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권 4화
2.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톡. 톡.
볼펜이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가 적막한 사무실을 울린다.
사무실엔 볼펜으로 책상을 두드리는 이 말고도 5명의 과장급 공무원들이 앉아 있지만, 그 누구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다.
"혼자 다 해 먹는군."
방금 올라온 보고에 문체부장관은 어이없다는 듯 웃어 버렸다.
문체부에 전달된 영화의 주인공중 가장 나이가 어린 진호.
그런 그가 이번엔 MC.
NET 이주관하는 서바이벌 오디션에 멘토로서 참가한다고 한다.
"이진호란 아이의 배경이 만만치않다고?"
"구성건설과 LVMH가 배경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거물들이군."
거기다 중국에서의 반응도 심상치가 않다.
고작 시축을 했을 뿐인데, 중국제일의 부동산 전문 기업인 뤼디그룹에서 전속 모델과 명예 선수로 선정했다고 한다.
"고작 시축을 했다고 말이지……"
무언가 냄새가 진하게 났다. 뤼디그룹은 중국 정치인들의 자금줄이라 불리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끄응. 골치 아프군."
보고대로라면 무조건 코리안 쉐프를 선정해야 할 테지만, 다른 작품의 배우들도 만만치 않은 배경과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정확히는 이번 선정이 불러일으킬 홍보 효과 때문에 만만치 않은 배경들이 각 작품들마다 붙었다.
"다른 작품들의 배우들은 뭐 없나?"
그는 간절함을 담아 물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그의 갈망을 완전히 외면했다.
"제작 발표회 이후 예능 한두 개 출연한 것 말고는 없습니다."
"아니, 왜! 이진호란 아이는 중국이고, 한국이고 빨빨 돌아다니며 얼굴을 알리는데 그놈들은 왜 안해! 다른 대기업들에서 대중에게 얼굴 좀 비추라고 시켰을 텐데! 서로 작품성이 비슷비슷하면 그런 노력이라도 해야지! 안 그래! 그렇지 않냔 말이야!"
"재능의 숫자 차이가 아닐지……"
"그놈이라고 날 때부터 잘났나! 분명 피나게 노력했으니까 연기 외의 재능도 발전시켰을 거 아냐! 이젠 지놈들 이름값으로 누를 수가 없잖아!"
누구 한 명이라도 탈락해 주면 좋은데 상황이 그러질 않다.
"지, 진정하십시오, 장관님."
"이제 채결까지 두 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무슨 진-! ……후, 미안하군. 압박이 압박인지라."
"추, 충분히 이해합니다."
로비란 이름을 가장한 압박.
평소대로라면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기업이 후원하는 영화를 고르고 탈락한 이들을 어루만지며 서운함을 풀게 했을 테지만, 이번엔 성질이 좀 다르다.
자칫 그들 모두가 인정할 만한 이유를 만들지 못하는 이상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정치인들까지 은밀히 압박을 주고 있다.
다만 서로의 힘이 비등하기에 표면적으로 불거지지 않는 거다.
여기에 중국 입장도 신경 써야한다.
로비를 통해 뽑고 그게 들킨다면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었다. 그땐장관직을 내려놓는 수준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었다.
'만약 이게 이번 정권의 인사 문제까지 불거진다면?'
장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하아. 돌겠군."
문제는 이런 상황이라고 가장 가능성이 높은 진호의 손을 들어 줬다가는 국민들이 이해하지 않을 터였다.
'차라리 그 오디션에서 누구나 인정해 줄 만한 모습을 보여 줬으면 좋겠군.'
그는 정말 간절히 바랐다.
* * *
어딘가로 이동하는 차 안에 탄 진호가 콧노래를 부르고 있고, 그 입과 광대는 꿈틀거리고 있다.
"제발 부탁인데, 좀 있다가는 그런 모습 보이지 마라. 네가 만날 애들 데뷔를 했어도 안 뜬 애들이야. 뜨지 못한 데에는 다 이유가……"
"그게 무슨 말이세요! 걸그룹이면 다 여신님들이지!"
"하지 말라면 좀 하지 마!"
"공방 뛰며 여신님들 응원하는것도 들켰는데 괜찮잖아요!"
"안 들켰어!"
정확히는 발뺌을 한 거다.
입맛을 다신 진호는 창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건 월터도 마찬가지였다.
"헤이, 정 실장. MC. NET studio 가는 거 아냐?"
어느덧 한국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알게 된 월터의 말에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여기 마포 가는 길이 아니잖아요."
"아, 맞아. 아직 스튜디오 마무리 공사가 끝나지 않아서 다른 곳에서 녹화할 예정이래. 스폰서의 부탁도 있고."
"……아아."
대충 이해한 진호는 핸드폰으로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역시나 반응이 심상치가 않다. 우호적인 댓글도 90퍼센트 이상이었다.
'이럴 수밖에 없지.'
"양 사장님, 영진이 형, 박 대표……."
"시청자들이 그토록 바랐던 드림팀이지."
정 실장의 말에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멤버 구성이면 케이블이라도 시청률 5퍼센트는 그냥 깔고 간다고 봐야 했다.
"여기에 노아 씨도 있고. 이야, 목요일 동시간대 예능은 다 죽었다고 봐야겠네."
"그렇겠죠."
"문제는 네가 출연하는 부분인데……"
갑자기 이진호? 라는 작은 의혹이 제기되었다.
물론 진호의 명성이라면 충분히 무시해도 될 부분이지만, 진호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언론사들이 물어뜯을 수도 있었다.
"아, 그 부분은 실드가 쳐졌어요."
"어? 그래?"
진호는 보라는 듯 핸드폰을 넘겨주었다.
-정말 월클 걸그룹을 만들려는 건가…….
-이진호도 있는 걸 보니 그런듯;;;
-MC.NET에서 칼을 제대로 뽑은 듯 ㄷㄷㄷ;;;
-이번에 헛발질한 것 같지만, 이진호라면 인정. 얘 아님 JH에 레오와 테디 최밖에 없는데, 레오는 아이돌 티 벗으려고 아등바등하니 패쑤고, 테디 최는 카메라 울렁증이라 이런데 못 나옴.
┗이진호가 JH 소속임? 아닌 데?
┗비즈니스 파트너 관계임. 지금 JH소속 모델들이 세계무대에서 뛰게 만든 게 이진호 때문임.
-확실히 이진호라면 인정이지. 저 나이에 그런 레전드 가수들과 작업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음? 심지어 대박만 쳤잖아.
"……맞는 말만 나열되어 있네. 죄다 팩트니 깔 구석이 없고. 이런 흐름이라면 다른 언론사들도 아무 말 못하겠다."
가슴을 쓸어내린 정 실장은 진호에게 핸드폰을 돌려주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안영진 씨는 왜 나온다고 하냐? 원래 이런 곳에 나오지 않았던 분이잖아."
"그건 저도 잘?"
아니다. 진호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이번에 보이 그룹을 만든다고 했지? 그런데 그 형님이 신인 아이돌을 마지막으로 기획한 게 7년전. 이젠 돌려막기도 힘들어.'
그렇기에 실전 감각과 대중의 인지도도 다시 끌어올리면서 새로 기획할 남자아이돌을 홍보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부분은 비밀이기에 진호는 입을 다물기로 했다.
"흠. 요새 SY 주가가 하락세던데 그것 때문인가?"
"외유라도 하고 싶은 가 보죠. 그형님이 방송에 나오지 않은 지 15년도 더 넘게 지났잖아요."
"……그럴 수도 있겠네. 그동안 1세대 아이돌 프레임을 벗으려고 방송에 안 나오셨으니까.
아, 도착했다."
"아, 그래요?"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서 내리던 진호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음? 왜 하필 이런 곳을?'
기이이이잉!
비행기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김포공항이 저 멀리 보였다.
"여기가 이번 프로그램의 스폰서 그룹 계열사의 호텔이래."
'역시 홍보 맞네.'
호텔 입구에 촬영팀이 있는 것을 보니 확실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쪽을 찍는 촬영팀에게 일일이 인사한 진호는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레스토랑으로 이동했다.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레스토랑의 문을 열고 들어간 진호는 낯빛을 살짝 굳혔다가 이내 환하게 웃었다.
'아, 이거 위험하다.'
"왔냐?"
"왔어?"
양진혁과 안영진, 박 대표가 먼저 도착해 앉아 있었다.
안영진과 박 대표는 이미 멘토가 와 있는 상황이라 진호가 가장 늦은 것이었다.
"으아, 죄송합니다. 제가 늦었죠?"
재빨리 다가가 일일이 인사한 그는 이쪽을 초롱초롱 쳐다보는 한 여성에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 노아 선배님."
"와…… 진짜 잘생기셨네요. 이번에 뽑는 게 걸그룹이라서 너무 다행인 것 같아. 안 그래요, 피디님?"
줄줄이 놓인 카메라 앞에 앉아있던 피디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이그룹을 만드는 것이었다면, 남자 출연자들 모두 진호의 미모에 압살이 될 뻔했다.
"하하, 감사합니다. 선배님도 정말 아름다우세요."
"어머. 호호호, 우리 후배님 번호가 어떻게 돼요? 밥 한 끼 사 주게."
"야, 너랑 재랑 나이 차이가 13살이야. 부끄럽지도 않냐?"
"예쁜 후배 밥 사 주려는 건데, 그게 왜?"
"와, 얘는 나이가 먹을수록 뻔뻔해지네."
"영진 오빠만큼 할까. 지금도 바깥에 나가면 30대라고 속이고 다닌다며?"
갑자기 폭로전을 벌이는 둘의 모습에 진호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시선은 계속 노아에게 머물러 있었다.
'진짜 위험한데?'
진호는 레스토랑에 들어온 순간부터 심장이 터지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거세게 뛰는 걸 느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냉철한 이성을 가지게 만드는 [스킬: 셜록의 후예]와 연기 관련스킬들이 아니었다면 지금 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어쩔 줄 몰라 했을 것이다.
'이거 아이돌 마스터와 재생사의 시너지 때문인 것 같은데?'
머릿속에서 영감이 폭발하고 있다.
노래뿐만이 아니라 이젠 현역에서 물러난 댄스 가수인 그녀를 어떻게 다시 재탄생시켜야 할지까지도 말이다.
'와, 이거 진짜 참을 수가 없네!'
진호는 결국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노아 선배님!"
"네?"
"저랑 작업하실래요? 아뇨, 작업해 주세요."
노아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진호를 멍하니 바라봤다.
정 실장도 입을 떡 벌렸다.
녹화가 중단되자 화장실로 온 진호는 핸드폰에 저장 된 노아의 전화번호를 보며 희희낙락거리면서도 좌절했다.
'……에휴, 진짜 얼른 스킬을 얻어야겠네.'
다행히 스킬을 얻게 되면 이 심장 박동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정확히는 더 이상 무의식적으로 대성할 이를 보아도 뛰지 않는 거다. 가상의 스위치 같은 거다.
그러나 그 외에는 별다른 능력이 없다.
[스킬: 아이돌 마스터]의 모든 능력은 2차 해금을 하며 얻기 때문이다.
스륵!
"진호야, 13살 차이야. 알지?"
따라오려던 정 실장을 말리고 대신 화장실로 들어온 양진혁이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하자 진호는 정색했다.
"순수하게 아티스트 대 작곡가로서 작업을 하고 싶은 겁니다."
'이게 좋아하는 거면 박 대표님도 좋아하는 거게!'
박 대표도 보는 순간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저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장을 다시 무대에 세우고 싶어서 말이다.
"그럼 다행이긴 한데……"
양진혁은 의뭉스런 표정을 지었다.
진호가 단호하게 말하긴 했지만, 아까 진호가 짓던 눈빛은 분명 사랑에 빠진 남자의 그것이었다.
"다행이긴 한데가 아니라 맞다니까요. 잠시만요."
진호는 핸드폰을 켜서 방금 전 떠올랐던 영감대로 악보를 적기 시작했다.
양진혁은 그걸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 너 지금 …… 흡!"
그는 재빨리 입을 막았다.
매번 밀리언을 달성하는 진호의 작곡을 방해해선 안 됐다.
그렇게 5분여가 흐르자 진호는 양진혁에게 악보를 보여 주었다.
"……허? 지, 지금 5분 만에 작곡을? 그, 그럼 이거?"
"대박이 터질 수도 있는 곡이죠."
작곡 시간이 짧을수록 대박이 터진다는 건 이 바닥에서 정설 같은 속설이다. 그건 지금 이 상황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와, 이거 진짜 역대급이다.'
프로듀싱 관련 스킬과 만난 작곡 스킬.
이 둘의 시너지는 작곡을 한 진호조차도 경악과 감탄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이거 진짜 얼른 작업하고 싶다!'
진호는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 했다.
그런 진호를 보는 양진혁의 눈이 강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안 드려요."
"아, 또 왜! 이번엔 주면 안 되냐!"
"노아 선배님 맞춤 곡입니다."
"……아오, 노아 얘는 전생에 나라라도 구했나!"
"구했을 테니까 그렇게 성공하셨겠죠?"
"그건…… 그렇지."
노아. 솔로로서 한 시대를 풍미한 여가수 중 여가수다.
오늘 모인 사람들 중 진호를 제외하면 나이가 가장 어리다고 해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아티스트.
"대신이라고는 뭐하지만, 시간 내서 진아 누나 좀 보내 주세요."
현재 이 능력을 가지고 진아를 보았을 때, 어떤 영감이 떠오를지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너 약속한 거다! 이거 어기면나 진짜 너 안 봐!"
"옙! 가시죠."
"어휴, 손에 세균 묻게 뭘 직접 문을 열려고 그래."
양진혁은 재빨리 문을 열어 주며 눈을 빛냈다.
'이번 오디션 타이틀 곡을 진호에게 맡겨 봐?'
레오가 피를 토하듯 말했다.
진호가 각성했다고 말이다.
'안 그래도 그런 작곡 능력을 가진 진호가 프로듀싱 능력까지 각성했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말을 듣는 순간 전율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와 박 대표, 영진이의 심사를 거쳐야겠지만……'
왜인지 진호의 곡이 최종 멤버의 타이틀 곡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런 양진혁의 생각을 모르는 진호는 그의 능청에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레스토랑으로 돌아가던 진호는 아차하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오늘 멘토까지 다 모이게 한 거예요?"
첫 화 오프닝이기 때문에 양진혁과 안영진, 박 대표 그리고 선발될 연습생들이 부각되어야 한다.
"아, 그거? 와일드카드 때문일걸?"
"와일드카드요?"
"예전의 픽미처럼 소속사 사장들이 골라서 보내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직접 그 소속사에 찾아가서 마음에 드는 연습생을 한 명씩 뽑는 거지."
"호? 공정성과 사장님들의 안목을 시험해 보겠다는 건가요? 모든 소속사에서 그렇게 뽑는 거예요?"
"아, 그건 아니야. 정말 마음에 드는 아이였을 때 뽑는 거지. 숫자도 각자 5장으로 제한됐고."
"아하.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거였네요."
"그렇지. 이미 소속사 사장이 거른 아이들 중에서 고르는 거니까. 그러다 그중 한 명이라도 최종 멤버에 들어가면?"
심사위원당 5명. 제법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열매는 무척이나 달았다.
"신의 안목을 가진 제작자가 되는 거죠."
"흐흐. 그렇지."
"암튼 이런 건 잘 챙기신…… 응? 잠깐?"
"또 왜?"
"그럼 누가 중국하고 일본에 가는 건데요?"
"……이제 그걸 정해야지. 그러기 위해 모인 거니까."
"아."
진호는 순간 뒷목이 당겨 오는 걸 느꼈다.
'굳이 김포공항 근처에서 촬영한 이유가 있구나-!'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