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권 2화
슈가달달의 컴백 무대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일주일이 흘렀다.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로…… 흑!
"그래. 앞으로도 파이팅이다."
-네!
전화를 끊은 진호의 입가에 미소가 서려 있다.
진호의 공방 시청 때문이었을까, 이제 슈가달달은 포털 사이트 연예란에서 뉴스를 간간이 찾아볼수 있을 만큼 뜨면서 무명의 설움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꽃길만 걸으면 되겠네."
"그러게 말입니다. 그럼 이제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네."
장경아 실장의 말에 진호는 표정을 지우며 회의실 정면의 스크린을 보았다.
회의실에는 비단 진호와 장경아실장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각 부서의 장들이 모여 있었다.
오늘은 진호가 한 실험에 대한 성패를 판가름하는 자리였다.
모두 긴장한 표정으로 스크린을 응시했다.
"그럼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슈가달달은 컴백 3일 차부터 음원순위 2위, 현재까지 음반 판매량이 10만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평도 대부분 중독성 있다, 이런 아이돌이 있었냐는 등 우호적입니다."
가히 엄청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매출이었다.
그러나.
"음."
"흐음."
회의실에 앉은 팀 이진호의 직원들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그건 진호도 마찬가지였다.
여태껏 진호가 만든 결과물 중 가장 저조한 성적이었기 때문이다.
"그중 지니어스가 구매한 것을 빼면요?"
"……음원 순위는 10위까지 떨어지고, 음반 판매량은 5만 장을 겨우 넘길 수준입니다. 물론 이것도 훌륭한 성적입니다."
일주일 차에 5만. 이후 하락세를 생각해도 한 달이면 최소 17만장 정도는 판매된다고 봐야 했다.
이는 웬만한 아이돌도 내기 힘든 성적이었지만, 진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음악방송을 직접 관람하며 느낀게 맞았다.
"씁. 아이돌 음악은 어렵네요."
"아닙니다. 이 정도면 정말 훌륭한 성적입니다. 무명이었던 아이돌이 어떤 이슈를 끌고 컴백을 했을 때, 평균적으로……"
진호는 손을 들어 다급히 입을 연 장경아 실장의 말을 막았다.
"아니에요. 이건 제가 실패한 게 맞아요."
아이돌 음악이라는 특수한 장르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의 성적은 노래와 슈가달달의 가창력이 캐리한 것이지, 아이돌 음악으로서 성공한 게 아니었다.
"노래를 잘 만들었다 생각했는데, 군무를 추며 부르는 걸 보니 알겠더라고요. 아, 이거 실패구나."
더 정확히 말하자면, 녹음을 할 때는 무척이나 신이 났는데, 군무와 어우러지니 노래의 흐름이 약간 처지거나 가빠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쪽 안무가가 노래의 호흡을 생각지 않고……!"
억울해하는 그녀의 말을 웃는 걸로 멈춘 진호가 직원들을 둘러보았다.
분명 장경아 실장의 말이 맞긴하다. 작곡가로서 녹음까지는 해주었지만, 그 이상은 간섭하지 않아서 문제점을 미처 알지 못했다.
'하지만 혹여 알았다고 해도 당시에 고칠 수 있었을까?'
진호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죠.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게 됐으니까요."
여기서 문제는 그걸 고치려면 몇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설사 그렇게 한다고 해도 얼마만큼의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지 가늠이 안 된다.
여러 음악 관련 스킬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실패를 했음을 받아들인 것이다.
여기서 또 문제는 시간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답은 한 가지였다.
'그 스킬을 얻어야겠네.'
* * *
윤혜미는 알바트로스라는 보이 그룹의 열성 팬이다.
공개방송은 물론이고, 서울 인근에서 열리는 행사는 거의 다 쫓아다니며 응원하는 열성 팬.
그런 그녀는 응원봉을 든 채 한 건물의 후문 입구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중이었다.
"우워어어어어!"
"꺄아아아악!"
"라비올라 파이팅-!"
해맑게 웃으며 들어와 기자들을 향해 인사를 하는 라비올라.
팬들을 향해 하트를 귀엽고 사랑스럽게 그리는 그들의 모습에 라비올라 팬들은 뒤집어졌지만, 윤혜미는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다. 아니, 그런 척을 하려 애썼다.
'아, 쟤들은 좋겠네.'
알바트로스에게서 바랄 수는 없는 모습.
알바트로스는 참 멋지고 잘생겼는데, 팬 서비스가 많이 약했다.
어쩌다, 정말 어쩌다 해 주는 팬서비스가 아니라면 진즉에 떠났을 만큼 밀당의 고수들이었다.
"……에휴. 봐서 뭐하냐."
그녀는 알바트로스 기사를 찾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우어어어어! 라비올라 여신님들-!"
화들짝!
귀를 찢어 버릴 듯한 함성에 기겁한 그녀는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리며 옆을 보았다.
"이봐요! 여기 알바트로스 응원석이거든요!"
'이래서 안여돼 오덕후들은!'
"라비올라 응원하고 싶으면……"
그녀는 말을 다 꺼내지 못했다.
모자에 마스크를 쓰고 있어 얼굴을 알아볼 순 없지만, 너무도 길게 뻗은 다리와 호리호리한 몸. 모자가 남을 만큼 작은 얼굴.
모델이 따로 없었다.
왜인지 존재감이 흐릿했지만, 그남성이 걸친 옷들은 분명 그녀로서는 쳐다볼 수도 없는 고가의 명품 브랜드들이었다.
그 옆에 서서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여성도 말이다.
'거기다 카메라도……'
돈 많은 홈마들도 들고 다니기 힘들 만큼 비싼 렌즈도 끼고 있었다.
'거의 1억이라고 했던가? 아! 오빠들이다!'
그녀는 재빨리 앞을 보며 응원봉을 들었다.
"꺄아아악!"
"알바트로스 파이팅-!"
윤혜미는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러나 알바트로스는 이번에도 포토 타임만 하고는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사라졌다.
"아아."
예상한 일이지만, 그래도 가슴이 쓰린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아. 가자, 가.'
그렇게 돌아서던 그녀는 옆에서 들려오는 대화에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흠. 쟤들 이름이 알바트로스라고요?"
"응. 실력도 그지 같은 게 돼도 않는 밀당 짓을 해서 손절한 애들이 많아. 실제로 우연히 만나도 팬들을 벌레 취급한다더라."
"팩트?"
"지금 실버 애들 중에 쟤들 팬이었던 애들 있어. 연락해?"
"아뇨, 회장 누나 말인데 믿어야죠. 그럼 쟤들은 곡을 주면 안 되겠네요."
"……너도 참 너다. 어떻게 곡 줄 아이돌 찾겠다고 공방을 뛰어? 이렇게 홈마 분장에 카메라까지 사서?"
'회장 누나? 곡? 아이돌?'
"아, 이건 사심. 컴퓨터에 저장해놓을 거예요. 그러니까 걸그룹 여신님들만 응원하는 거지."
"……너 이러는 거 그분은 아니?"
"쉿! 쉿! 헉! LCL 여신님들이다! 우어어어어어! LCL 파이팅-!"
무언가 심상치가 않은 대화였다.
'이 사람들 뭐지?'
윤혜미는 방금 전화가 난 것도 잊은 채 둘을 빤히 살폈다.
'어디서 본 듯한 예쁜 눈……'
마스크를 써서 다른 이목구비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 어디선가 본듯한 인상이었다.
"아, 오늘 출연하는 걸그룹은 저기 LCL로 끝이네. 가죠, 회장 누나. 오늘 저녁으로 한우 오마카세 예약해 뒀어요."
"내가 진짜 맛있는 저녁만 아니었어도……. 하, 난 왜 이 황금 같은 주말에 너를 따라다니는 걸까. 소개팅을 캔슬 놓으면서까지."
"에이, 이 바닥 전문가께서 왜 그러실까. 내가 회장 누나 아니면 믿고 의지할 사람이 어디 있다고. 응?"
"암튼 말이나 못하면……"
"으흐흐. 갑시다. 아, 맞아. 인수해서 재단장한 폐교들 있잖아요. 이번에 실내 수영장을 만들까 하는데 누나 생각은 어때요? 겨울엔 사우나로 이용할 수 있도록 감각적으로 인테리어해서."
"그거 괜찮다! 역시 내 연예인!"
'연예인?'
고개를 모로 기울였던 윤혜미는 이내 경악했다.
"악! 설마!"
'이, 이진호다! 이진호! 슈가달달 띄운!'
이진호라면 만날 2등만 하는 알바트로스를 정상에 세울 수 있었다. 그녀는 다급히 그들을 찾아나섰지만, 둘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 * *
드르륵! 탁! 털썩!
"박 대리님, 숙여요."
운전석에 앉은 박 대리가 다급히 고개를 숙이자 진호도 재빨리 의자를 뒤로 젖혔다.
선팅이 완벽하게 되어서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등 뒤를 쫓은 두려움이 그런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의 차 앞으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찾아!"
"분명 여기 어딘가 있을 거야!"
"헉! 저기서 소리 났다! 이진호 작곡가님-!"
"그런데 이진호 맞아? 아까 얼굴이 아니었잖아?"
"몰라! 일단 잡고 보는 거지!"
다시 우르르 몰려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에 진호는 한숨을 내쉬며 의자를 원래대로 했다.
"휴우. 이번엔 진짜 들키는 줄 알았네."
어느 순간부터 그의 존재가 알음알음 퍼지더니 그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오늘, 걸그룹에 환호하던 도중 마스크와 모자가 벗겨진 탓에 큰 소란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이거 귀찮게 됐네요. 앞으로 공방을 뛰려면 분장을……"
"괜찮아요. 이젠 안 올 거니까."
"어? 정말입니까? 벌써 다음 곡을 줄 아이돌을 고르셨습니까?"
"그건 아니고요."
"예? 그럼?"
'스킬을 1차 해금한 거죠.'
'모든 음악 공개방송에서 아이돌포토 타임 보기.'가 이번에 얻으려는 스킬의 1차 해금 조건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이전에는 아이돌에 대해 티끌만큼도 관심이 없던 주인공은 친구 따라 아이돌 포토 타임을 보게 되면서 아이돌에게 빠져 버리고 만다.
어느 한 아이돌 그룹이 아니라 그들이 내뿜는 아름다운 아우라에 매료된 것이다.
"이 정도면 곡을 줘도 좋을 것 같은 아이돌리스트를 추렸다고나 할까요?"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그걸 알수 있는 겁니까?"
"사람의 몸은 굉장히 정직하니까요."
"음……."
"출발해 주세요."
"아, 예."
조심스럽게 시동을 건 박 대리는 조용히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 * *
레오가 물고 있던 딸기 빵을 떨어트렸다.
그는 어이없다는 듯 진호를 보았다.
"네가?"
"네."
"……왜? 너 이미 프로듀싱 어느 정도 하잖아."
레오가 현재 어이없어하는 건 진호가 프로듀싱을 배우겠다고 해서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엄청 잘한다고는 못하죠. 제대로 배우지도 않았고."
"그건 맞지만…… 내가 웬만한건 다 가르쳤는데……"
"다시 가르쳐 주신다고 생각해주세요. 간식, 식사 다 챙겨 드릴게요."
"콜! 처음부터 가르쳐 주면 되는거야? 아님 건너뛰고?"
"처음부터요. 아무래도 기초부터 다시 다져야 할 것 같아요."
2차 해금 조건 때문이다.
'아이돌 프로듀서에게 프로듀싱 배우기. 그런데 프로듀싱이란 개념이 꽤 광범위하지.'
프로듀싱이라는 게 단순히 음향기기 조작이나 편곡, 마스터링만 하면 되는 건 줄 알고 스토리를 진행했다가 처음부터 다시 한 게 몇 번인지 모른다.
레오는 처음부터라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천재인 진호가 굳이 처음부터 다시 배울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너 설마 걔들을 위해서 실험하는 중이야? 그래서 뜬금없이 슈가달달인가 하는 애들한테 곡을 준 거고? 이번에 난 기사도 그것 때문이고?"
결국 진호가 곡을 주기 위한 아이돌을 찾기 위해 공방을 돌고 있다는 추측성 기사가 났다. 물론 진호와 팀 이진호 직원들은 이를 부인했다.
"그렇죠. 이왕 데뷔시키는 거 제대로 터질 수 있도록 해야죠."
"그쪽에는 프로듀서 없어?"
"없긴요. 있죠. 그저 저도 한 손 거들려는 거예요. 그리고 이렇게 제대로 배워 두면 앞으로 계속 써먹을 수도 있잖아요. 앨범 완성도도 높아질 테고."
'언제까지고 다른 사람에게 프로듀싱을 맡길 수도 없지.'
"그래? 흠, 그런 의도라면 나 혼자만으로는 힘들 수 있겠는데……"
"네?"
"난 우리 사장님이 기획한 더 원이라는 그룹 내에서 더 원이라는 색깔로 키워진 작곡가 겸 프로듀서라서 말이야. 스타일이 한정적이야."
그렇다고 해도 더 원은 트랜드다.
지금도 곡을 발표하면 그들의 노래는 1위를 하고, 그들이 입은 옷은 유행이 된다.
"아, 시야."
"바로 그거야. 난 굉장히 편향적인 입맛을 가진 프로듀서야. 물론, 이 바닥에 완벽이라는 게 있겠냐만 그래도 이왕 배울 거면 내 꼴 나지 않도록 다양하게 배우는 게낫지."
"형이 지금 대중가요를 작곡하려는 것처럼?"
"응. 아등바등 발버둥 쳐서라도 이 스타일을 벗어나지 못하면 난 영원히 더 원 같은 스타일의 그룹밖에 못 키우니까. 그런데 더 원 스타일이 20년 후에도 통할 거란 보장이 없잖아."
"……역시 존경스럽네요."
결코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레오는 정말 존경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소개시켜 주고 싶은 프로듀서 있어요?"
"많지. 우리 JH도 있고, PJY도 있고, SY도 있지. 그 외에도 많고."
'SY?'
순간 진호의 눈이 빛났다.
SY. 아이돌 왕국이라 불리며 국내 최초로 아이돌을 만든 아이돌의 왕도라 불리는 엔터테인먼트였다.
[스킬: 아이돌 마스더]
[성공하고 싶다고? 하, 날 만난 순간 넌 이미 성공한 거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