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263화 (263/424)

11권 13화

스크린 야구에도 콜드 게임이 있었다.

완전히 참패를 당한 그들은 뒤이 어 나온 밥값과 술값에 뒷목을 잡고 쓰러져야 했다.

돼지고기로 통일했는데도 그랬다.

"하하! 어제 인터넷 방송 잘 봤습니다. 정말 잘 치시던데요? 그 유연하면서도 파워풀한 스윙과 매의 눈! 현역 선수라도 해도 믿을 정도였습니다!"

구단 홍보팀장이 진호의 손을 붙잡으며 다다다 말을 쏟아 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어젯밤 진호가 한 일 덕분에 오늘 시구가 떠들썩하게 다뤄졌기 때문이다.

'상하이 선화의 일을 보면?'

오늘 홈경기는 무조건 만석이라고 봐야 했다.

현재 2위 팀과 치열한 접점을 벌이고 있는 현상황에서 만석이라는 스코어는 선수들에게 굉장히 많은 힘을 불어넣어 줄 터였다.

'그리고 연예인은 자신이 시구한 팀을 응원할 수밖에 없지!'

그렇지 않다면 돈과 인지도에 의해 움직인다는 악평을 받을 테니말이다.

그렇게 억지로라도 이 구단의 팬이 된 진호가 경기 관람을 위해 구장을 찾는다? 그날은 무조건 만석이라고 봐야 했다.

그러한 계산이 서니 구단의 홍보팀장은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흐흐. 과찬이세요."

"그런 의미에서 시구가 아니라 시타 어떠십니까!"

"아뇨. 시구를 하러 왔으니 시구해야죠."

3차 해금 조건이자 스킬 습득 조건인 '프로 선수에게 투구 폼 교정받기' 때문이다.

"……하하, 그렇죠! 그럼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안내를 받아 불펜으로 향한 진호는 먼저 와 기다리고 있는 외국인 선수를 보며 살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TV로 봤을 때보다 크다.'

웬만큼 담력이 센 사람이라도 기가 죽을 수밖에 없는 덩치였다.

하지만 그에 위축될 진호가 아니었다.

"정말 이 구단의 에이스 투수가 저를 가르쳐 주시는 건가요? 와-!"

이쪽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의식한 진호는 성큼성큼 외국인 선수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이진호입니다.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진호가 스페인어로 말하자, 외국인 선수는 깜짝 놀랐다가 이내 환하게 웃었다. 마치 한국인이 먼 타국에서 한국어를 들은 듯한 반가움이 그의 얼굴에 서렸다.

"마치 우리나라 사람처럼 능숙하군요. 딸이 그렇게 죽고 못 사는 사람을 만난다기에 벼르고 있었는데, 이젠 딸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군요. 후안 카를로스입니다."

'재준이가 투수는 세상에서 제일 예민한 종족이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거짓말 같았다.

"흐흐흐. 칭찬 감사합니다. 후안씨를 보니 따님이 얼마나 예쁘게 생겼는지 알 것 같네요."

"어흠흠. 한번 보시겠습니까?"

"그럼요!"

후안이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보여 주자 진호는 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십대 초반의 소녀는 그도 아는 얼굴인 탓이었다.

"……레냐?"

"그걸 어떻게?"

"그게…… 지니어스 코리아 골드등급 팬들 중에서도 몇 없는 외국인 소녀라서……. 아, 저 때문에 레냐가 아버님의 돈을 많이 쓰게 돼서 죄송합니다."

골드 등급을 유지하기 위해 써야 할 돈은 십대 초반의 소녀가 결코 감당하기 힘든 액수였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어르고 달래 봤지만, 소용이 없어서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후안은 자신의 생각과 달리 개념이 있는 진호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하하핫! 아닙니다. 진호 씨덕분에 레냐가 봉사 활동도 많이 하고, 성적도 많이 올렸습니다. 저보다 한국어와 영어를 훨씬 잘하게 됐고요. 분명 과한 액수이긴 하지만, 이 정도 결과를 냈는데 부모로서 어찌 아깝겠습니까."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다행이긴합니다만……"

죄송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하하, 괜찮습니다. 아, 진호 씨는 어느 팔을 주로 씁니까?"

"아."

맞다. 지금은 투구 폼을 교정 받으러 온 것이었다.

"주로 쓰는 팔은 오른팔이죠. 아니, 오른팔로 할게요."

"음?"

'남자라면 강속구라지만……'

[스킬: 외계인]의 주인공이 던지는 100마일의 강속구는 왼팔로 던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제 은퇴한 야구 선수들과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눠 보니 그랬다간 사고도 보통이 아닌 사고가 터질 것 같았다.

세계 최고의 야구 시장인 메이저리그에서도 '구단을 팔아서라도 사야한다'는 비유가 있는 '좌완의 파이어볼러'.

'굉장히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지.'

그래서 진호는 왼팔보다 8마일 정도 구속이 느리지만, 변화구와 제구력이 마치 마법과 같은 오른팔을 쓰기로 했다.

어차피 직구만 던질 테니 그 제구력도 드러나지 않을 터였다.

이래서 스킬 이름이 외계인인 것이다.

'어? 잠깐. 지금 내 상태라면 오른팔도 100마일을 던질 수 있지않나?'

전신 모든 근육의 질을 바꾼 [스킬: 사상 최강의 제자]를 베이스로 [스킬: 달려라 황금발]의 하체와 [스킬: 테니스의 황태자]의 상체, 그리고 그 외 육체 관련 스킬들의 시너지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법도 했다.

'실험해 볼까?'

"흠, 알겠습니다. 그럼 자세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후안은 오버핸드나 3쿼터 등 투구법을 설명하며 가장 기본적인 투구 동작을 가르쳐 주었다.

"이렇게요?"

진호는 그를 엇비슷하게 따라하며 발을 크게 내딛었다.

"오, 몸이 무척 유연하군요. 그렇다면……"

후안은 진호의 자세를 여러모로 교정시켜 주었다.

"자세 교정은 이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역시 운동신경이 있어서 그런지 빨리 배우는군요."

꿈틀!

'아, 얻었다.'

팔꿈치와 어깨뿐만 아니라 온몸의 근육이 움직였다.

어제완 비교도 안 될 만큼 탄력있고, 강인해져 가고 있었다. 때문인지 몸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한번 저기 저 포수를 향해 던져보시죠."

"넵!"

후안이 마운드에서 내려가자 진호는 모자를 매만지며 포수의 사인을 기다렸다.

'처음은 전력으로 던져 볼까?'

몸이 뜨거워서 그런지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포수가 미트를 올리자 진호는 발을 채듯 들어 올리며 앞을 향해 크게 내딛었다. 그렇게 땅을 강하게 밟는 순간, 전신을 채찍처럼 비틀어 휘둘렀다.

"흡!"

"어?"

뻐어엉!

누군가의 얼빠진 소리와 함께 터져 버릴 듯 기괴한 소리를 낸 포수의 미트.

'오우.'

불펜에 모인 사람들은 눈을 껌뻑이며 미소를 짓고 있는 진호와 포수의 미트를 번갈아 봤다.

그 순간.

"헉?"

사람들은 급히 스피드 건을 든젊은 청년을 보았다.

그걸 눈치 채지 못할 만큼 넋을 놓은 청년은 스피드 건에 찍힌 숫자를 중얼거렸다.

"배, 백오십 킬로미터……"

"……뭐, 뭣?"

사람들은 다시 경악하며 진호를 보았지만, 진호는 역시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네.'

여러 육체 스킬의 시너지 효과가 [스킬: 외계인]을 더 외계인처럼 만들어 버렸다.

'이제 첫 구를 던진 것뿐이라 백오십이지, 몸이 완전히 풀리고 컨디션이 최상이면 백육십까지 찍겠…… 어? 잠깐.'

진호는 자신이 아주 중대한 점을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속도로 변화구를 뿌리면 어떻게 되지? 분명……'

리셋 라이프 속 [스킬: 외계인]의 주인공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 전 리그를 주름잡았던 어느 투수가 150킬로미터의 고속 슬라이더를 뿌렸고, 사람들은 그런 그를 악몽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오른팔 구속이 이 정도라면, 왼팔 구속은?'

진호는 양팔을 보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 * *

안 친 것인가, 못 친 것인가.

시구에서 폭발한 우완! 시속152km!

강력하게 꽂힌 강속구에 넋을 놓은 시타자!

역대급 시구! 개념 시구를 넘어 선수급!

이진호를 메이저리그로!

"호오?"

마른 덩치를 지닌 백인의 30대 사내가 태블릿 PC에서 재생되는 영상을 보며 눈을 빛냈다.

힘차게 박찬 발이 발레리나처럼 우아하게 뻗어지고 코끼리처럼 강하게 땅을 밟는 순간, 전신이 채찍처럼 휘둘러지며 왼손에 쥐어진 공을 레이저처럼 쏘아 냈다.

삐어엉!

터진 게 아닌 지 의심이 될 만큼 커다란 소리가 사내의 귀를 찌릿찌릿 울렸다.

"와우, 호쾌한데?"

폼이 역동적이어서 더 그렇게 느껴졌다.

그래서 더 씁쓸했다.

"진짜 하늘 참……"

"뭘 보고 있나?"

"아, 팀장님."

사내는 자신의 옆에 선 후덕한 덩치를 지닌 50대 중년인에 화들짝 놀랐다가 이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영상을 다시 처음부터 보여 주었다.

"한국에 있는 친구가 보내 준 영상인데 한번 봐 보세요."

"흠……. 호오. 외모가 할리우드최고 미남 스타보다 더 대단하군. 키는 좀 작아 보이지만 몸의 밸런스도 아주 뛰어나고…… 흠? 음?"

가만히 영상을 보던 스카우트 팀장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96마일? 저렇게 얇은 몸으로?"

"더 놀라운 점은 저 사람이 야구를 배운 지 이틀째라는 거죠. 여기 불펜 영상도 좀 보세요."

"미친!"

스카우트 팀장의 눈에 불신이 서렸다.

그러나 팀원의 눈은 진지했다. 다시 불펜 연습 영상을 본 팀장은 두 눈에 욕심을 담기 시작했다.

"스타가 되기 위해 태어난 놈이로군. 이력은?"

일반적으로 유니폼이나 팔기 위해 존재하는 프랜차이즈 스타가 아니라, 충분히 마운드를 책임질 수 있을 법한 제구력과 무브먼트를 갖추고 있었다.

그의 욕심이 더욱 짙어졌다.

"음…… 세계에서 제일 돈을 많이 버는 모델이요?"

"……모델?"

"그와 동시에 현재 빌보드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작곡가 겸작사가, 프로듀서이며, 밀리언셀러의 가수고, 아시아권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구사하는 연기자이기도 하죠. 아, 뛰어난 피아니스트임과 동시에 기타리스트이기까지 하군요."

"……약을 한 건 아닌 것 같군."

헛소리로 치부하기엔 팀원의 눈빛이 너무 맑았다.

"그럼 이놈은 외계인인가?"

"요새 그런 말이 나오고 있긴 해요. 여기 진호 리가 벌인 일이 꽤나 많거든요."

스카우트 팀장은 팀원의 말을 대충 걸러들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돈이 안 통한다는 소리지?"

"아마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선수보다 더 잘 벌 겁니다. 팔로워 숫자도 더 많습니다."

"저렇게 어려 보이는데?"

"15개의 하이패션 브랜드의 전속메인 모델입니다."

"……쯧. 아쉽군."

메이저리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돈.

그것이 처음부터 먹히지 않는 상대를 만난 건 처음인 팀장은 입맛을 다셔야 했다.

"흠. 그래도 한 번 찌르기라도 해봐. 저기 쿠바산 투수들보단 더 구단에게 이득을 안겨 줄 가능성이 보이니까."

"그렇기는 하죠. 막말로 6승만 해줘도 우리 팀을 대표하는 선수 중한 명이 될 테니까요."

알겠다는 듯 팀원은 마우스를 잡아 갔고, 팀장은 몸을 돌렸다.

그리고 이 영상을 시청한 몇몇 메이저리그 구단에서도 이와 똑같은 모습을 보였다.

* * *

한국을 비롯한 야구에 관심 있는 나라를 미약하게 흔든 진호는 다시 중국으로 향했다.

"미국……. 갈 건가?"

"푸핫! 이런 대작, 느낌도 좋은데 투자까지 아끼지 않는 작품을 두고 제가 가긴 어딜 가겠어요."

진호는 한곳에 몰려 있는 천 명이 훌쩍 넘는 엑스트라를 가리켰다.

"간다고 해도 드라마 촬영이 모두 끝나야 가겠죠."

그것도 확실하지는 않다.

아직 중국에서 이루고 싶은 일들이 제법 있었다.

"하핫! 그렇지! 내 콱 믿고 있었어!"

크게 웃으며 진호의 팔뚝을 팍팍친 쉔수쉐이는 혹여 진호의 마음이 바뀔까 재빨리 자리를 떴고, 아닌 척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도 분분이 흩어졌다.

진호는 그런 그들을 보며 볼을 긁적였다.

"내가 그렇게 의리 없는 놈으로 보였나?"

'내가 지금 버는 돈에 두 배를 준다면 한 1년 정도 뛰어 볼까 고민해 볼지도 모를 테지만.'

하지만 그 어떤 스포츠라도 한 선수에게 그만한 돈을 지불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준다고 해도 큰 자유 없이 훈련에 매진하고, 경기를 뛰는 건 성격상 맞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훈련을 받고 경기를 뛰다 보면 분명 야구에 목을 맨 다른 선수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괜히 가서 민폐 끼칠 바에는 이렇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게 훨 낫지.'

바닥에서 작은 돌을 집어 든 진호는 저 멀리 보이는 나무의 한 나뭇잎을 향해 던졌다.

슉! 팍!

'스트라이크.'

"역시 얻길 잘했네."

극 중 진호가 맡은 주인공은 링링과 밍밍을 타고 다니며 백발백중 돌팔매질로 사냥감을 잡거나 적군을 쓰러트린다.

"이 스킬을 얻으면서 자세가 무척 좋아졌어. 아니, 자연스러워졌어. 몸도 훨씬 더 탄력적으로 변했고."

액션을 깔끔하다 못해 더 과감하고 화려하게 펼칠 수 있기 됐다.

이는 분명 시청자를 더 몰입시키고, 흥분시키게 만들 터였다.

이왕이면 정말 돌팔매질로 적군을 잡았으면 더 좋은 그림이 나올테지만, 그랬다간 정말 사람을 잡을 수 있기에 진호는 액션의 질이 한층 더 좋아진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첫 방이 내일이라고 했지?"

'얼마나 재밌게 뽑혔을까?'

진호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다.

우우웅!

"어, 재준아. 무슨 일이야?"

-진호야!

너무도 급한 목소리에 진호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 무슨 일이야!"

-우리 사회인 야구단 만들자! 구단 운영비는 내가…….

"야이, 씨! 끊어!"

-야! 야!

어제도 들은 이야기.

진호는 거칠게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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