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278화 (278/424)

12권 3화

"정 실장님, 재료 소진됐어요!"

"오케이! 손님들, 매진됐습니다! 내일 다시 찾아 주세요!"

"아아."

"아……."

"내일은 어디서 무엇을 팝니까?"

사람들은 아쉬워하며 몸을 돌렸고, 팬서비스 차원으로 그들과 사진을 찍은 진호는 뒤늦게 뒷정리를 도우려 움직였다.

정 실장은 차 안으로 들어오는 진호를 보며 눈을 빛냈다.

"진호야, 여기 남은 건 우리 거지? 그렇지? 딱 3개 정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맞지?"

그는 무척이나 흥분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늘 아침 시험작이라고 진호가 만들어 준 떡갈비 샌드위치는 그가 먹은 모든 샌드위치를 통틀어 가장 맛있었기 때문이다.

진호가 '코리안 셰프'때 만든 떡갈비 샌드위치보다 더 말이다.

진호는 피식 웃으며 숯불 앞에섰다.

"죄송하지만, 아뇨."

"응? 아냐? 그럼 이건……"

또각! 또각!

정 실장은 이쪽을 향해 다가온 선글라스를 낀 노년의 여성과 마찬가지로 선글라스를 낀 두 명의 남녀를 보며 낯빛을 굳혔다.

월터마저도 눈을 가늘게 뜰 때, 진호는 담담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마담 메시어. 이진호입니다."

움찔!

몸을 굳힌 노년의 여성 캘러 메시어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LVMH의 뮤즈께서 저를 알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

"아르노 씨의 지인으로서 이 정도는 기본이죠. 그래도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긴가민가했습니다. 곁에 계신 두 분께서 보낸 시선이 아니었다면 아마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예요."

움찔!

캘러 메시어의 비서와 보디가드로 보이는 두 남녀는 몸을 크게 떨었고, 캘러 메시어는 눈을 가늘게 떴다.

'눈치가 빠르다더니……'

그래서 대비하지 못하게 근처에 주차한 차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허사였던 것 같았다.

"처음 뵙겠어요. 캘러 메시어예요. 무슈 리."

진호는 히죽 웃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제가 만들어서 말하는 게 아니라 정말 맛있는 샌드위치입니다."

"……미슐랭 스타 쉐프에 버금가는 맛이라죠? 부탁드릴게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후회는 하지 않으실 겁니다. 정 실장님, 이분들께 음료 좀 내어 드리세요."

"어?"

"음료요. 포도 주스."

"어, 으응!"

캘러 메시어의 정체를 뒤늦게 알아차리고 정신을 놨던 정 실장이 움직이자, 진호는 떡갈비 반죽을 숯불이 타오르는 그릴 위에 올렸다.

그 순간.

치이익!

포도 주스를 입에 가져가던 캘러 메시어는 순간 코끝을 스치는 향기에 눈을 빛냈다.

'베이스는 소이 소스인가?'

희미하게 코를 간질이는 매콤한 맛은 분명 마늘이었다.

'타기 쉬운 마늘을 이용했다라…… 자신이 있는 건가?'

그녀의 의문은 곧 풀렸다.

툭! 치이익!

기름이 숯불에 닿는 순간 폭발하듯 번져 가는 떡갈비의 향.

'이런.'

그녀는 의지와 상관없이 절로 고이는 침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옆에 놓인 철판 위에서 카라멜화되는 버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진호는 모두 구워진 떡갈비를, 여러 속 재료가 들어간 치아바타 빵사이에 끼워 철판 위에 올린 뒤다리미 같은 걸로 꾹 눌렀다.

치이이이익!

꼴깍!

진호는 수행원 중 보디가드로 보이는 이의 반응에 살짝 웃으며 마무리한 떡갈비 치아바타를 종이에 싸서 캘러 메시어와 그녀의 수행원들에게 넘겨주었다.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식기 전에 드셔 보세요."

"…… 잘 먹도록 하죠."

그녀는 대부호의 아내라는 체면에도 불구하고 입을 커다랗게 벌려 떡갈비 치아바타를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와삭!

'흡?'

고소한 버터가 발라져 뜨거운 불판에 꾹 눌러진 치아바타의 겉껍질이 입안에서 부셔져 내리며, 진하고 깊은 육즙을 머금은 거 칠면서도 부드러운 다진 고기가 매콤한 머스터드와 함께 이에 쩍쩍 달라붙는다.

'뭐, 이런?'

몸을 파르르 떤 그녀는 진호와 떡갈비 치아바타를 번갈아 보다가 이내 다시 떡갈비 치아바타를 베어 물었고, 그건 그녀의 수행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진호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확실히 스킬을 얻으니까 불 조절 능력이 더 세밀해졌어.'

5차 해금 조건이자 스킬 습득 조건인 '길거리에서 음식 판 돈으로 다양한 프랑스 가정식 요리 먹기'를 해금하며 스킬을 습득하며 프랑스 요리를 완벽하게 이해한 순간 불 조절이나 소스 배합, 미각등 요리에 관련된 능력들이 다시 한 차례 발전했다.

그걸 바탕으로 온 힘을 기울여 완성시킨 떡갈비 치아바타다. 이런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주스도 마셔 가면서 드세요."

끄덕.

캘러 메시어는 얼굴을 붉히며 포도 주스를 입에 가져갔다.

그리고 다시 놀랐다.

"…… 어떻게 이렇게 깔끔한 맛이 날 수 있는 거죠?"

"최대한 거르고 걸렀으니까요."

기실 오늘 판매한 요리 중 가장 손이 많이 간 건 포도 요거트 스무디였다.

포도 특유의 텁텁한 맛을 배제하기 위해 무명천에 거르고 걸러 꿀과 요거트, 치즈 등 여러 재료를 가미해 포도 본연의 맛을 극한으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그걸 알아차린 캘러 메시어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재료로 이렇게 정성을 다한 요리를 고작 3유로에 팔다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지금껏 수 많은 고급 요리를 먹어온 그녀는 장담할 수 있었다. 이 요리는 30, 아니 300유로라도 먹을 사람은 찾아서라도 먹을 거란 걸 말이다.

그런데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이었다.

캘러 매시어는 마지막 한 입을 먹으며 진한 아쉬움을 뱉어 냈다.

"정말 훌륭하군요. 잘 먹었어요."

"감사합니다, 마담."

진호는 다시 흐뭇이 웃었지만, 아직 그녀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뮤즈를 만날 때마다 이런 음식을 먹었을 아르노와 피에트로가 부러울 만큼."

"……아."

눈을 껌뻑인 진호가 풀썩 웃었다.

"그러고 보니 그 두 분보다 먼저 드신 건 마담이시군요."

생각해 보니 피에트로나 아르노에게 음식을 만들어 대접한 적은 없었다. 팀 존스는 많이 대접했지만 말이다.

캘러 메시어의 눈이 크게 떠졌다가 이내 호선을 그렸다.

"그런가요?"

"네."

'흠? 너무 좋아하는 거 아냐?'

뭐랄까, 친구들에게 자랑 할 거리가 생긴 꼬마아이 같았다.

"영광이에요, 뮤즈."

"저 역시 맛있게 드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실까요?"

"……호호호!"

'그 아르노를 몇 번 놀라게 할 만큼 화법이 범상치 않다더니!'

"따라와요. 근처에 커피를 아주 잘 내리는 가게가 있거든요."

그녀는 몸을 돌렸고, 진호는 앞치마와 조리모를 벗으며 푸드 트럭을 빠져나왔다.

"미안하지만, 두 분이서 뒷정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괜찮겠어?"

"따라가도록 하지."

"괜찮아요. 숙소에서 봐요."

"하지만……"

씩 웃은 진호는 몸을 돌렸고, 우물쭈물하던 정 실장은 월터를 보았다. 그러자 윌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푸드 트럭을 빠져나와 어딘가로 향했다.

'먼저 숙소로 돌아가라니까.'

진호는 커피숍 바깥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인기척에 한숨을 내쉬며 캘러 메시어를 바라봤다.

탁!

찻잔을 내려놓은 그녀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찾아온 이유를 알고 있나요?"

나지막한 그녀의 목소리에 공기가 무거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진호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듯 여유롭게 찻잔을 들었다.

'내가 움츠릴 이유는 없지.'

오히려 끝까지 내밀지 말았어야 할 카드를 내밀게, 그것도 그 카드가 직접 움직이게 만들 만큼 믿음직스럽지 못한 아르노 베르베우의 자식들에게 실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경쟁자들에게 다시 친분을 다지는 모습을 보일 기회임에도 전화한 통하지 않는 피에트로와 너무 차이가 났다.

"후계자 경쟁 때문이시겠……"

'음?'

찻잔을 입에 가져간 진호는 재밌다는 듯 웃는 캘러 메시어를 보며 의아해했다. 그러다 무언가를 깨닫고는 깜짝 놀랐다.

"아니었군요."

"앙트완과 델핀, 둘 모두 제가 열달 동안 배 아파 낳은 사랑스런 자식들이에요, 뮤즈. 그리고 피에 트로는 정정당당히 후계자 자격을 얻어 낸 훌륭한 사업가죠."

"아……"

그제야 캘러 메시어의 눈을 자세히 살피게 된 진호는 크게 반성했다.

웃고 있지만, 결코 웃고 있지 않는 무기질적인 눈. 그건 분명 처음 아르노와 만났을 때 그가 짓던 눈빛과 똑같았다.

온몸이 발가벗겨지는 것 같은 그 눈빛에 진호는 완전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는 후계를 다투는 아이들의 엄마이기에 앞서 황제 아르노의 부인이자, LVMH의 안주인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큰 실례를 했습니다."

진호는 몸을 일으켜 허리를 숙였다.

캘러 메시어는 눈을 빛냈다.

'사과가 빨라.'

사과라는 건 결코 쉽지가 않은 행동이다.

가진 게 많은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똑같이 어렵다.

이토록 어림에도 담담히 자신의 잘못을 받아들이고, 어떤 변명 없이 바로 사과를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아르노가 당신을 감싸고 도는게 이런 점들 때문이군요. ……흥미로워요."

"과찬이십니다."

그녀는 양 입꼬리를 잡아당겼다.

"그럼 이젠 제가 왜 뮤즈를 찾아온 것인지 알아차렸겠군요."

"예."

다시금 일어난 진호는 다시금 그녀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그건 방금 전과 다른 의미였다.

"감사합니다."

캘러 메시어는 지금 진호 본인을 앙트완 베르베우와 델핀 베르베우에게서 보호하기 위해 나선 것이었다.

그리고 너의 한계는 여기까지라고, 이 이상을 꿈꾸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의문이었다.

'왜지? 난 이분과 아무런 접점이 없는데?'

경고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보호하려는 것은 이해가 잘 되질 않았다.

캘러 메시어는 진심이 가득 담긴 진호의 뒤통수를 보며 감탄했다.

정말 알아차렸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눈치만 빠른 게 아니야. 두뇌와 판단이 비상해. ……그래, 이것이었구나!'

그녀는 방금 전의 평가를 급히 수정했다.

'아르노가 약해진 것이 아니었어.'

이곳에 올 때까지만 해도 아르노도 이제 나이가 들어 애교를 잘 떨어 줄 손자 같은 사람이 필요하게 된 줄 알았다. 그래서 이진호라는 아르노의 놀이 인형에게 나대지 말라고 경고도 할 겸, 망가지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아직 LVMH라는 그룹을 이끌 제왕으로서 완성되지 않은 두 자식들에겐 시간이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아르노가 건재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점은 피에트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하, 이 너구리 같은 인간. 그래도 남편이라고 마음을 써 줬는데, 또 속았어."

'이거였구나!'

그제야 접점이 없는 그녀가 나선 이유를 알게 된 진호는 긴장을 풀수 있었다.

"그렇죠? 아르노 씨가 그런 면이 좀 많으시죠?"

"시끄러워요, 트랩. 뮤즈도 그 늙은 너구리와 똑같아요."

그랬다. 진호는 트랩이었다. 앙트완과 델핀이 허튼 수를 쓰는 순간 그들의 입지를 날려 버릴 커다란 폭탄이었다.

피에트로에게도 그의 담력과 역량을 시험하는 함정이었다.

그걸 아르노가 허락했고, 진호는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리고 모두를 감쪽같이 속이는 중이었다.

'그 아르노와 대화가 통하다 못해 일을 함께하는 젊은이라니……'

이젠 진호의 두뇌와 정력에 한기마저 느껴질 정도라 괜히 왔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피에트로에 비해 약간 뒤처진 앙트완과 델핀 둘 모두 앞으로 진호를 상대하기가 더욱더 어려워졌으니 말이다.

그녀는 두 자식들에게 마음속으로 사과했다.

"후우, 정말 아쉽네요. 내게 뮤즈 또래의 딸이 없다는게."

"하핫. 말씀만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정치가 싫다는 거군요."

캘러 메시어는 눈을 빛냈고, 진호는 은은히 웃었다.

"아직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이루고 싶은 것도 많으니까요."

"이를테면?"

"일단은……"

진호는 캘러 메시어의 손을 슬쩍 잡으며 눈을 빛냈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며 피아니스트이신 마담을 놀라게 만들 피아노 연주를 들려 드리는 걸까요?"

캘러 메시어는 피식 웃었다.

"지금 이 늙은이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건가요?"

"마담께서 어려운 걸음을 옮긴 보람이 있도록 말이죠."

"……호홋. 이 나이에 아르노가 아닌 다른 남자에게 심장이 될 줄은 몰랐네요. 그럼 부탁할게요, 젊은 신사님."

그녀의 눈에 서리는 짙은 호감에 진호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결코 후회하지 않으실 하루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호호호호홋!"

둘은 그렇게 카페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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