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권 7화
PJY 박 대표는 미간을 꾹 눌렀다.
'프로듀스 88'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기는 하지만, PJY로서는 큰 이득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니, 오히려 마이너스였다.
"유 PD, 솔직히 이 정도면 이제 인정할 때도 됐지 않아?"
"……."
안다. A클래스 멤버 전원 진호의 손을 탔으니 말이다.
"내가 유 PD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닌데, 자꾸 이러면 곤란하잖아. 진호는, 아니 팀 이진호는 우리랑 비즈니스 파트너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프로듀싱은 정도가 아닙니다.'
전혀 알고 있는 얼굴이 아니어서 박 대표는 다시 한숨이 나왔다. 그렇다고 크게 호통을 쳐 그의 기를 죽일 순 없었다.
프로듀스 88에서 PJY 소속 멘토인 유 PD는 훗날 PJY를 책임질 인재였으니 말이다.
"좋아, 이렇게 하자. 일주일 뒤 공개적으로 프듀 88 타이틀 곡 선정하는 거 알지?"
시청자 투표와 내부 투표를 합해 선정한다. 유 PD의 눈이 번뜩이자 박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 주시는 겁니까?"
"이미 작곡해 놨잖아. 안 그래?"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대신 결과에 깔끔하게 승복하기."
"예! 수고하십시오! 이따 촬영 때 뵙겠습니다!"
혹여 박 대표의 마음이 바뀔까 유 PD는 재빨리 대표 이사실을 빠져나갔고, 박 대표는 미간을 좁혔다.
"저렇게 기뻐할 일이 아닐 텐데?"
시청자 투표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다.
박 대표 본인이 이 말을 들었다면 얼굴이 일그러질 만큼 일그러졌을 것이다.
"설마 이진호가 여태까지 만든 결과물들이 우연히 만들어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래서 곡만 잘 뽑히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내가 잘못 봤구나."
박 대표는 이마를 붙잡았다.
하지만 현재 유 PD를 대체할 수 인재가 없다.
그는 부디 유 PD가 크게 낙담하지 않도록 진호가 살살해 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 * *
"타이틀 곡 출품이라…… 진호씨는 어떤 곡으로 할까요?"
"나한테 묻지 마."
오늘 진호가 타이틀 곡을 작곡하는 모습을 찍으러 팀 이진호의 회사로 온 PD는 방금 전 보았던 진호의 노트북 속 음악 파일들을 떠올리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진호가 말하길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참지 못해 작곡 했다'라고 한게 무려 스무 곡이다. 그것도 모두 단 한 번 듣자마자 머릿속에 박혀 무한 반복재생이 되는 게 수능금지곡을 듣는 듯 강력한 중독성이있다.
"어떤 곡이든 PJY 유 PD의 분량은 앞으로 지워진다고 봐야지."
그렇지 않아도 진호와의 갈등 구도로 말이 많은 그인데, 작곡이라는 최후의 보루마저 사라진다면 더 이상 방송에 내보낼 이유가 없었다.
일각에서 PJY와 커넥션이 있는 거냐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니 더욱 더.
"과연 승복할까요?"
"안 하면 어쩔 건데? PJY 소속인데 똥이라도 뿌리겠어?"
어차피 진호는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 상황이라서 대결 구도 자체가 성립이 되질 않고 있었다.
"그래도 질투심이라는 게 사람을 좀 겁 없게 만들잖아요. SNS에다가…… 응?"
작가는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모자 쓴 서양인들과 그 뒤를 웃는 듯 우는 듯 애매한 표정으로 따르는 팀 이진호의 직원을 보며 의아해했다가 경악했다.
"어? 어어어?"
"왜 그래…… 억?"
"Excuse me?
"……S, Sure!"
"Thank you."
PD와 작가는 자신들을 지나치는 둘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다 번뜩 정신을 차렸다.
"네, 네드 시런 씨!"
네드 시런이 눈을 빛내며 몸을 멈췄다.
'운이 좋군.'
이렇게 알아서 찍히게 됐으니 말이다.
"예?"
"하, 한국, 아니 이진호 씨를 찾은 이유가 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간절한 그의 얼굴에 네드 시런은 히죽 웃었다.
"당연히 내 친구 진에게 곡을 받기 위해 섭니다. 여기 안나도. 그는 아주 뛰어난 작곡가 겸 프로듀서니까요."
"와우, 이거 촬영이에요? 나도 출연료 주는 거예요?"
"……네?"
"안나, 안 들어갈 거야?"
"가, 갈 거야!"
네드 시런과 안나 마리는 녹음실로 들어갔고, PD와 작가는 다시 멍해졌다.
'바, 방금 내가 누굴 본 거지? 또 뭘 들은 거지?'
우당탕!
"네, 네드?"
열린 문을 통해 들려오는 경악한 진호의 외침.
……꿀꺽!
마른침을 삼킨 PD는 핸드폰을 들어 누군가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달칵!
-여보세요.
"네, 메인 PD님. 전데요. 이번 타이틀 곡 아무래도 진호 씨가 당첨일 것 같습니다. 왜냐고요? 지금 여기에 네드 시런과 안나 마리가 왔거든요. 네, 그 네드 시런과 안나 마리요. 진호 씨랑 작업하려고 왔다는데요?"
PD는 비명을 지르듯 경악하는 메인 PD의 외침에 녹음실 안을 쳐다보았다.
'……미쳤네.'
UK와 빌보드를 주름 잡는 가수들이 알아서 찾아오는 작곡가 겸프로듀서. 이건 그냥 급이 달랐다.
'어쩌냐, 유 PD……'
PD는 지금 쯤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을 유 PD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한편, 갑작스런 손님에 깜짝 놀랐던 진호는 한숨을 푹 내쉴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짓궂어진 거예요?"
"원래 부터?"
"……정말 고생이 많네요, 존."
"그 부분을 알아줘서 고마워요, 진."
"헤이. 그렇게 말하면 내가 사고 뭉치 같잖아."
네드의 말을 무시하며 네드의 매니저인 존에게 힘내라는 듯한 시선을 보낸 진호는 약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안나 마리를 보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마리 씨."
"우왓! 나, 날 알아요?"
"당연히?"
"말도 안돼……. 세계에서 유명한 셀럽인 당신이 나를 알다니……"
"하하. 제가 아무리 유명하다고 해도 빌보드와 UK에서 1위를 한 당신만큼 유명할까요."
데뷔는 비교적 일찍 했지만, 죽을 쑤다가 어느 그룹의 피처링을 하며 이름과 얼굴을 알렸던 그녀. 이후 빌보드와 UK차트 10위안을 드나들다가 몇 년 전 기어코 두차트에서 1위를 달성하며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한국에서는 이미 2018년부터 이름을 알렸던 아티스트다.
'최근에는 썩 좋지 못한 평가를 받고 있긴 한데……'
그렇다고 해도 그녀의 음악적 감각과 목소리는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이렇게 실제로 보니 더욱 그랬다.
심장이 쿵광쿵광 뛰며 머릿속에서 악상이 떠올랐다.
'서정적인 노래도 굉장히 잘 어울릴 법한 목소리야!'
[스킬: 아이돌 마스터]와 [스킬: 재생사]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네드 시런은 안나 마리에게 호감 어린 눈빛을 짓는 진호의 모습에 만족스러워하며 입을 열었다.
"보니까 촬영 중이던데, 뭘 찍는거야?"
"아, 제가 출연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타이틀 곡을 작업하는 모습을 찍는 거예요. 맞아, 한번 들어볼래요?"
"그래도 된다면 얼마든지."
씩 웃은 진호는 가장 첫 번째 곡부터 재생시켰고, 네드 시런과 안나 마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촬영 중이라 길게 재생을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다섯 곡을 들어본 네드 시런과 안나 마리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 곡만 들어도 네가 프로듀싱을 한다는 그 여성들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겠는걸?"
안나 마리는 동감이라는 듯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은 몽롱하게 풀려 있었다.
'이런 음악을 만들 줄 아는 프로듀서였다니! 역시 네드의 그 곡은 우연이 아니었어!'
"하하, 칭찬해 줘서 고마워요. 그래서 무슨 일인 거예요? 그냥 날 보고 싶어서 온 건 아닌 것 같은데?"
날카롭게 찔러 온 질문에 움찔 몸을 굳힌 네드 시런은 머리를 긁적였다.
"음. 맞다고 해도 믿지 않겠지?"
"아무래도 그렇겠죠?"
독립을 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 그가 고작 그런 이유로 한국을 찾을 리는 없었다.
"작업을 같이하자는 건가요?"
"응. 나도. 그리고 여기 안나도."
"흐음."
대충 그럴 것이라 예상했다.
그래서 느껴졌다. 굳이 촬영 팀을 비집고 들어온 네드 시런의 의도가 말이다.
'이럴 것까지는 없는데……'
고맙고 또 미안했다.
그래서 더 이용해 줘야 했다.
"좋아요! 저도 안나 마리 씨와 작업을 해 보고 싶었으니까요. 네드는 말할 것도 없고요."
"……이예에-!"
"단!"
양팔을 번쩍 들었던 안나 마리와 고맙다는 듯 웃던 네드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진호를 보았다.
"조건이 있어요."
"조건?"
둘은 긴장을 했고, 진호는 바깥에서 이쪽을 향해 귀를 기울이고 있는 PD를 보며 음흉히 웃었다.
"우리 애들을 한 번 평가해 줄것. 그게 제 조건이에요."
…… 피식!
잔뜩 몸이 굳었던 네드는 웃고 말았고, 그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을 한 안나 마리는 눈물을 글썽이며 진호의 손을 덥썩 잡았다.
밖에서 듣고 있던 PD와 작가들은 소리 없이 만세를 외쳤다.
"그거면 돼요? 정말로 그러면 제게 곡을 주고 프로듀싱을 해 준다는 거죠!"
"그래요. 같이 작업해요, 우리."
"딜-! 모니카! 나타이틀 곡 완성될 때까지 스케줄 빼줘요!"
"이미 그렇게 빼기로 했잖아……. 미스터 리, 저희 측은 반년, 아니 그 이상도 뗄 수 있습니다."
네드 시런이 장담하는 작곡가 겸 프로듀서다.
어쩌면 안나 마리의 분기점이 될지 모르는 일이기에 소속사에서는 시간을 무기한적으로 빼기로 결정했는데, 방금 전 작곡한 곡의 레벨을 보니 그 결정이 무척이나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호는 두 눈에 열의가 가득한 안나 마리와 모니카란 여성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음…… 그렇게까지는 필요 없는데요."
"그럼?"
"애들 평가해 주는 것까지 해서 3 일?"
"……예?"
"음?"
"네드를 위한 노래는 프로듀싱을 배우자마자 3곡 정도 작곡해 두었고, 여기 마리씨는 지금 악상이 떠오르는 중이거든요. 그러니까 3일이면 충분해요."
녹음을 완벽하게 끝마치기까지 말이다.
네드 시런과 안나 마리는 입을 떡 벌렸고, PD와 작가들은 다시 한번 소리 없이 만세를 외쳤다.
* * *
-……방금 예고편 그 네드 시런과 안나 마리 맞지?
-어…… 그러니까 진호가 그 네드 시런한테 아이돌 애들을, 아니 아이돌이 될 연습생들을 평가해달라고 한 것 맞지? 그러니까 그 네드 시런과 안나 마리한테!
┗곡을 인질로 잡고를 빼면 안되지! 주모! 여기 국뽕 한 사발-!
-헐. 3대장이 뛴다.
┗3대장 다 합친다고 해도 안나마리 인지도만큼도 안 될 텐데 뛰어야지.
┗미국 바라기 박 대표는 무조건 뛰어야지 ㅋㅋㅋ
-와, 이게 진짜 이진호 클라스. 지렸다…….
┗원래 세계에서 유명함. 한국만 이상하게 저평가하는 거.
-그나저나 유 피디는 나가리네.
-원래 유 씨는 웹도 안 됐음. MC.NET에서 악마의 편집을 한것이 분명함. 유 씨는 원래 착했을거임.
┗그런 것치고는 자존감 쩔던데?
┗저 나이에 3인자인데 그럴 수도 있지! 왜 우리 애 기를 죽이고그래!
┗ㅋㅋㅋㅋ
네드 시런과 안나 마리가 등장한 다음 화 예고편의 순간 시청률이17.7 퍼센트까지 될 만큼 엄청난 이슈를 만들었다.
그에 팀 이진호의 모든 전화기는 불이 나기 시작했고, 진호도 잠시 동안 핸드폰을 꺼 놔야 했다.
-하핫! 조카가 아주 큰일을 해주었군! 이 정도라면 드라마 제작발표회 때 이슈를 제대로 끌겠어!
"에이, 장칭 할아버지랑 다랜 아저씨가 계시는 것만으로 이미 이슈는 다 끌었다고 봐야죠."
-무슨 소릴! 지금 중국에서 프로듀스 88의 플랫폼을 사들여 자네를 심사위원으로 섭외하려고 안달이라는 소릴 못 들은 건가?
"응? 우상연습생 사태 때문에 그런 프로그램은 제작되지 못하는 거 아니었나요?"
중국판 픽 미라 불리며 꽤 말이 많았던 우상연습생은 1위 멤버에게 1억 표가 훌쩍 넘는 표가 쏠리며 중국 정부 높은 사람의 심기를 건드렸고, 그 때문에 아예 오디션프로그램을 제작하지 않도록 했다.
-그런 것이었다면 프로듀스 88도 동시 방영하지 않았겠지.
"……그렇겠네요."
-그런데 괜찮겠나? 중국 표가 중국 멤버에게 몰릴 텐데?
"그래서 시청자 투표가 차지하는 심사 비율을 5퍼센트로 제한했어요. 한 사람에게 몇 억 표가 쏠려도 순위 변동 자체가 크지 않아요."
-……나쁘지 않군. 혹여 혹평을 받아 떨어진다고 해도 이미 몇 억 중국인들에게 얼굴을 각인시킨 후일 테니 오히려 중국 내 활동을 생각하면 도중에 떨어지는 것도 좋겠어.
진호가 이미 연습생들의 전체 레벨을 올려 놓아서 누가 떨어진다고 해도 '그저 그날의 운이 나빴다' 정도의 말밖에 나오지 않을 터였다.
-그래서 할 건가?
"아뇨. 우리 드라마 찍어야죠."
'빌보드와 UK도 간 보고.'
안나 마리를 재기시키면 더 큰 주목을 받게 될 터였다. 네드 시런때보다 훨씬 더 말이다.
작업이 쏟아질지도 모르고, 쉔을 비롯한 중국 애들과 일본 애들을 케어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었다.
-하하하하핫! 알겠네. 그럼 촬영전 마지막 리딩 때 보지!
"예, 들어가세요."
전화를 끊은 진호는 기분 좋게 웃으며 돌아서다가 다급히 다가오는 장경아 실장의 모습에 의아해했다.
"진호 씨, 선정됐습니다."
"네?"
"드디어 문체부 영화 선정에 코리안 쉐프가 선정되었습니다. 방금전 장 감독님께서 전화 주셨습니다. 진호 씨께서 통화 중이니 일단 먼저 전해 달라면서!"
순간 멍해진 진호는 자신도 모르게 다시 핸드폰을 들어 장영진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축하를 받는 중인지 통화중이었고, 진호는 그제야 탄성을 터트릴 수 있었다.
"……와우."
"수고하셨습니다, 진호 씨."
"장 실장님을 비롯한 모든 직원들이 열심히 서포트해 주신 결과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게요."
고개를 힘차게 끄덕인 장경아 실장이 '이제부터 중국 스케줄을 뽑겠다'며 빠르게 멀어지자 진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머리를 긁었다.
"이게 됐네……"
솔직히 되라고 쉴 틈 없이 활동한 것이기는 한데, 막상 되고 나니 얼떨떨했다.
그래도 입술이 절로 꿈틀거릴 만큼 기분이 좋았다.
'안나 마리 씨가 뜬다면 더 기분이 좋겠지. 이슈도.'
진하게 웃으며 녹음실의 문을 연진호는 헤드셋을 쓴 채 마지막 점검을 하는 안나 마리에게 다가가 그녀의 앞에 섰다.
최대한 조용하게 작업하는 게 좋다는 그녀.
때문에 녹음실은 아무도 없어 숨이 막힐 만큼 조용했지만, 진호는 그런 것 따윈 신경 쓰지 않은 채 다급히 헤드셋을 벗는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진호의 미소는 그 어느 때보다 환했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