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260화 (260/424)

11권 10화

"이놈! 떨어지지 못할까!"

부웅!

은색의 날이 시퍼렇게 선 검이 얼굴을 향해 휘둘러져 왔다.

순간 상황 파악을 못해 이건 뭘까 코를 베어 오는 검을 빤히 바라보던 진호는 '칼?'이란 걸 인식하자 식겁하며 옆에 있는 려위에의 팍 밀고는 몸을 뒤로 날렸다.

"우왓!"

탓! 후웅!

놀란 고양이가 저리 뛸까.

인간을 벗어난 듯 가볍고 날렵한 몸놀림을 멍하니 응시했던 사람들은 수레의 난간 위 그 좁은 틈에 소리 없이 착지한 진호의 모습을 보곤 넋을 놓았다.

감독과 스태프마저 모두 말이다.

"아휴우. 놀라라. ……뭡니까 갑자기! 아니, 그보다 나으리는 누구신데요!"

가슴을 쓸어내린 진호의 억울한 외침이 촬영장을 울렸다.

"……커엇! 오케이-! 무조건 오케이!"

"우와아아악!"

"뭐, 뭐야, 저거! 어떻게 저 틈사이에 착지하는 건데!"

"완전 고양이잖아! 누가 가서 츄르 좀 줘 봐!"

"와, 저게 소문으로만 무성하던 이진호의 액션 연기……"

웬만해선 촬영 중 소리조차 내지 않는 스태프들마저 뒤집어졌다. 그들의 호들갑에 얼굴을 살짝 붉힌 진호는 머리를 긁으며 수레에서 내려왔다.

'이야, 이게 되네.'

혹시나 안 될 때를 대비해 허리를 비틀어 다른 곳에 착지할 생각과 동시에 낙법도 준비를 하고 있던 진호는 굉장히 뿌듯할 수밖에 없었다.

후다닥! 와락!

"윽!"

"정말 와이어가 필요 없구만! 필요 없었어! 천년의 노래와 The J 때 왜 그렇게 액션이 깔끔하나 했더니 노 와이어 액션이었던 거야!"

쉔수쉐이는 '자넨 이제부터 내 첫번째 보물!'이라며 진호의 등을 퍽퍽 쳤다.

'억! 억!'

"하하. 누구나 하는 걸로 칭찬을 들으니까 좀 부끄럽네요."

"……."

순간 쉔수쉐이뿐만 아니라 촬영장에 있는 모든 이들이 얼어붙었고, 겸양을 떨었던 진호는 너무 격한 반응에 당황하고 말았다.

"……누가?"

"아, 아니, 싱룽 씨나 얀지단 씨만이 아니라도……"

중국에는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로 위험하고 화려한 액션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어느 동영상에서는 무협 영화에 출연하는 듯 옛 양식의 옷을 입은 여배우가 노 와이어로 재주를 넘으며 화려하게 검을 휘두르기도 했다.

이런 진호의 설명에 웬수쉐이와 사람들은 더 어이없어했다.

"그 싱룽이 얼마나 연습해야 저 난간 위에 설 수 있을 것 같나. 우연에 우연이 맞아떨어져야 설수 있을걸?"

"……아, 하하하."

사람들은 진호를 보며 흐뭇이 웃었다.

스태프 음식도 책임질 만큼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 이렇게 겸손할줄도 알았다.

"액션을 어떻게 하고 싶나! 말만 해! 내가 다 들어줄 테니까!"

진호라면 쉔수쉐이 그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액션 그 이상을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오! 정말요? 그럼 제가 여기 수레 위에서……"

"오오. 그렇지. 아……"

금군위사이자, 8공주를 짝사랑하는 배우와 무술 감독과 밍밍, 링링도 함께 액션을 다시 짜 갔다.

넘어져 손바닥이 까지면서 금군위사로 하여금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한 려위에는 그런 진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하지! 잠시 쉬었다 가겠습니다!"

연습을 위해 약간의 쉬어 가는 시간을 가지기로 하자, 화려한 금색 갑옷을 입은 장칭과 평상복 차림의 런다렌, 소윤발이 마당 안으로 들어왔다.

짝짝짝짝짝!

"……할아버지! 다랜 아저씨! 룬파 아저씨!"

진호는 후다닥 달려가 장칭을 껴안았다.

"언제들 오신 거예요?"

금군위사와 드잡이한 진호와 밍멍, 링링이 려위에와 하녀 링링을 데리고 도망칠 때 나타나는 장칭.

그때서야 려위에의 진정한 정체가 밝혀진다. 철없는 8공주 때문에 한 나라의 대장군인 그까지 움직이게 된다.

'가만 보면 쟤가 가장 문제지. 공주면 공주답게, 어?'

8공주가 황궁에서 도망치지만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다.

"방금 전에야 분장을 마치게 됐구나."

"난 조카의 첫 액션 연기를 보러왔지."

"나도."

진호는 감동했다. 런다렌과 소윤발, 너무도 바쁜 대배우들이 인연이라는 이유 하나로 이렇게 찾아와 준 것이었다.

"그보다 액션이 정말 대단하던걸?"

장칭의 말에 진호는 머리를 긁적였다.

"흐흐. 보셨어요?"

"봤다 뿐일까. 전성기 싱룽이나 겨우 따라 할 수 있을까 한 연기 더구나. 링링을 따라 한 거니?"

마치 짐승이 땅바닥에 네발을 모아 앉은 것처럼 수레위에 착지했던 모습. 장칭은 그 순간 진호가 일으켰다 지운 사나운 기세에 호랑이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알아차리셨네요."

진호는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고, 셋은 경의를 두 눈에 담았다.

세계에서 중국 액션 배우 하면 브루스 장 다음으로 떠올리는 맨손 액션의 대가 싱룽.

그의 화려하고도 경쾌하며 가벼운 액션은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하지만, 진호의 액션 연기는 그보다 한 수위에 있었다.

'별다른 연습도 없이 단 한 번만에, 아니 몇 번이든 성공시킬 수 있는 저 액션 연기를 말이야.'

싱룽이 스턴트 하는 모습을 보자면 저러다 죽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위태로운 상황이 NG로 펼쳐 지지만, 진호를 보자면 이상하게도 그런 걱정이 들지 않았다.

'세계를 울릴 전설과 함께하는 것일지도……'

"이거 질 수 없구나."

"네?"

의아했던 진호는 진지함으로 가득한 장칭의 눈동자에 낯빛을 굳혔다. 장칭뿐만 아니라 런다렌과 소윤발의 표정도 진지하다.

'진심이시다! 와, 이거?'

중국의 모든 배우와 국민이 인정하는 대배우들이 진심이 되었다.

마른침이 절로 삼켜졌다. 그러나 질 수는 없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에요, 할아버지."

"……흐허허허헛! 알았다, 잠시 뒤에 보자구나."

"멋진 연기 기대할게, 조카!"

"이후 상황을 얼른 보고 싶으니 조금만 쉬어!"

"하하, 옙!"

멀어지는 셋을 빤히 바라보다 아차한 진호는 링링과 밍밍을 보며 금군위사를 가리켰다.

"아까도 들었듯이 내가 진짜로 공격받는 게 아니니까 절대 저기 저 아저씨를 때리거나 물면 안돼. 알았지?"

"크릉?"

"어? 진호 씨?"

금군위사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아니라고. 방금 뭘 들은 거야? 아, 너희랑 나랑 노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

"지, 진호 씨?"

"크릉? 킁!"

진호는 순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질투를 왜 하는데? 나하고 놀 수 있는 게 너뿐이면, 밍밍도 같이 놀면 안 되겠네?"

"꾸엉?"

꾸벅꾸벅 졸다가 화들짝 놀란 밍밍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이내 링링을 노려보며 일어서 앞발을 흔들었다.

"넌 또 뭘 덤벼야! 혼날래!"

"크르르르."

"반응하지 마! 너희들 싸우면 다신 안 놀아 준다!"

"……크응."

"푸후우."

"그래, 그래. 친구끼리 사이 좋게 지내야지."

"진호 씨-!"

"하이, 액션-!"

따악!

슬레이트가 쳐지며 본격적인 드라마 촬영이 시작되었다.

* * *

시골 세트장에서의 촬영은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는 수도 세트장으로 향하면 되었다.

"완성."

이젤에 올려진 풍경화에 마지막 붓질을 한 진호는 자신이 만든 작품을 보며 흐뭇해했다.

"크흐. 잘 나왔다, 잘 나왔어."

"어머, 이게 그거에요? 이제 테마파크가 될 이곳 세트장에 전시해두려는 그림이? 와, 멋지다."

보는 순간 지금 이 자연의 풍광처럼 가슴이 시원해지고, 그림 속작은 마을을 보자니 가슴이 절로 따뜻해졌다.

진호는 다가온 려위에를 보며 놀라워 했다.

"먼저 이동하지 않은 거예요?"

"어차피 촬영은 내일이잖아요."

"……하긴."

그래서 진호도 이곳에서 그림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진호는 도구들을 정리해 밍밍에게 채워 둔 후에, 촬영에서 쓰기 위해 커스텀으로 만든 안장에 고정시켰다.

고개를 앞발에 파묻고 자고 있던 밍밍이 꾸어엉 하품을 하며 몸을 일으키다가 옆에서 자고 있던 링링을 툭 쳤다.

"크헝."

"……정말 언제 봐도 신기해요."

옛 양식의 옷을 입은 진호와 강아지처럼 진호의 양옆에 서는 밍멍과 링링의 모습은 무협 소설에서나 읽었을 법한 장면을 연상케했다.

"원래 부터 동물 모델로 쓸만큼 잘 조련된 애들이라서 사람을 잘따르는 것뿐이죠."

"그런 것치고는 다른 사람들에겐 까칠하던걸요? 전 처음에 물리는 줄 알았어요."

갑자기 나타나 놀라게 하는 장면.

사전에 합의가 됐어도 려위에는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하하. 걱정 마세요. 얘들은 사람 공격 안 해요."

촬영할 때를 제외하면 좁디좁은 우리 속에서 갇혀 스트레스를 받던 예전이라면 혹시 모르지만 말이다.

현재는 진호가 있는 힘껏 놀아주며 스트레스를 모두 풀어 준 것도 있지만, 진호와 두 동물의 케미를 본 미영이 디올 차이나 명의로 구매를 해 좋은 사육사를 붙여 알뜰살뜰 보살펴서 더더욱 그럴 일은 없었다.

이제 밍밍과 링링, 아니 기존 동물 사육원에 있던 모든 동물과 사육원은 디올 차이나의 소유였다.

'중국은 동물 모델의 쓰임이 많으니 유지비 걱정도 없고.'

현재 세계 패션의 흐름 때문이라도 더더욱 그렇다.

동물 모델 품귀 현상마저 일어나는 상황이라서 한동안은 유지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거기다 진호 본인도 그 유지비의 반절을 보탤 예정이었다.

"너희들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됐으니 좋고."

이번 드라마 때문이라도 스타가 될 링링과 밍밍.

이 둘을 엎드리기도 힘든 좁은 우리에 넣고 키운 전 주인이라면 둘의 처지는 뻔했다. 만날 찾아와 사진 찍고 만지고 하는 관람객 때문에 스트레스로 죽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디올 차이나 소유로 절대 일반인 관람이 허락되지 않게 되었다.

"크릉?"

"아무것도 아냐. 가자."

링링의 머리를 툭툭 두들긴 진호는 아차하며 왜인지 우물쭈물거리는 려위에를 보았다.

"밍밍 타 보실래요?"

"진짜요? 저, 정말 그래도 돼요?"

"그럼요."

진호는 대화를 하면서 계속 힐끔힐끔 밍밍을 응시하는 그녀의 모습을 발견하고서야 그녀가 왜 이 시간까지 남아 있었는지 알아차릴수 있었다.

'아오, 이 도끼병!'

정말 애써 웃은 진호는 밍밍을 향해 입을 열었다.

"밍밍, 부탁해도 될까?"

"꾸엉!"

"역시 착한 밍밍! 이따가 간식으로 소시지 하나 더 줄게!"

"꾸엉? 꾸어어어엉!"

눈이 동그랗게 떠진 밍밍은 재빨리 엎드리며 려위에를 향해 고갯짓을 했고, 그녀는 잠시 넋을 놓았다가 풋 웃고 말았다.

"소시지가 정말 맛있나 봐요."

진호는 슬그미니 뒤로 숨기는 그녀의 손을 모른 척해줬다.

"제가 얘들만을 위해 만들었다는것도 있지만, 얘들 식탐이……"

진호는 말을 하다 말고 어느새곁으로 다가온 링링의 머리를 재빨리 눌렀다.

"크헝!"

"너 욕심 부리면 앞으로 소시지 없다."

"……끄으응! 크허엉!"

"꾸어어!"

"링링! 시비 걸지 마! 밍밍이, 너도 도발하지 말고!"

"무, 무슨 일인 거예요?"

"……하아. 그냥 보신 것처럼 링링이 시비 걸고, 밍밍이 되받아친거예요."

'링링은 이 돼지야! 라고 외쳤고, 밍밍은 그래도 난 소시지 하나 더 먹어, 부럽지? 라고 놀렸죠.'

혹여 이상하게 볼까 차마 하지 못한 말이었다.

다시 멍해졌던 려위에는 웃음을 터트렸다.

"앞으로 잘 부탁해. 밍밍, 링링."

"꾸엉."

"크헝."

* * *

이후 촬영은 문제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쉔수쉐이는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는 진호의 액션에 무조건 오케이를 외치기 바빴고, 이에 다른 배우들도 동화되어 액션이 더 화려해지고 날카로워졌다.

연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진호는 대배우들의 압박에 지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해 연기했고, 그에 다른 배우들도 진호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짜낼 수밖에 없었다.

한 장면, 한 장면 모두가 버릴것 없이 미친 퀄리티로 뽑혀 갔다.

-풋! 정말입니까?

"어휴. 네가 실제로 보지 않았으니까 웃을 수 있는 거야. 왜 샤오룬파 아저씨, 샤오룬파 아저씨 하는지 알겠더라."

극 중 8공주를 구해 준 보답으로 황제의 부름을 받은 진호는 화려한 금의를 입은 채용상에 앉아가만히 쳐다보는 소윤발을 보고 숨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무심한 그 눈 속에는 권태, 흥미 등 수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진짜 실제 황제 같으시더라."

-와, 진짜 재밌겠네요. 어서 방영했으면 좋겠어요.

"이제 5화 분량 정도 찍었으니까 앞으로 10화 분량만 더 찍으면 방영 시작될 거야. 아, 그런데 너도 드라마 봐?"

마음을 고쳐먹고 바둑을 진심으로 대하게 된 저우양이다.

-보죠! 하루 종일 기보만 보고 있으면 머리 아픕니다. 그럴 땐 예능이나 드라마가 최고예요!

"하핫. 그래?"

-그런데 좀 아쉽네요.

"응? 뭐가?"

-이번에도 형님과 대회에서 겨루지 못하게 됐잖아요.

"야. 아직 초단도 못 땄는데, 국제대회는 무슨 ……"

-그래도…….

"됐어, 됐어."

손을 저은 진호는 저우양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통화를 종료했다. 그런 그는 따뜻한 핸드폰을 곧장 주머니에 집어넣지 않고 만지작거리며 입술을 달싹였다.

"바둑이라……"

이번 드라마 촬영이 모두 끝나면 휴식을 가질 생각이었다.

모델 활동을 제외하면 모든 연예활동을 중단한 채 새로운 스킬을 얻을 예정이었다.

"……흠. 해 볼까?"

치열한 두뇌 싸움과 단 한 번의 수로 승패가 갈리는 날카로운 진검 승부.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그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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