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258화 (258/424)

11권 8화

3. 동물과 함께

휘유우. 삐유삐유. 아와아아아!

시원한 바람 소리가 새소리와 함께 불어오고, 둥둥 북소리에 맞춘 원주민의 경쾌한 노랫소리가 울리는 런웨이 쇼.

마치 얼룩말을 연상시키는 패턴이 페인팅된 하얀색 시스루 반팔과 반바지를 입은 채 뮤지컬 켓츠처럼 눈매를 날카롭게 분장하고 짐승 수염을 그린 진호가 열대 우림을 연상시키는 무대를 걷는다.

사람들은 물론이고, 팀 존스마저 진호가 백 스테이지로 들어갈 때까지 시선을 떼지 못했다.

"……퍼펙트."

쇼에 출품한 디자이너로서 단 한 순간도 쇼와 옷에서 눈을 떼면 안되는데, 오늘만큼은 진호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진호에게 영감을 받아 만든 의상.

진호가 만든 이 음악들에 맞춰 만든 무대.

그리고 도도한 사바나의 짐승으로서 관객들을 사로잡은 진호.

오직 진호만을 위해 만들어진 쇼같고, 그는 그걸 알고 있다는 듯 가장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진, 정말 당신은 내 영원한 뮤즈야."

이번 맨즈 패션위크는 그냥 사바나 정글이다. 디올 옴므를 제외하고도 총 6개의 패션 브랜드가 야생을 모티브로 해서 무대와 작품을 꾸몄다.

그에 이번 맨즈 패션위크를 찾은 패션피플들은 '어? 방금 왔던 곳 아냐?'라고 착각을 할 정도였다.

진호는 그런 위업을 달성해 버린 것이다.

행동 하나로 디자이너의 디자인을 바꿔 버리는 압도적인 존재감.

팀 존스는 그런 진호가 자신의 뮤즈이자 친구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이런 진을 놓치면 안 되는 데……"

그는 심각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듯 굳은 얼굴로 대화를 하는 피에트로와 아르노 베르베우를 바라보며 초조히 발을 굴렀다.

그리고 이날 진호의 몸값은 한 번 더 올랐고, LVMH 산하 하이 패션 브랜드 5개가 더 붙게 되었다.

* * *

"진호야-!"

영화관 측에서 따로 만들어 준 대기실에 들어서자 장영진이 달려와 와락 껴안았다.

진호는 실소를 흘리며 그의 등을 두드렸다.

"네네, 진짜 꿈 아니고요. 문체부 선정된 것 맞고요. 오늘 시사회 끝나면 바로 중국으로 넘어갈 거고요."

"……어후. 내가 살다 살다 문체부 선정을 다 받아서 스크린에 영화를 걸어 본다, 야. 우 배우는 그래 봤어요?"

"무슨 , 나도 처음이지. 이것 때문에 스폰서들도 입이 함지박하게 찢어졌다면서?"

"찢어지기만 했겠어요? 그렇지, 진호야?"

"네. 저희 영화에 투자한 모든 스폰서 그룹들의 주가가 요동치고 있어요. 곧 있으면 시작될 중국발 호재에 대한 기대감으로."

그에 진호도 단타로 치고 빠지기 위해 시스템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켜 놓은 상태였다.

"……진짜 수고 많았고, 고맙다. 모두 진호 네가 바쁘게 움직여 준 덕분이야."

그냥 바쁘게 움직인 게 아니다.

지금 '프로듀스 88'은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까지 국민 예능으로 자리 잡은 상태였다.

최근 시청자 투표에서 표를 최고로 많은 받은 사람이 1억 표 가까이 받았다. 현재 한중일 삼국 모두가 '프로듀스 88'만 이야기하는 상태였다.

장영진이 진호의 팔을 툭툭 두드리며 대견해하자 우해진은 진호를 손을 꼭 잡았다.

"미안하다. 이 삼촌도 함께 열심히 움직여야 했는데……"

"……에이. 해진 삼촌이 나 피디님 예능에 출연하면서 얼마나 홍보가 됐는데요. 제가 이렇게 안 했어도 저희 영화는 어차피 선정됐을 거예요."

"……파하하하하! 역시! 내가 이래서 우리 진호를 좋아하지."

"그럼요. 얘가 이렇게 착해요."

"흐흐흐."

셋은 서로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아, 그런데 이번에 패션위크에서 꽤 이슈가 있었다며? 인터넷에선 그게 진호 너 때문이라던데, 진짜야?"

"아……"

진호는 웃음을 터트리며 에피소드를 설명했고, 장영진과 우해진은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사바나 정글이었어?"

"어떤 브랜드는 모델에게 털가죽을 입혔더라고요. 저게 사냥꾼인지 진짜 짐승인지 구분이 안돼서 얼마나 놀랍던지……"

그 쇼에 출연한 모델들은 뒤풀이 클럽파티 때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며 진호를 원망스럽다는 듯 보았는데, 죄인 아닌 죄인이었던 진호는 어쩔 수 없이 골든벨을 울리는 수밖에 없었다.

"푸하하하핫!"

배꼽을 잡고 웃던 우해진은 순간 아차하며 손뼉을 쳤다.

"아, 그 안나 마리? 그 분 앨범 나왔다며!"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보다 빨랐지.'

안나의 시원하면서도 서정적이기도 한 매력적인 목소리에 맞춰 여름날 숲속을 배경으로 연상시키는 노래를 작곡하긴 했지만, 진호의 예상보다 한 달 정도 빨랐다.

"와……. 나 이런 사람한테 삼촌이라고 불리는 거야? 어이쿠, 영광입니다."

"어이쿠. 저도 천만 요정을 삼촌으로, 천만 감독님을 지인으로 모셔서 영광입니다."

세 사람은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벌컥!

"죄,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어이구, 안 늦었어요. 어서 와요, 어서와. 재영이도 어서 오고."

코리안 쉐프에서 진호와 우해진을 제외했을 때, 비중이 제일 높은 김예은과 이재영이 들어오자 세사람은 반갑게 맞이했다.

그에 지각 아닌 지각을 한 두 사람은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래, 그분들 오기 전에만 도착했으면 된 거야."

오늘 시사회에는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정부 관계자들이 참석한다. 무려 문체부장관과 중국의 모든 미디어를 관리 감독하는 광전총국 부기관장 리우챙이 온다.

때문에 그들은 지하주차장에서 만난 경호원들에게 금속류는 몸에 패용하지 말아 달라는 협조 요청을 받아야 했다.

'국정원 요원이겠지?'

아니어도 최소 그에 준하는 실전경험을 갖춘 사람들임이 분명했다.

[스킬: 갓 오브 워]가 그렇게 반응을 했다.

"어휴, 이따가 못생겨져야 하는데 그게 될지 모르겠네."

진호와 사람들은 무슨 말이냐며 우해진을 바라봤고, 그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아니, 어찌 보면 오늘은 그 두분이 주인공이잖아. 그러니까 그분들이 더 잘생기게 찍혀야 하는데 내가 더 잘 나오면 어떡해?"

"……푸하하하하핫!"

대기실엔 다시 웃음꽃이 만발했고, 사람들은 잠시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진호는 대기실 문 쪽을 힐끔 보며 입맛을 다셨다.

광전총국, 곧 중국에서 드라마를 찍어야 하는 진호로서는 어쩔 수 없이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에이, 잡아먹기야 하겠어?'

그래도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어떤 타입일까? 음? 온다!'

문 바깥에서 많은 인기척들이 다가오는 게 느껴지자 진호는 장영진을 툭툭 치며 문을 가리켰다. 그에 장영진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얼른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똑똑똑! 벌컥!

문이 열리며 수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진호는 눈을 빛냈다.

'저분이 광전총국의 부기관장.'

"오오오! 이 배우!"

'음?'

문체부장관의 양보에 먼저 들어온 사나운 인상을 지닌 50대의 마른 체구를 지닌 남성. 광전총국 부기관장으로 보이는 그가 양팔을 벌리며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장영진, 우해진뿐만 아니라 문체부장관과 경호원들, 그리고 잔뜩 긴장했던 진호마저도 멍하니 그를 보았다.

와락!

"윽!"

"하하!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진심이 가득 담긴 환대.

진호는 얼떨떨할 수밖에 없었다.

'어……. 내 팬이신가?'

뭔가 다행이었다.

* * *

영화가 끝나며 엔딩 크레덧이 올라오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찍짝짝찍짝짝!

"와아아아아!"

"휘이익!"

출연 배우들이 와서 그런지 박수와 환호성은 컸고, 그에 극장, 아니 한국에서의 두 시사회를 마치고 바로 북경의 극장을 찾은 양국정부 관계자들도 다시 한번 흐뭇하게 웃을 수 있었다.

그건 진호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장영진 감독은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었다.

"그렇게 좋으세요?"

"넌 안 좋냐? 반응 봐라. 죽이잖아."

"원래 잘 나온 작품은 기자들이 침묵한다면서요."

"……그러니까. 정부 관계자가 있다고 환호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여긴 또 중국이잖아."

"어이구, 농담이에요. 걱정 마세요. 정말 잘 뽑혔어요."

한국에서의 반응도 좋았다.

양국 정부의 조약 채결 때문에 언론이 우호적인 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평점이나 평들이 좋았다.

쓸데없이 미국식 코드를 넣지 않고 한국의 정서로만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내서 무척 좋았다는 평은 진호를 비롯한 배우들과 장영진이 가장 좋아하는 평이었다.

"자막도 완벽했고."

"그치?"

"그럼요. 이제 감독님은 2천만 감독이 될……"

"하핫! 소형제의 작품을 이곳 베이징에서 보게 되니 더욱 재밌는것 같군! 자막으로 보니 생생하게 다가오는 게 우리 중국에서도 아주 인기를 끌 것 같아!"

"아, 부기관장님."

진호는 환하게 웃으며 일어났다.

처음 만난 그날부터 무척이나 우호적이었던 그.

"두 번을 보셨는데도 여전히 재밌으세요?"

"명작은 몇 번을 보아도 질리지가 않는 법이지! 내가 놓쳤던 것을 새롭게 찾아가는 재미도 있고!"

방금도 그랬다.

한국에서 볼 때는 실시간 통역이라 몰입도 방해되고 무슨 요리인지도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이렇게 자막으로 시청하니 눈과 귀에 쏙쏙 들어왔다.

"와, 영화 마니아셨네요."

"푸하핫! 내가 괜히 광전총국의 부기관장이겠나! 별당신도 그렇고, 프로듀스 88도 그렇고, 이 영화까지 좋으니 요새 참 재미가 있어. 가족들과 이야깃거리가 많아졌거든!"

'팬 맞네. 고맙게시리.'

"하핫. 좋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 그래. 중국 스케줄 잘 진행하고, 어려운 일 있으면 연락 주게. 내 명함 아직 간직하고 있지?"

"어? 식사는 초대 안 해 주시고요?"

"……푸하핫! 그렇지. 내 꼭 식사초대할 테니 거절하면 안 되네?"

"그럼요. 그럼 조심히 들어가시고, 오늘 하루도 파이팅입니다."

"……하하하하핫!"

진호는 이쪽을 보며 눈을 빛낸 문체부장관과 함께 멀어지는 부기관장을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뭘까, 방금 반응은? 마치 원하던 걸 얻었다는 듯한……'

그 전에는 호탕하게 웃는 듯해도 꽤나 전전긍긍했다. 마치 죄를 짓고 있는 걸 인식하는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흐응. 웨이양 할아버지나 저우지엔 할아버지를 아는 분인가?'

진호가 아는 중국 고위직은 웨이양과 저우지엔뿐이다.

그것도 특수부대원 같은 이들을 개인 경호원으로 쓰는 고위직.

그 둘이 아니라면 부국장의 그런 모습이 설명되지 않지만, 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장칭 할아버지나 런다렌 아저씨 등의 꽌시에 저분이 저토록 어려워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꽌시의 나라인 중국이니만큼 경우의 수가 너무 많기에 진호는 생각하는 걸 포기하기로 했다.

안다 해도 딱히 이득될 부분도 없으니 굳이 의심 가는 사람을 찾아가 꼬치꼬치 캐묻고 싶지는 않았다.

"넌 정말……"

진호는 이쪽을 질렸다는 듯 보는 사람들을 향해 히죽 웃어 주고는 무대를 향해 발을 뗐다.

"자, 가시죠. 이곳 기자 분들의 질문에 답해야 하잖아요!"

"……흐흐흐. 암, 그래야지."

"그럼-. 우리 진호가 촬영장에서 사고 친 썰들을 풀어야지. 한국에서는 차마 못 푼 썰들을!"

"어? 잠깐?"

"자, 갑시다. 장 감독!"

"예, 우 배우!"

"잠깐! 에이, 잠깐만요-!"

진호는 다급히 그들의 뒤를 쫒았다.

* * *

양국 간의 정책 채결의 상징이 된다는 건 제법 사람의 가슴을 울링이게 만들었다.

괜히 어깨가 으쓱여지고, 목이 뻣뻣해지는 것 같았다.

-그럼 이제 중국에서 활동하는거냐?

웨이양의 말에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반년은 그렇지 않을까요? 드라마 촬영도 있고, 투어 콘서트도 있고."

중국에서 한 번에 할 수 있는 콘서트 숫자가 20회로 늘어났다. 이정도면 웬만한 중국 대도시는 다 들를 수 있다고 봐야했다.

"코리안 쉐프라는 바람이 불었는데, 최대한 편승해 봐야죠."

-그래. 인기가 제법 이더구나.

제법 정도가 아니다. 중국 전역에서 첫날에만 200만 명이 넘는 관객이 찾았다. 평가도 무척이나 좋았다.

-다만…….

"네?"

-네 할미가 너 따라 전 세계 요리를 만든다는 게 문제지.

"응? 그게 왜요? 할머니는 솜씨가 좋으……"

-어젠 태국 뜸얌꿍에 춘장을 섞었더구나.

"……푸하하하하핫!"

-웃지 마라, 이놈아! 그 괴상한 음식들을 아침저녁으로 먹는 내 심정을 네놈이 알아!

"크흡. 그러면 제가 소스 조합법 좀 보내 드릴까요?"

-……그래, 부탁하마.

"푸흐흐. 옙! 아."

-왜 그러느냐?

"……아뇨. 아니에요. 수고하세요."

'그래. 물어봐서 뭐해. 어차피 내 할아버지인 건 변함없는데.'

기분 좋게 웃으며 전화를 끊은 진호는 배우들의 무술 연습이 한창인 커다란 조립식 건물로 향했다.

그 순간.

크헝헝헝형!

저 멀리 동물 사육원에서 들려온 호랑이 울음소리에 진호는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안가, 인마. 안 가."

크헝헝!

"안 간다고! 네 몸무게가 몇인줄 알아!"

보는 순간 '놀자!'하며 태클하듯 몸을 날리는 230kg의 호랑이, 아니 개랑이는 허리에 무척이나 좋지 않은 동물이었다.

"왜 이런 곳에 무술 연습소를 지어서!"

진호나 동물이 이동하며 시간을 보낼 바에는 아예 이번 드라마에 쓸 동물을 키우는 사육원 근처에 무술 연습소를 짓자는 제작진의 고맙지 않은 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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