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289화 (289/424)

12권 14화

신랑 신부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 다시 조출한 파티가 열렸다.

"고마워, 지노. 정말 고마…… 워."

"형, 안 줄 건데. 어차피 형 집에 놓을 곳도 없잖아."

"그래도 고마……"

쿵!

결국 테이블에 머리를 박은 채 혼절해 버린 20대 후반의 남성을 보며 흐뭇이 웃던 진호는 갑자기 혀를 찼다.

"새신랑이 이렇게 술이 약해서야. 소피아, 너도 참 힘들겠다."

"그 점이 귀여운 걸?"

'저 얼굴이? 저 덩치가?'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악역 전문배우인 외모.

가명 '미녀와 야수의 결혼식'을 만들 때, 이 새신랑을 최대한 착하고 멋지게 표현하느라 애를 썼던 진호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자리를 옮겼고,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신혼부부는 건드리는 게 아냐, 지노. 너만 손해야."

"아무래도 그런가 봐요."

갑자기 이서형이 무척이나 보고 싶어진 진호는 맥주를 들이켰다.

벌컥! 벌컥! 탕!

"크으으-!"

헤니히스도르프에 도착한 첫날 만난 요한나가 엄마와 함께 만든 쿠키를 입에 넣은 진호는 어둔 창밖을 보며 술기운이 섞인 숨을 길게 내뱉었다.

그는 오늘 찾아 왔던 기자 막스를 떠올렸다.

'특집 기사라……'

대충 진호가 이곳 사람들과 어울리며 조각하는 이야기를 다룬다고 했지만, 외계인 이진호에게 숨겨진 또 다른 재능 같은 기사 제목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나도 고마워, 지노."

"음?"

고개를 돌린 진호는 눈가가 촉촉이 젖은 벌건 얼굴의 노인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괜스레 쑥스러워져서다.

"벌써 취하셨어요, 카롤라 할머니? 왕년엔 헤니히스도르프 남자들을 모두 술로 이기셨다는 분이……"

진호는 입을 다물었다.

스윽.

카롤라의 거칠고 주름진 손이 진호 본인의 손등을 덮어 왔기 때문이다.

"네 덕분에 동네가 정말 활기차졌어."

"음식은 또 어떻고요? 지노의 요리 수업과 레시피가 아니었다면 난 오늘 아침도 루이제의 끔찍한……"

"못써. 루이제만큼 착하고 야무진 부인이 또 어디 있다고."

맞장구를 치려다 한 소리를 들은 50대의 중년인은 그건 맞다고 낄낄 웃으며 맥주를 홀짝였고, 카롤라는 철들려면 멀었다고 한숨을 내쉬며 진호의 손을 쓰다듬었다.

"정말 지노 네 덕분이야."

"…… 뭘요. 제가 한 게 뭐 있다고요."

그저 공간을 제공한 것뿐이다. 원래부터 서로 교류를 자주 하던 그들이 더 자주, 더 쉽게 모일 수 있도록 말이다.

그것뿐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고마워해 주고 있었다.

간지러운 가슴을 쓰다듬은 진호는 왜인지 머뭇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의아해했다가 이내 곧 그녀가 그런 이유를 알아차렸다.

[스킬: 셜록의 후예]가 읽어 냈다.

"음. 아마 한 달에서 두 달 정도는 더 있을 거예요."

화들짝!

"내, 내가 입 밖으로 말했어?"

"네."

"……으응. 취했나?"

"……그래요, 카롤라 할머니. 많이 취하셨어요. 댁에 모셔다 드릴게요."

"됐어, 집이 바로 코앞인데 무슨. 일어나지 말고 더 마셔. 빅터, 너는 그만 마시고."

"허. 아주머니는 만날 나만 혼내시더라."

"네가 잘 하면 혼을 안내지."

"저도 이제 쉰둘입니다."

"난 일흔넷이야. 곧 관에 들어갈 내 앞에서 나이 자랑 해?"

콧방귀를 뀐 카롤라는 진호의 공터가 꽉 차서 모이게 된 집을 나섰고, 빅터는 그 모습을 푸근하게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너무 고깝게는 듣지 마. 지노 널손자처럼 여겨서 저러시는 거니까. 알잖아, 카롤라 할머니 사정."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롤라 할머니의 자식들은 모두 베를린에 나가 살고 있었는데, 특별한 날이 아니면 잘 찾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알아요, 저도. 카롤라 할머니나 아저씨,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절 얼마나 아껴 주는지."

'그리고 내가 떠나면 얼마나 아쉬워할지도.'

의도하지 않아도 [스킬: 셜록의 후예]가 읽어 낸다. 이들이 얼마나 순박하고 정이 많은지를 말이다.

그래서 이토록 마음이 쓰이는 것일 수도 있었다.

"커흠. 아끼긴 무슨. 됐어, 시끄러워."

"푸흐흐."

진호는 빅터가 내미는 맥주 캔에 건배를 했다.

꿀꺽 꿀꺽

"크으."

"크."

그들은 마치 쌍둥이처럼 동시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서 빠르면 한 달 뒤에 떠난다는 거야?"

"아마도요."

"동네가 다시 조용해지겠네. 아, 지노 널 압박 주려고 하는 말이 아니야. 아니, 맞으려나?"

빅터가 장난스레 윙크를 하자 진호는 웃고 말았다.

'그런데 끝까지 다른 조각상들에 대해선 욕심을 내지 않는구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한국으로 치면 통장인 그는 충분히 욕심을 낼수 있어야 했다.

"걱정 마."

"네?"

"지노 네가 준 여러 레시피 때문이라도 동네가 시끄러워질 테니까. 네가 팔아도 된다고 만날 말했잖아. 괜찮지?"

"아, 장사하시게요?"

"음료랑 과자 정도를 팔아 볼 생각이야. 이곳 헤니히스도르프는 범죄조차 잘 일어나지 않을 만큼 조용한 게 최고 자랑 거리지만, 너무 조용해서 탈이거든."

아마 죽어 간다는 게 맞을 것이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빅터는 그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관광객을 생각하시는군요?"

"그 정도까지는 바라지 않고, 가끔 업무 차 헤니히스도르프를 들리는 사람들이 찾아 오는 정도? 홍보야 젊은 놈들에게 맡기면 되니까."

"좋은 생각이세요."

"그래. 앞으로 네 빈자리는 느껴지지 않을 만큼 시끌벅적해질 테니까 마음껏 쉬다가 떠날 때 인사만 해."

"네, 그럴게요."

대가 없는 정이 너무 무겁게 다가온 진호는 다시 맥주를 들이켰다.

'할아버지들도 날 보며 이런 감정을 느꼈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답은 나왔다.

호의를 받았으면 호의로 되갚으면 된다.

그렇게 작은 홈 파티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사람들과 웃고 떠든 진호는 밖으로 나와 별들이 가득 뜬 하늘을 보았다.

그러다 핸드폰을 들었다.

"후우-."

-여보세요!

"주무시는 중이었나요?"

-아, 아닙니다! 말하세요, 지노 리.

"쓰려고 하는 그 특집 기사……"

-예.

"스케일을 키우죠."

-……예?

"제가 오늘까지 만든 10개의 조각상을 모두 이곳 헤니히스도르프에 기증할 생각입니다. 막스 씨, 이곳 헤니히스도르프의 시청과 절 연결시켜 주실 수 있나요?"

-쿠당탕!

진호는 무언가 바닥을 구르는 듯 한 소리에 미소를 지었다.

'두 달 후에 떠나자.'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가슴이 후련했다.

* * *

헤니히스도르프로 향하는 발걸음.

인구가 2만 6천여 명밖에 안 되는 독일의 작은 도시 헤니히스도르프. 베를린 근교에 있는 이 도시는 독일 사람이라도 꽤나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민중봉기의 그날, 동베를린을 향해 1만 5천여 명의 철강 노동자들이 출발한 그곳이라 하여도 지금에 와서는 시골의 도시처럼 점점 사람들에게 잊혀져 가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그랬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외계인. 그렇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 외계인 진호 리가 그곳에 잠시 머물며 또 다른 재능을 발화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중략>

독일 유명 대학의 교수들과 예술계의 권위자들마저 감탄해 버리고만 작품들을 보기 위해 현재 베를린을 찾는 관광객들 중 일부가 발길을 돌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본 기자는 그들의 결정을 무척이나 칭찬해 주고 싶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봄날, 훗날 베를린 관광의 필수 코스가 되기 전 박물관에서도 보기 힘든 작품들을 감상하며 조용한 도시 헤니히스도르프의 여유를 다시…….

<하략>

"……."

막스의 특집 기사를 모두 읽은 진호는 눈을 껌뻑였다.

"……내가 이렇게 큰일을 한 건가?"

'훗날 베를린 관광의 필수 코스가 되기 전'이라는 대목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럽게 만들었다.

진호는 댓글을 읽어 보았다.

- 역시 기자란 소설을 쓰는 존재인가?

┗다녀온 사람으로서 말한다. 일단가 보고 말해라.

-스웨터 입은 베토벤의 열정적인 연주, 잘 봤습니다.

-예수 탄생상 보고 울었다.

-강력 추천한다. 베를린에 사는 사람이라면 주말 나들이로 최고다. 서쪽 외각에 가면 진호 리의 레시피대로 만든 쿠키도 먹을 수 있다.

┗뭐라고? 지금 간다.

┗아니야. 가지 마. 나 여자친구 사진 찍어 주느라 팔 빠지는 줄 알았어.

'아니, 울 정도는 아닌…… 맞나?'

감수성이 많은 사람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다시금 쑥스러워진 진호는 머리를 긁적였다.

지이잉!

'……아, 받지 말까?'

발신인이 다미앙이었다.

망설이던 진호는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사고를 치셨더군요.

움찔!

진호는 몸을 굳혔다.

하지만 이내 곧 어깨를 폈다.

"분명히 먼저 말씀드렸어요. 시청과 연계해서 작품을 배치한다고 말했고, 스토리텔링을 할 거라고도 말했고, 다 말했어요. 작품 사진도 보내 드렸잖아요."

조각 공원을 조성한다는 것과 작업을 했던 창고를 조각 체험을 할 수 있는 체험장으로 만든다는 말도 했다.

헤니히스도르프는 유명 조각가들을 모아 조각공원을 조성하기로 했고, 야수와 미녀의 결혼식 조각상을 그 조각공원에 전시한다고도 말이다.

이렇듯 다 말해 놓은 진호는 당당했다. 합법적으로 사고를 친 것이기 때문이다.

-흠. 그렇기는 하셨죠. 관광객 방문이 제 예상을 뛰어넘었을 뿐.

"확실히 그렇기는 하죠."

헤니히스도르프를 떠나온 지 한 달 정도 흘렀는데, 그 동안 그곳을 찾은 관광객의 숫자가 2만을 돌파했다고 한다.

거의 헤니히스도르프 인구에 버금가는 숫자였다.

그에 헤니히스도르프는 진호를 명예시민으로 위촉한다는 표창장을 준비한다고 했다.

-그 때문에 현재 한국의 지방자 치단체들에서 섭외 전화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엥? 제 몸값을 감당할 수 없을 텐데요?"

-그렇죠. 그러면 이건 거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다른 건요?"

-진호 씨가 보낸 18점의 조각상들 때문에 지니어스 차이나에 투자가…….

"아, 그건 그쪽 지부장 누나에게 들었어요. 그 문제는 지니어스 차이나에서 알아서 할 거예요."

-……그렇겠군요.

지니어스 차이나에는 큰손들이 굉장히 많다.

투자로 인한 지분 확보 문제는 생길 수조차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9월 패션위크때 뵙겠습니다.

"네, 9월 패션위크 때."

-그때까지 사고는 꼭 말하고 쳐주십시오.

달칵!

항변도 못한 상태에서 전화가 끊기자 입을 뻐끔거리던 진호는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핸드폰을 내려 놓았다.

"지노, 곧 터키 국경이야. 준비해."

"아, 네."

진호는 몸을 뒤로 돌려 뒷좌석에서 국경 통과에 필요한 서류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당장 얻고 싶었던 스킬은 다 얻었으니 이제 남은 건 정말 힐링이었다.

* * *

끼룩끼룩!

쏴아아! 쏴아아!

에메랄드 빛 지중해 바다의 짠내를 듬뿍 머금은 바람이 밀려오고, 저 멀리 갈매기 울음 소리가 울리자 진호는 한숨을 탁 내쉬었다.

"뭐랄까……. 드디어 도착했네요."

"참 길었지."

"그러게요."

최종 목적지인 그리스의 산토리니.

예전에 음악 예능을 찍기 위해 왔던 그곳을 다시 찾은 진호는 변치 않는 산토리니의 바다를 보며 흐뭇이 웃었다.

그의 머릿속으로 지난 1년간의 추억이 휙휙 스쳐 지나갔다.

'참 일이 많았지.'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 일을……'

진호는 월터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동안 함께하느라 정말 수고 했어요, 월터."

"뭘. 덕분에 나도 제대로 쉬었지. 그럼 이제 업무 복귀인가?"

"그건 2주 후부터…… 아니, 일단 그 권총은 버리고요."

"그건 지노 말처럼 2주 후에. 일단은 숙소에 맥주부터 쌓아 놓자고."

"아, 그건 찬성. 가시죠."

진호와 월터는 숙소로 향했다.

그렇게 그들의 안식년 여행은 끝을 맺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