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259화 (259/424)

11권 9화

'별에서 찾아온 당신'에 이은 '프로듀스 88', 그리고 '코리안 쉐프' 로 이어지는 3연타는 진호란 존재를 중국인들에게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런 상황에서 '황제의 딸'을 만든 웬수쉐이 감독의 신작으로, 장칭과 소윤발, 런다렌 등 걸출한 연기자들이 다수 출연하며 무려 6억위안이 투자되는 대작에서 진호가 주인공을 맡았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그에 중국와 한국 연예계는 뒤집어질 수밖에 없었고, 연예부 기자들은 한시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가가가각!

바닥에 깔린 자갈들을 뭉개며 조용한 산길을 달리는 승합차 안.

정장을 입은 여성 리포터가 질문지를 보며 입을 열었다.

"왜 하필이면 쉔수쉐이 감독일까요?"

쉔수쉐이. 한때 최고의 감독 자리까지 올랐었으나, 지금은 분명 저물어 가는 별이다.

"지금 그게 중요해? 외국 연예인의 중국 내 활동 제한 완화 정책이 시행된 후, 첫 번째 케이스로 중국 전역을 돌며 콘서트를 열어놓고 귀신처럼 사라졌던 그를 드디어 찾았다는 게 중요하지?"

그것도 총 관객 숫자가 130만 명을 넘긴 엄청난 콘서트였다.

"……확실히. 이런 곳에 숨어 있었을 줄이야."

투어 콘서트를 끝내고 드라마 제작 발표회를 마친 순간 진호는 정말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제 최종 경선만 남겨 놓은 '프로듀스 88'이 아니었다면 정말 찾아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연예부 기자들은 거기서부터 미행을 시작했고, 결국 근처 작은 도시의 시장에서 엄청난 양의 식재료를 사는 진호를 봤다는 목격담을 입수할 수 있었다.

'그것도 우리 방송국이 가장 먼저!'

다른 언론사나 방송국들은 못해도 1시간 뒤에나 도착할 터. 그정도면 특종을 내보내기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와. 그렇게 잘생긴 사람이 요리까지 잘하고 성실하다니. 완전히……"

일등 신랑감이다.

돈도 상상을 불허할 만큼 많이번다.

여성 리포터의 눈이 몽롱하게 풀려 갔다.

"꿈 깨. 그 사람 만나는 사람 있어."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나요?"

"혹여 그렇다고 해도 넌 아닐걸."

"내가 왜요!"

"……정말 몰라서 묻는 건 아니지?"

안다. 당장 진호가 동료로 만나는 여성 모델들만 해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셀럽들이었다.

"알지만! 원래 지인에서 누나 되고, 누나에서 와이프 되는 거거든요! 일단 메신저 친구만 되면 돼요! 정말 못됐어!"

사내는 방방 뛰는 여성 리포터를 보다 가 고개를 저었다.

'이진호 심기 거슬러서 클레임이라도 들어오면 자기 목이 위험하다는 것 정도는 알 테니까.'

눈앞의 리포터는 그 정돈 구분할줄 아는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조금 더 달리다 길이 끝나자 차를 세운 사내는 눈앞에 나타난 커다란 조립식 건물을 보며 눈을 빛냈다.

둘은 재빨리 차에서 내렸다.

"나 괜찮아요?"

어느새 카메라를 어깨에 올린 채 엄지를 치켜들었던 사내는 수신호로 카운트를 했다.

이윽고 주먹이 쥐어지자 리포터는 재빨리 마이크를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베이징 TV의 리포터 류시쉰입니다. 지금 제가 나와 있는 이곳은……"

그녀는 이곳이 어디인지,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 빠르게 말했다.

"그럼 이진호 배우를 만나러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자박자박!

"차합!"

"흐아압!"

"으랏차!"

그녀가 건물에 가까워질수록 커져가는 기합 소리.

그 박력 가득한 외침에 땀으로 젖은 진호를 떠올린 리포터의 얼굴이 발개져 가기 시작했다.

'이진호를 따라다닌다는 홈마들도 거의 못 봤다는 땀 흘리는 모습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건가!'

오직 영상으로만 봤던 진호의 땀흘리는 섹시한 모습.

리포터는 콩닥콩닥 뛰는 심장을 애써 부여잡으며 발을 뗐다.

그 순간 건물 밖으로 누군가 나왔다가 둘을 발견하고 놀랐다.

"어?"

"안녕하세요! 베이징 TV의……"

"아, 오늘 인터뷰하러 오신다는 그분들이구나. 그런데 왜 여기로 오셨어요?"

"……네?"

"통보 안 갔어요? 진호 씨 지금 여기 없는데?"

"그게 무슨 ……"

지이잉!

이 우렁찬 기합 소리를 뚫고 들려온 진동 소리에 리포터는 반사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내를 보았다.

사내는 재빨리 바지에 든 핸드폰을 꺼내 들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푸핫. 여기가 너무 오지라서 이제야 터졌나 보네요. 진호 씨 지금 저기 사육원에 가 있어요. 저쪽에 난 길로 가 보세요. 방금 전에 갔으니까 아마 걸음을 재촉하면 진귀한 장면 볼 수 있을 거예요."

리포터와 사내의 눈이 번쩍 떠졌다.

"감사합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류웨이! 장칭 대사부님 밑에서 수학하고 있는 배우입니다! 앞으로 예쁘게 봐주세요!"

"어머, 그러셨군요. 분명 크게 뜨실 거예요. 협조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걸어서는 꽤 가야 하니까 차 타고 가세요!"

리포터와 사내는 옮기려던 발을 돌려 차로 뛰었다.

진귀한 장면이라는 단어가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만들었다.

그렇게 차를 몰아 사육원에 도착한 둘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곤 말을 잃었다.

크허엉!

"으랏챠!"

진귀한 장면이 맞긴 맞았다.

집채만 한 호랑이가 달려들고, 진호가 그 호랑이를 끌어안아 넘어트리고, 아니 같이 뒹굴고 있었다.

그것도 곰도 함께 말이다.

"크아앙!"

"크헝형!"

……꿀꺽!

"누, 누나가 와이프 된다며? 해봐. 아니, 뭐해? 가서 인터뷰해야지. 저 좋은 그림 놓칠 거야?"

"진짜 나한테 왜 그러는데요!"

'저길 어떻게 들어가라고!'

그녀는 울고 싶었다.

* * *

잠실의 주경기장에 마련된 특설무대. 객석을 꽉 채운 한중일 삼국의 '프로듀스 88' 팬들이 드디어 정해진 최후의 11인을 향해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펑펑!

터지는 폭죽 속에서 마이크를 잡은 최후의 11인이 땀과 눈물을 흘리며 우승 소감을 말하였다.

"정말 감사하고……"

"제, 제가 이, 이렇게 뽑히게 될 줄은……"

그 스스로조차 무어라 말하는지 인식하지 못하는 소감.

"울지 마!"

"울지 마!"

관객들은 흐뭇이 웃으며 울지 마를 외쳤고, 그건 심사위원들과 멘토들, 진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진호 멘토님-!"

모두의 시선이 진호를 찾아 움직였고, 진호의 놀란 표정이 카메라에 잡혔다.

"정말 감사했고, 또 사랑합니다-!"

"멘토님이 아니었으면 저흰 이 자리에 설 수 없었을 거예요!"

"사랑해요-!"

눈물이 범벅된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하트를 보내는 그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순간 가슴이 울렁인 진호는 애써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렸다.

'이게 딸을 시집보내는 심정인가?'

무척이나 시원섭섭했다.

사회자석에 선 진호는 표정을 수습하며 마이크를 잡았다.

"누군가에게는 길었고, 누군가에게는 짧았던 3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카메라가 다시 진호를 비추고, 백스테이지에서 '프로듀스 88'에 참가했던 88인이 뛰쳐나와 대형을 이뤘다.

함성은 더욱 커졌다.

"여러분과 함께 울고 웃었던 88인 전원의 축하 무대를 만나겠습니다! 마지막까지 함께 즐겨 주십시오! 잇츠 쇼 타임-!"

진호는 무대를 가리켰고, 카메라가 움직였다.

뺨! 빠밤!

강렬한 비트 소리에 안무를 시작한 아이들의 대견한 모습에 진호는 마이크를 끄며 흐뭇이 웃었다.

'얻었다.'

그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 * *

호랑이와 곰은 분명 맹수다.

동물원에서도 그 우리에 들어갈수 없도록 철저히 통제를 하고, 숙련된 사육사만 접근해야 할 만큼 위험한 맹수다.

산에서 만나면 도주보다 는 죽음부터 생각해야 하는 맹수 중 맹수.

그런 맹수가 '앉아, 손, 빵야'에 맞춰 재롱을 부리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주기 충분했다.

그리고 개랑이 링링과 애교곰 밍밍은 팬을 다수 확보하게 되었다.

"링링, 물구나무!"

"킁!"

"밍밍, 일어서!"

"푸후."

"링링! 밍밍! 물구나무! 박수! 일어서! ……끄아! 내 말은 왜 안 듣는 건데!"

"……너 그러다 물린다."

"헉!"

류웨이뿐만 아니라 먹을 걸 손에 들고 쮸쮸 하던 다른 사람들도 몇발 물러났다. 그들은 옛 중국 양식의 허름한 옷을 입고, 치렁치렁한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진호를 다급히 보았다.

"지, 진짜 물어요?"

"뭐…… 입마개를 해서 물리진 않아도 한 대 정도는 맞겠지?"

'입마개가 없더라도 내가 옆에 있으니까 그 정도로 끝날 테지만.'

사람들은 링링과 밍밍의 큼직한 앞발을 보곤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입장 바꿔 생각해 봐. 네가 좀 쉬려는데 미운 조카가 다가와서 놀아 달라고 계속 건드려. 짜증이 나겠어, 안 나겠어?"

"짜증만 나겠어요? 그냥 엉덩이를 걷어차…… 아."

"그런 거야. 재들도 꺼져하며 한 대 치는 것뿐이지만, 우리 같은 인간들은 그 한 방에……"

말을 줄여서 더 무서웠다. 사람들은 밍밍과 링링 앞에 먹을 것만 놔두고는 슬그미니 흩어졌다.

그건 류웨이도 마찬가지였다.

진호는 그런 그의 뒷덜미를 잡았다.

"그런데 너 나한테 진호 씨고 했더라?"

"……방송이었잖아요. 흐흐흐."

진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정말이야?"

"당연하죠! 저 못 믿어요?"

"흐응……"

아닌 것 같지만, 진호는 믿어 주기로 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너 요새 소품팀과 연출팀 따라다닌다며? 아예 그쪽으로 가려는 거야?"

소품을 만들고 무대를 설치하는데 감각이 있는 류웨이다.

당시 진호가 무대 연출을 도와준뒤로도 계속 무대를 꾸미며 장칭극단을 다시 반석 위에 올려놓은 사람이 장칭 극단의 막내이자, 눈앞의 류웨이였다.

"네. 그 편이 더 적성에 맞고요. 그렇다고 해서 연기를 포기할 생각은 아니에요. 아니, 최선을 다해 연기할 생각입니다."

'형처럼.'

진호는 드라마나 영화를 찍을 때 소품 배치나 배우 동선에 대해 스태프들과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또 그 의견의 대부분이 반영된다.

이는 [스킬: 유리가면]의 무대 연출 능력 덕분이지만, 그걸 모르는 류웨이로서는 자신이 걷고 싶은 궁극적인 길을 걷는 사람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려면 이번 작품에서……'

진호의 모든 것을 훔쳐야 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거리를 둔것이었다.

진호는 류웨이의 눈이 타오르자 옅게 웃었다.

"그래. 배우라면 연기부터 생각해야지."

"진호 씨-!"

"아, 네! 나 부르네. 간다. 좀 이따가 촬영 잘하자. 예, 지금 가요!"

류웨이는 빠르게 멀어지는 진호를 보며 주먹을 꾹 쥐었다.

"꼭!"

그렇게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지는 류웨이를 뒤로 하고 링링, 밍밍과 함께 웬수쉐이에게로 향한 진호는 한적한 시골 풍경을 보며 감탄했다.

정말 옛 양식 그대로 지어진 집들.

이곳은 이번 드라마를 위해 따로 만든 세트장이었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면 순간 옛날로 타임워프를 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정교했다.

주위에 산들도 많아서 더 그렇게 느껴졌다.

"돈의 힘이 진짜 대단하구나."

드라마 분량으로는 정말 많아야 3화 분량만 나올 거라 굳이 이렇게까지 지을 필요는 없었지만, 분명 랜드마크가 될 거라며 투자자들이 밀어붙였다.

"여기가 이 정도인데,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수도 세트장은 얼마나 대단할까? 아, 거긴 대여라고 했지, 참."

워낙 시대극을 많이 찍는 중국이라서 황궁이나 수도 같은 세트장은 몇 곳 있다고 했다.

투자자들은 이것마저 짓자고 했지만, 쉔수쉐이 감독이 반대했다.

"그나저나……"

진호는 갑자기 입술을 달싹였다.

'이걸 말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밍밍, 링링과 레슬링을 하며 놀다보니 주인공의 설정에서 오류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밍밍과 링링 때문에 산속에서 사는 약초꾼 주인공이란 설정 속에서 말이다.

"……에이, 말하자."

대본이 조금 달라지겠지만, 그래도 드라마의 완성도를 위해선 말을 해야 했다.

진호는 걸음을 조금 더 빨리 해 쉔수쉐이 앞에 섰다.

스태프들에게 이것저것 지시하던 쉔수쉐이가 무슨 일인지 미안하다는 듯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왔어?"

"네. 무슨 일이세요? 아직 준비되려면 먼 것 같은데?"

제일 처음 찍는 신은 진호의 집에 온 려위에와 그녀의 하녀 링링이 오후에 깨어나는 장면이다.

"음……. 하아. 일단 미안하다고 할게. 주인공 캐릭터 설정에 오류가 있더라고. 그래서 좀 바꿀까 하는데……"

'어?'

진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혹시 그거예요? 링링, 밍밍과 함께 살아온 주인공이다 보니 운동 신경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이번엔 쉔수쉐이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자네도 그렇게 생각한 건가?"

"네. 얘들과 레슬링을 하다 보니까 의구심이 들더라고요. 이런 애들과 만날 엎치락뒤치락하며 저런 산들을 타는데 운동 신경이 없을 수가 있을까 하는."

그래서 원래 설정 속에서 진호몫의 액션신은 밍밍과 링링이 다할 예정이었다.

진호는 두 동물에게 명령을 내리거나 타고 달리며 장애물을 넘거나 피하는 등만 액션만 할 뿐이었다.

"……허허허허헛!"

웬수쉐이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도 진호가 두 동물과 노는 모습을 보고 그런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네 대본과 액션의 합을 다시 맞춰야 할 것 같은데, 괜찮겠나?"

"저는 괜찮아요. 아니, 오히려 주인공의 매력적인 측면을 생각하면 그 편이 훨씬 낫죠."

동물을 사랑하며 평범하게 약초를 캐다 팔며 사는 온화하고 미소가 예쁜 시골청년이 알고 보니 짐승 같은 면모를 숨기고 있었다는 설정.

여자들에겐 무조건 먹힐 수밖에 없었다.

"오오! 그럼 그렇게 하지! 그래서 그런데 8공주를 찾아온 금군 위사가 들어오자마자 공주 곁에 있는 자네를 보고 비키라며 바로 칼을 휘두르잖나."

"그때 저는 뒤로 훌쩍 뛰며 피하는 거죠. 마치 고양이처럼. 그리고 집 뒤에 있던 링링과 밍밍의 등장해 금군을 위협하고."

"그렇지! 그때 최대한 역동적이려면 와이어를 써서……"

진호는 신이 나 말하는 쉔수쉐이를 향해 손을 들었다.

"아뇨, 괜찮아요. 와이어는 없어도 되요."

"……응?"

"고양이 움직임 정도는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으니까."

동물이든, 무생물이든, 인간이든 연기라는 카테고리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는 [스킬: 유리가면]과 [스킬: 사상 최강의 제자]를 비롯한 육체 관련 스킬들이라면 고양이, 아니 호랑이의 움직임이라도 표현할 수 있었다.

호랑이 링링과 엎치락뒤치락하며 호랑이에 대한 모든 것을 알게 된 지금이라면 더욱더 말이다.

진호는 멍해지는 쉔수쉐이를 보며 히죽 웃었다.

'아, 이거 재밌겠다.'

맨손 액션 연기의 끝을 여기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팍팍 들었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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