛰어!"

"당연하죠! 그 정도 정신은 있어요! 날 뭘로 보고!"

"……아는데! 그래, 아는데!"

김순재는 대한민국 모든 연예인뿐만 아니라 수 많은 국민들이 존경하는 연기자다.

노년의 배우에게도 선생님이란 호칭으로 존경받는 그.

그 이름값이 가지는 막대한 무게는 아차 하면 진호가 한국에서 이룩한 모든 것을 무너트려 버릴 수 있기에 정 실장은 끝내 며칠 전처럼 다시 한번 정신줄을 놓았다.

"아니, 대체 선생님은 왜 하숙집 시리즈에 출연하신다는 거야!"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 더 많은 경험을 해 보고 싶으시다고……"

이제 곧 아흔인 김순재가 나연석의 말도 안 되는 제안을 받아들인건 그 때문이었다.

'같은 사람으로서, 후배 연기자로서 충분히 본받고 존경할 모습이지만……'

"돌겠네, 진짜 -!"

'저도요! ……어쩌지?'

복귀 예능이 굉장히 하드하고 다이나믹해지다 못해 장르가 스릴러로 바뀌었다.

분명 하숙집 시리즈는 힐링 예능인데 말이다.

때문에 다미앙 지사도 한 차례 뒤집어졌었다.

"이게 다 나 피디 그 양반 때문이야! 연예계의 악! 사탄! 사기꾼! 진짜 그 인간 머릿속 좀 보고 싶네-!"

'저도 보고 싶습니다.'

흐허헛 허탈하게 웃은 진호는 생각하기를 관두었다.

일은 터졌고, 수습은 불가능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진호 본인과 우해진, 김순재가 앞으로 만들어나갈 케미가 무척이나 기대된다는 것이었다.

'해진 삼촌이 능글맞게 손님을 받고, 내가 요리하고, 선생님이 찾아온 분들에게 더 나아갈 힘을 불어넣어 주신다면……'

찾아온 손님들은 무척이나 만족하며 떠날 것이다.

나연석이 원한 장면도 이것일 터였다.

그 미칠 듯한 그림을 떠올리니 벌써부터 엉덩이가 들썩였다.

'부디 날 예쁘게 봐주시기만을 바라야겠네.'

진호는 많은 신들을 찾으며 간절히 기도 했다.

부우웅! 끼익!

"도, 도착했습니다."

"컥! 버, 벌써요?"

차창 밖으로 보이는 인천공항을 응시한 진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지금이라도 튀면…"

"되겠냐!"

'…… 사람이 이래서 담배를 찾는 건가.'

작품을 위해 몇 번 펴 보았던 담배가 급격히 몰려왔다.

"……다녀오겠습니다."

"진호야, 명심해. 이번에 사고 치면 정말 너 죽고 나 죽는 거다."

"자, 자제해 볼게요."

장담은 할 수 없지만 말이다.

침을 꿀꺽 삼킨 진호는 캐리어를 끌고 인천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