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권 6화
연습실에 화사한 빛이 퍼졌지만, F클래스는 고개를 더 숙였다. 누가 보아도 큰 잘못을 저지른 죄인의 모습이었다.
'F클래스가 됐다고 해서 구제불능이 된 건 아닌 데 말이야.'
씁쓸히 웃은 진호는 순간 정색했다.
"왜 고개를 숙이고 있어! 고개들어! 너희들이 무슨 죄 지었어?"
벼락같은 그의 호통에 클래스 멤버들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다급히 고개를 든 그녀들의 흔들리는 눈을 본 진호는 푸근히 웃었다.
"최종 멤버 선발까진 아직 3달이나 남았어. 이제 시작이야. 그런데 고작 한 번 실수한 것 가지고 이 F클래스에서 주저앉아 영원이 F로 살 거야? 그럴 거야? 유선이 너 그러고 싶어?"
"……아뇨."
"안 들려. 그러고 싶어?"
"……아뇨-!"
"그렇지. 선화는?"
"아니요-!"
F클래스 연습실에 12명 소녀들의 아니라는 외침이 쩌렁쩌렁 울렸다.
'자의든 타의든 악을 지르면 악이 생기는 법이지. 이렇게.'
진호는 이제야 눈에 불이 켜진 그녀들의 모습에 만족할 수 있었다. 방금 전 차갑게 식었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렇지. 서로 봐 봐. 얼마나 보기……"
말을 하던 진호는 입을 다물었고, 진호의 말에 서로를 쳐다보려던 클래스 멤버들은 의아해하며 그를 보았다.
"……어우, 씨! 난 왜 답지 않게 이런 걸 하는 거야?"
진저리를 친 진호는 팔뚝을 팍팍 문지르며 호들갑을 떨었고, 순간 멍해졌던 그녀들은 이내 풋 웃음을 터트렸다.
진호도 그에 히죽 웃었다.
"봐 봐. 그렇게 웃으니까 얼마나 예뻐? 이렇게 예쁘게 웃을 줄 아는 애들인데, 어? 사람들이 말이 야, 데려온 첫날부터 애들 밥 먹일 생각은 안 하고 클래스 선별이라느니, 실력 점검이라느니 해서 기를 팍팍 죽이고……"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려던 그녀들은 순간 눈빛을 짜게 식히며 진호를 보았다. 자신들을 이 F클래스에 보낸 사람 중 한 명이 진호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들은 갑자기 침울해졌다.
진호가 한 예쁘다는 말 때문이었다.
한국어를 모르는 일본 멤버에게 일본어로 말을 해 준 진호는 갑자기 입을 다물며 얼굴을 만지거나 손을 숨기려는 듯한 모습들에 당황하기는 커녕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물 안 개구리였다고 느꼈겠지.'
전국이 아니라 한중일 삼국에서 고르고 고른 재능러들이다. 노래와 춤뿐만 아니라 외모까지도 말이다.
소속된 곳에서는 최고였다가 지독한 혹평을 받은 그녀들에겐 칭찬만 받은 상위 클래스의 멤버들은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을 터였다.
'이런 걸 풀어 주는 건 쉽지.'
예쁘지 않다면 예쁘게 만들어 주면 된다.
그리고 진호는 그렇게 만들어 줄수 있는 사람들을 무척이나 많이 알고 있었다.
짜악!
클래스 멤버들이 고개를 들자 진호는 문을 보았다.
"들어와요!"
드르륵 문이 열리며 좌르르 밀려서 들어오는 옷이 잔뜩 걸린 행거들. 커다란 화장대와 메이크업 박스를 들고 오는 사람들.
클래스 멤버들은 당황했다가 이내 행거에 박힌 로고들을 보곤 경악했다.
'디, 디올?
'지방시? 펜디도 있어!'
"얘들이야?"
"네, 최 실장님. 이 실장님, 최대한 예쁘게 만들어 주세요."
"그래. 밥값 해야지! 어우, 얘. 너너무 예쁘다. 왜 이렇게 예쁘게 생겼어? 자, 이리로."
"네?"
클래스 멤버들은 당혹해하며 진호를 보았다.
진호는 그런 그녀들을 향해 푸근히 웃어 주었다.
"너희들이 오늘 점심시간까지 내게 배울 건 하나야. 세상에서 제일 예뻐지는 것."
사람은 자존감이 가득해야 무엇이든 열정적이고 잘 해낼 수 있다.
"네? 예?"
진호는 더욱 미소를 짙게 하며 손짓으로 떠밀었고, 아이들은 어? 어? 하는 사이에 끌려가 어느새 세워진 화장대 앞에 앉았다.
진호는 다리를 꼰 채 그녀들을 보며 눈을 빛냈다.
그런 그에게 작가가 다가왔다.
"정말 이래도 될지 모르겠네요……"
"각자의 역량으로 아이들을 케어하고 가르치는 게 멘토의 역할 아니었나요? 피디님도, 작가님도, 그리고 다른 멘토와 프로듀서님들도 다 허락하셔 놓고 왜 이러실까? 전 쟤들을 A클래스로 올리기 위해 제 역량대로 하는 것뿐입니다?"
'그 역량이 시청자들 뒤통수를 때릴 만큼 경악스럽지만.'
3대 기획사와 성공한 연예인에 대한 환상을 심어 줄 수 있겠다 싶어서 모두 동의했다. PD는 재밌어 보여서 무조건 오케이 했다.
"정말 이걸로 될까요?"
"돼요. 작가님도 재들 선발 때 모습 봤잖아요. 무조건 됩니다."
"……후. 알았어요. 그럼 F클래스의 반란을 기대해 보죠."
파이팅한 작가가 물러나자 진호는 몸을 한차례 떨었다.
'어우, 역시 작가라서 그런지 단어 선택이……'
고개를 저은 진호는 변화하는 클래스 멤버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개개인의 매력을 최대한 뽐내게 하는 것도 프로듀서의 역량이지.'
하루에 두 번, 88명이 모두 모이는 시간인 점심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의 얼굴이 밝다.
콧대가 세워지고, 어깨가 쭉 펴진 상태였다.
'그럴 수밖에 없지.'
최 실장과 이 실장 등 팀 이진호 소속 메이크업 부서는 톱스타들도 전속으로 두려고 애를 썼던 이들이다.
개개인의 외모가 가진 매력을 100퍼센트, 아니 그 이상으로 표현해 낼 수 있는 전문가 중 전문가였다.
거기다 그녀들로서는 말로만 들었던 초고가 명품들을 입다 못해 멘토의 명령이라는 이유로 타인들에게, 보다 상위 클래스의 애들에게 마음껏 뽐내고 왔다.
'이제 됐다.'
이젠 그녀들에게 잠재된 춤과 노래의 가능성을 백 퍼센트 끌어 올리기만 하면 된다.
짜악!
커다란 박수 소리에 상기된 얼굴로 재잘재잘 떠들던 아이들이 재빨리 입을 다물며 진호를 보았다.
"이제 연습하자."
"……네-!"
그녀들의 입에서 튀어나온 대답은 무척이나 우렁찼다.
"무슨 연습부터 하나요, 쌤!"
쌤이란 소리가 자유스럽게 나오자 진호는 절로 뿌듯해졌다.
"화음 맞추기. 단, 목을 억지로 쥐어짜지 말 것. 그리고 내가 지목하면 입을 다물고 주위 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낼 소리를 찾을 것."
"……네?"
화음 맞추기에 실망을 했다가 이내 어리둥절해하는 그녀들을 보며 진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낼 소리를 찾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모르네.'
그녀들의 실력을 향상시킬 마법은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스킬: 아이돌 마스터]의 주인공이 빌보드의 30퍼센트를 아이돌 음악으로 물들일 수 있게 만든 마법 같은 프로듀싱.
'5일이나 걸리려나?'
그렇게 일주일이 흘러 첫 번째 중간 평가 날이 되었다.
* * *
어두운 백 스테이지에 선 유선은 차례를 기다리며 눈을 감았다.
그녀뿐만 아니다. F클래스 모두 눈을 감은 채 호흡을 길고 느리게 쉬어 갔다.
상위 클래스 멤버들은 무척이나 고요해서 이질적이기까지한 그녀들을 보며 웅성거렸다.
그러나 F클래스 멤버들은 그걸 모두 무시하며 지난 일주일 동안 진호에게 받은 가르침을 떠올렸다.
'아니야. 쥐어짜지 마. 그러지 않아도 네 목소리는 매력적이야. 그렇지. 지금 네가 낼 소리를 떠올린게 그거야? 아니잖아. 그래, 그거야. 몸에 힘을 빼. 억지로 힘주지마. 일단 네 몸이 어디까지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부터 인식해.'
분명 그녀들이 아주 예전에 배우고 이곳에 오기 전까지 배웠던 것들인데, 왜인지 진호에게 배우니 실력이 쏙쏙 늘었다.
'칭찬 때문일까?'
정확히는 [스킬: 아이돌 마스터]의 영향이다. 자신이 원하는 그대로 이끌어야 했기에 강제성을 띠게 된 목소리. 이외에도 [스킬: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의 긴장을 풀어 주는 향기 등 수 많은 스킬들이 시너지를 발휘했다.
"3달은 길다. 코앞의 승패에 일희일비하지 마라."
'그리고 한 달 후 본격적으로 투표가 시작되기 전까지 가진 바 모든 매력을 뽐내라.'
진호는 그렇게 이기는 게 아니라 동화되는 법, 돋보일 수 있는 법을 가르쳤다.
"F클래스 나유선! 나유선 어디있어요-!"
유선과 F클래스의 눈이 번쩍 떠졌다.
"네!"
유선은 F클래스 멤버들을 보았고, 그녀들은 유선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파이팅.'
F클래스 중 몸은 작은 편에 속해도 가창력이 가장 파워풀한 그녀가 스테이지로 향하자, F클래스 멤버들은 다시 눈을 감았다.
스테이지로 걸어 나와 크게 인사하며 환하게 웃고는 유선은 이쪽을 향해 엄지를 치켜드는 진호의 모습에 배시시 웃으며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음악 주세요."
띠리리.
서글픈 선율이 울리자 심사위원들이 동요를 보였다.
'노래는 연기다. 스토리다. 드라마다. 가사가 품은 이야기에 몰입하면 감정은 저절로 따라온다. 그러니까 가사를 바탕으로 네가 이야기를 새로 써 봐라. 막장이든, 멜로든 네가 몰입하기 쉽게.'
그 말이 맞았다. 정말 억지로 감정을 끌어내려 하지 않아도 가사에 몰입하니 감정이 따라왔다. 그 순간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쌤! 부끄럽지 않게 해 드릴게요!'
전주가 끝나자 그녀는 입을 열었다.
"내가 사 준 옷을 걸치고, 내가 사준 향술 뿌리고."
그녀의 이가 저절로 악물어졌다.
"어? 이 노래를 부른다고?"
순간 놀랐다가 난색을 표했던 심사위원과 멘토들은 이내 유선의 입에서 첫 구절이 흘러나오자 눈을 크게 뜨며 진호를 보았다.
진호는 옅게 웃으며 스테이지를 가리켰고,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유선을 보았다.
그런 그들은 이내 곧 다시 입을 떡 벌려야 했다.
-보여 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
"이, 이거?"
"뭐야? 이게 왜 소화되는데!"
"쟤 분명 일주일 전만 해도 고음 올릴 때 목을 쥐어짜지 않았어요?"
"와 씨. 저 당당하게 걸어 나오는것 좀 봐! 쟤한테 저런 끼가 숨겨져 있었어?"
심사위원과 노아는 엉덩이를 들썩이다가 이내 다시 진호를 노려보았다.
"……진호, 너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거냐."
정색하며 묻는 양진혁에 진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전 한마디밖에 안 했어요."
아니다. 여러 마디 했다. 행동도 수없이 했다.
"승패 따지지 말고 그냥 너희 매력을 모두 보여라. 너희가 매력을 만 퍼센트 뽐낼 수 있도록 내가 서포트하겠다. 아, 두 마디구나."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너 설마 쟤 무대 의상이랑 헤어, 메이크업도……"
"네. 코치했죠."
"야, 그건 반칙이지!"
"하지만 사장님도 A, B클래스 애들 꾸밀 때 조언하셨잖아요."
그건 맞다. 양진혁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그랬다. 어떻게 하면 카메라에 예쁘게 찍힐지 알기 때문이다.
"저도 그런 것뿐이에요."
다만 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진호에겐 [스킬: 우리동네 패셔니스타]와 [스킬: 내가 제일 잘나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 외여러 스킬들이 시너지를 내며 F클래스 애들이 가장 예뻐보일 모습을 끌어낸 것이다.
"……와."
하고 싶은 말이 무척이나 많은데 할 수가 없었다.
싱긋 웃던 진호는 얼굴에 꽂히는 뜨거운 시선에 의아해했다. 이쪽을 바라보는 PJY 멘토의 눈빛에 작은 적개심이 들어 있었다.
툭툭!
"야, 무시해. D클래스 애들 박살났잖아. 우리랑 달리 프로듀서 커리큘럼을 밟으며 PD 외길만 판놈이라 더 자존심 상할 거야. PJY에서 3인자 소리 듣는 앤데 그 자존심이 오죽하겠냐?"
양진혁은 '20대인 널 절대 인정하지 않을걸?'이란 말을 굳이 하지 않았다.
'흐음-.'
양진혁의 귓속말에 사태는 파악했지만, 진호는 그냥 당하고 싶지 않았다. 진호는 PJY의 멘토가 들으라는 듯 크게 양진혁을 향해 말했다.
"멘토링이라는 게 그런 거잖아요. 조언해 주고, 이끌어 주고. 전 제 스타일대로 했을 뿐이에요. 그리고 프로듀싱이라는 게 고작 노래와 춤만 가르치는 걸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요. 그건 트레이닝이지."
정답이다. PJY의 멘토는 이를 갈았고, 진호는 억지로 웃음을 참는 양진혁을 보며 어깨를 으쓱이다가 마침 노래를 끝낸 유선을 향해 기립박수를 쳐 줬다.
PJY의 멘토는 그런 진호를 죽일듯 노려보았다.
'꼼수 따위로 이런 결과를 만든 주제에……'
그는 몰랐다. 그가 꼼수라 생각한 가르침을 받은 F클래스 아이들 전원이 3명의 심사위원들에게 최고 점수를 받아 A클래스로 승급 할 거란 걸 말이다.
그리고 그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이들이 진호를 원하여 찾아온다는것도 말이다.
* * *
첫 번째 중간 평가 이후 한 달하고도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했던 프로듀서 88이 드디어 첫 화를 방영했다.
MC.NET는 무슨 의도인지 통크게도 3화 분량을 모두 방영해버렸고, 이는 세 번째 중간 평가까지의 내용이었다.
-……F 클래스는 Fantastic 클래스라는 말일까?
-디올, 지방시, 펜디 도랏! 여윽시 이진호 클라스! ㅋㅋㅋㅋ
-그래! 네 스타일대로 멘토링한 것뿐이지! 이게 우리가 원하던 클라스지!
-세상에 제일 예뻐질 것. 캬아-!
-3대장과 A클래스 보러 왔는데, 진호랑 F클래스만 보여요. 이런저 비정상인가요?
┗ㅇㅇ. 정상.
-3화 다 보고 남긴다. 진호 쟤가 잘하는 거냐, 아님 3대장 눈이 뻔거냐? 아니 어떻게 F클래스만 갔다 하면 A클래스가 돼서 나오지? 현재 A클래스가 38명인가? 39명? 원래 A들 어디 감?
┗진호가 잘하는 거. 걔들 누가 봐도 F였음. 그런데 애들 상태가 좋으니까 3대장도 날아다니네.
┗ㅇㅈ. 다 주옥같은 조언들. 저게 3대장 진짜 모습이구나…….
-저대로만 하면 저도 탑 연예인이 될 수 있나요?
┗일단 진호부터 찾아 가 봐.
-근데 저 듣보는 왜 진호랑 날을 세우지? 첫날부터 눈빛 더럽더니?
┗예능감?
┗풋! 뿜었잖아 ㅇㅅㄲㅇ!ㅋㅋㅋㅋ
-……와, 이대로만 가면 정말 역대급이다. 대체 난 누굴 투표해야 하는 거냐!
-뭘 좋아할지 모르니까 다 준비할게도 정도가 있어야지!
-진짜 다음 편 궁금해서 어쩌냐! 진호가 또 어떤 사고를 칠까!
이외에도 중국어와 일본어 댓글들이 끊임없이 달리며 일순 서버가 나갈 정도로 엄청난 이슈를 끓었다.
그리고 그렇게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통을 던져 버릴 이들이 찾아오고 있었다.
기이이잉!
"여기가 한국? 와, 깨끗해! 넓어!"
"시끄러워. 따라와."
"아, 응! 그런데 우리 어디 가?"
"친구에게 서프라이즈 선물 주러."
"서프라이즈?"
"응. 서프라이즈."
모자를 눌러쓴 네드 시런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