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248화 (248/424)

10권 23화

8. 아이돌.

경기는 시종일관 압도적이었다.

멀리서 뿌려져 택배처럼 도착하는 크로스와 패스는 상대팀에게 악몽이나 다름없었고, 태풍처럼 달려와 패널티 박스 앞에서 짚는 헛다리는 지옥 그 자체였다.

맨투맨을 붙여 필드에서 지우려고 해도 가볍게 떨쳐 내며 패스를 뿌리거나 개인기로 돌파하니 마치 악마와 게임을 하는 듯싶었다.

"타임아웃!"

"……으랏차!"

"이겼다! 진호야-!"

쑤린펑과 함께한 선수들은 진호에게 달려들었고.

"흐어억!"

"허억! 헉!"

제자리에 무너진 상하이 선화 선수들은 경이와 질시 어린 시선으로 꼿꼿이 서서 거친 숨을 다스리는 진호를 볼 뿐이었다.

짝! 짝! 짝!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훌륭하군. 대단해! 자넨 대체 누구지? 아니, 누군지는 필요 없어! 내일부터 이곳에 출근해!"

실력과 외모, 신장까지 완벽하여, 그야말로 스타가 되기 위해 태어난 존재였다.

키케 산체스는 상하이 선화에서도 베컴과 같은 선수를 배출할 수 있겠다며 흥분했다.

잠시 눈을 깜빡였던 진호는 이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쑤린펑을 보았다.

'……에라이.'

쑤린펑은 도울 생각이 없는 듯 방금 전보다 한발 물러나 짓궂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한숨을 내쉰 진호는 고개를 숙일수밖에 없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한국에서 연예인을 하고 있는 이진호입니다. 현재 중국에서는 별에서 찾아온 당신의 주인공으로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중입니다."

"음?"

키케 산체스는 눈을 크게 떴고, 상하이 선화 유부남 선수들은 결국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아쉽군. 아쉬워."

축구를 위해 일생을 바친 키케산체스라고 하지만, 잘 나가는 연예인을 축구 선수로 끌어들일 정도로 미친 건 아니다.

'그래도……'

무척이나 아쉽다.

진호는 크랙이다.

그 옛날 호나우두나 펠레, 마라도 나가 그랬듯 전술을 씹어 먹어 버리는, 존재 자체가 전술인 크랙.

플레이 메이커.

'이런 존재는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실력이 늘지……'

상대 팀이건, 같은 팀이건 말이다.

"무엇이 그렇게 아쉬운 겁니까?"

키케 산체스가 서 있는 구단장실로 들어오는 50대 중년인의 낯빛이 묘하게 무겁다.

"아, 왔나?"

"어제 그런 대승을 거둬 놓고도 아쉬움이 남는다는 겁니까? 그런 말은 어제 해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그럼 더 멋지게 기사를 쓸 수 있었을 텐데요."

"……수고 했네."

어젯밤의 대승으로 인해 상하이 선화의 모든 직원이 자축했다고 하지만, 딱 한 곳만큼은 쉬질 못했다.

구단 홍보팀이다. 눈앞의 중년인은 그 홍보팀의장이었다.

"구단주께서도 굉장히 흡족해하셨습니다."

"다행이로군."

홍보팀장은 미적지근한 키케 산체스의 반응에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일입니까? 사고가 터진 것이면 바로 말해 주십시오. 감독님과 식사를 하러 가기 전에 해치울지 대비만 하고 있을지 판단할 수 있을 테니까."

"그게……"

망설이던 키케 산체스는 결국 핸드폰에서 동영상 하나를 재생해 내밀었다. 그가 진호의 경기를 중간부터 찍은 영상이다.

"보게."

"서, 설마?"

진짜로 사고가 터졌을까 다급히 영상을 본 홍보팀장은 이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이건…… 음? 이런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선수가 우리 선화에……"

의아해하던 홍보팀장은 이내 경악했다.

"어? 이진호? 아니, 이게?"

홍보팀장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키케 산체스와 핸드폰 속 영상을 번갈아 보았고, 키케 산체스는 의아해했다.

"알고 있는 연예인인가?"

"……하긴 TV를 잘 보시지 않는 감독님이라면 모를 만도 하겠군요. 간략하게 말하자면 요새 젊은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 연예인입니다."

"그런가……"

홍보팀장은 그 심정을 이해했다.

자신이 감독이라도 이런 실력을 가진 선수라면 어떻게든 영입하려고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연예인이지……'

한 해에 엄청난 액수를 버는 모델이기도 하다.

"어? 잠깐. 그러고 보니? ……허어. 그랬잖아?"

"왜 그러나? 뭔가 방법이라도 생각난 건가?"

홍보팀장은 어색하게 웃었다.

"아뇨. 그냥 이 이진호에게 시축을 맡기면 어떨까 싶어서 그렇습니다. 버는 만큼 기부도 하고, 인성은 천사라 불릴 만큼 착한 연예인이라서 말입니다."

'대장군 장칭이나 런다렌이 극찬을 한 연예인!'

결정적으로 그가 알기로 진호는 중국 내에서 그 어떤 축구팀도 응원하지 않고 있다. 상하이 선화의 시축 선수로서 이보다 적격일 수가 없었다.

먼저 가로채면 임자인 보물 중 보물.

'이거 어떤 조건을 걸어서 데려와야 하나……'

그가 그렇게 머릿속에서 주판알을 튕길 때, 키케 산체스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가 벌떡 일어났다.

"시축? ……푸핫! 그래, 시축! 푸하하하하! 그 수가 있었지! 자네, 이 선수를 시축 선수로 쓸 건가?"

"음? 예, 그렇습니다만……. 아니, 어떻게든 섭외해야 합니다. 별당신의 인기가……"

"고맙네! 고마워!"

홍보팀장은 자신의 손을 잡고 기뻐하는 키케 산체스를 어리둥절해하며 쳐다봤지만, 키케 산체스는 그런 걸 느낄 정신이 없었다.

'아주 가끔씩이라도 연습 경기를 할 수 있는 명분이 생겼어!'

선수로서의 진호는 포기했을지라도 상하이 선화 선수들의 정신을 무장시켜 줄 자극제로써는 쓸 수있다.

키케 산체스는 진호에게 농락당해서 독기가 바짝 오른 선수들을 떠올리며 환하게 웃었다.

* * *

연예인에게 있어 특정 팀의 시축이나 시구를 맡는다는 건 약간 예민한 문제다.

특정 팀에 시축이나 시구를 하면 강제적으로라도 그 팀을 응원할수밖에 없게 되는데, 스포츠 팀의 성적이 좋지 않으면 같이 언급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 영광된 자리다. 유명하지 않으면 결코 하지 못하는 게 시축이나 시구이니 말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중국이라면 더 그럴 터였다.

"받아들이실 겁니까?"

다미앙의 말에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래야죠. 린펑 형도 있고."

상하이 선화는 중국 슈퍼리그에서 언제나 상위권에 드는 팀이다.

응원을 하기에 썩 나쁘지 않았다.

'덕분에 연습 구장 출입도 허락받았고! 물론 선수들이 쉬는 날에만 가능하지만!'

키케 산체스의 욕심이 무엇인지 모르는 건 아니다.

언젠가 박현이 뛰어난 선수는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기량이 발전한다고 말한 적이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대놓고 욕심냈는데 눈치채지 못하면 바보지.'

그러나 상하이 선화 선수들과 경기를 하는 게 즐겁기 때문에 딱히 상관없었다.

"하나 받아들이면 상하이 스타디움에서 콘서트를 할 수 없게 됩니다만……"

"홍커우에서 이틀 하면 되죠."

"역시 그러실 생각이군요. 흠, 그럼 한국에서도 진호 씨가 응원할 팀을 알아 봐야겠습니다."

중국은 응원하는데, 한국은 응원하지 않는다?

분명 말이 나올 터였다.

"서울 연고 팀으로 해 주세요. 축구든, 야구든 아무거나."

"예, 알겠습니다. 아, 그런데 어제 연습 경기 영상을 상하이 선화 측에서 올린다고요?"

"정확히는 유출시키듯 내보내는거죠. 외국인인 제가 상하이 선화의 시축을 맡을 이유를 만들기 위해서 랄까요?"

"좋죠."

웬만큼 인기가 있지 않는 이상할 수 없는 게 잘나가는 스포츠팀의 시축이나 시구다.

그게 외국 연예인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재가 누구냐며 진호를 알게 되는 사람이 더 생기게 될 터였다.

"언론 플레이가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상하이 선화와 연계한."

때문에 진호가 시축을 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릴 듯 싶었다.

"오늘 나눌 이야기 때문이라도 더욱 그래야겠죠. 부탁드릴게요."

의미심장한 말에 다미앙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십시오. 아, 시간이 됐군요."

'가족이 간다' 사건 이후 한국으로 돌아갔던 다미앙이 다시 중국으로 돌아온 이유.

고개를 끄덕인 진호도 일어섰다.

그들은 아이돌 육성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팀 다미앙 중국 지사로 향했다.

* * *

"쉔!"

"형님!"

환하게 웃으며 달려온 저우양의 동생, 저우쉔이 진호를 와락 껴안았다. 마치 사촌 여동생들을 떠올리게 하는 애교에 진호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왜 이제야 오신 겁니까?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십니까?"

"미안, 미안. 좀 바빴어."

"할아버지께서도 말씀은 안 하시지만 굉장히 섭섭해하시고 계십니다."

"아, 진짜?"

'이런……'

중국에 온 날 전화를 드리고, 이 후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전화를 했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던 것 같다.

"며칠 내로 찾아봬야겠네. 아니, 말 나온 김에 오늘 찾아봬야겠다."

"정말이십니까?"

미소년인 저우쉔이 환하게 웃자 주위가 밝아지는 것 같았다.

"응, 당연히 그래야지. 그보다 실력이 많이 늘었다면서?"

"그, 그래도 형님과 비교하면 미천한 실력입니다…… 앗!"

저우쉔의 머리를 쥐어박은 진호가 엄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말하는 건 널 좋게 평가 한 여기 지경철 실장님과 이곳 직원분들의 눈을 의심하는 거야."

"헛! 그런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저, 저는……!"

진호는 다 안다는 듯 저우쉔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우물쭈물거리던 저우쉔은 지경철 실장에게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들이 있는 복도에 훈훈한 바람이 불었다.

"잘 계셨죠, 지경철 실장님?"

"데뷔한 팀 하나 없는 연습실의 실장이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끙.'

말에 뼈가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 문제 때문에 왔어요."

눈을 동그랗게 뜬 지경철 실장이 자세를 바로 하며 다미앙을 보았다. 한국어를 모르는 저우쉔만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우리 애들 데뷔 날짜가 잡힌 겁니까? 어떤 팀부터 내보내면 되는 겁니까? 봄? 여름? 설마 가을입니까? 겨울은 아니죠?"

"진정하세요."

"……크흠."

진호는 연습생들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지경철 실장의 모습에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살짝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지 실장님이 기대한 온전한 데뷔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애들의 얼굴을 알릴 기회가 왔어요."

순간 크게 실망한 지 실장은 이내 갸웃거리더니 눈을 빛냈다.

'역시 감이 좋으셔.'

연예인은 대중 매체에 얼굴을 많이 비춰야 한다. 인생 작품이 있는 탑급 연예인이 아닌 이상 말이다.

신인은 말할 것도 없다.

"어딥니까?"

"축구 관람이요."

"……예?"

진호는 연습실 창문들에 찌그러져라 몰려 이쪽을 보고 있는 아이들을 응시하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미모와 지성과 재능, 이 삼박자를 모두 갖추었기에 선택했던 아이들.

중국 전역에서 고르고 고른 아이들.

"저런 미소년, 미소녀들이 떼로 축구 관람을 한다. 그것도 제가 시축을 하는 축구 경기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경철 실장의 눈이 크게 떠졌고, 진호와 다미앙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 * *

저녁이 되자 진호는 저우웬과 함께 그의 집이자 저우지엔의 저택을 찾았다.

"왔느냐."

"형님!"

저우지엔과 저우양이 환하게 웃으며 반겨 주었다.

"잘 계셨어요? 어머님도 잘 계셨죠?"

"누가 보내 준 홍삼 때문에 잘지냈죠."

"하하. 별거 아니었는데요."

"들어오너라."

"옙!"

저우지엔의 손짓에 저택 안으로 들어간 진호는 거실로 안내되었다.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진호는 저우양의 어머니가 내 온녹차를 한 모금 마시곤 눈을 감았다.

"후, 좋네요. 그런데 아버님은 오늘도?"

"그래, 계속 시간이 맞질 않는구나."

진호는 입맛을 다시며 아쉬움을 토했다.

'이번에도 못 뵙는 건가?'

"그래도 바쁘신 게 좋죠."

"허헛. 이해해 줘서 고맙구나. 그보다 쉔이 데뷔를 한다고?"

진호가 먼저 전화로 해 준 말에 얼마나 놀라고, 얼마나 흡족했는지 모른다.

저우지엔의 시선이 진호의 옆에 앉은 저우쉔에게로 향했다.

쉔의 얼굴은 다시 상기되고 있었다.

"어머, 우리 쉔이 벌써 데뷔를 하는 거예요?"

저우지엔에게 듣지 못한 듯 어머니뿐만 아니라 저우양도 놀랐다.

진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정을 설명했고, 사람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나 저우양의 반응은 좀 달랐다.

"그런데 저놈이 그럴 만한 실력이 될지……. 물론 형님의 눈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울컥!

"내가 그동안 안 해서 그렇지, 한 번 하면 형보다 낫거든?"

"네가?"

"……아오! 엄마, 형이 말하는 것좀 봐! 여기 진호 형님도 계시는데!"

"양, 그만하렴."

저우양은 불만스런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고, 진호는 우애 좋은 형제의 모습에 흐뭇이 웃었다.

"좋구나. 아니, 음악 방송 같은 평범한 곳에서 데뷔 무대를 갖는 것보다 백배 낫다."

저우지엔은 그 점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렇죠? 그렇게 반짝 이슈를 끈 다음에 제 투어 콘서트에 게스트로 세워서 전국을 돌 생각이에요."

그 외에도 여러 계획들이 있지만, 아직 밖으로 말할 단계는 아니었다.

"호오?"

순간 저우지엔의 머릿속에 팀 다미앙 소속 모델들이 어떻게 떴는 지가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진호의 중국 첫 콘서트에서 게스트로 서면서 순식간에 얼굴을 알렸다.

'지금 진호의 중국 팬이 백만을 넘겼다고 했지?'

이것도 굿즈를 일정 액수 구입한 브론즈 계급 이상만 집계를 했을 때 백만이다. 준회원, 준회원조차 되지 못한 팬들까지 합하면 그 숫자를 가늠하기가 힘들다.

'그만한 숫자의 인민들에게 쉔을 각인시킨다?'

성공은 따 놓은 당상이다.

'또 한 번 빚을 졌군.'

두 손자를 계도시킨 것도 모자라, 쉔에게 날아오를 기회를 주고 있다. 쉔에게 국한된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할아버지로서 기꺼울 수밖에 없었다.

"허허허허헛!"

저우양과 쉔, 그들의 어머니는 깜짝 놀랐다.

저우지엔이 이렇게 웃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며느리인 그녀도 저우 가문에 시집 온 이후 몇 번 보지 못한 모습. 저우양과 쉔으로서는 거의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아직 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이어진 저우지엔의 말에 경악해야 했다.

"내가 도와줄 일이 있겠느냐?"

중국 모든 매체를 관리감독하는 기관총국의 기관장인 웨이양보다 더 높은 서열과 영향력을 가진 저우지 엔.

그런 그의 정체를 모르는 진호는 그 뜬금없는 말에 고개를 모로 기울일 뿐이었다.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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