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267화 (267/424)

11권 17화

6. 휴식

"커엇-! 오케이!"

쉔수쉐이의 물기 어린 외침이 가득 퍼지자 모두의 몸이 잠시 동안 멈췄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쉬움과 미련, 시원함이 가득서린 외침이 촬영장을 울리자 진호도 한숨을 내쉬며 예식용 모자 와 붉은 옷을 벗었다.

'드디어 끝났구나.'

장장 6개월의 대장정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극 중 여황제가 된 려위에와 진호가 결혼을 하며 잘 살았다는 헤피 엔딩.

아쉽다면 아쉽고, 시원하다면 시원했다.

톡톡.

"음? 아."

돌아보니 려위에가 양팔을 활짝 벌리고 있었다.

피식 웃은 진호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수고 했어."

"오빠도 수고 했어요. 끄앙-!"

기지개를 편 그녀는 온 몸을 몇겹으로 싼 결혼식용 옷을 거침없이 풀어 헤치며 링링과 밍밍에게로 달려갔다.

"링링! 밍밍!"

진호는 링링과 밍밍을 부여잡고 언니 잊으면 안 된다며 질척이는 려위에를 보고 풀썩 웃었다.

"수고 했다."

"할아버지도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이제 시상식 때나 만나겠구나."

진호는 아쉬움이 가득한 장칭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요……"

장칭도 잔뜩 아쉬움을 표했다.

"앞으로 어쩔 생각이냐?"

순간 진호의 눈이 번뜩였다.

흥분으로 빛나는 그의 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안식년을 가지고 여행을 다니려고요."

"여행?"

"네, 여행. 유럽횡단 여행!"

진호는 눈을 동그랗게 뜨는 장칭의 모습에 웃음을 크게 터트렸다.

"자, 모두 모여 주세요-!"

"가요, 할아버지."

한 스태프의 외침에 사람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마지막 촬영이라고 고맙게도 촬영장을 찾아 준 소윤발이나 런다렌 등 수 많은 이들이 수고 했다인사를 건네 왔고, 진호는 그들과 일일이 껴안으며 아쉬움을 토했다.

하지만 오늘의 이별이 영원한 이별은 아니기에 진호는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그럼 찍습니다! 치즈-!"

"치즈-!"

찰칵!

카메라를 보는 진호의 미소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 * *

중국 내 모든 스케줄을 마치면서 귀국 준비를 하던 진호에게 뜻밖의 소식이 날아들었다.

"어…… 박물관이요?"

"응, 박물관. 지니어스 차이나가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네 박물관을 만든다더라. 아니, 짓는다더라."

분명 한국말을 들었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건 말을 하는 정 실장도 마찬가지였다.

"네 작품 스틸 컷들, 앨범들, 네 레시피, 악보, 공연 영상, 네가 지니어스에게 선물한 그림 등 너와 연관된 모든 걸 전시한 박물관을 땅 사서 지을 거래. 이제 너 돌아가면 언제 다시 중국에 올지 모른다면서."

"맞게 들은 게 맞구나……"

진호는 헛웃음을 흘렸다.

'아나! 역시 중국이냐!'

팬들 스케일도 남달랐다.

"그만두라고 해도 듣지 않겠죠?"

"듣겠냐? 네 시청률 때문에 난리가 났는데?"

현재 최고 시청률 11퍼센트, 인터넷 조회수는 일일 억 단위다.

진호가 찍은 드라마는 역사를 쓰고 있었다. 덕분에 중국의 진호앓이는 더 심각해졌고, 끝내 어깨가 으쓱해진 지니어스의 큰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 자극을 받은 한국과 일본도 뭔가를 준비한다 하고."

"……안식년을 가지길 정말 잘 했구나."

이대로 활동을 이어 갔으면 박물관이 아니라 뭐가 만들어졌을지 몰랐다.

"그러게 조공 좀 받지 그랬냐. 걔들이 돈 쓸데가 없으니까 이런 일을 벌이는 거잖아."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은다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브론즈 등급 이상 팬 숫자가 이미 백만을 훌쩍 넘긴 지니어스 차이나라면 한 사람당 내야 할 돈이 무척이나 적을 테니 말이다.

"그런 데 그건 뭐야?"

정 실장은 진호의 캐리어 위 펼쳐진 수첩을 가리켰고, 진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쉬는 기간 동안 하고 싶은 버킷 리스트?"

'얻고 싶은 스킬도 포함되어 있고……. 그나저나 박물관이라……. 그 스킬들을 얻을까?'

진호는 냉큼 수첩에다가 두 개의 단어를 적었다.

그중 하나는.

"사진?"

"네. 제가 이번 여행을 하며 찍을 사진을 그 박물관에 보낼까하는데 어때요? 박물관 내용물이 좀 더 풍성해 지게."

"……나쁘지 않겠네."

"그렇죠?"

"응. 그럼 그 다음 것도 그런 의미야?"

"그럼요."

"……너나 지니어스나 아주 똑같다, 똑같아. 에휴."

"그 연예인에 그 팬인 거죠. 흐흐흐."

"시끄러. 짐 다 쌌으면 가자."

"넵!"

진호는 캐리어를 들고 일어섰다.

* * *

-진호야!

진호가 안식년을 가진다는 소문을 들은 건지 나연석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밝았다.

"안 합니다."

-왜! 안식년 가진다면서! 딱 2개월만 미루자!

"싫어요. 저 쉴 거예요."

몸과 정신이 이미 휴식 모드로 들어간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의 뒤통수를 노리기 위한 눈치 싸움을 하는 나연석식 예능을 찍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래, 쉬어. 쉬면서 찍으면 되지. 이번엔 진짜 힐링이야!

"제가 그 말을 몇 번이나 들었을까요?"

-아냐, 이번에는 진짜 믿어도 된다니까. 그냥 한곳에서 요리하고 청소하고 손님만 받으면 돼.

미션 같은 거 일절 없어!

진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분명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컨셉이었다.

'음. 욕심이 나긴 하지만……'

"죄송합니다."

정말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 끙. 어쩔 수 없지. 그럼 복귀는 내 예능으로 할 거지? 그럴 거지?

"당연하죠. 피디님이 부르시는데 무조건 해야죠."

-오케이! 약속했다! 이거 녹음된 거야!

"…… 뭘 시키려고?"

-끊을게!

뚝!

전화가 끊기자 진호는 핸드폰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아, 미안해요. 내가 너무 오래 통화했죠?"

"……."

캐주얼로 발랄하게 차려입은 이서형이 멍하니 진호를 보고 있다.

"서형 씨?"

"……아, 죄송해요. 방금 통화한 걸 들으니까 진호 씨가 연예인이 맞구나 싶어서……"

"푸흐흐, 그래요?"

이서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회식도 일찍 끝나고, 친구들과 약속도 없고, 부모님도 늦게 올거라 연락이 오는 금요일 저녁, 따뜻한 치킨과 캔 맥주를 마시며 생각 없이 웃게 만드는 나연석 예능.

당장 어제도 시청한 그 예능의 피디인 나연석이 같이하자 조르는 걸 보니 새삼 진호가 더 연예인처럼 느껴졌다.

"아, 여기네요."

'여기도 오랜만이네.'

진호는 남대문 근처 작은 카메라 매장을 보며 옅게 웃었다.

'망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사장님은 바뀌지 않으셨으려나? 아, 다행이 계시네.'

옛날처럼 카운터에 앉아 부드러운 천으로 렌즈를 닦고 있는 60대 후반의 노인. 목까지 내려온검고 하얀 머리칼을 아무렇게 묶고 있는 모습은 이런 매장의 사장이 아니라 예술가를 연상시키게 했다.

"그런 데 카메라를 왜 또 사려는 거예요? 엄청 비싼 거 가지고 있지 않아요?"

"다른 색채로 서형 씨와의 추억을 기록하려고요."

'스킬을 얻으려는 거죠.'

진짜 이유를 숨긴 진호는 질겁한 얼굴로 한 발 물러나는 서형을 보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왜 그러세요?"

"그런 말하지 마요. 올드하고, 느끼해요. 보이죠?"

이서형은 손가락이 오그라든 손을 보여주었다.

"……네."

입맛을 다신 진호는 삐졌다는 듯 툴툴거리며 안으로 들어갔고, 이서형은 그런 그를 귀엽다는 듯 보며 따라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음?"

진호의 얼굴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던 노인은 풀썩 웃었다.

"오랜만에 왔네?"

"네?"

진호는 당황했다.

'날 기억한다고? 그럴 리가.'

"전에 보내 준 건 잘 먹었고, 또 잘 쓰고 있다."

"……아."

진호는 그제야 예전에 직원들을 통해 리셋라이프를 할 동안 신세를 졌던 이들에게 감사 선물을 보냈던 것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 뚱뚱하고 세상 못생기다 못해 가출까지 한 데다, 카메라도 훔치려고 했던 생양아치 놈이 이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연예인이 됐구나."

이서형은 깜짝 놀라 진호를 보았고, 진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자, 잠깐?"

진호는 다급히 말을 이었다.

"제, 제가 언제 그랬어요! 그리고 가출한 거 아니라고 했잖아요, 아저씨!"

"……아. 그랬지, 참. 훔치려던 놈은 딴 놈이었지. 그런 데 정말 가출했던 거 아니었어?"

"했겠습니까?"

"하지만 너 그때 새벽 1시에 가게 앞을 얼쩡거렸잖아."

"……허락 맡은 거 였어요."

"어떤 부모가 중2 자식 놈을 새벽 1시까지 풀어놔?"

"그렇지 않아도 그날 등짝 터지도록 맞았습니다."

"그거야 당연한 일이고."

콧방귀를 뀐 노인은 이쪽을 보는 이서형의 초롱초롱한 눈빛에 피식 웃고 말았다.

"듣고 싶어요?"

"아, 잠깐…… 읍?"

진호의 입을 막은 이서형이 고개를 연신 끄덕이자 노인은 다시 웃었다.

"그래, 보자……. 그때가 7월이었나? 막 잠들려고 할 때 내가 문을 잠갔던가 안 잠갔던가 헛갈려서 에이 밤바람이나 쐬자 가게로 왔었죠."

그때 그는 가게 안을 노려보며 왔다 갔다 움직이면서 핸드폰을 확인하는 어린 진호를 발견하곤 좋지 않은 생각이 들어 크게 호통을 쳤다.

"그랬는데 이놈이 뭐라고 한 줄 압니까?"

"뭐라고 했는데요?"

"아저씨, 정말 죄송한데 가게 안에 좀 들여보내 주시면 안 될까요? 딱 20분만요, 였죠."

"네?"

"나도 아가씨처럼 잘못 들은 줄알았어요."

이서형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진호를 멍하니 보았다가 다시 눈을 빛내며 노인을 보았다.

"왜요?"

"나도 너무 어이가 없어 물어보니, 게임 때문이라고 합디다. 그때 요새 어린 것들 참 되바라졌구나 싶었죠."

"……와. 어릴 때 정말 막 나가셨네요. 왜 그랬어요?"

이건 진호도 할 말이 많았다.

그 일이 벌어진 건 1차 해금 조건인 '남대문 근처 사인 중고 카메라 매장 안에서 20분 동안 카메라 구경하기.'때문이었다.

대체 뭐에 쓰인 건지, 아니면 신의 농간인 건지 스토리를 십수번 다시 시작을 해도 이곳 중고 카메라 매장에 오면 맨날 새벽 1시였다.

그래서 얼마나 좌절했는지 몰랐다.

이런 사정이 있지만, 이서형에게는 결코 말할 수 없었다.

"끙. 여기 사장님께 들으신 대로에요. 당시 푹 빠져 있던 게임때문이었어요."

"와……"

"알아요. 지금은 반성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쳐다보니 말아 주세요."

진호는 고개를 돌렸고, 이서형은 다시 노인을 보았다.

"그래서요?"

"당연히 난 안 믿었고, 그래도 몇 십 년 더 산 연장자로서 정신머리 좀 고치자 하는 생각으로 가게 안에 들여서 훈계 좀 했죠."

"과자도 주시고, 음료수도 주셨죠."

진호의 추임새에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다 진호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정확히 20분이 되자 냅다 튀었지. 그 뚱뚱한 몸으로 뒤뚱뒤뚱 뛰는데 얼마나 어이없던지."

"……아하하."

"그리고 이틀 후가 되자 사과하러 오더군요. 그리고 한 일주일인가? 정도 만날 출근하다시피 이곳에 들렀죠."

"……와. 진짜 파란 만장했네요."

"아하하."

일주일간 들린 건 게임 속 스토리 때문이었다.

2차 해금 조건이 '샤인 카메라에서 중고 필름 카메라 사기'였는데, 당시 스킬 주인공은 돈이 없어서 이곳에서 알바를 하였고, 이 진행 내용을 몰랐던 진호는 숨이 멎을 만큼 절망해야 했다.

그래도 얼굴에 철판을 깔고 게임 속 시간으로 두 달, 현실 시간으로 일주일간 이곳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그래서 갑자기 무슨 일이야? 카메라 사러 온 거야?"

"사진에 취미를 붙여 볼까 해서요. 둘러볼게요."

"그래, 천천히 둘러봐."

고개를 끄덕인 진호는 이서형과 함께 진열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뒤 1차 해금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킬: 뷰 파인더 속 세상]

[때론 카메라로 바라보는 게 더 아름다울 수 있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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