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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269화 (269/424)

11권 19화

바삭!

달달한 버터 맛이 가득한 페스트리 껍질이 입안에서 부서지며, 눅진하면서도 촉촉하고 풍부한 계란 노른자의 맛이 담백하면서도 고소하게 퍼지자 절로 눈이 감기며 혀의 모든 감각이 일어났다.

진호는 남은 조각에 계피 파우더와 슈가 파우더를 톡톡 뿌려다시 입안에 털어 넣었다.

바삭바삭!

"하아-."

분명 특별한 기교는 없어 보이는데, 일반적으로 아는 에그타르트의 맛과는 약간 달랐다.

'이게 에그타르트의 기본.'

진호의 혀끝은 그 맛에 숨겨진 비밀 레시피가 무엇인지 낱낱이 파헤쳐 갔다.

"월터, 여기요."

"땡큐."

리스본을 떠나기 전 다시 들른 '파스테이스 드 벨램'이라는 무려18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에그타르트 원조 가게에서 산 에그타르트를 운전석에 앉은 월터의 입에 물려 준 진호는 창문을 내리며 한적한 유럽의 바람을 맞이했다.

파라라라라!

"아, 좋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유스런 기분. 이제야 쉬고 있다는 느낌이 팍팍 들었다.

그건 월터도 마찬가지인 듯 그의 얼굴도 느슨하게 풀려 있었다.

"지노!"

"네?"

"정말 포르투에 도착하면 와인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거지?"

"먹다 뿐이겠어요? 대서양이 훤히 보이는 최고 좋은 리조트의 넓은 풀에서 수영도 하면서 럭셔리 라이프를 즐기는 거죠."

"퍼펙트."

세계에서 명품으로 유명한 포르투 와인.

아침에 일어나 한 잔의 와인을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어두워진 밤 새까맣게 물든 정적의 대서양을 보며 와인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용병 시절에도 누려보지 못한 호사라 그런 지 액셀을 밟고 있는 월터의 발에 힘이 더 들어갔다.

'그리고 남하해서 포르투갈의 남쪽까지 모두 훑어보고 스페인으로 넘어가는 거지.'

포르투가 북쪽에 있기에 먼저 북쪽으로 향하는 것뿐이다.

"급할 것 뭐 있나-. 시간은 많은데-."

1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급할 건 없었다.

"뭐?"

"힘들면 말하라고요! 바꾸게!"

"걱정 마! 밤이 되기 전에 꼭 포르투에 도착할 거니까!"

크아아아앙!

차가 짐승처럼 울며 더욱 빠르게 쏘아졌다.

* * *

"끄으응."

역시 와인으로 취하는 건 오버였던 듯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아이보리 커튼 사이로 부셔지며 쏟아지는 햇빛 아래, 하얗고 몽실몽실한 시트를 끌어안은 채 끙끙거리던 진호는 결국 참지 못하고 몸을 일으켜 냉장고로 향했다.

해장을 해야 했다.

덜컹, 타라랑.

부딪혀 맑은 소리를 내는 유리병들 중 하나를 꺼내 든 진호는 그대로 반쯤 뽑힌 코르크 마개를 따 유리병 속 붉은 내용물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해장엔 해장술이 최고였다.

꿀꺽꿀꺽!

"크으으-!"

천연 알코올 때문인지, 아니면 시원한 목 넘김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달달한 맛 때문인지 머리가 맑아진 진호는 상쾌해진 아침을 요란하게 울리는 소리를 쫓아 고개를 돌렸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드르렁-!"

이 리조트에서 가장 큰 룸을 잡은 보람도 없게 빈 와인병을 껴안은 채 거실 소파에 누워 자고 있는 월터.

그 주변은 마치 폭격을 맞은 듯 수 많은 와인병과 빈 접시들로 어지럽혀져 있었다.

"하나, 둘, 셋……. 어이구, 어제 몇 병이나 마신 거야?"

10병까지는 기억나지만, 그 이상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고개를 저으며 대중 청소한 진호는 시계를 보곤 아차하며 재빨리 간단하게 씻곤 방을 나섰다.

그런 그가 향한 곳은 리조트의 레스토랑이었다.

"지노!"

"진!"

어젯밤, 리조트 측에서 연 파티에서 친해지게 된 여행객들이 손을 들며 반기자 진호도 손을 들어 응답해 주었다.

음식들을 가득 퍼 빈자리에 앉은 진호는 가장 먼저 'Ameijoas a Bulhao Pato'라는 조개 요리의 국물에 스푼을 가져갔다.

후룩!

"아흐으!"

시원하면서도 시큼하고 진한 해산물 국물이 목 안으로 넘어가자 절로 속이 풀렸다.

본디 이 요리는 국물이 아니라 짭짤한 조개를 하나씩 먹는 재미가 있는 애피타이저 같은 요리라 국물이 많이 없어야 했는데, 대량으로 만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육수가 많아진 것 같았다.

'간이 싱겁긴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딱 좋지.'

쌀밥 한 공기가 무척이나 생각나는 맛이었다.

후룩! 후루룩!

진호는 끊임없이 국물을 원하는 몸을 위해 연신 스푼을 움직였고, 너무 경쾌한 소리에 그 모습을 구경하게 된 주위 사람들은 군침을 삼키며 일어나 Ameijoas a Bulhao Pato가 담긴 커다란 냄비로 향했다.

속을 푸는데 정신이 팔린 진호는 그걸 알아차렸어도 무시했고, 이내 곧 사방에서 '어흐-.'속 풀리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드르륵!

고개를 살짝 든 진호는 맞은편에 앉는 사람을 보곤 피식 웃었다.

"아침부터 너무 정열적인 거 아냐? 안 추워?"

새빨간 비키니 수영복과 핫팬츠를 입은 푸른 눈의 라틴계 미녀, 레냐.

어느덧 이곳도 초가을 날씨로 접어들어 추울 텐데도, 그녀는 어젯밤 파티처럼 관심을 표하듯 건강미를 뽐냈다.

"지노, 오늘 뭐 할 거야?"

"오전에는 수영하고 잠 좀 자다가 오후에는 해변에 갈 거야."

수영을 하기엔 약간 부담이 되는 날씨라고 해도 [스킬: 나는야 자연의 왕자]가 있는 이상 큰 문제는 없었다.

"그래?"

눈을 반짝이는 그녀의 모습에 다시 실소를 터트렸던 진호는 아차하며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곤 그녀를 비롯해 어제 파티에서 전화번호를 나눈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가져온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전송하기 시작했다.

띠링띠링!

"……오!"

"와-!"

비싼 값 주고 사야 할 화보집사진 이럴까.

아님, 리조트와 와인 광고 사진이 이럴까.

그것도 아니면 술로 인해 기분 좋게 달아오른 머리가 기억한 어젯밤 즐거운 추억들을 그대로 꺼내 놓을 걸까.

"뭐야, 이거! 어제 카메라로 찍은 게 이런 작품들이었어?"

엉덩이를 들썩이는 레냐처럼 식당 안 모든 사람들이 흥분하며 사진들을 살폈다.

"지노 너 사진작가기도 했어?"

'이번에 된 거지.'

"……별거 아닌 일에도 호들갑떠는 건 라틴 사람 특유의 특징이야? 그냥 대충 찍은 거 가지고 왜 그렇게 흥분해?"

진호는 슬쩍 콧대를 세우며 말했고, 레냐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건 이쪽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고마워!"

쪽!

"난 친구들에게 자랑 하러 갈게! 이따가 풀에서 봐!"

슬리퍼를 다다닥 끌며 빠르게 사라지는 그녀를 보며 볼을 닦은 진호는 피식 웃으며 소시지를 크게 베어 물었다.

'음. 그래, 역시 아침엔 고기지.'

이건 진리였다.

찰랑 찰랑!

미지근한 담수가 귓속을 파고들며 바깥의 소리를 차단하고, 눈을 감으며 햇빛을 차단하자 마치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았다.

심장 뛰는 소리가 온몸에 울리며 긴장을 풀고, 사그락 흔들리는 물의 소리가 모든 잡 생각들을 앗아 가는 기분은 진호로 하여금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그래, 이게 힐링이지.'

활력이 절로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물속에 들어가 얼굴에 씌워진 소금기 섞인 바람을 씻어 낸 진호는 수영장 난간에 양팔을 괴며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다 짓궂게 웃으며 왼팔을 물속으로 집어넣었다.

턱!

물속에서 은밀히 다가오던 사람의 머리통은 갑자기 올라갈 길이 막히자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지노-! 전화 왔어! 아르노 베르베우야!"

"음?"

고개를 돌린 진호는 수영장 밖에서 손을 흔드는 월터를 보며 눈을 껌뻑였다.

"아르노 씨가?"

'갑자기 왜?'

올해 패션위크는 모두 끝났고, 겨울용 화보도 모두 찍어두었다. 크리스마스도 멀었다.

뽀그르르르!

'음? 아차!'

진호는 재빨리 팔을 풀었고, 머리통은 공기를 찾아 빠르게 부상했다.

"푸하-! 허억! 헉!"

퍼렇게 질려 숨을 몰아쉰 레냐는 진호를 향해 소리를 빽 질렀다.

"죽는 줄 알았잖아!"

"그러게 누가 장난치래?"

"……나온 거 봤어?"

"네 머리카락이 다리에 스쳤어. 그럼 수고해."

"응? 어디가?"

"전화가 와서. 다음에 봐."

손을 흔든 진호는 얼른 월터를 향해 헤엄을 쳤고, 남겨진 레나는 멀어지는 진호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어제부터 계속 빼네. ……정말 여자 친구가 있는 거야?"

그녀는 혀를 찼다.

한편 수영장을 나와서 핸드폰을 넘겨받은 진호는 바로 아르노 베르베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촬영 중이었나?

"전에 말했잖아요. 휴가 중이라고요. 리조트에서 수영하고 있었어요."

-흠. 그랬군.

"그런 데 무슨 일이세요? 무슨 일 생겼나요?"

-……그래, 일이라면 일이겠지. 아주 큰일.

'음?'

진호는 미간을 좁혔다.

어떤 사건이 벌어진 것 치고는 그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평온했기 때문이다.

-어제 SNS에 와인 광고 사진을 올렸더군. 풀 파티 사진도 말이야. 새로운 스폰서들인가?

왜인지 못마땅한 말투였다.

그래서 더 의아했다.

"제가 찍은 건데요?"

-…….

'뭐지?'

말을 멈춘 아르노의 동요가 수화기를 통해 전해져 왔다.

-사진도 찍을 줄 알았나?

"네, 뭐. 어쩌다 보니……"

-…….

"아르노씨?"

-……그랬군. 그러면 그 사진 때문에 자네 팬클럽이 움직인 것도 모르고 있겠어.

"……넹?"

'지니어스? 걔들이 왜? ……어, 잠깐?'

진호는 눈을 부릅떴다.

-자네가 어제 찍은 사진들 속에 등장하는 모든 와인을 만든 회사들의 서버가 터졌다는군. 예약 때문에.

오싹!

등 뒤로 식은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한중일 삼국 팬클럽 회원 수를 합하면 가볍게 200만 돌파다.

SNS 팔로워 숫자는 그보다 열배 더 많다.

-그런 데 그거 아나?

"갑자기 듣고 싶지 않아졌는데요. 아니, 몰라요. 듣고 싶지도 않고요."

무슨 사고를 쳤는지 대충 예상이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포르투 와인은 한 해 약 800만 병 정도 팔리지.

'끄헉!'

"……하아. 듣고 싶지 않다고 했잖아요."

튀어야 했다. 무조건 튀어야했다.

이대로 이 리조트에 엉덩이를 뭉개고 있다가는 이 동네 와인회사들에게 무조건 발목이 잡힌 다고 봐야 했다.

"하아. 일단 이 동네를 빠져나간 후에 다시 전화 드릴게요."

-그렇게 해. 아, 끊기 전에 하나만 결정해 줄 수 있겠나?

"뭔데요?"

-모엣 샹동을 비롯한 LVMH 주류 파트의 메인 모델이 되어 줄 것.

"네?"

순간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말.

모엣 샹동은 LVMH, 루이비통 모엣 헤네시라는 이름을 만든 회사이기 때문이었다.

정신을 차린 진호는 미간을 좁혔다.

'지금 내게 상징성을 부여하겠다는 거지? 나로 인해 생긴 구매력이 패션이 아닌 다른 시장에서도 먹힌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현재도 LVMH의 뮤즈라고 불리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패션계에서 LVMH라는 초거대그룹에서 패션 파트만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로 인터넷 백과사전에도 계열사가 다 표기 되지 않는 LVMH 그룹의 뮤즈, 아니 상징이 되라는 소리였다.

'……이건 못 먹어도 고지.'

진호는 입술을 비틀며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 * *

-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 그럼 포르투를 빠져나간 후에 다시 전화 드릴게요.

달칵!

커다란 회의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울린 진호의 목소리가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그들 중 가장 먼저 깨어난 건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한 아르노였다.

"으하하하하핫!"

아르노는 평소 그 답지 않게 커다란 웃음을 터트렸지만, 정기회의를 위해 모였다가 갑자기 품귀 현상이 발생한 포르투 와인때문에 뒤집어졌던 각 회사의 사장들은 놀라지 않고 실소를 흘렸다.

그들도 아르노처럼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역시 뮤즈로군. 반응이 신선해."

"그 어떤 모델이라도 눈이 뒤집혔을 제의였을 텐데 저렇게 심드렁하다니……. 허허, 참."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는 건가?"

"흠. 그럴 수도."

'모르긴.'

피에트로는 여유롭게 다리를 꼬았다.

'이미 모든 걸 눈치했겠지.'

자신의 젊은 친구는 그런 통찰력을 지닌 이였다.

'그렇기에 이런 반응을 보인 거다. 흥분했다는 걸 드러내지 않기 위해.'

피에트로는 입가에 미소를 달고 있는 자신의 라이벌들을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안식년을 가진 내 젊은 친구를 스튜디오에 세우려면 꽤나 골치 아플 거야. 언제 찍을 거라는 확답을 주지 않았으니까.'

거의 한계까지 후원금을 책정해야 하는 건 기본이다.

어쩌면 진호의 이동경로와 스케줄에 맞춰 광고를 찍어야 할지도 몰랐다. LVMH라는 울타리안에서 떵떵거리며 살던 그들이 일개 모델을 쫓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피에트로는 더 비릿하게 웃으며 어느새 웃음을 멈춘 아르노를 보았고, 그는 평소처럼 냉랭한 미소를 입가에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사장들을 보며 사납게 이를 드러냈다.

"뮤즈의 허락이 떨어졌으니 사정없이 짓밟도록 해."

그 짓밟히는 대상은 LVMH의 라이벌 회사가 될 터였다.

"그리고 흡수해."

"……예!"

LVMH라는 초거대 그룹이 더욱 몸집을 키우기 위해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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